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12)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12화(112/280)
뜻밖의 재능 1
라이언의 집은 컨테이너 하우스였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벽돌집보다 컨테이너 하우스가 훨씬 많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나 일단 금전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토네이도가 왔을 때 벽돌보다 피해가 적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라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붙이고 천천히 이동하는 화물 트럭들을 볼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본 건 주로 공장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된 컨테이너 하우스를 배달할 때다.
플래카드를 붙인 트럭 3대가 연달아 가는 바람에 길이 엄청나게 막혀 경찰차까지 동원된 적도 있을 정도다.
제반 시설들이 미리 준비된 땅에 배달된 집을 얹는 거라고 해도 집을 배달하고, 배달받는 광경들은 솔직히 흥미롭긴 하다.
아무튼 라이언의 집은 1층짜리 컨테이너 하우스로 제법 크고 세련된 형태였다.
입구에서부터 뭔가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동선.
미국 집들은 대부분 담벼락이 없다.
펜스를 세우거나 나무를 심어 경계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충 우리 집 잔디를 깎는 부분만큼이 내 땅이려니 한다.
라이언 집의 부지는 상당히 넓었다.
그 부지 전체를 빽빽이 둘러싸고 있는 프라이버시 트리(Privacy Trees)들.
마당 관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해가 져서 어둑한데도 집으로 들어가는 긴 입구가 돌멩이 하나 없이 깔끔했다.
거기다 집 입구의 우체통부터 현관문까지 길게 나무 레일로 만든 손잡이가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했다.
그 레일 손잡이조차 멋없이 대충 만든 것이 아닌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특수 제작되어 있었다.
“와. 집 진짜 예쁘다.”
“우리 집이 U자 모양이거든? 뒤에 뻥 뚫린 공간이 화단인데, 보면 나오고 싶지 않을 거다. 정말 환상적이지.”
“누가 관리하는 거야? 아버지는 집에 잘 못 오신다며?”
“당연히 이 몸이 하시지.”
“뭐? 진짜? 이걸 니가 직접 관리한 거라고? 정말로?”
“왜? 못 믿겠냐? 윽, 어우, 어지러워.”
“야. 내 팔 잡아. 여기서 쓰러지면 진짜 머리 깨진다.”
“머리까지 깨지면 고등학교 4년 그냥 프리 패스로 가는 건가?”
“헛꿈 꾸지 마라. 4년 놀자고 40년 버릴래?”
“넌 진짜… 애늙은이야. 그런 소리 많이 듣지?”
“시끄러. 다 너를 위한 거야.”
“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역력하다.
“라이언? 라이언이니?”
“어, 엄마. 나 왔어.”
“미세스 해밀턴. 저 딜런입니다.”
“아, 딜런. 근데 어떻게…. 잠깐, 라이언, 너 지금 시합 중 아니야?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무슨 일인데? 어? 다친 거야? 혹시… 배 아파?”
하지만 쏟아 내는 급한 말들과는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아, 눈이 안 보이시는구나!’
그리고 마침내 현관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중년의 여성.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현관문 옆에 있는 긴 나무 레일 손잡이에 의지한 모습으로 다급하게 허공에 손을 뻗어 낸다.
저 레일들이 누구를 위한 건가 했더니….
아무리 라이언이 어릴 때 진 병원 빚을 갚는다고 해도 라이언의 아버지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싶었는데.
애처가셨구나.
이 정도의 집을 짓고 유지하면서, 라이언이 하고 싶어 하는 거까지 다 하게 해 주려면 많이 벌긴 해야 할 것 같다.
라이언이 그런 제 아빠의 노력을 알아서 아빠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양이네.
내가 라이언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민망한 소리를 해도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듣고 있더라니.
아무튼 눈이 안 보이시더라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건 기척으로 느낄 수 있을 거다.
놀라기 전에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 같다.
“안녕하세요. 미세스 해밀턴. 저는 라이언 친구 제이든입니다.”
“어머, 제이든. 우리 라이언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반가워. 어서 오렴. 그런데 라이언, 너 정말 괜찮니? 왜 말이 없어?”
“큼. 그게, 엄마….”
“미세스 해밀턴, 제가 말씀드릴게요. 제이든, 라이언 좀 욕실에 넣고 밖에서 좀 대기해 줄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칫. 걱정 마요. 나 괜찮아.”
“괜찮기는. 힘들면 일단 소파에 누웠다가 내일 씻어도 돼.”
