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51)
천지회 내성 본관에서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장원은 방술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원살각의 근거지였다.
방사 조의공이 지팡이를 끌며 황급히 장원의 본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사형.’
지금 본당에 대사형 방일 조태청이 와있다고 한다.
회주의 밀명을 받고서 어딘가에 다녀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오자마자 이렇게 전갈 하나 없이 방문하다니.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준비는 확실하다.’
대사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빠르게 부회주를 통해 회주의 재가(裁可)를 받아냈다.
목경운의 육인강렬술(六人降靈術)에 의해 생시귀(生尸鬼)가 된 원살각주 인서옥은 그에게 자리를 인수인계했다.
시혈곡에 있는 윤 사제도 참관하여 동의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대사형을 지지하는 원로 방사들이 반발하기는 했으나 어쩌겠는가?
각주의 명이라는데.
그렇기에 조의공은 명실공이 원살각의 새로운 각주였다.
‘소식을 듣고서 바로 온 거겠지?’
아마도 그러리라 여겼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회주가 있는 본관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대사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왔다는 것은 자신이 각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온 것이리라 여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 원살각주 인서옥을 미리 빼돌려놓았다.
50여 리(里) 밖으로 보내 방술로 흔적을 지웠기에 추적을 해도 소용없게 해놓았다.
‘직접 보는 것만 막는다면 문제는 없다.’
대사형의 방술 실력은 사부님과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대사형을 속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해서인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해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충!”
본당 앞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이 조의공을 보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에 조의공이 물었다.
“대사형은 어디 계시나?”
“안에서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조의공에게 한 무사가 말했다.
“그런데 조태청 방일께서 관으로 보이는 커다란 목함을 짊어지고서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목함?”
그게 뭐지?
혹시 회주의 밀명과 관련 있는 것인가?
의아해하던 조의공이 이내 본당 안으로 들어가 각주실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 문을 열자,
-끼이이익!
‘!?’
각주실의 집무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뒤로 고개를 젖히고서 잠이 든 누군가가 보였다.
회색 무복에 음양이 그려진 옷만 보아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대사형 방일 조태청이었다.
‘······.’
조의공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님들을 위한 자리가 따로 있는데, 굳이 각주 전용 의자에 앉아서 저리 자고 있다니.
저것은 명백히 자신을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현재 대사형의 기분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흥분하면 안 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은 대사형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의 분노는 정당했고 어떤 식으로든 터지게 되어있었다.
“흠흠.”
조의공이 일부러 기침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왔느냐?”
고개까지 젖히고서 자고 있던 조태청이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이에 조의공이 지팡이와 함께 두 손을 모으며 조심스럽게 조태청에게 인사를 했다.
“대사형 오셨습니까?”
“그래. 왔지.”
“회주의 명을 받고 자리를 비우셨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까지 들은 걸 보니 확실히 인수인계를 마쳤나보구나.”
“······.”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목소리에 방사 조의공의 눈빛에 슬며시 긴장감이 서렸다.
거의 내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대사형이었기에 이번 일로 반발을 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던 그였다.
조의공이 침착하게 답했다.
“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차차 적응해나가려고 합니다.”
“차차 적응이라······.”
“······.”
“그 자리가 그리도 탐났더냐?”
-꿀꺽!
조태청의 직설적인 물음에 조의공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대사형의 방술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이었다.
조의공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말했다.
“어찌 그리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그저 사부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사부님의 명?”
“네. 저 역시도 사부님께 대사형이 있는데 제가 어찌 각주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냐며 사양했었습니다.”
“사양···.”
“네. 하오나 사부님께서 대사형은 회주님의 곁을 지켜야 하기에 각주의 자리를 맡길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그리 말씀하셨느냐?”
“제가 어찌 대사형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히 믿기 힘들다면 윤 사제도 불러서···.”
“네 거짓 장단에 맞춰달라고 하라는 게냐?”
“······거짓이 아닙니다. 대사형이야말로 사부님의 결정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 하!”
-끼리리릭!
조태청이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런 그의 태도에 조의공이 지팡이를 움켜쥐고서 대응할 준비를 했다.
이 순간을 대비하여 집무실 전체에 여러 방술들로 방비를 해두었기에 당장에라도 사압(四壓) 결계를 발동시킬 수 있었다.
그때 조태청이 검지와 중지를 접으며 수인 하나를 맺었다.
그러자,
-파칵!
그 순간 집무실의 한쪽 편에 있던 관처럼 생긴 목함의 뚜껑이 저절로 벗겨졌다.
그러더니 이내 목함 안에서 무언가가 꼿꼿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를 본 조의공이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 사부?’
전 원살각주이자 생시귀가 된 인서옥이었다.
하얀 얼굴의 인서옥의 이마에는 봉(封)이라고 적혀 있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조의공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으로부터 이십여 리(里)가 넘는 거리에 있는 호수 깊숙한 곳에 무거운 추를 달아 못 나오게 조치를 취해 뒀었다.
그런데 그걸 어찌 찾은 거지?
‘빌어먹을.’
영문을 모르겠지만 생시귀가 된 사부를 대사형이 찾아왔다.
그렇다는 건 자신을 이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조의공이 황급히 왼손으로 약식의 수인을 맺었다.
-착! 착!
개(皆)! 전(前)! 열(裂)! 자(者)!
이것은 사압의 결계를 발동하기 위한 구자활법의 수인이었다.
이미 준비해둔 술법이었기에 당연히 곧바로 시전되리라 여겼는데,
‘아니?’
결계가 발동되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찰나에 조태공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많이도 준비해뒀더구나. 한데 내가 그걸 그냥 내버려뒀을 거라 생각했느냐?”
