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848
판타지 월드
경기장은 대단히 넓었다. 대련치고는 제대로 한판 해보라는 식이었는데, 그만큼 크레시미르와 신남파는 많은 영향력을 이 자리에 투입했다. 수많은 관중들 또한 정치적으로 혹은 자본적으로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자신들의 돈과 힘을 어디에 쏟아부어야 할지 이 자리에서 명명백백히 하기 위함이다.
그 모습을 세리안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다섯 번째 왕녀.
듣기만해도 레이시아가 떠오르겠지만, 그 환경은 너무나도 달랐다. 왕비부터 일단 무지막지한 여자다. 스리슬쩍 와서는 구(舊) 불파겐들의 충성을 순식간에 받아 챙겨서 세력 하나를 일구어냈다.
‘배경’이 있고, ‘출신’이 있기에 가능한 퍼포먼스였다.
그런 왕비이자 공왕인 자가 뒷배에 있으니 다섯 번째 왕녀도 양대세력 구도를 구성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또한, 신체의 성장 속도도 기괴할 정도로 대단했다. 4살이 12세 같았다. 3배나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크레시미르보다도 뛰어난 성장 모습이었다.
패왕녀(覇王女)라 불리는 게 괜한 게 아니었다.
우월한 그녀였지만 다양한 분야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날뛰는 분야가 딱 정해져 있었다. 범인과 비교하면 압살하지만, 천재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했다. 반대로 크레시미르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8살임에도 모르는 게 없었다.
이는 전투에서도 드러났다.
크레시미르가 해를 등졌다. 눈부신 햇살이 다이앤타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최대한 많은 시야가 조금이라도 좁아졌다. 반짝이는 검신은 움직일 때마다 그녀를 괴롭혔다.
부웅!
평범하지 않은 발차기. 그리고 교차하는 검격 속에서도 크레시미르는 침착했다.
쾅!
바닥이 박살이 났다. 돌의 파편이 튀어 올라서 곳곳으로 쏘아졌지만, 방어막 덕분에 인명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속에서도 얄팍한 검 끝이 다이앤타의 옷을 찢었다.
“괴물과 인간의 싸움이구만.”
시각적 효과는 단연코 다이앤타의 압승이었다. 이를 보고 드낙이 말했지만, 세파리아스가 딴지를 걸었다.
“백중세(伯仲勢)이거늘, 저게 인간으로 보이느냐?”
“제발, 농담은 농담으로 끝내자.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모양새가 그렇다는 거지.”
꼭 농담 던지면 진지하게 받아치는 놈이 있다. 그게 세파리아스였다.
드낙이라는 반마반신의 챔피언이나 다름없는 게 드낙의 자식들이었다. 인간의 피 때문에 변수치가 워낙 커서 범인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재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대로 된 두 존재가 부딪쳤으니 탈인간급의 모습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크레시미르, 제법이다!’
자신의 장남이라서가 아니다. 사실 장남도 아니다. 다른 가문에게 줘버린 자식이 있어서다. 그렇기에 드낙의 감탄은 진실했다.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았다. 힘을 숨기고, 완급 조절을 하고 있었다. 반면 다이앤타는 폭발적인 화산처럼 날뛰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싱겁게 끝날 터다. 무(武)를 아는 자에게는 그게 잘 보였다.
8살과 4살의 싸움을 무술에 몸담은 자만이 알 수 있다는 것부터 미칠 노릇이긴 했다.
“흡!”
다이앤타가 완력의 힘으로만 축으로 삼고 팽글 돌았다. 검이 아래로 반원을 그리며 몸이 붕 떴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속에서 허를 찔린 크레시미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오히려 대범하게 나섰다.
‘두 다리를 떼다니, 사도(邪道)다!’
이족보행의 인간이 휘두르는 무기는 땅을 단단히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다이앤타가 무식하게 땅을 부수며 크레시미르를 압도할 수 있었다. 이는 정석이다. 방법은 사도 같지만 정확하게 무의 근본을 찌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레시미르는 빈틈이 보여도 바닥을 부수고 맹공을 퍼붓는 다이앤타에게 쉽게 수작질을 하지 못했다.
힘이 제대로 깃들지 않으면 공격력도 맹맹하다.
패왕녀(覇王女)가 만왕자(萬王子)를 상대로 우세를 점한 것처럼 보인 진짜 이유였다. 크레시미르 왕자의 한계!
