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474
474
조용한 밤.
게제라스는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나 창틀로 향했다. 유리 기술자가 만든 유리창으로 밖의 모습이 보였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무로 막았던 창이었다.
불파겐 영지의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가늠케 했다.
거기에는 게제라스의 인재에 대한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학연, 지연, 혈연으로 가로막힌 인재창고를 쓴다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게 인류였다. 불파겐 영지는 그런 것이 없었다.
범죄자고 나발이고 닥치는 대로 중용하고 있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이곳에 왔는지는 일단 모르겠고, 닥치고 일하다가 뒈지라는 식이었다. 몇몇 이들은 일이 너무 고되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병사들에게 자진 신고까지 하기도 했고, 몇몇 자들은 허위 신고로 죄를 얻은 뒤에 농사나 짓고 싶어 했다.
대부분이 경범죄, 횡령 등등으로 이루어진 쇼였다.
‘그래서는 안 되지.’
신성력을 받고 있음에도 눈 밑이 검은 게제라스가 흉악하게 웃었다. 곳곳에 불이 환한 집들이 여럿 보였다. 아주 흡족했다.
똑.
아주 작게 한 번의 노크 소리가 울렸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미리 언질이 된 신호였다. 조용히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그리고 길게이 왕자가 만났습니다. 주시하고 있길 잘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에 대해서 나누었는지는 알고 있겠지?”
“파이룬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몽펠리에 쪽에는 공들인 만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게제라스가 소파에 앉았다. 남자 또한 착석했다.
“〈파충류의 초원〉에 들어설 목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남쪽에 목장을 지을 생각입니다. 몰락 남부 귀족과 몽펠리에가 힘을 합칠 듯합니다.”
“몽펠리에가 목장의 이윤을 반절 이상 가져갔겠어.”
“6할이라고 합니다. 남쪽 목장에서 나오는 이득의 6할을 모두 몽펠리에게 준다고 합니다.”
“그렇지. 그 정도가 아니면 몽펠리에를 움직이게 하지 못하지.”
게제라스가 웃음소리를 냈다. 몽펠리에의 입장에서는 길게이 또한 견제해야 할 대상이다. 길게이 또한 그들을 견제해야 했고, 더불어 드낙에게 완전히 굴복하여 방계로 들어서기를 거부한 브릴리언트 가문을 견제해야 했다.
‘서로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빨은 박지 않아도 언제든지 이빨을 박아넣을 수 있도록 서로 뒤엉켜야 했다. 그게 바로 드낙과 게제라스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그 뒤엉킴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드낙 불파겐의 힘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총관님.”
“어쩌긴 뭘 어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경제협력이 아닌가? 몽펠리에가 외척이라고는 하나 그들의 돈줄이 다 불파겐의 의도대로 이루어져야 하나? 그렇다면 난리가 나지.”
아무리 힘이 강해도 그런 무례함을 저지르면 끝이었다. 남의 창고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는 심보를 대놓고 드러내라니? 무시무시한 일이다.
“나중에 영주님께 말씀을 드리면 될 일이다. 어차피 남부 목장이든 북부 목장이든 상관없이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을 입맛대로 맞추려고 하면 성장할 수 없어.”
역량의 총량. 그것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해야 할 때다.
길게이 왕자는 남부 목장에 몽펠리에가 크게 투자하게 하여서 몽펠리에를 묶었고, 몽펠리에는 목장에 대한 수익을 크게 가져가면서 길게이를 묶었다.
길게이 왕자는 몰락 귀족을 이용해서 불파겐 영지의 밀 관리에 손을 가져다 댔고, 파이룬은 그 사업에 함께 뛰어들어서 동업자가 되었다. 서로 이득을 고루 나눌 것이다.
불파겐이 속해져 있지 않았고, 측근이 견제당하게 되었지만 결국 불파겐 영지가 발전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조용히 지내야 한다.’
많은 귀족들이 게제라스를 낮게 보고 있었다. 드낙의 심부름꾼, 그것이 그에 대한 인식이었다. 귀족들 앞에서는 드낙을 내리까고 귀족들을 절로 높였기 때문이며, 쩔쩔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서기 전까지는 죽은 것처럼 지내고, 박쥐처럼 살아야 했다.
‘일이 커져도 영주님이 해결하실 일이지.’
