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4)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4화
기억
―찾았다! 해적 여왕의 자식이다!
―우하하하! 대어다, 대어!
―빌어먹을 해적 여왕년! 우리 해적단을 무시했겠다!
―죽일까?
―멍청아! 몸값을 받아내야지!
살면서 가장 괴로웠던 기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디트리히는 당당하게 그날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날.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날.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은 채로, 어렸던 디트리히는 알 수 없는 바다 해역 어느 지점에 끌려갔다.
장장 한 달이 넘도록 갇혀있었고, 그 시간까지 디트리히의 어머니인 해적 여왕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도착하지 않았다.
―해적 여왕한테선 아직도 답이 없나?
―냉혈의 여자 아니랄까 봐, 자식이 납치돼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가 본데?
―잘못 납치한 거 아니야?
―벌써 한 달이 넘었다고! 그냥 죽이자!
몸값을 요구하는 해적들의 요구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마 싶었다.
설마,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겠느냐며 애써 위안하고 외면했다.
소식이 아직 닿지 않은 것이리라, 아니면 중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
허나, 아니었다.
디트리히가 납치된 지 30일을 훌쩍 넘어 60일에 도달했을 때.
디트리히는 진실을 알게 됐다.
―여왕이 몸값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왔다.
―아무래도 버림받은 것 같군.
―불쌍한 녀석. 하나뿐인 자식을 이렇게 버릴 줄은 누가 알았겠냐.
―인간도 아니다, 그 여왕은.
디트리히는, 버림받았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했으나 더 이상 그럴 힘도 없었다.
개밥만도 못한 음식을 먹으며, 밤낮의 기온 차가 극심한 해역의 한 가운데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자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 희망이, 사라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해적 여왕은 절대로 남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걸.
특히 다른 해적들과 절대로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죽는 건가.’
피골이 상접한 디트리히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버림받은 것인가.’
해적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적 여왕은 디트리히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쓸모가 없어졌으니, 밥만 축내는 디트리히는 내일 공개적으로 처형될 것이었다.
아니면 어느 외딴 나라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차라리 처형됐으면 좋겠군.’
누군가의 노예로 살바엔 죽는 게 낫다.
그러나 해적들은 그동안 먹인 돈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고자 디트리히를 어딘가에 팔아넘길 가능성이 컸다.
하여, 디트리히는 고민했다.
‘이대로 죽자.’
혀를 깨물어 죽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머리를 박아서라도.
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살고 싶니?」
그때였다.
파랑새가 날아와, 디트리히에게 물었다.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이 해역에서 이처럼 작은 파랑새는 본 적이 없으니까.
상태가 좋지 않아 환각을 보는 게 분명했다.
하여, 디트리히는 힘없이 답했다.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눈앞에 보이는 건 환상.
살려달라고 빌어도 살 수 없음을 안다.
「살아서, 묻고 싶지 않은 거니? 왜 너를 버렸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딴 이유, 알 게 무어란 말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벌써 60일이 지났다.
작은 서신 하나 보낼만한 시간조차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너는 이대로 죽기엔 아까워. 너의 재능은 상당히 매력적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너를 살릴만한 ‘게이머’는 그 한 명뿐일 듯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한 헛것이 아니었나?
「그래서 다시 물어볼게. 이 해적들을 누가 보내 너를 납치한 건지 궁금하지 않니? 여왕이 왜 너를 포기했는지 정말 안 궁금해?」
가족을 버렸다.
디트리히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절대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 했다.
간절한 마음에 나타난 환상일 것이다.
가슴 속 깊이 사실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발현된 파랑새임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살 수 없어.”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그 사람’이라면 널 살릴 수 있어. 솔직히 나도 조금 궁금하거든. 이 상황에서 너를 어떻게 살려낼지 말이야.」
「계약을 하면 어차피 모두 잊게 될 거야. 그러니까, 하나만 알려줄게. 이 해적들을 보낸 건 너의 아버지란다.」
“아버지···? 나한테 아버지가 있었나?”
「세르닐 왕! 그가 여왕과의 불장난으로 너를 낳았지. 여왕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자포자기하고 있단다. 이대로 네가 죽으면 여왕도 죽을 거야.」
“어머니께서······.”
모르겠다.
세르닐 왕이 자신의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란 사람이 해적들에게 자신을 납치하도록 사주했다는 것 아닌가.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 사실을 깨닫고, 모든 걸 놔버렸단다.
철혈의 여왕이었던 어머니다.
측근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녀가, 세르닐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말이 안 되지 않나.
역시 환상이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궁금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지?”
그래서 물었다.
백 번을, 천 번을, 만 번을 생각해도 이 상황을 타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한 번 해봐라.
순간, 계약은 성사되었다.
가장 끔찍했던 날.
가장 끔찍했던 기억.
생존확률 따윈 없었던 그곳에서, 디트리히는 살아남았다.
팬텀.
그가 자신을 구원한 것이다.
기적이었다.
사라졌던 기억을 떠올리자, 디트리히는 자신의 몸으로 말미암아 팬텀이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걸 모두 상기해냈다.
그 과정은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다 죽어가는 몸으로 해적들을 유인해 한 명씩, 한 명씩 죽였다.