-꽉!
그 말에 조의공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모든 술법들을 파훼시켜놓았단 말인가?
최대한 알 수 없게 해놨는데 역시 대사형이었다.
해서 황급히 조의공은 자신의 지팡이에 새겨놓았던 방술의 주술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주술을 외우기도 전에,
-퍽!
“헉!”
무언가가 조의공의 등을 걷어차며 앞으로 넘어지게 만들었다.
-쿵!
그렇게 넘어진 조의공의 등을 무언가가 밟았다.
그 무게감이 어찌나 컸던지 눌린 부위를 중심으로 살이 안으로 파고들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끄으으으.”
강한 고통에 조의공이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오싹!
그곳에 붉은 뿔을 높게 쳐들고 있는 괴이한 생김새에 거대한 사족의 무언가가 자신을 앞발로 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순간 조의공은 이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토루!’
이 괴이의 이름은 토루(土螻).
천제의 별도라 불리는 곤륜산에 서식하는 괴이였다.
산양과도 같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매우 포악하고 곤륜산의 안개 계곡으로 들어오는 인간을 잡아먹는 요수(妖獸) 급의 이매망량이었다.
붉은 낙성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대사형이 자랑하는 식신이다.
-저벅저벅!
방일 조태청이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누구냐?”
“무, 무슨 말씀입니까?”
“네놈 실력으로 방일의 칭호를 받은 사부님을 저리 만드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무리다. 누가 네놈을 도운 것이냐?”
‘젠장.’
사지로 몰린 조의공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것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아니 애초에 대사형이 어떻게 사부를 찾아낸 거지?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데, 방일 조태청이 다가와 조의공의 오른쪽 팔목을 짓누르며 입을 열었다.
“주언의 사슬······ 역시인가.”
“이, 이건······.”
-슥!
조태청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요수 토루가 그의 등을 더욱 세게 짓눌렀다.
-꽈악!
“끄어어억!”
괴로워하는 조의공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조태청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고작 이런 것에 당해서 끌려 당하다니. 한심한 놈.”
“끄으으으. 그만···.”
“그만하고 싶다면 당장 얘기하는 게 좋을 거다. 누가 네놈에게 주언의 쇠사슬을 채웠는지 말이다.”
이런 대사형 조태청의 압박에 조의공의 눈빛이 점점 약해져만 갔다.
* * *
-끼기기기긱!
목경운의 손에 붙잡혀 있는 구화도의 도신이 조금씩 휘어져갔다.
이에 회주의 둘째 제자 위소연의 심복인 우호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화도는 사부인 명도왕 손윤과 친분이 있는 명장의 손에 만들어진 보도로 보통 도와는 그 경도 자체가 달랐다.
거기다 그의 내공까지 더해지면 더욱 도는 단단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도가 휘어질 정도라면 목경운의 공력은 초입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봐주면서 상대할 녀석이 아니다.’
그제야 우호랑은 경각심이 생겨났다.
이 녀석은 제대로 상대하지 않으면 절대 제압할 수 없는 상대였다.
이에 우호랑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오!
6성에서 단숨에 8성까지 끌어올리자 휘어지려고 하던 도신에서 반탄력이 일어났다.
-타앙!
그와 함께 도신을 잡고 있던 목경운의 손이 튕겨 나갔다.
이에 맞춰서 우호랑이 신형을 벌리며 거리를 띄우려고 했는데,
-파앙!
그 순간 목경운의 일장이 우호랑의 가슴에 강타했다.
이미 8성 공력까지 끌어올린 상태였기에 호신기운으로 이를 버틴 우호랑 역시도 목경운의 복부에 발차기를 맞췄다.
-퍼퍽!
동시에 서로를 강타한 두 사람이 뒤로 밀려났다.
뒤로 밀려난 우호랑이 자신의 밀려난 위치와 목경운이 밀려난 위치를 본능적으로 확인했다.
‘네 보.’
자신은 네 보였고 목경운은 다섯 보였다.
그렇다면 공력에 있어서는 자신이 조금 더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극성으로 공력을 끌어올린다면 무난하게 놈을 제압할 수 있을 듯했다.
이에 승기를 확신한 우호랑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네놈은 그 입을 잘못 놀린 것 때문에 후회하게······ 쿨럭!”
그 순간 우호랑은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기침이 튀어나왔다.
우호랑이 황급히 소매로 입술을 닦았는데,
‘!?’
소매에 검은 피가 묻어났다.
이를 본 우호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일장을 맞기는 했으나 호신기운으로 그것을 버텨냈었다.
한데 이 불쾌한 통증은 대체 뭐지?
-파악!
우호랑이 자신의 상의 옷자락을 거칠게 풀어 헤쳤다.
그러자 그의 가슴 부위로 손바닥 형태의 자국이 남아 핏줄이 검붉게 울룩불룩 튀어나오고 있었다.
‘설마···.’
우호랑이 커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독?”
지금 이 녀석 설마 독장(毒掌)을 쓴 건가?
우호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주군인 위소연에게 듣기로 목경운은 불과 한 시진 전 쯤에 섬독왕에게 제자로 거둬진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고작 한 시진 만에 독공을 배워서 자유로이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천부적인 무재를 지녔다고 해도 그건 무리였다.
게다가 애초에 독공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지 않는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안 그래도 막 배운 걸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고오오오오!
그런 목경운의 두 손에 검붉은 독기가 서려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
이를 본 우호랑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섬독왕 백사하의 독문절기인 파마독경(波魔毒經)의 섬독마장(蟾毒魔掌)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