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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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릭은 어쩐지 로벨이 썼을 법한, 앙증맞은 리본이 달린 연보라색 털모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도 로벨리아와 아이들에게 해마다 꼭 만들어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로벨의 부친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상대는 평민이 아닌 귀족이다.
아무리 손수 정성껏 만들어준 것의 의미가 남다르다 해도 보는 눈이 많았다.
한 번도 아니고 매해 그러는 건…… 어쩌면 위엄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었다. 귀족들이란 흠 잡는 게 일인 사람들이니 말이다.
‘……내가 괜히 방정을 떨었나?’
여러모로 곤란해하던 로벨의 부친이 은근히 돌려 물었다.
“자네는……. 바쁘지 않나?”
“장인어른께서도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랬었다만. 흠흠.”
이제는 에드릭이 존경 어린 눈으로 봐도 뿌듯하기보단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다음 말에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사실은 저도 로벨리아를 위해 오후 3시마다 간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자격은 어느 정도 갖춘 것 같았다.
로벨의 부친은 매우 진지해 보이는 에드릭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을 더 얻기도 했다.
“그래, 그래서 우리 애가 볼 때마다 살이 쪘던 거로군.”
“로벨리아는 이전부터 너무 말랐습니다. 임신에 무리가 되지 않는 한에선 건강해져야 합니다.”
에드릭이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자 장인이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고도 문득 궁금해졌다.
로벨이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까다롭게 가리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딸의 입맛을 사로잡는 비법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자네가 간식으로 뭘 만들어주는 거지?”
“보통 차에 곁들일 만한 쿠키나 스콘 같은…….”
“스콘?”
로벨의 부친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마치 왜 로벨리아가 스콘을 먹느냐는 것처럼…….
그러자 질문을 받은 에드릭이 더 의아해졌다.
로벨은 빵을 좋아하지만, 발효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비교적 빨리 만들 수 있는 스콘을 해주면 매우 잘 먹었었다.
디프의 힘을 이용하여 빵마다 발효 시간을 확인하려 했으나, 로벨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스콘을 고집했었…….
‘……아.’
순간,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린 에드릭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제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쁠까 봐 일부러.’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에드릭만이 아니라, 로벨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로벨의 부친은 퍼뜩 놀라 말했다.
“아, 아니. 자네. 오해하지 말게. 로벨리아도 스콘을 못 먹는 건 아니지 않나. 플레인 스콘은 그래도 좋아해.”
“…….”
유려한 낯에 우울함이 서서히 감돌았다. 에드릭은 표정 관리를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간 로벨에게는…… 특별한 스콘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속에 무언가를 잔뜩 넣곤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취향도 제대로 모르고서 억지로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을 그녀를 떠올리자 속이 얹힌 듯 아파졌다.
그런데 저택에 돌아와서도 에드릭의 속은 더 시끄러워졌다.
“로벨리아 출산 일정이다.”
알렉시스가 대뜸 나타나더니 그 옆의 데니안이 마치 사전처럼 두꺼워 보이는 서류 더미를 갖다 주었다.
에드릭은 서류를 바라보지도 않고 알렉시스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알아서 하긴.”
알렉시스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는 에드릭의 일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 중 하나가 되었다.
“로벨리아가 지하에서 일했던 사실도 여태 모르는 주제에 대체 뭘 알아서 한단 말이지?”
***
나는 배를 만지작거렸다.
‘……임신했더니 평소에 싫어하는 것도 당기나 보네.’
오늘따라 이상하게 에드릭이 만들어준 스콘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음식인데 지금은 이렇게 계속 군침이 돌 정도로 생각나니 참으로 희한했다.
생각해보면, 바쁜 에드릭이 비교적 급히 만들 수 있는 것이라 먹는 버릇을 들였더니 잘 먹을 수 있던 것 같다.
‘……애들도 아빠 마음을 벌써부터 아나?’
무엇보다 나를 제외한 사용인들도 평생 먹어본 스콘 중에 가장 맛있다며 아주 잘 먹었고 말이다.
그래도 곧 먹을 수 있었다.
에드릭이 돌아오면, 이번 주는 스콘을 만들어주는 날이니까 넉넉히 만들어줄 것이다.
‘얼른 왔으면 좋겠다. 내일이나 모레쯤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창문 밖에 마차가 보였다.
에드릭의 검은 마차였다.
발견하자마자 창가에 서서 마차를 바라보던 나는 얼른 나가서 배웅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참참. 내가 나가면 싫어했지.’
찬바람을 쐬면 안 된다, 걸을 때 그렇게 빨리 걸으면 위험하다 등등…….
마치 숨 쉬는 것조차 무리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에드릭이 걱정을 해대니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들어올 것이다.
에드릭이 걸었던 첫해부터 그를 봐왔던 나는 그의 걸음이 유난히 빨라지는 순간을 아는 것이다.
그 예상처럼 에드릭의 기운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향기도 코끝에 맴돌았다.
‘얼른 문 열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소파에 앉아서 닫힌 문만 뚫어져라 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안 들어오지?’
