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24)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24화(124/280)
첫사랑은 원래 안 이뤄지는 법 1
수상자가 단 6명이라 그런가?
디베이트와 달리 수상자들은 단상 위로 올라가 여러 각도의 사진도 찍고, 심사 위원들과 악수도 한다.
“제이든 군, 여기 가운데에, 그렇지. 거기, 네, 좋아요. 이것도 들어야지.”
누가 한국 회사 아니랄까 봐.
인증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1만 불이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체크(Check) 수표를 들으란다.
트로피도 주고, 개인적으로 상패도 주고, 체크도 준다.
물론 이 돈은 학교로 가니 나하고는 상관없다.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 적을 수 있을 뿐.
나머지 4명도 나와 비슷한 포즈로 한 명씩 사진을 찍고, 또 수상자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계속 사진을 찍는다.
“제이든 군은 한국계라죠?”
“네.”
“정말 자랑스러워요. 우리 한섬의 1등 상금이 한국계 입양아에게 가다니. 누가 보면 짜고 친 줄 알겠다니까, 하하하.”
마치 자기가 뭐라도 해 준 양 아주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친한 척을 하는 한섬 관계자.
처음 볼 때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나와도 작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옛날에, 그러니까 20년 전, 재벌 사생아인 내가 20대 초반에 굳이 자원해서 군대를 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큰형의 오른팔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던 이 사람은 어느 날 경마장에 처박혀 있던 내게 찾아와 ‘저기 최전방의 제일 힘든 부대로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제때 군대에 갔다 오라’고 했었다.
딱히 그 협박이 무서웠다기보다 마침 흥미로운 뭔가를 찾고 있던 중이라 군대에 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바로 자원을 했고, 최전방에 배치됐었지.
빌어먹을.
생각하니 또 열 받네.
암튼 그때는 과장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이사가 되어 이런 행사에도 얼굴을 들이밀고 그러네?
2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는지 얼굴은 반지르르 하지만 눈빛은 탁하다.
“자, 여기 내 명함. 혹시 한국에 오고 싶거나, 친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이렇게 훌륭한 학생이면 회사 차원에서 도와줘야지.”
진심으로 내가 장하다는 듯 자랑스럽게 웃고 있지만, 그 내면의 깊은 의도가 다 보이니 나도 이제 사람 좀 볼 줄 알게 된 건가?
현재의 나는 한섬 기업의 미담 홍보용으로 뿌려지기 딱 알맞은 재료 아니겠나.
경계해야지.
이 인연은 더 이어 갈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깔끔하게 밀어내자.
“뭐, 회사 차원에서 도와주실 것은 없고요. 이 상금도 순전히 제가 체스를 잘 둬서 받은 상금인데요, 뭐. 어쩌다 보니 한국계 미국인인 거고요. 신청서 작성할 때 보니까 사진 유포 동의서에 사인을 안 하면 안 되게끔 되어 있어서 일단 동의는 했는데요. 인터뷰는 안 합니다.”
“아하하. 무, 무슨 인터뷰까지.”
“그쵸? 제가 좀 오버했나 보네요, 그럼. 얘들아! 나 1등이다!”
― 으아하하하!
― 장하다, 우리 제이든!
― 넌 이제 내 영웅이야.
― 빌리, 넌 도대체 영웅이 몇 명인 거냐?
.
.
.
8라운드에 들었을 때는 울고불고하던 것들이 거기서 1등을 먹었는데 오히려 담담하다.
진짜 웃기는 녀석들이다.
아님, 이미 실컷 울었나?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다.
또 울고불고하면 그냥 가 버리려고 했다.
트로피를 들고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마 다음 주 학군의 전체 뉴스레터엔 이 사진이 메인 화면을 차지할 것이다.
에이미가 자기 학교 친구들과 다가온다.
8라운드에서 5등을 한 여학생과 함께다.
사우스팍 하이스쿨은 체스가 강세인 모양이네.
“축하해, 제이든. 1등 해 줘서 고맙고, 하하.”
“고맙다.”
“헤헤. 다음에 또 나올 거야?”
“글쎄. 상황 봐서.”
“그래, 그럼 또 보자. 아니다, 이참에 그냥 그 학교로 전학 갈까?”
