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92)
화경(化境).
그것은 벽을 넘어서 삼화취정(三花聚頂),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도달하는 지고의 무위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아직 절정의 경지에 대한 깨달음도 얻지 못했는데 2년 만에 그 수준에 도달하겠다고 공언을 한 셈이었다.
‘힘든 건가?’
이런 목경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청령이 말했다.
-백 번 죽었다 깨어나 봐라. 그게 가능할지. 아니 그게 된다면 본좌가 평생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수발을 들어주마.
‘되게 세게 나오시네요.’
목경운이 입 꼬리를 실룩거렸다.
청령이 이렇게까지 혀까지 차며 세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그녀 역시도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불렸지만 화경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20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조차도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룩했기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지금이 사라진 시대도 아니고.’
과거에 무림이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나 고작 약관의 나이에 소검선(小劍仙)이라 불리며 천하 무림을 이끌어갔다는 시기도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말 꼭 지키길 바라죠.”
“네?”
목경운의 뜬금없는 말에 시혈곡의 곡주 이지염이 무슨 소린가 싶어 반문했다.
이에 목경운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청령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2년이 지나봐라. 본좌의 위대함을 알게 될 게다.
청령의 호언장담에 목경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나 시혈곡주 이지염의 반응만으로 이미 자신이 터무니없는 공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늘 할아버지가 한 말이 있었다.
[해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모른단다. 네 그 천성도…..]-찌릿!
“음.”
“주군?”
목경운이 이마에 손을 가져가며 신음성을 흘리자 시혈곡주 이지염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방금 그건 뭐지?
한 번 기억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그였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했던 모든 말들을 기억하는데, 방금 전에 했던 그 말 뒤에 뭐라고 얘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째서지?’
그것을 떠올리려고 하자 골이 깨질 것처럼 아파온다.
어지간한 고통은 참을 수 있는데, 이 통증은 뇌를 통째로 도려내는 것 마냥 아파와서 절로 인상이 써졌다.
‘왜 이런 거지?’
할아버지가 뒤에 자신에게 뭐라고 얘기한 게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억지로 가려놓은 것처럼 들추려고 하면 두통이 온다.
안개처럼 가려진 기억.
목경운은 결국 이를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는 것을 그만뒀다.
‘………설마.’
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건가?
작은 의구심이 피어났다.
하나 할아버지는 침술 같은 것은 전혀 다룰 줄 몰랐고, 자신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었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걸 계속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목경운이 인상을 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괜찮냐는 얼굴로 쳐다보던 이지염이 답했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혹시 귀검(鬼劍)이라는 자를 알고 있습니까?”
그 물음에 시혈곡주 이지염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팔성의 일인인 귀검을 모르는 자가 있습니까?”
귀검(鬼劍).
현 무림의 정점인 육천(六天)을 제외한다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알려진 여덟 고수 중 한 사람이다.
“제가 현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못해서요.”
“아……..”
이지염이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혼인 주군이 활동하던 시기는 자그마치 백 년 전이니 그 당시와 지금 명성을 떨치는 고수들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이지염이 말했다.
“귀검은 그 사문도 정체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정사의 명성을 떨치던 고수들과 생사 결투를 벌이면서 그 악명이 높아졌죠.”
“악명?”
“네. 명성이라고 하기에는 그와 붙은 자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자가 없다고요?”
“네. 그것 때문에 악명이 꽤나 높았지요.”
‘응?’
그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목검장의 장주 목인단이 그와 겨뤘다가 상처를 입었다고 했었다.
설마 그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지염이 아! 하고는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살아남은 자가 딱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
“네.”
‘연목검장의 장주겠지?’
목경운은 당연히 그리 확신했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본 회의 오왕(五王) 중 일인인 섬독왕(殲毒王) 백사하가 귀검이라는 자와 수십여 초식을 겨뤘다고 하더군요.”
‘!?’
뭐지?
장주 목인단이 아니지 않은가?
전혀 예상과 다른 사람이 거론되었다.
이에 목경운이 반문했다.
“귀검과……겨뤘었다고요?”
“네. 본 회에서는 꽤 유명한 일화입니다. 귀검이 사라지기 몇 개월 전에 섬독왕이 우연치않게 겨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런 이지염의 말에 목경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일단 시혈곡주 이지염의 말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이지염은 연목검장의 장주인 목인단 역시도 귀검과 겨뤄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알게 된 사실은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흠.’
목경운은 귀검이 천지회의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한데 이곳의 고위 간부 중 한 사람인 섬독왕이라는 자와 겨뤘었다고 하면 같은 한 패가 아니라 적대 관계일지도 몰랐다.
‘잘못 찍은 건가?’
이럴 줄 알았다면 황궁으로 갔었어야 했나?
하고 있는데 이지염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지?”
“아아. 저는 귀검이 천지회의 숨겨진 고수라고 들었었거든요. 한데 곡주의 말을 들어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전자는 어차피 모른다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했다.
어차피 장주 목인단 역시도 귀검에 대해서 그리 자세히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는데 이지염이 말했다.
“아! 그런 얘기도 꽤 돌았었지요.”
“꽤 돌았었다고요?”
“네. 그도 그럴 것이 귀검이 노리고 죽였던 자들은 하나 같이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이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본 회의 고수인 섬독왕이었는데, 한참을 겨루는 도중 귀검이 먼저 싸움을 중지하고는 물러났다고 하더군요.”
‘…….먼저 물러나?’
그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천지회의 고수와 부딪쳤는데, 먼저 물러났다고 한다면 같은 한 패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면 천지회의 고수일 수도 있다 이건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섬독왕 역시도 그 당시 때 있었던 일을 유야무야 넘겼던 것도 있었고……그런 얘기도 돌았습니다.”