문밖으로 에드릭의 기운만 느껴지고,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다른 이와 업무에 대한 논의라도 하나 싶었겠지만,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기운은 뜨거워졌다 차갑게 식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의 요란한 기분을 반영한 듯했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나?’
한 번 실수는 있었어도 에드릭은 저렇게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가자, 바로 에드릭과 마주쳤다.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게……. 코끝도 빨갛고.
아까부터 운 것 같았다.
……임신 소식을 알리자마자 에드릭이 울긴 했다만, 그게 아직까지 이렇게 울 정도로 기쁜 일일까?
멍하니 바라보자 에드릭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미안해. 로벨리아. 내가 무능하고 멍청해서 너를 이 저택에서 고생만 시켰어.”
……나 오늘 저택에서 하루 종일 낮잠만 자고 있었는데.
나는 내 남편이 혹시 자신을 고난도로 돌려 까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애가 너무 진지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 음. 여보야, 나 괜찮은데?”
“아니야. 정말……. 나 때문에 네가 고생만 했어.”
“…….”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남편이 아내 대신 입덧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호르몬의 영향까지 받는 경우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디프라서 뭐 이상하게 더 교감되거나 하나?
고작 속지에 남아있는 세계수 나무의 껍질만으로도 나는 디프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걱정하며 그를 살피는데, 에드릭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미안해, 로벨리아.”
“저기…… 혹시 술 마신 거 아니지?”
“아니야. 그건, 안 돼. 네가 아이를 가졌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마셔. 아무리 내가 아둔하기 짝이 없어도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아.”
……같이 마시잔 것도 아니고, 왜.
아니, 아내가 임신했다고 완전 금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어이가 없어져서 바라보자 에드릭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지 너른 어깨가 축 처진 게 보기 안쓰러웠다.
‘……바깥 일이 그렇게 힘드나?’
무슨 고된 일이길래…….
혹시 요새 디프의 숲 문제로 어울리던 루이스 황제가 갈구나 싶었다.
짠해진 나는 에드릭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미안했는지 에드릭이 거의 반쯤 흐느끼며 말했다.
“미안. 내가 매번 너한테 잘못만 해서. 미안해. 난……. 너를 사랑할 자격도 없어.”
훌쩍이는 소리가 나자 에드릭이 창피한지 손에 얼굴을 더 깊게 묻었다.
자괴감에 빠졌는지 떨리는 손등 뒤로 손을 얹어주었다.
에드릭이 자신은 그럴 가치도 없다며 자학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얘가…… 어디서 약이라도 하고 온 건 아니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심했으나, 내가 임신한 이래 자발적 금주에 동참한 에드릭이 그럴 리가 없었다.
“여보. 잘못했댔지?”
“……응.”
고개를 파묻은 상태로 끄덕였다.
“그럼 나 화낼래.”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드릭이 움찔했다…….
그래서 나야말로 놀라고 말았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내가 평소에 이런 이미지였나. 나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어쨌거나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일부러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꾸미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화를 내려면 뭐부터 화내야 하는지 알아야겠어. 말해봐. 안 그러면 배로 더 화낼 거니까.”
내가 들어도 진심으로 화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임신 중에는 더 태교에 유의하려 했으므로 이런 일은 없었다.
그 기세에 눈치를 보던 에드릭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벨리아, 네가……. 나 때문에, 지하에서, 내내 고생했다고……. 미안. 정말 미안해.”
평소 위엄은 어디 갔는지 에드릭은 기가 죽은 얼굴이었다.
듣다가 입을 벌렸다.
뭐,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일을 지금 안 것도 놀랍긴 한데…….
나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부터 집어보았다.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나, 나 때문이잖아.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아니. 내가 선택한 건데.”
단호한 대답에 흐트러진 앞머리 아래 녹색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머리를 정돈하듯 귀 뒤로 천천히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장본인이니까 있는 그대로 말할게. 그거, 누가 강제로 시킨 거 아니야. 내가 원해서 한 거야.”
“……하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한 건 변치 않아.”
“에드릭, 잘 생각해봐.”
나는 음, 잠시 말을 가다듬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가는 나를 벨리칸까지 데려다주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진 않지? 30시간 이상을 마찻길에 올라야 하니까 말이야.”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나는 그의 붉어진 뺨을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를 위한 일이라 행복했을 거야. 후회도 되지 않고. 또 그런 일이 있어도 할 테고.”
“…….”
“나도 다를 바 없어, 에드릭. 네게 힘든 일이 있다면 거들어 주고 싶고, 그때 일이 솔직히 힘들긴 했어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너를 사랑하거든.”
“……내가 그동안 눈치 없이 네가 싫어하는 요리를 만들었어도?”
“응. 사랑해. 사랑하지.”
“나도 너를 사랑해.”
“그럼, 여보야.”
나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울 듯이 눈시울을 붉힌 그를 향해 미안하게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미안하긴 한데…… 나 출출한데 스콘 좀 만들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