인간 전사라면 응당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
무식하게 부서진 땅에서도 우직하게 힘을 낼 수 있는 다이앤타와는 달랐다. 가장 나중에 낳은 자식도 이처럼 진하게 악마의 피를 물려받지는 못했다. 인간의 자식농사는 복불복이듯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우월함을 지닐 수 있는 인자라도 열성인자라면 자식의 DNA에 담기지 못하는 게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은 완벽하게 그 그림을 그려냈다.
“우오오오오!”
만왕자가 이번에야말로 덤벼들었다. 다이앤타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으로도 크레시미르는 자신이 ‘비전의 그림판’에 들어섰음을 알았지만, 그 또한 웃어 보였다.
그 머릿속에는 지금 이 상황에서 다이앤타가 할 수 있는 18가지 동작들을 파악했고, 그 속에서 회피하면서도 역공을 취할 수 있는 비전을 이행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0.1초에 불과했다.
휙.
무릎을 단번에 앞으로 기울였다. 그 모습은 흡사 빙판에서 전력질주를 하는 스케이팅 선수와 같았다. 그냥 달리는 속도에서 느끼는 압력의 15배가 그 무릎에 송곳처럼 집중되었다.
어마어마한 돌진력과 하중, 힘이 무릎으로 쏠리며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그런데도 단 하나의 주저함도 없었다. 다이앤타의 롱소드를 순간적 판단으로 귀의 끄트머리만 잘렸다. 가검이었음에도 베어냈다.
악마의 힘은 육체로부터 나오기에 그런 게 가능했다.
동시에 크레시미르는 넘어지는 순간 속에서 발에 힘을 잔뜩 주며 점프했고, 동시에 허리를 비틀고, 무릎을 회전시켰다. 그간 피나는 노력을 하며 육체를 단련시킨 보람이 있었다.
점프의 운동력이 회전하며 몸을 반회전시켜 넘어지는 순간 속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다이앤타와 크레시미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속에서 이미 승부는 판별났다.
다이앤타는 이미 검을 휘둘렀고, 크레시미르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퍽!
무식한 소리를 내며 다이앤타의 목이 옆으로 얻어맞았다. 가검이었기에 피부가 찢기고 피가 경기장의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단번에 재생되어갔다. 악마의 힘이다.
와아아아!!
껑충뛰고 서로 교차하는 극적인 모습에 너도나도 소리를 크게 냈다.
박살이 난 경기장을 보며 시무륵하는 건축자와 인부들도 많았다. 그들은 가장 먼 곳에서 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큰 영광이었지만 노력의 성과가 개털이 되어버렸다.
‘저걸 다시 복구하려면…’
감당이 안 된다.
마법? 그런 자원이 이런 곳을 메우는 데 사용될 리가 없었다. 인공지능을 농사하는데 쓰는 격이다. 사람이 더 싸다.
“우승자는 올라오라!”
드낙은 크레시미르를 불러 그를 치하하고, 붉은색 바탕에 황금의 자수가 이루어진 큰 망토를 직접 입혀주고 담백하지만, 백금으로 만든 서클렛을 머리에 씌워줬다.
“앞으로 3일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을 공짜로 허락하노라!”
와아아아!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모두 풍족하게 지냈으나, 그로 인하여 더욱 경제는 살아날 것이다.
그 뒤로도 단번에 무너진 곳은 연회장이 되었다.
앞으로 자치왕국을 이끌고 갈 두 명의 후계자가 만든 전쟁터와도 같은 곳을 드레스를 입고 쫙 차려입은 유력자들이 들어섰다. 그건 정말 유쾌한 연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드낙이 그 모습을 보며 거기에 동참했다. 비싼 옷을 거침없이 더럽힌다는, 그런 부르주아적 사고는 짜릿한 쾌감을 부여했다. 거기에는 다른 종족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인간은 더는 나약한 종족이 아니었다. 그들이 만든 국가는 대륙의 중앙을 꿰찼다. 또 현재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세리안은 다이앤타와 함께 드낙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드낙 또한 크레시미르에게 크게 해줬기에 다이앤타를 챙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쉽게 되었구나.”
워낙 감정에 충실한 것이 다이앤타라서 실망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음모의 냄새를 드낙이 맡았다.
‘이 정도의 패배는 앞으로의 판도를 크게 흔들 텐데, 그들이 원했다?’
그 눈에 세리안에게로 향하자 그녀가 웃었다.
“자치왕국은, 저와 다이앤타를 따르는 이들은 최대한 빨리 신격을 획득하여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거에요. 제가 약속을 할게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드낙의 귀를 파고 들어왔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정말인가?”
