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2
092화.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 (1)
마석.
생존시간과 이능(異能)의 경험치를 담고 있는 광석으로.
대부분 관문 주위에서 자라는 마목(魔木)에서 열리며, 드물게나마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 종말 후의 세상에서 필수적인 자원이다.
그 흑색 돌멩이가 녹색 부직포 유리판이 깔린 접견용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종말 이후 여태껏 경찰병원에서만 지냈던 김학범이었기에, 그는 당연히 이를 처음 봤고.
“…이게 뭔가?”
“감정해보시죠.”
확인해 보라는 민준의 말에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가 아이템 감정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석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김학범의 경악한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생존시간과 성력 레벨에 대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을 터.
마석에 대한 설명은 그거면 족했다.
“…이 …이게 뭔가?”
“마석이라는 겁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소형 마석은 10시간의 생존시간과 성력 레벨을 올릴 수 있는 힘을 담고 있죠. 이걸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환자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민준의 말에 침묵에 잠긴 김학범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잔에 있는 차를 다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걸 얼마나 생산할 수 있나?”
“하루에 150개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이 3곳입니다. 각각 1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고요. 물론 그곳의 레벨을 올리면 생산량도 수용인원도 점차 늘어납니다.”
“시스템이 연관된 곳이구먼.”
“그렇습니다.”
“…환자 104명에, 전투 가능한 인원 26명. 총합해서 140명이네. 한 명도 빠짐없이 받아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말해주게. 당장 가용할 수 인원 대비 부양해야 할 인원이 네 배에 가깝네. 분명 짐이 될 테지. 그래도 괜찮은가?”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레드 포션을 사는 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곧바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겠죠. 아시겠지만,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지. 그래,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오늘…. 아니, 지금 당장 준비하겠네. 부디 우리를 받아주시게나.”
김학범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대꾸했다.
민준과 소희는 그의 갑작스러운 태도전환에 적응하지 못했고.
“아니,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말씀하시지-”
“어허! 급하면 빨리 가야지, 누가 굼벵이처럼 기어간단 말인가!”
쾅!
그렇게 일갈한 김학범은 곧바로 문을 박차고 방을 나섰다.
민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소희를 바라봤고, 소희 또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혹여나 고집을 피우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야.’
조금 급작스럽지만, 경찰병원에 와 이루려고 한 것은 모든 이룬 셈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는 보상을 받았지.
인연이 닿은 이들을 도와주면서 칭호와 스킬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코 한번 풀지 않고 사도들과의 격전에서 살아남은 140명의 정병을 얻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병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거점 캠프가 건재한 이상, 그것 역시 시간문제일 터였다.
* * *
경찰병원의 인원들을 이동시키는 건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건강한 이보다 배 이상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물경 140명에 다다르는 인원들의 개인 짐은 물론, 경찰병원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물자를 운송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짜로 생긴 귀중한 물자이니만큼 행복한 고민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소화해야 그들의 것이 되니만큼 민준은 캠프에 있는 인원들을 최대한 동원하여 이주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후, 이게 마지막인가요?”
“네, 드디어 끝났네요.”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락 성당부터 경찰병원까지. 수십의 사람들이 몇 번을 왕복하고서야 겨우 모든 짐을 옮길 수 있었을 만큼 옮겨야 할 사람도 짐도 많았으나.
인내가 쓴 만큼 열매는 달았다.
옮겨온 수많은 물자 사이에는 다량의 생존시간을 지불해야 하는 의약품이 상당수 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사, 약사, 병원 건물을 관리하던 기술자 등 고급인력이 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경찰병원이 캠프에 흡수되면서 민준의 일행은 고질병이었던 인원 부족이 한순간에 해결됐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물자까지 지니게 되었다.
‘물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겨우 이를 소화했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들어온 이들의 편제와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는 소소한 갈등부터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숙소마련 등. 갑작스레 커진 규모로 인해 진통을 겪게 되었고.
그 와중에 근처에 산재해 있던 생존자들이 속속들이 가락시장으로 모여들었던 탓도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퀘스트가 뜨고 삼 일째 되는 날.
‘슬슬 거점을 탐내는 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어.’
민준의 일행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약탈자들이 캠프를 공격하거나, 사냥 중인 일행을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캠프의 인원들은 치열했던 미로원에서조차 생존한 이들이었기에 이를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있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이를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
이주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황에서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정하기 위해 이제는 간부가 된 민준의 동료들이 원형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회의의 쟁점은 앞으로 남은 나흘 동안의 퀘스트 참여 여부와 캠프의 방비였다.