“그런 얘기라면?”
“귀검은 회주의 암명을 받은 수신호위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수신호위?”
-아직도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나보군.
청령도 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지염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회주에게는 상시 그분을 수호하는 수신호위가 있습니다. 그 자의 무위는 실제로 오왕들에게 버금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오왕들에 버금간다면……강한 건가요?”
“강합니다. 오왕들 중에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절세고수가 둘이나 있고 나머지 셋도 초절정의 극에 이르렀습니다.”
-뭐?
이 말에 청령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간부 급들 중에 그 같은 경지에 이르렀던 자는 거의 없었다.
한데 백 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진 것인가.
-허참.
그 정도까지 천지회의 수준이 올랐나?
하긴 그 당시에는 천지회의 초기였기에 한참 힘을 키우던 시기였다.
그런 걸 감안한다면 지금은 현 무림을 삼분하는 거대 세력 중 하나로 커졌으니, 오히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아! 현 상황을 잘 모르신다고 하니 이걸 말씀드려야 겠군요. 화경에 이른 오왕 두 사람은 현 무림에서 팔성(八星)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된다.
회주의 수신호위가 오왕에 버금갈 만큼 강하다면 사라진 귀검(鬼劍)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될 만도 했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아직까지도 귀검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은 거죠?”
“네. 그렇습니다. 다만…….어쩌면 귀검이 사라지기 전에 겨뤄봤던 섬독왕은 뭔가 단서를 알지도 모릅니다.”
“섬독왕은 알 수도 있다……이거네요.”
“네. 유일하게 그와 겨뤄서 살아남은 자이니까요. 하나 정확한 건 아닙니다. 한데 이건 어찌 물으시는지?”
“아아.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말에 시혈곡주 이지염이 의아한 눈빛을 보이다, 이내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목경운은 참 우직하다 여겼다.
어째서 청령이 이가(李家) 사람들을 아꼈는지 알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로써 두 가지 단서가 생겼다.
‘섬독왕…..회주의 수신호위.’
섬독왕은 귀검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자였고, 회주의 수신호위는 귀검일지도 모르는 후보군이었다.
죽은 할아버지께 남아있던 그 표식.
그것과 흡사한 상처를 가지고 있던 연목검장의 장주 목인단.
‘머지않았어.’
오직 상처라는 이 단서와 발자국만으로 시작된 복수의 여정길에 드디어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귀검이라는 자가 할아버지를 죽인 게 확실하다면 그는 반드시 죽여야 할 복수의 대상자였다.
목경운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이를 바라보는 시혈곡주 이지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살기……’
최대한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흘러나오는 미세한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주 진하다고 해야 할까.
의문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 주군께서 귀검이라는 자에 대해서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아참. 시혈곡이 정확하게 하려는 게 뭐죠?”
“네?”
“이곳에 잠입하기 위해서 장단에 맞추고 있기는 한데, 제가 있을 때는 이런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해서요.”
“아아. 원석을 가려내는 작업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원석?”
“네.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당시 때도 말씀드렸지만 관문들은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골라내기 위한 작업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하게 되면 큰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게 뭐죠?”
“고위 간부들의 산하로 들어가거나 제자가 될 기회가 주어집니다.”
“제자?”
“네. 관문들을 전부 통과한 시점에서 최고의 인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시혈곡의 관문들은 어렸을 적부터 부단히 무공을 연마하고 무재라고 불리우는 자들조차도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
한데 이런 관문들을 전부 통과하게 된다면 최고의 인재라고 불릴 만 했다.
이런 최고의 인재들은 종문(終門)에 참석한 간부들에 의해 선택될 기회가 주어진다.
“고위 간부들이라면 오왕을 말하는 건가요?”
“오왕도 될 수 있고 삼종주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사곡주도 포함됩니다.”
오왕(五王), 삼종주(三宗主), 사곡주(四谷主).
이들이 천지회를 이끌어가는 간부들이자 근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군.’
이제야 목경운은 왜 소년들이 시혈곡에 목숨을 거는지 알 것 같았다.
간부들의 선택을 받아 그들의 제자가 된다면 천지회 내에서의 막강한 권력과 초상승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되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쟁취하려는 이유가 전부 이런데 있었다.
시혈곡주 이지염이 목경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군께 그간 결례를 범했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아니에요. 몰라서 그랬던 건데요. 뭘.”
“이렇게라도 알았으니 속하가 손을 써서 빼내도록 하겠습니다.”
“빼낸다고요?”
“그렇습니다. 회주의 명이 내려와서 주군을 시혈곡의 관문에 참석시켰기는 하나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명은 없었기에 얼마든지 죽은 걸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 된다면 회주의 시야에서 벗어나, 주군께서 이곳 시혈곡에서 은밀히 무공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여기고 있는데 목경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하네요.”
“네? 어찌 그런……”
굳이 주군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지고의 경지를 밟았던 주군이라면 혼자서 폐관을 한다면 충분히 과거의 경지로까지 오를 수 있지 않겠나.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봐야죠.”
“이 상황을 이용하신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관문을 통과한다면 간부들의 제자가 될 수 있다면서요?”
“그렇기는 하나 굳이…..”
“상처는 어떤 것이 아플 것 같나요?”
“네?”
이게 무슨 소리지?
의아해하는 그에게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겉에 생기는 상처보다 안에서부터 곪아서 터지는 상처가 정말 아프거든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시혈곡주 이지염의 눈동자에 이채가 생겨났다.
목경운이 무슨 의도로 이 말을 했는지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긴 목경운이 말했다.
“그럼 추천을 받아볼까요?”
“추천이라하시면?”
“곡주가 보기에 그 간부라는 자들 중에 누구의 눈에 드는 것이 가장 득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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