“예.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래. 이거 참 골치가 아팠다. 최대한 너희들에게 지원을 해주마.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냐?”
“신격은 반마반신께서 신의 반열에 오롯이 오르고 나서 진행하겠습니다. 그 전에 상위인간으로의 길을 저를 따르는 이들에게 주십시오.”
세리안이 공손히 말하였다. 이에 드낙은 냉큼 허락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마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신인류가 바로 상위인간이다. 신성력을 통해서 초월의 힘을 담을 그릇을 만들고 그 자식을 차근차근 쏟아낸다면 능히 진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좋다. 다른 것은?”
그 말에 세리안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속닥거렸다.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지만, 초월자인 드낙의 귀에는 들렸다. 그가 청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귀 내부의 구조가 순식간에 변했다.
“제 아버지께서 요즘 이상하십니다. 인간을 이끌려는 모습이 잘 안나시고…상위인간에 대한 미련도 없으신 듯합니다. 극심한 허무에 빠지셨고, 인간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으니 한 번 알아봐 주시는 게 어떤지…”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필요한 조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리안이 생각했던 걸 세파리아스가 생각을 안 할 리가 없었다.
‘상위인간의 길은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인데…’
그걸 세파리아스가 모를 리 없었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드낙은 걱정이 앞섰다. 그건 세리안보다 더 큰 걱정으로 드낙에게 다가왔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드낙의 눈에 담겼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영향무력(影響武力)이라는 새로운 초월의 힘을 개척했다. 그건 진짜 괴이해서 마력도 못 쓰는 인간 나부랭이가 쓸 수 있었다. 물론 그 나부랭이가 세파리아스였기에 가능했다.
‘중립신을 죽여서 그런가. 대체 어딜 보고 있는건지…’
드낙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스멀스멀 뭔가가 피어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의 표정은 한동안 펴지질 않아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게 만들었다.
연회가 연회같지 않았다.
레이시아도 아들도 세리안도 그 딸도 다른 자식들 속에 있어서 화려하고 행복해 보였지만 마음 속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늦은 자정이 넘어서야 드낙은 연회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세파리아스에게로 향했다.
*
“어떤가?”
드워프의 말에 인간 요리사 칸풍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직도 강합니다. 하지만 맛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동굴 깊이 들어가는 듯한…이런건 생전 처음입니다.”
칸풍이 숟가락을 몇 숟가락이나 더 놀려서 국물을 맛봤다.
“어차피 자유 경합이다. 맛있으면 장땡이지. 클클.”
“크크크. 이거지.”
드워프들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삭힌 것은 깊은 풍미를 낼 수밖에 없다. 역한 내를 없애기만 하면 훌륭한 음식이 된다. 보기 흉한 생선 썩은 것을 갈고, 역한 냄새를 제거하는 썩은 콩을 넣어서 비비고 향신료를 섞어서 만든 국물은 아주 감칠맛도 대단했다.
절로 마시고 싶어졌다.
“크어어어.”
요리사가 꿀떡꿀떡 음식을 마시더니 소리를 크게 냈다. 이렇게 배가 터질 정도로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일품요리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수정하면 일등은 떼놓은 당상이군.”
“소원이나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껄, 껄껄! 껄껄껄!”
드워프 요리사들이 너도나도 웃었다. 그들이 원하는 소원은 다른 게 없었다. 각성제 공장을 짓는 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각성제만으로도 드워프는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세력을 불릴 수 있었다.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 이를 골램으로 운영하게 해준다면 크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편하게 각성제를 받아서 사용하겠다는 심보였다.
“반마반신께서 큰 아이디어를 전수해준 덕분 아닌가.”
“맞아. 된장을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단초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와 비슷한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바로 ‘곰팡이’였다. 이로운 것에는 이로운 것이 담긴다는 진리에 따라서 서늘한 곳에 매달아 보았는데 거기에는 균일하게 어떤 곰팡이만 성장했고 이를 통해서 드워프들은 어떤 발효 음식 체계의 기본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향신료는 된장이라는 반마반신이 이야기했던 것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그를 닮은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른 종족 중에 위험이 될 만한 놈이 있나?”
“엘프는 아냐, 놈들은 너무 ‘모양’에만 신경을 써. 오히려 오크들이지.”
수많은 약재를 사용해서 ‘오크 나무’를 길러내는 오크들은 산의 요리사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들이 모르는 식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워낙 먹성이 좋은 자들이라서 요리에 관한 관심도 상당했다.
자연 향신료가 많은 세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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