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3)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3화
유일신
쿠르릉!
룬드말 왕이 검을 내리치자 땅이 움푹 파였다. 흙이나 모래 따위가 전부 증발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르르르르르르!
동시에 세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땅을 중심으로 둥근 원형의 막이 형성된 것이다.
룬드말 왕은 지닌 바 모든 마력을, 이 원형의 막 안에 흩뿌렸다.
곧 세계가 분리되듯 원의 안과 밖은 서로를 전혀 볼 수 없게 변했다.
자신의 마력이, 그리고 상대하는 멸망의 마력이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건가.’
룬드말 왕의 심정이 변했다는 방증이다.
기사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가 지금은 자신의 추태를 숨기고자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켰다.
아마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리라.
‘틀림없이 룬드말의 룬을 베었다.’
룬을 베었다.
그리하여 그 안에 잠들어있던 룬드말의 영혼을 꺼냈다.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생겼을 테지만, 룬드말은 끝까지 결전을 택했다.
이미 자신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먹어치워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터였다.
그래.
지금, 룬드말은.
이 세계를 살아가며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영혼이 성장했다.
스스로, 포식을 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었다.
룬드말 왕의 기세는 이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마력의 농도, 질, 그 무엇도 이전과 비할 바가 안 됐다.
뿐만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더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해져 자신의 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이미 나는 많은 걸 가지고 있었군. 더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계를 먹어치울 필요가 없다.
이미 룬드말은 더 많은 존재를 포식했으므로.
무한하게 욕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걸, 더 좋은 방향으로 개화시키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저 멸망······ 팬텀의 내부에서 보았듯이.
저와 같은 ‘공생’은 아닐지언정, ‘공명’은 가능할 터이므로.
“느껴진다. 내 안게 깃든 셀 수 없이 많은 룬들이. 그들의 목소리가, 의지가.”
룬드말 왕은 몸을 떨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사탄이 이야기하는 ‘공명’을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룬드말은 자신이 여태껏 먹어치운 모든 룬과 공명하기 했다.
곧이어 그가 시선을 돌려.
“이 세계는 나를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멸(不滅)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말했다.
룬을 벗어나 영혼의 영역에 들어서자, 멈춰있던 세계가 룬드말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불멸성을 부여하고, 세계의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룬드말은, 신(神)이 됐다.
훨씬 풍부해진 영혼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격(格)을 지니고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허나 만족하긴 이르다.
“멸망이여. 너로 인해 나는 태초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종말’이다.
이전의 파괴를 일삼던 룬드말은 사라지고, 태초신이 된 룬드말만이 존재하게 될 것인즉.
자신이 태초신의 격에 오르거든 이 세계는 재생이 가능할 터.
“내게 깨달음을 준 걸, 깊이 후회하여라.”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눈앞의 멸망 덕분이다.
이제 자신은 죽지 않는다.
세계의 유일신이 된 그는 이 세계에서 무적과 다름이 없었다.
타차원의 존재가, 다른 차원에서 제대로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것도 유일신 앞에서라면 더더욱 힘들겠지.
이미 승패는 결정 났다.
······그 자신만만한 룬드말을 보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 좀 상대할 맛이 나겠군.”
그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아, 안 돼. 룬드말은 신이······ 유일신(唯一神)이 되었다······!
드워프들의 신.
그가 경악하며 암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졌으니까.
세계가 룬드말을 신으로 인정했다.
고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세계의 근원은 그에 따라 더 강력한 신위(神威)가 생겼다.
아무리 멸망의 그림자가 덮쳐온다 하더라도, 아무런 과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근원’을 멸망시킬 수는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판게니아도 멸망이 출현하자마자 멸망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강대했던 ‘멸망’도 즉시 세계의 근원을 없애진 못했다.
차근차근 탑을 세우고 영향력을 키워 그것을 가능케 하였을 뿐.
“유일신이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디트리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드워프의 신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 세계엔 신이 없어. 신이 없으니 세계를 유지하는 ‘근원의 힘’은 계속해서 약해져 갈 수밖에 없었지. 조금 전까지는 멸망이 이길 가능성이 있었으나, ‘유일신’으로 등극한 이상 이제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해.
“어떻게 갑자기 신이 됐단 말이냐?”
―···모르겠구나. 우리 신들의 주된 일은 세계의 균형을 맞추고, 유지하며, ‘영혼’을 다루는 것. ‘영혼’의 존재는 세계를 지탱하고 유지하며 찬란한 생명을 꽃피운다. 허나 이 세계엔 영혼이 없다. 그런데 룬드말 왕이 돌연 ‘영혼’을 갖게 되었다.
“영혼으로 인해 환생 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 세계는 오랫동안 유지된 거로 아는데. 새로운 생명도 태어나고.”
―‘찬란한 생명’이란, ‘잠재 가능성’을 지닌 생명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스스로 나아갈 힘을 지닌 존재. 스스로 격을 쌓고, ‘신’이 될 가능성조차 지니게 되지. 그렇게 많은 생명체가 격을 쌓으면 ‘세계의 근원’은 제알아서 강화된다.
“그게 안 돼서 룬을 먹고 힘을 키웠던 것이로군.”
―그런데 최초로 ‘찬란한 영혼’이 피어났다. 룬드말이 알을 깨고 나왔어. 규칙을 만드는 자가 되었으니 이 세계에 아무런 제반이 없는 멸망은 결코 룬드말을 이길 수 없을 게야.