이후 각성한 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디트리히는 세르닐 왕국으로 향했다.
왜 다른 해적들을 통해 자신을 납치하고, 어머니를 버린 건지 왕에게 묻기 위해서.
그 정도로 힘겨운 일을 겪었으니, 디트리히도 거칠 게 없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 따윈 존재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긴 그 철창 안보다 더 끔찍한 장소다.’
60일 넘게 갇혀있던 그곳보다.
이곳이 더 끔찍했다.
여긴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매일 같이 누군가가 먹히고, 또 누군가는 시체가 되어 끌려나간다.
언제 디트리히의 차례가 될지 몰랐다.
뿐만인가.
“아아······ 아아악!”
어느 시점부터 압셀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디트리히는 왜 압셀이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간혹 눈을 뜬 압셀이, 디트리히를 바라보는 눈빛.
그건 매일 철창 안의 누군가를 먹어치우던 기사들과 닮아있었으니까.
압셀은 디트리히를 먹고 싶어 한다.
그 충동을 참고자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다.
두렵다. 무섭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눈을 감고 편히 잘 수도 없었다.
이곳에는 파랑새도 없다.
팬텀······ 그 또한,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계약도 하지 않았고, 자신은 그의 소중한 사람조차 아니니까.
‘···언제까지 누군가의 도움만 바라고 있을 생각이지, 디트리히?’
그 순간이었다.
디트리히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여왕도 디트리히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또 다시 누군가가 도와주러 오기를 미련하게 기다려선 안 된다.
‘나는 세르닐 왕국의 왕이다.’
디트리히는 왕이었다.
수호 성검을 뽑아, 자신을 증명했다.
비록 모두가 인정하는 왕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될 때까지 증명하면 되니까.
스스로 일어설 테니까.
“··· 오직 나만이, 너의 주인이다. 수호 성검이여.”
스으으으!
동시에, 디트리히의 손에 수호 성검이 쥐어졌다.
빼앗겼던 검이 다시금 디트리히의 손에 소환된 것이다.
온전한 수호 성검의 주인으로서 인정받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탈출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팬텀을 기억한다.
···할 수 있다.
디트리히가 수호 성검을 숨겼다.
간수들과의 교대 시간 사이를 노려, 간수가 홀로 남았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되자 열쇠를 지닌 간수를 향해 말했다.
“이봐.”
“······?”
“내 몸을 먹고 싶지 않나?”
“저 작은 녀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거대한 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디트리히는 말했다.
“다른 기사들이 내려와서 먹을 때면 군침을 질질 흘리던데. 언제까지 구경 만 할 생각이지?”
“그건 룬드말 왕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이다.”
“물 한 잔만 다오. 그럼 내 팔을 먹게 해주겠다.”
“······너흰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다.”
“물 한 잔만 주면, 말하지 않겠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나?”
“추궁할 텐데······.”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나는 압셀에게 잡아먹힌다. 이 녀석, 드워프가 아니야. 드워프의 모습으로 진화한 기사다.”
“······.”
“물 한잔이라도 시원하게 마시고 싶은 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꿀꺽!
간수가 침을 삼켰다.
“진짜 말 안 한다고?”
“아아.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하지.”
“······ 알겠다. 기다려라.”
간수가 군침을 흘리며 물을 떠 왔다.
“마셔라.”
“안쪽으로······ 움직일 힘이 없어서 말이야.”
“쯧. 허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의 상태를 봐라.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는지. 무기도 전부 빼앗겼는데.”
“······흐음. 그것도 그렇군.”
간수가 철창 안을 살폈다.
확실히, 움직일 힘도 없을 만큼 피골이 상접 해 있다.
작디 작은 녀석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무기조차 없는 드워프는 벌레만도 못한 약골이다.
결국, 간수가 창살을 열고 들어갔다.
“마셔라.”
“더 가까이······ 미안하군. 입에 직접 흘려 넣어주면 좋겠는데.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귀찮게 하는군. 약속 꼭 지켜라.”
“걱정하지 말래도.”
간수가 물을 담은 그릇을 들고 디트리히에게 다가갔다.
이어 물을 마시게 하고자, 고개를 숙인 순간.
‘지금!’
서걱!
디트리히는 숨겨둔 성검을 들어, 간수의 목을 잘랐다.
쿵!
목을 잃은 간수가 바닥을 뒹굴었다.
이어, 디트리히는 압셀을 향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먹어라. 압셀. 네 먹이다.”
*
콰아아앙!
탑이 흔들린다.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이내 탑 전체로 퍼져나갔다.
“괴, 괴물이다!”
“지하 감옥에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기사들을 전부 잡아먹고 있다고······!”
무언가 불길한 존재가 나타나 그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고, 그 형태도 더 억척스럽게 변해만 간다.
마치 평생을 굶은 무언가처럼.
게걸스럽게 룬을 탐하고 있었다.
그 가공할 마력을, 탑의 꼭대기에 있는 룬드말 왕도 느꼈다.
허나, 의아한 일이다.
틀림없이 이 마력을 어디선가 느껴본 것 같았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과거에.
곧이어 마력의 정체를 깨달은 룬드말 왕이 미소지었다.
“······ 압셀론. 살아있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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