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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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번에야말로 억지였다.
이 드넓은 테루아 땅에 덴카르트 공작의 충심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무시라니.
하지만 시녀들이 긍정하지 않자, 딜라일라가 열을 냈다.
“정말이야! 나를 매번 하찮게 보고 있어! 아버지도 마찬가지야!”
결론은 계속 같았다.
“나는 오라버니랑 결혼할래! 아니면 오라버니 같은 남자라도 데려와!”
“어머, 황녀 전하. 오늘은 폐하께서 진주 장신구를 보내주셨어요. 저희가 달아드릴게요.”
시녀들이 열을 내는 딜라일라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황녀가 좋아할 법한 장신구들을 그녀의 머리카락에 달아주었다.
황족을 상징하는 긴 백금발이 더욱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딜라일라의 표정은 더 침울해졌을 뿐이다.
딜라일라는 거울 속 인형처럼 아름다운 제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
“루이스 황태자 전하의 편지를 대령할까요?”
“편지는 이제 지긋지긋해. 편지 말고, 진짜 오라버니를 보고 싶은 거야.”
아…… 이 황녀 전하를 어쩌면 좋을까. 시녀들은 정말 울고 싶었다.
루이스 황태자는 신성 제국 유학으로 황성을 비운 지 오래였다.
시녀들은 늘 시야가 넓고 자유로우면서도, 공명정대한 그를 늘 마음 깊이 존경해왔지만, 요즘 들어 원망스러워졌다.
차라리 이럴 때 황태자라도 있었다면 황녀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황녀 전하. 부디 저희와 소꿉놀이할 영광을 주시겠어요?”
그나마 황녀가 좋아하는 것이 소꿉놀이였다. 문제라면 루이 황태자가 필요하다는 점이지만…….
시녀들이 지친 기색을 감추며 달래는데, 갑자기 딜라일라가 묘안이 떠올랐다는 듯이 화색을 띠었다.
“아참. 오늘 대공이 온댔지. 나 그럼 대공이라도 보고 싶어! 대공을 보러 갈래!! 대공이랑 소꿉놀이를 할 거야!!!”
황태자가 없는 지금, 황녀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딜라일라는 부황에게 칭얼거렸고, 늘 그렇듯이 딸을 사랑해 마지않는 그에게서 원하는 허락을 얻어냈다.
그 후에 마차는 거리낌 없이 수도 타운하우스로 향했다.
시녀들이 이 근방에 덴카르트 공자가 산다고 새살거렸지만, 그녀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이윽고 냉기가 풍기는 것 같은, 묘하게 푸르스름한 색을 띤 저택 앞에 도착했다.
딜라일라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훑어봤다.
‘흥. 대공은 왜 나보다 마넬라노 스텔을 먼저 만나러 온 거야?’
그걸 따지기 위해 성큼성큼 저택 안에 걸어갔다. 시녀들이 미처 따라올 새도 없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풍성한 드레스 자락이 걸리적거렸다.
앙증맞은 두 손으로 드레스 끝자락을 잡아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레스 끝자락을 올리는 위치는 예법상 발목까지만 허용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정원까지 헤매게 되었다.
스텔 가문은 과시가 일상인 자들이었고, 토피아리와 관목들이 지나치게 높아 미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구두를 괜히 신었어…….’
끙끙거리며 아픈 다리를 부여잡는데,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저어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딜라일라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자신보다 훌쩍 큰 소년이 미안하게 웃었다.
반짝이는 은발에 새하얀 얼굴은 무해해 보였다.
그런데 그 속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기질을 꿰뚫는 능력을 지닌 황녀에겐 그의 심성이 보였다.
‘……밝고 따뜻해.’
어둡고 음울한 공작이 악마라면, 이쪽은 천사 같았다.
천사라는 찬사는 덴카르트 공자가 아니라 이쪽이 더 어울렸다.
예상대로 소년은 자신을 앞에 두고 ‘어떻게 도와주지?’, 라는 표정으로 고민만 했다.
별다르게 위협을 하거나 자신에게 뭔가를 뜯어내려고 하는 자는 아니었다. 평범한 이처럼 아부를 하지도 않았다.
잠시간 골몰하던 그가 상냥하게 물었다.
“시녀를 불러올까요, 아니면 업어드릴까요?”
하지만 둘 다 싫었다.
그 의사를 분명히 밝히려고 하는데, 소년이 환히 웃으며 권했다.
“아니면, 드레스를 조금 더 높게 잡고서 걸어 보시겠어요?”
* * *
예전에 마넬라노가 언급한 손님은 대공이었다.
한때는 전쟁 영웅으로 어린 덴카르트 공작과 전쟁터를 누비던 그는 부상으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자였다.
대공은 그 즉시 영지로 돌아가 고요한 삶을 영위했으나, 귀족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단순히 검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현명하고 명석한 자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그가 수도를 떠났음에도 그의 지혜를 탐냈고, 존경했다. 스텔 가문도 그중 하나였고.