“···그럼에도, 믿는다.”
디트리히는 흔들리지 않았다.
디트리히가 보아온 팬텀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기에.
도리어 그가 패배하는 모습이 그려지지도 않았다.
고오오오오오오오-!
강화된 ‘세계의 근원’이, ‘종말’을 더욱 거세게 물었다.
그러자 ‘종말’은 비명을 내지르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의 신이 한 말마따나, 이곳은 판게니아가 아닌 아예 다른 세계.
이곳에 팬텀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비록 ‘종말의 탑’을 띄웠으나, 고작 한 개뿐.
영향력 자체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영향력이 크지 않으니, ‘종말’의 힘도 약화하는 게 당연했다.
점차 ‘종말’의 기세가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디트리히는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나는 아직도 나약하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다가 불현듯, 디트리히는 수호 성검을 내려다보았다.
“······영향력을 키우면 승리할 수 있는 건가?”
―멸망이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은 ‘멸망의 탑’을 세우는 것이다. 신을 죽이고 오염시켜야만 가능한 일이지.
“판게니아에 있는 ‘탑’을 이곳과 연결할 수 있다면?”
―아이야. 이곳은 판게니아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서로의 규칙은 적용되지 않아.
“그럼 저건 뭐지? 룬드말에게 영혼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나. 본래라면 불가능해야 할 일 아닌가?”
―그건······.
“이미 규칙은 바뀌었다.”
―뭘 어쩌려는 거냐?
“···‘문’을, 제단을 다시 연다.”
디트리히가 시선을 돌렸다.
수호기사 안드로라고 했던가.
“······?”
안드로가 고개를 갸웃하자, 디트리히가 그 즉시 말했다.
“이봐. 나를 최초로 드워프들이 나타난 ‘문’이 있는 곳으로, 최대한 빠르게 데려다 줬으면 좋겠는데.”
*
룬은 알이다.
알을 깨고 나온 룬드말은 비로소 생명을, 삶을 얻었다.
허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왜 나를 깨운 거지?’
알을 깰 수 있게끔 도와줬다.
마땅히 죽여야 할 적인데도 불구하고.
멸망은 왜 자신을 신으로 만든 건가.
이전의 상태는 너무 쉬웠기 때문에?
허나, 이제 멸망은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죽일 수 없다.
격 자체가 달랐으니까.
다만.
“···묘한 기술을 쓰는군.”
룬드말은 고개를 갸웃했다.
몇 번이나 멸망에게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
그러나 닿을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것만 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을 다루는 건가? 찰나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결과를 바꿔내고 있는 걸 보면··· 한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룬드말은 알 수 없는 별의 권능이다.
빌헬름이 최후에 깨달은 시간의 틈.
그 깨달음으로 인해 찰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허나, 무한정 반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 봤자, 내가 더 강하다.”
룬드말은 자신했다.
이미 유일신의 격에 이른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노라고.
스슥!
룬드말의 신형이 순간 사라졌다.
멸망의 힘과 기술은 확실히 그의 개념을 웃돌고 있었으나, 어차피 놈도 자신에게 닿을 수 없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었고, 멸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지?’
···그래야 하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멸망은 약해지지 않았다.
도리어 조금씩 자신의 격을 따라잡는 기미까지 보였다.
의아하지 않은가.
기술도 아닌 것을 어떻게 따라잡는 건지.
‘적응. 적응하고 있구나!’
아.
룬드말은 이맛살을 구겼다.
구길 수밖에 없었다.
멸망은 자신의 격을 따라잡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약해진 존재감을, ‘격’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판게니아에서 이 세계로 오며 약해진 영향력을, 자신과 부딪히며 복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유일신인 나보다 더 거대한 격을 지니고 있을 리가······.’
격이란 자격이다.
당연히 세계의 유일신 그 이상의 자격을 멸망이 갖는 건 말이 안된다.
그것도 자신의 세계에서 말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는 당연히 룬드말이어야 했다.
멸망이 영향력을 키워 이 세계에서 더 큰 자격을 지니게 되는 게 아니고서야, 직접 유일신과 맞붙어 이기기란 힘든 일이었다.
스팟!
순간, 멸망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베었다.
동시에.
“······!”
룬드말의 두 눈이 경악으로 가득찼다.
베었다. 그것도 ‘불멸’을 베어버렸다.
상처가 나고, 치료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딴 상처에 그가 놀랄 리 만무했다.
베인 찰나, 보인 것이다.
멸망이 지닌 ‘정체’가 말이다.
급히 물러선 룬드말이 입을 열었다.
“넌······ 네놈은 뭐냐. 멸망인 주제에 왜 네놈에게서 ‘진리’가 보이는 거지?”
틀림없이 보았다.
단순한 영혼들이 아니라, 신의 존재가 아니라.
그 너머, 더 깊숙한 곳에 있었던 ‘눈’과 ‘입’을.
하지만 지금 룬드말이 말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과거 ‘진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 수많은 지식을 탐독할 수 있었다.
같은 진리라면 이처럼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진리란 천상이 향유하는 것. 그들의 무기인 멸망에게 진리를 허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지금 멸망에게서 보이는 것은, 자신이 본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천상에서 향유하는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향유하고, 빌려쓰는 진리의 느낌이 아니다.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룬드말의 두 눈은 이제 경악을 넘어 전율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넌······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어찌하여.
······놈 전체가 ‘진리’로 보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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