“…….”
“어우, 농담이야, 농담. 뭘 또 그렇게 정색까지 하고. 야! 곰시키. 니가 책임지고 담번에도 제이든 끌고 와라.”
“니, 니가 무슨 상관인데!”
“어우, 진짜. 너 또 누나 말 안 듣지?”
“내가 한 달 더 빠르거든? 내가 오빠라고!”
“오빠는 지롤. 하는 행동은 우리 10살짜리 에릭보다 못한데에! 그만 좀 처먹어.”
“워워워. 너네 무슨 사이냐?”
“우리? 쟤가 말 안 했어?”
“…….”
“와, 놔. 저 곰시키. 우리 이종사촌이야. 내가 왜 키가 작겠냐? 저게 맨날 우리 집 냉장고 털어먹어서 그렇다니까.”
“그… 잘 가라.”
“어? 어, 또 보자, 제이든. 그 잘생긴 얼굴 쭈욱 잘 유지하고.”
“야!”
“어우야. 미안하다, 미안해.”
요즘 애들 왜 이러냐.
어째 내 주변에 꼬이는 여자들은 다 저런 또라이고, 남자들은 다 불쌍한 놈들인지.
이게 이번 생에 주어진 내 업보인가?
그렇게 체스 대회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데 다시 2시간.
오늘의 체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던 아이들도 하나둘 잠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1만 불이 내게 직접 주어지는 돈이 아니란 소식에 아주 안타까워하는 엄마와 삼촌, 숙모와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다가 엘리 100일 기념에 대한 주제로 옮겨 갔고, 한국에선 100일 잔치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깐 너튜브를 뒤졌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떠 보니 소파다.
이제 덩치가 커져서 엄마도, 삼촌도 내가 소파에서 잠이 들면 침대로 옮겨 주지 못한다.
그저 이불을 덮어 줄 뿐이다.
생각보다 깊이 잠이 들었다.
새벽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깨기 전까지는.
* * *
호사다마라고 했나?
언제나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 딩동딩동.
눈을 비비며 현관문을 열었더니 제이콥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서 있다.
“제이콥,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매튜.”
“어?”
“매튜가 사고 쳤어.”
“…왜? 아니, 무슨 사고?”
뜻밖의 말에 잠시 뇌 정지가 왔다.
매튜가 이 시점에 사고를 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너 요즘 매튜 못 봤지?”
“그렇지. 공부방에도 잘 안 나오고, 학교에서도 겹치는 게 없으니까 볼 일이 없지. 그러고 보니 안 본 지 좀 된 거 같네. 여전히 일 잘하고 있겠지, 했는데?”
“하, 그게 요즘 매튜가 좀 힘들었거든. 애슐리랑 헤어지네, 마네 싸우고 지지고 볶고. 암튼 어제 아침에 둘이 아주 끝장을 보고 헤어지기로 했나 봐.”
“근데?”
“어제 일 끝나고 정비소 동료들이랑 간단하게 한잔한 거지.”
“한잔? 고딩이?”
“요즘 안 마시는 애가… 있지. 어, 우리 공부방 놈들은 범생이들이지, 암.”
“음주 허용 나이 21세 아냐?”
“그건… 그렇지. 암튼 11학년 돼 봐. 대충 다들 마셔.”
“너도 마셔?”
“어우, 아니지. 난 알코올 해독 능력이 없다고.”
“진짜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암튼 어제 매튜가 정비소 동료들이랑 한잔하고는 술에 취해서 그대로 애슐리를 찾아간 거야.”
“뭐어! 미친 거야?”
“그것만이 아냐. 그 밤에 애슐리하고 또 한바탕 싸우고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고를 냈어.”
“차 사고?”
“어.”
“다친 사람은?”
“없어. 남의 밭에다가 차 박아서 펌킨들 박살 내고, 경찰한테 그 자리에서 체포됐대.”
“허얼…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난리 났네.”
“우리 매튜, 이제 어떡하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매튜 부모님은?”
“지금 오고 있어. 매튜 할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지난 한 주 동안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가 있었대. 여기서 10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밤새 달려오고 있는 거 같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한쪽이 잠잠하다 싶으면 또 다른 한쪽이 난리다.
