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7)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7화
팬텀은 멸망이다
사탄의 두 눈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열쇠 없이 넘어가지 못한다고 결론 나지 않았나? 어떻게 넘어간 거냐?”
판게니아에서 드워프들이 넘어왔을 때.
그들은 역으로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지만, ‘열쇠’ 없이는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드워프들과 그들의 신은 일부러 열쇠를 이곳에 가져오지 않았다.
“천상이 열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룬드말 왕이 답해주었다.
열쇠 없이 판게니아로 향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천상’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허나, 그조차도 의문이었다.
“우리가 직접 천상의 문을 닫았는데, 그게 다시 열렸다고?”
분명히 닫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천상이 세계에 개입했을 시절.
그들은 이 세계를 실험실처럼 사용했다.
하지만 사탄을 비롯한 ‘세 왕’은 힘을 합쳐 천상의 문을 닫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필사의 노력 끝에.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한 결과였다.
그 과정정에서 죽어나간 동료들은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을 다시 열었다는 의미인가?
사탄은 표정을 굳힌 채 이어서 말했다.
“설마 네놈들. 닫은 문을 다시 연 거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판게니아로 향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을 놔둔 건 ‘천상’이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천상이 그딴 짓을 해서 얻는 게 뭐라고?”
레메게톤 왕이 열쇠 없이 판게니아로 향할 수 있었던 이유.
허나 그런 기색은 느끼지 못했다.
문이 생겼다면 당연히 눈치챘을 텐데.
사탄의 얼굴을 보며 룬드말이 미소를 지었다.
“글쎄. 놈들도 다급해질 만한 일이 생긴 것 아니겠나? ‘진리’가 놓친 변수가 있겠지.”
천상의 태도가 바뀌었다.
녀석들이 급해진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최근들어 천상에도 변화의 기조가 생긴 것이리라.
룬드말은 그들의 조급함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탄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판게니아를 멸망시키겠다?”
“멸망이 아니라 정복이다. 우리의 세계는 멈춘 지 오래야.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
“‘천상’이 실패한 일을, 우리가 성공시키는 거다. 놈들도 닿지 못한 일을 해낸다면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터.”
사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대로 미쳤군.”
“‘판게니아’에서 넘어온 존재들. 그들 덕분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판게니아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걸. 멸망이 멸망시키지 못한 세계라니! 흥미롭지 않나?”
물론, 룬드말도 처음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판게니아르 멸망한 세계로 알고 있었으니까.
문이 생겼을 때도 시큰둥했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게······ 함정이라는 생각은 못 해본 거냐?”
반대로 사탄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룬드말의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피로가 몰려온 탓이다.
문을 열어줬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헬렐레 넘어가는 놈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게다가 천상은, 그들의 적과 다름이 없을진대.
적의 의도대로 움직이려는 룬드말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룬드말,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이 짧아진 거지? 진짜 노망이라도 난 거냐?”
“너는 겁이 많으니 모르겠지.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잊었냐? 천상은 우리를 이용해 ‘멸망’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우리를 무기로 쓰려고 했다고! 지금 네놈들의 행동이 천상의 의도와 다를 게 뭐냐? 놈들은 여전히 우리를 무기로 사용하려는데 그걸 넘어가?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사탄은 룬드말 왕에게 거리낌없이 욕을 내뱉었다.
이 세계에서 그에게 욕을 할 수 있는 건, 사탄 외엔 없었다.
“사탄, 모습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입이 걸구나. 네놈의 룬을 먹으면 내 입도 걸어질지 궁금할 정도로.”
“그 대단한 ‘멸망’이 왜 판게니아를 멸망시키지 못했을까? 판게니아에 더 엄청난 존재가 있으니까 실패한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겁도 많군. 그런 존재는 없다. 이미 ‘드워프의 신’의 뇌를 먹고 그 기억을 나는 전부 훑어보았으니.”
룬드말은 확신했다.
드워프의 신. 녀석의 기억을 전부 훑어봤기 때문이다.
멸망이 출현하며 백신전의 신들도, 종의 주인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 압도적인 무력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판게니아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외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자신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한데, 사탄의 눈가에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군. 룬드말, 당장 멈춰라. 지금이라도 레메게톤을 불러들여야 한다.”
“왜 그래야 하지?”
사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저 멍청한 룬드말은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탄은 안다.
지금 그들의 세계에 닥친 위험을.
레메게톤이 넘어갔다고?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다.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 세계로 ‘멸망’이 넘어왔으니까······!”
레메게톤이 넘어가자, 판게니아에선 멸망이 넘어왔다.
설마설마했는데, ‘팬텀’에게서 느껴진 그 기운은 멸망의 것이 맞았던 모양이다.
의외의 말에 룬드말이 고개를 갸웃했다.
“···멸망이, 우리 세계에 있다?”
“멍청한 놈아. 아직도 모르겠냐? 이건 천상이 파놓은 함정이다! 우리는 보기 좋게 함정에 걸려든 거고!”
사탄은 확신했다.
이번 일은 ‘천상’이 파놓은 함정이 분명했다.
언제나 일탈을 꿈꿨던 룬드말과 레메게톤.
둘을 유혹해, 반대하는 압셀론을 죽이게 만든 뒤, 판게니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을 만들어준 게다.
아마도 판게니아에서 넘어올 ‘멸망’과 시기를 맞춰서.