“됐거든. 씻고 마음 편하게 침대에 누울 거야. 화장실은 저쪽 코너 돌면 있어. 부축해 줘. 엄마, 나 괜찮아. 그냥 좀 약간 어지러울 뿐이야.”
“…딜런? 소파로 갈까요?”
“네.”
딜런과 라이언의 엄마가 소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라이언을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차마 씻지 말고 바로 자라는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더럽긴 하다.
경기하다가 바로 왔으니 당연한 거지.
― 쏴아아아!
물소리가 들리고, 문 앞에서 대기했다.
넘어지는 소리라도 들리면 바로 뛰어 들어가야지 별수 있나.
다행히 전생에서 대중목욕탕을 가 본 적이 몇 번 있다.
문제 될 거 없다.
쪽팔려도 지가 쪽팔리지 내가 쪽팔린 건 아니니까.
그래도 웬만하면 눈 버리고 싶지 않으니 무사히 씻고 나오면 좋겠네.
― 3일은 무조건 쉬어야 하고… 6개월… 공부… 휴식을….
― 흐으흑. 우리 라이언….
― 그래도 터치다운을 했을 때… 학교의 영웅….
― 진짜 다른 곳은…. 그럼 앞으로 풋볼은….
.
.
.
드문드문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딜런은 최선을 다해 미세스 해밀턴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네.
그나저나 엄마가 저렇게 눈이 안 보이면 라이언은 앞으로 3일간 어떻게 안정을 취하지?
이제야 라이언이 했던 말들이 이해가 된다.
요리도 직접하고, 운전도 일찍 배우고.
거만하고, 싸가지도 없고, 인종차별주의자에 성차별주의자라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러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매일매일 사물함 커버에 나만큼이나 사탕이 많이 붙는 녀석이다.
따르는 남학생들도 많고,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러니 학생회에 출마할 생각도 했겠지.
나쁜 쪽 성격은 자기방어 기제였던 건가?
단순히 사춘기였을 수도.
어쩌면….
엄마의 일로 상처받은 기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가족의 장애를 문제 삼아 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약자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너그러운 곳이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철저히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악의를 가진 놈들은 꼭 있게 마련.
나만 해도 인종차별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니까.
그래서 꽁꽁 숨겼던 건가?
알렉스마저도 라이언의 엄마 이야기는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3일간 누워 있어야 한다면 누군가는 수발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
내일 라이언의 아버지가 온다고 했으니 하루 정도만 고생하면 되겠다.
늦어도 오후쯤에는 도착할 것이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 쏴아아.
샤워가 제법 오래 걸린다.
“라이언, 괜찮냐?”
“어?”
“괜찮냐고!”
“으, 어, 괜찮아. 물소리 때문에 안 들려. 말시키지 마.”
“사내자식이 뭘 그렇게 오래 씻어?”
고개를 돌려 보니 집안 곳곳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장치들이 세심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벽마다 길게 붙어 있는 나무 레일들은 둘째 치고, 레일 윗면에는 곳곳마다 점자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점자는 전혀 모르기에 뭐라 적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로 연결된 레일만 봐도 양쪽으로 똑같은 글자가 음각된 걸 보면 이곳이 화장실이라는 걸 알려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문짝에도 점자가 찍혀 있다.
미스터 해밀턴.
완전 사랑꾼이네.
우직할 정도로 자기 몸을 갈아 가족들을 챙기고 있는 거다.
백인들만큼이나 통계를 내기 어려운 인종도 없는 것 같다.
천사의 강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이코패스가 딱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차가운 사람들도 많다.
어째 중간이 없는 느낌이랄까.
― 달칵.
문이 열리고, 목욕 가운을 걸친 녀석이 밖으로 나왔다.
씻고 나니 더 뽀샤시하네.
외모 하나만큼은 우리 학교에서 나 다음으로 두 번째 정도는 쳐줄 수 있을 거 같다.
“내 방은 저쪽. 옷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
“됐어. 너 괜찮은 거 봤으니 난 그만 갈게.”
“어우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집 구경은 해야지.”
“이 밤에 무슨 집 구경? 얼른 자.”
“악, 어지러워. 암튼 잠깐만 있어 봐.”
“…걸을 수는 있겠어?”
“어? 어. 많이 어지러운 건 아니고. 잠깐만.”
비척거리며 방으로 향하는 라이언.
낯짝이 새하얗게 질려 나오는데도 굳이 집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한다.
방 밖에서 기다렸다.