어째서 마넬라노 스텔이 내게 직접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 자라면 단 한 번 손님으로 모시는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도련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도 기꺼이 나서야지. 무엇보다 내 눈이 정확할 테니까.”
“……예?”
“가자, 로벨.”
그렇게 도련님이 나와 함께 마차에 탔다. 일정도 다 미루셨다.
나는 뜻밖의 동행에 내심 당황했지만,
뭐…… 대공가와 덴카르트의 인연도 있었고. 그간 궁금하셨거나 흥미가 생겼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따로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마넬도 연락 없이 종종 도련님을 찾아오곤 했으니까.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귀족들이 모여 사는 타운하우스 중에서도 스텔의 거처는 꽤 가까운 편이었다.
역시 잘사는 귀족가답게 다른 저택들에 비해서도 정원부터 훨씬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이른 도착 시간인데, 마넬라노는 대공이라도 기다리는지 이미 정문을 서성이고 있었다.
일부러 일찍 나왔는데도 혹시 우리가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나 걱정될 정도였다.
부랴부랴 급히 마차에서 내리는데, 마넬라노가 나를 발견하고 입을 벌려 웃었다.
“로벨.”
그리고 뒤따라 내리는 도련님을 발견했을 땐, 그의 입이 딱 다물렸다.
두 사람은 마치 인사를 잊은 것처럼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아져 있었다. 유전의 힘인지, 도련님이 부쩍 커버린 것이다.
‘……그새 이렇게 자라셨나?’
놀라서 바라보는데, 다시 잘난 귀족 같은 말끔한 미소를 띤 마넬라노가 입을 뗐다.
“공자께서도 오셨군요.”
“로벨의 약속은 제 약속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오지 않을 수가 없지요. 저도 함께 도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도련님은 마넬라노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가 맞잡자, 조금은 사나워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다면 제게 먼저 말씀해주셔야 순서에 맞겠습니다.”
“명심하지요.”
마넬라노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데, 도련님이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영식께서도 앞으로 로벨에 관한 일이 있거든 제게 먼저 허락받길 바랍니다.”
“…….”
“그게 순서에 맞지 않겠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전속 시종인데.”
……그동안 도련님이 마넬라노의 뜬금없는 방문에 스트레스를 꽤 많이도 받으셨나 보다. 저렇게 살살 긁으시는 걸 보면.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스텔의 집사가 도련님께 다가왔다.
“귀한 걸음 감사드립니다. 백작님께서 자리를 마련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도련님은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귀족의 예법을 익힌 도련님도 그 중요성을 아는 터라 거절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 마넬라노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로벨은 나와 함께 따로 들어가도록 하지.”
“도련님. 주인님과 주인마님께서 도련님도 함께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집사의 말에 마넬라노는 눈썹을 휙 올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딱 봐도 손님 대접을 하기 싫다는 얼굴이었다……. 부모님도 빼고서 도련님과 둘만 함께 있고 싶나?
그런데 그때, 우리 도련님이 더 빨리 말했다.
“예. 저도 그래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집사에 우리 도련님까지 거들자 마넬라노의 표정이 싹 변했다.
하지만 그도 거절하지 못했다……. 저런 걸 보면 귀족도 참 깝깝하구만. 싫어도 격식을 계속 차려야 하는 걸 보면.
아무튼, 두 사람이 하던 행동을 가만히 보던 나는 정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그럼 먼저 둘러보고 있을게요.”
이전에 마넬라노가 와서 대공이 좋아할 법한 장소나, 다른 것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던 터라 면밀히 살필 곳이 많았다.
내 뜻을 아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 다 표정이 부쩍 굳어 있었다.
그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지. 뭐, 알아서들 잘할 것이다.
나는 정원을 위주로 슬슬 돌아보았다.
대공이 사는 곳은 덴카르트만큼이나 자연 경관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사계절 내내 푸른 녹음이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럼…… 오랜만에 수도에 왔으니 낙엽을 보면 더 반가울 거야.’
야외 테이블이 이미 마련되어 있긴 하다만, 따로 마련되면 좋을 법한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종이에 따로 기록하며 걷다 보니 미로 같은 정원 속에 들어왔다.
다행히 집사가 출구를 찾는 방법을 일러준 터라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보였다.
‘……저 애는 누구지?’
이제 막 일곱 살쯤 되었을까.
내 허리쯤이나 간신히 올까 싶을 정도로 키가 작고 앙증맞은 소녀였다.
찰랑거리는 백금발 사이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분홍색 눈동자가 보였다.
울상을 짓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거로 봐선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대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넬라노의 먼 사촌쯤 되나. 그럼 도와줘야지…… 쉽게 생각하며 걷다가, 걸음을 딱 멈췄다.
‘잠깐만, 잠깐만. 백금발에 분홍색 눈동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정체를 유추하기엔 충분했다.
‘……황손? 아니, 황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