“아무래도 참가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10,000시간도 아니고 무려 그 열 배인 100,000시간이에요. 이걸 벌려면 새끼 거미를 무려 이만 마리 넘게 잡아야 한다니까요?! 말이 만 마리지 그거 일일이 잡으려면…. 어휴.”
“저도 단우 말에 동감합니다. 캠프의 레벨을 올려뒀으니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지금은 딱 그 정도가 끝입니다. 환자들을 빠르게 치료해서 가용인원으로 충원하려면 더 많은 생존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우의 말을 그의 선생님이었던 명진호가 받았다.
그렇게 말하며 나눠준 용지에는 수기로 작성한, 간단한 수식과 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식과 표는 당장 생존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고.
김학범은 그것을 보고는 못 볼 것을 봤다는 것처럼 인상을 한번 찌푸리고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획득했다.
“복잡한 숫자가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니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나아갈 때가 아니라 지켜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지금은 우리가 가진 것을 지키기에도 벅찬 상황 아닌가.”
“그렇기에 문제이기도 합니다. 퀘스트의 ‘실패 시’ 문구를 보셨습니까? ‘피의 복수’라고 합니다. 분명 어떠한 연유로 다른 곳에 아틀낙이 가락시장에서 기어 나와 난동을 피우는 것이겠죠. 그리고 성주가 날뛰기 시작하면 고작 그의 딸들에게도 애먹었던 저희는 감당하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게 뻔합니다. 밖을 나도는 생존자들이 이 퀘스트를 완료하리라는 보장이 없느니, 저희도 참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학범 말을 받은 정진호 팀장이 자신과 이름이 같은 명진호 선생의 의견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그의 딸인 소희가 손을 들고 이에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했다.
“글쎄요. 그건 어차피 아틀낙을 죽이지 않는 이상 언제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아닌가요? 제 생각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던, 찾지 못하던 결국에 저희에게 불똥이 튈 거라고 봐요. 보물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일 테고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만 천명에 가까울 거예요. 그들이 빈손으로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시간이 곧 목숨인 세상이에요. 꿩 대신 닭이라도 얻자는 심산으로 저희 캠프를 일제히 공격하면은요? 거미를 찾겠다고 싸우다가 오히려 환자가 늘어나면 저들의 공격을 받아치기 더 힘들어질 거예요.”
소희와 김학범, 명정호 관리팀장을 비롯한 이들은 반대파로, 정진호 전투팀장과 명진호 선생, 김건호와 몇몇은 찬성파로. 퀘스트 참가 여부의 찬반은 정확히 반으로 갈려 팽팽히 맞섰다.
회의는 긴 시간 이어졌고.
이른 아침에 시작된 모임은 해가 중천으로 갈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팽팽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하자, 모두가 의장 역할을 하던 전병철 캠프장을 바라봤다.
회의를 진행해야 하기에 중립을 견지했던 그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찬반의 무게추가 기울어지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동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전병철은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원래라면 지금 순간에 제가 한곳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으나, 저는 그 역할을 다른 분께 맡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전병철이 시선이 줄곧 입을 다물고 회의를 지켜보던 민준에게 향했고, 그러자 동료들의 시선 또한 그를 따라 민준에게 집중되었다.
그들 또한 결국 이리되리라 알았는지, 민준의 입에서 나올 의견을 갈구하는 상황.
‘후…….’
민준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전병철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그의 까만 눈동자 너머의 있는 속내를 깨닫고는 속으로 길게 한숨 쉬었다.
원래라면 소희의 아버지를 구해주는 대로 떠나고자 했었던 민준이다.
미로원에 갇히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기한이 연기되었고, 어쩌다 보니 미로원이 해제된 지금까지도 남아있게 되긴 했지만.
조만간 떠나야겠다는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었기에. 전병철 캠프장의 노림수가 곤란하게 다가왔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제 손의 낙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특히 아크티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더더욱.
자신과 함께 하는 일행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할 것이었다.
‘성주가 아닌, 그 딸들만 상대하는 일에도. 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야.’
민준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이곳에 돌아오기 위해 더더욱 성장하고 강해져야 했고.
그건 당장 프라우스와 레기나와의 전투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하기엔, 너무도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결국, 나는 떠나야 한다.’
그건 몇 번을 생각해봐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은 캠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걷어내고.
남은 이들이 자립하여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에서 그쳐야만 했다.
‘이 방법대로라면 캠프가 경찰병원처럼 되지 않게 예방할 수 있으면서, 나 또한 떠날 수 있다.’
방금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가능만 하다면.
떠나기 전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될 터였다.
나는 조만간 느낄 수 없게 될 동료들의 기대라는 기분 좋은 압박감을 느끼며 여느 때와 같은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