팬텀은 멸망이다.
그것도, 천상의 말을 듣지 않는 멸망이었다.
놈이 판게니아를 멸망시키려던 그 ‘멸망’과 같은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관련이 없지도 않을 터였다.
천상은 그들의 세계가, 저 ‘팬텀’······ 멸망과 맞붙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것이었다.
룬드말은 작게 웃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아무튼, 당장 멈춰라. 경고했다. 너, 나한테 생명의 빚이 있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룬드말은 사탄에게 몇 번이나 생명을 빚졌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된 후에도, 심지어 천상의 문을 닫을 때조차도.
사탄이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이 세계의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만.”
허나, 룬드말은 뻔뻔하게 나왔다.
사탄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원래부터 멍청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멍청할 줄이야!”
“설령 ‘멸망’이 찾아왔다 해도, 마찬가지다.”
룬드말 왕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두 개의 ‘붉은 태양’이 더욱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룬드말의 손에 피처럼 붉은 ‘태양의 검’이 쥐어졌다.
“너와 압셀론의 룬을 먹으면 나는 무적이 된다. 천상에 올라 ‘진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테지.”
“······말이 안 통하는 짐승만도 못한 놈한테 대화로 풀려고 한 내 잘못이다.”
빠드득!
사탄이 몸을 풀었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다.
이런 머저리와 대화를 하려던 게 잘못됐다.
사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말 안 듣는 놈은 예로부터 매가 약이었지.”
*
레메게톤 왕.
그는 홀로 ‘문’을 넘었다.
판게니아로 향하는 문을.
이어, 새로운 땅에 도착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곤 감탄을 터트렸다.
“···생명이 넘치는구나.”
모든 게 완벽했다.
그들의 척박한 세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름답고, 생명력이 풍만하며, 신비스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욱 아쉽군.”
이 세계를 한차례 부숴야만 한다는 게.
그래야만 세계의 규칙을 바꿀 수 있으므로.
“판게니아와 연결된 심연. 그리고 마계라. 생각보다 여흥거리는 되겠군.”
하지만, 그 과정은 즐거울 것이다.
판게니아와 연결된 세계와 그곳의 존재들이 느껴졌다.
연결된 세계라고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세계였다.
모두 판게니아에서 파생된 곳.
그곳들을 모조리 파괴해야, 비로소 세계는 그들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오랜시간 강제로 평화를 이룩한 탓에, 레메게톤은 답답했다.
강자와의 싸움은 언제나 즐거운 일.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허나, 이 세계는 아니다.
판게니아에선 마음대로 무력을 흩뿌려도 된다.
룬드말 녀석보다 먼저 판게니아로 넘어온 까닭이었다.
레메게톤은 양 손을 번쩍 들었다.
‘누가 내 마력을 읽어내나 확인해봐야겠군.’
세계 전역에 마력을 퍼트릴 생각이다.
이 마력을 읽어내는 놈이라면, 자신의 세계에 위협이 들이닥쳤음을 깨닫게 될 터.
당연히 레메게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할 것이었다.
물론, 마력만 흩뿌릴 생각은 없었다.
“일어나라.”
스으윽.
스으으윽.
바닥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일어났다.
레메게톤. 그는 그림자 군단을 이끄는 제왕.
자신을 따르는 모든 기사들을 그림자 기사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 숫자가, 순식간에 백만을 넘겼다.
-왕이시여.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림자 기사들은 레메게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사들의 무력 수준은 룬드말도, 압셀론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을 보며 레메게톤이 말했다.
“출격하라.”
세계의 정복.
보이는 모든 생명을 잠재울 것을 명했다.
*
판게니아에 불길한 마력이 퍼져나갔다.
이질적이고, 무척이나 신경쓰일 정도로 악취가 나는 마력이다.
그에.
“······.”
왕좌에 앉아있던 ‘마왕’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의 마력에 반응할 일은 좀처럼 없었다.
또 다른 멸망이 출현했을 때조차도 마왕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냄새가 고약하군.”
이세계의 존재는 무척이나 역겨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력을 풍겨대는 꼴이 너무나도 오만하다.
이질적인 이세계의 존재는 자신을 상대할 강자를 찾고 있었다.
허나-
‘우습구나.’
마왕은 웃어버렸다.
또 다른 멸망이 나타나, 판게니아를 멸망시키려 했을 때, 마왕이 자리를 지킨 이유는 간단했다.
놈의 의도가 온전히 ‘판게니아’에만 있었으니까.
또 다른 멸망이 멸망시키려던 건 오직 판게니아뿐이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다르다.
지금 나타난 놈은 판게니아와 연결된 모든 세계의 파괴를 원한다. 그리하여 전부 정복할 심산이다.
말인즉슨.
······마계조차도, 파괴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실로 광오하지 않은가.
비록 ‘대원정’에 의해 한 번 마계가 사라질 뻔했지만, 대원정을 주도한 빌헬름은 육체를 빼앗기고 죽었다.
마찬가지다.
마계를 노리려는 놈은, 목숨을 내놔야한다.
이곳은 마왕. 그의 왕국이었기에.
무엇보다······.
‘움직일 때가 되었다.’
마왕은 그동안 움츠려있었다.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완전한 부활을 위해서.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천상도, 팬텀도,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 세계에서 건너온 원주민 따위야.
‘작은 여흥거리 정도는 될 터.’
마왕은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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