게제라스는 남자와의 만남을 뒤로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지도를 바라보았다. 드낙의 언질이 있었지만, 그것은 권유에 불과했다. 또한 드낙은 자신의 주관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허락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그 덕에 이실레아는 현재 군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있었다. 위기가 닥쳐와도 불파겐 영지의 수호가 먼저였다. 군사를 모두 잃고 북부를 지킨다면 불파겐 영지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용병단의 패악질부터 마적떼까지.
드낙,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질 터였다.
‘때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 그게 아니라면, 기병만 이끌고 출정.’
이것이 이실레아의 방침이었다. 게제라스 또한 납득했다. 여기에는 북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었다. 아직까지, 〈용맹의 전투요새〉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이곳까지 닿지 않아서였다.
*
탁!
재를 쥔 손을 털었다. 흰 가루가 자욱하게 물들었다. 그 속을 오크 주술사가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달각.
“흐음.”
도기의 뚜껑을 열어 연기를 들이마셨다. 눈을 감은 오크 주술사의 눈두덩이가 빠르고 짧게 떨렸다.
“뭔가가 막고 있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개 같은.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 부락원이 60명이나 죽었어! 가죽은 벗겨졌고, 뼈가 발라졌어!”
〈어금니 부락〉의 〈대전사(大戰士) 뚜쎠드(Tsusshud, 피묻은 이빨)〉가 삿대질을 하며 성을 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모닥불에 들어갔고,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크게 일어났다.
노쇠한 〈주술사 우데스 흐레그(Udes hleg, 조용한 입)〉가 관절을 손으로 주물렀다. 양반다리를 했는데, 무릎관절은 두꺼운 것에 반해 살이 없어서 다리가 앙상한 것이 너무 두드러지게 보였다.
“시끄럽고. 그만큼 놈의 힘이 강하다는 소리다. 마법사를 대동했을 수 있어.”
“지랄하네. 인간 마법사가 이렇게 무모하게 군다고? 그럼 내 조상들은 모두 개새끼들이네. 다 거짓부렁이 정보를 나한테 줬으니까!”
“어허.”
우데스 흐레그가 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언제나 대전사를 후려치는 건 주술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는데, 그만큼 이번 사안이 위험했다.
토치라이트 영지의 서쪽에서 약탈을 하던 오크 전사 60마리가 죽어 나자빠졌다. 성을 함락하는 과정에서 60마리의 피해는 오히려 적은 것이지만, 평지에서 그렇게 오크 전사가 죽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평지에서 인간은 오크에게 토끼보다 못한 사냥감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에게 온갖 탈것을 타고 다니는 오크 약탈자들이 당한 것이다.
언덕에서, 숲에서, 강에서 기습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문제였다.
“그럼 놈을 추적하는 방법은 없나?”
우데스 흐레그가 조용히 말했다.
“오크 전사들의 추적은 어떻게 되길래? 못 찾아서 나한테 온 건가?”
“그래. 흔적을 지운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도 하루에 한 번 찾을까말까고, 마법 함정까지 한 번 걸리기도 했어.”
“인간에게 사냥감이 되다니.”
“끙.”
뚜쎠드가 앓는 소리를 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오크 전사보다 사냥술에 앞서 있었다.
“방해가 있어도 모든 것은 가릴 수 없는 법이지.”
“무엇을 본 거냐?”
오크 주술사가 다시 눈을 감았다. 더욱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재앙을 부르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거친 별〉. 방금 도축한 것처럼 피가 너저분하게 있는 〈핏덩이 별〉. 사악하고 음울하게 빛을 뿌리는 〈간악한 별〉, 달빛보다 환한 별이면서도 정작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별〉.”
“백설산맥에서 이 별들의 아래를 쫓아라. 그곳에 흉수가 있다.”
뚜쎠드가 거칠게 웃으며 급하게 일어났다. 움막에 있는 흙먼지가 그 움직임에 맞추어서 거세게 일어났고, 우데스 흐레그가 기침 소리를 냈다.
‘반드시 죽일 것이다.’
대전사 뚜쎠드가 다른 부락이 향하는 곳의 정반대로 오크 전사 1, 500마리를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침공에 그들 부족원은 3, 800마리였고 그 절반에 해당하는 군대였다.
*
“에이씨.”
드낙이 거칠게 귀를 후볐다. 간질거려와서 참을 수가 없었는데, 새끼 손가락에는 귓밥 하나 나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가렵지.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지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감도 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굴에 불을 피우고 있는 드낙이 다시 집중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한성질 쌍쥐〉가 있었다.