안 나온다.
“야! 라이언!”
“…….”
“들어간다.”
“…….”
― 달칵.
침대에 누워 있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고함을 치려다가 라이언의 엄마가 생각났다.
먼저 체크부터 하자.
상태를 보아하니 다행히 바지는 갈아입었고, 윗옷을 갈아입는 동안 어지러워 잠깐 누운 듯하다.
이마를 짚어 보니 열은 없다.
가슴팍이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걸 보니 그냥 잠에 빠져든 건가?
심장 부근에 손을 얹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지는 않는지 체크했다.
차마 귀를 갖다 댈 수는 없었을 뿐이다.
그 순간, 딜런이 들어오다가 내 모습을 보고는 씨익― 웃는다.
“제이든? 뭐 해? 왜… 그러고 있어?”
“아, 아. 얘가 지 집 구경시켜 준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와서 들어와 보니 이 모양으로 뻗어 있어서 혹시 무슨 일 있나 하고 보는데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고….”
“헤이, 헤이. 라이언. 숨 쉬면서 말해.”
“후우. 숨도 제대로 쉬고 있는 걸 보니 피곤해서 자는 거 같아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큭큭. 그런 거 안 해. 너답지 않게 뭘 당황하고 그래. 알아들었어. 피곤했겠지. 쟤가 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는 엄청 치대는 경향이 있어. 진즉에 너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의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미세스 해밀턴은 괜찮아요?”
“어. 방금 방에 들어가셨어. 라이언은 내가 살펴보겠다고 했고. 집에 갈 거면 데려다줄게.”
“딜런은 집에 안 가려고요?”
“아. 난 오늘 이 집에서 자야 될 거 같아. 의사가 오늘 하루는 누가 옆에 있어 주는 게 좋겠다고 했잖아. 음. 뭐. 내일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타주로 가야 하지만…. 5시간만 운전하면 되니까 괜찮아. 결혼식이 12시니까 집에 가서 샤워하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가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가면 대충 되겠지 뭐. 이 방 소파가 제법 푹신하고, 소파가 불편하면 클로짓에 꽤 괜찮은 슬리핑 백도 있으니까 그거 꺼내서 들어가 자도 되고.”
아니.
왜 그런 피곤하고 불쌍한 눈빛을 보내면서 주저리주저리 사연을 늘어놓는 건데?
“그냥 저더러 자고 가라고 하세요.”
“그래 줄래? 그럼 나는 너무 좋지. 아니, 아침에 일어나면 라이언도 좋아할걸?”
“미세스 해밀턴은 괜찮대요?”
“그럼. 안 그래도 3학년 이후 처음으로 집에 친구 데려왔다고 엄청 좋아했어. 아들 다친 건 조금 걱정하고 끝이고, 친구 데려온 걸 더 좋아하더라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요. 엄마 허락은 받아야 해요.”
“그럼, 그럼. 전화해, 전화. 기다릴게.”
엄마야 뭐…. 내가 그러겠다고 하면 당연히 오케이겠지.
그냥 바로 내가 자겠다고 하기가 좀 그랬을 뿐이다.
― 띠리리리.
― 어우. 그럼. 엄마는 괜찮아. 자고 와. 라이언 아빠 오면 배턴 터치 하고 와. 밥은 챙겨 먹고. 그래. 밤이라도 불편한 거 있으면 전화해. 바로 달려갈게. 그래그래. 사랑해, 아들.
― 뚝.
그렇지 뭐.
“제가 있을게요. 근데 저도 좀 씻어야 하는데. 라이언 옷을 좀 빌려 입어도 괜찮겠죠?”
“괜찮을….”
“으으…. 속옷 새거는… 두 번째 서랍… 고…. 바지는… 세 번째… 셔츠는… 첫 번째… 아무거나….”
숨소리까지 쌕쌕거리며 자던 라이언이 반쯤 감긴 눈으로 손을 뻗어 위치를 알려 주며 웅얼거린다.
눈도 못 뜨면서도 씨익― 웃고 있는 게 제법 만족스런 표정이다.
“안 자냐?”
“…….”
“하하. 라이언, 마음은 벌떡 일어나 알려 주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 주는 모양이다. 니가 있는 게 좋은가 봐.”
“으휴. 내가 진짜 어쩌다 엮여 가지고는. 딜런, 불 끄는 위치만 대충 알려 주고 가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 어. 따라와.”
갈아입을 옷들을 대충 챙겨 들고 라이언의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