“오늘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는데.”
“차분하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이끄는 〈굳은살 리전〉은 가장 열정적인 병사들입니다. 금방 찾아낼 것입니다.”
백설산맥의 초입. 그곳에서 드낙은 핏빛쥐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오크들의 보급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굳은살 리전은 3만이 넘는 군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크들과 맞짱을 뜨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승기를 잡기는 요원했다. 단순 교전 비율로 승패를 가늠하는 병신은 이 세상에 없었다. 전쟁의 가부를 결정할 때나 고려할 사항이었다.
‘내가 있으니 상관없다. 어차피 오크들도 개싸움을 좋아하니까.’
드낙이 손을 주억거렸다. 당장 흥분이 되어서 거기가 설 지경이었다. 검은 꿈을 통한 능력의 전수는 부작용 없는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중립신이 눈을 뜨고 나서 더욱 강렬해졌다.
이미, 검은 문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했다.
“전술을 몇 가지 준비했다.”
또한 〈검은 회의〉를 통해서 몇 가지 전술을 준비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오크 보급대는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것이다. 싸우기 유리한 곳이지. 물론 최단시간으로 보급하는 방법도 있다. 그 판단에 따라서 우리의 싸움은 또 달라질 것이다.”
“예.”
〈한성질 쌍쥐〉가 차분하게 드낙의 말을 경청했다. 그 속내는 드낙의 역량을 보기 바빴다. 〈대장쥐〉와는 다르게 다른 위원회는 드낙보다 대장쥐를 더 흠모했고, 존경했는데, 이는 순전히 드낙이 핏빛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적이 드물어서였다.
특히나 〈단단한 산〉에서의 내전에서 드낙이 한 게 없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 전쟁의 승리를 이끈 대장쥐의 거침없고, 위험스러운 행보가 너무 대단했던 점도 있었다.
“오크들이 원하는 전장은 다수가 싸우기 힘든 곳이 된다. 자연스럽게 많은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는 덤비지 않는다. 대신, 나 혼자서 놈들을 처단할 것이다. 피해가 커지면 그들은 날 크게 쫓을 수밖에 없고, 그때가 핏빛쥐들의 차례가 될 것이다.”
“예.”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코피 전략이지.’
본래는 코피가 날 정도로 때리고 튀는 전략이다. 세파리아스는 이것을 드낙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드낙이 하면 상대에게 무시하지 못할 피해를 주고 튀는 게 가능했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전략이기도 했다.
드낙 또한 크게 만족했다.
‘내 스타일의 전략이다.’
자신 그 자체가 녹여진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가 하도 드낙이 겁쟁이처럼 구니, 결국에 져준 것이다.
“코피 전략 이후에 오크들이 광분해서 쫓아오면 땅에서부터 튀어나와서 삽시간에 놈들을 포위해서 궤멸시켜야 한다.”
“맡겨만 주십시오. 도주로만 알려주신다면, 많은 함정 또한 놓겠습니다.”
드낙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크들이 현재 전황에 방심하여 최단기간으로 보급을 전달하려 한다면, 야전을 통해서 놈들을 급습할 생각이다. 희생이 많겠지만, 이를 통해서 단시간만에 백설산맥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희생에 대해서 말했지만, 〈한성질 쌍쥐〉는 한 귀로 흘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위해서 동족마저 새끼 때 잡아먹는 의례가 만들어져 있었다. 핏빛쥐의 개체 하나하나는 그 가치가 한없이 낮았다.
“오히려 저희 식량 사정을 생각하면, 단기전을 해야 합니다. 이곳에 뿌리를 박은 게 최근이라서···”
굶어 죽는 핏빛쥐들이 제법 있을 정도였다. 이에 드낙이 깜짝 놀랐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닙니다.”
드낙은 그 말에도 당장 일어났다. 한 마리도 귀하게 생각했는데, 핏빛쥐에 애정이 있어서였다. 자신이 만든 일각수니, 당연히 사랑이 갈 수밖에.
“조금 깊게 들어가더라도 보급대를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옳은 일인 듯하다.”
그 모습에 한성질 쌍쥐는 가슴을 긁었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려서였고, 간질거렸다.
“찍찍.”
손으로 코를 비비기도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뜨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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