자기 갈 길 잘 찾아서 간다 싶었는데.
자동차 만지는 놈이 음주 운전이라니.
기가 찬다.
“그래서 지금 매튜는 어딨는데?”
“구치소. 어제 잡혀 들어가서 아직 못 나온 거 같아. 일단 아빠가 새벽에 가긴 했는데 아직 안 돌아왔고.”
“음주 운전이면 형사 사건인데. 많이 마셨대? 혈중 알코올 농도는 얼마나 된대?”
“몰라. 그래도 매튜 그 새끼가 차 만지는 놈인데 운전대 잡을 정도면… 기껏해야 한 잔 정도 아닐까? 애슐리도 전화 안 받아. 찾아가 볼까?”
“일단은 어른들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별수 있겠냐. 어우, 이게 무슨 일이래.”
일반적으로 음주 운전이나 도둑, 강도, 살인 같은 것들은 주(State)나 카운티 법률을 따르고, 마약이나 총기, 성폭력이나 강간 같은 범죄는 연방법((Federal Law)을 따른다.
연방법은 형량이 세다.
하지만 주법은 인명피해가 나지 않는 한 형량이 비교적 낮다고 할 수 있다.
만 18세가 넘었기에 성인이지만 신분은 고등학생인 매튜.
하필이면 어제가 토요일이었다.
월요일에 판사가 출근해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어 보인다.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어서 생전 안 하던 기도를 다 했다.
― 딩동.
11시.
제이콥이다.
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제이콥.
뭔가 결말이 났으니 왔겠지.
물병 하나를 던져 주니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걸어서 20초 거리에 살면서 지 집에서 마시면 될 것을.
“매튜는?”
“휴우, 살 거 같다. 나 목말랐나 봐.”
“…매튜느은?”
“잘 해결됐어.”
“뭐? 어떻게? 걔 지금 어디 있는데?”
“집으로 갔대.”
“진짜 잘 해결된 거 맞아?”
“어, 맞아. 후우,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7%이었대. 음주 운전은 0.08%부터인데. 문제는 나이에서 걸린 거지, 18살짜리가 맥주를 한 캔이나 처먹고 운전을 했으니. 암튼 일단은 9주 동안 면허 정지, 50시간 교육, 사회 봉사 활동 300시간에 벌금 2천 불. 보험금도 올라가겠지, 어엄청?”
“허얼, 이제까지 번 돈 다 날아가겠네.”
“또 있어. 남의 밭 펌킨들을 다 박살 내 놔서 그거 보상금으로 3천 불 더 내야 한대. 일단 그건 부모님한테 빌려서 낸 후에 천천히 갚기로 했나 봐.”
“그나마 다행이네. 근데 어쩌다 사고가 난 거야? 0.07%이면 사고 낼 수준도 아니겠구만.”
“갑자기 튀어나온 사슴 피하다가 박았대. 문제는 그 자리에 잠복 중인 경찰이 있었던 거고. 재수가 없었어.”
“재수가 있는 거지. 음주 운전 습관 된다. 너도 절대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마라.”
“아, 네. 전 간이 안 좋아서 술 안 마십니다.”
“거짓말.”
“헤헤. 믿어라, 좀.”
여러 가지로 다행이다.
한밤중이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고, 지나가는 차 없어서 다행이고.
애슐리하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이스쿨 스윗하트’ 커플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할 거라더니 안타깝네.
정신이 좀 돌아온 제이콥이 열을 올린다.
“난 진짜 처음부터 애슐리 마음에 안 들었다고. 애를 아주 잡는다, 잡아.”
“매튜가 애슐리를 잡는 걸 수도 있지.”
“응, 그건 아냐. 전에는 정비 일 하는 거 좋다고 멋있다고 난리를. 어우, 진짜 눈꼴 시려서 원. 근데 갑자기 요즘엔 공부 잘하는 놈이 좋다고 좋은 대학 들어가라고 그런다더라. 그게 말이 되냐?”
“그러게,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면 되지. 왜 남의 꿈을 바꾸고 그래?”
“내 말이! 어우, 잘 됐어. 이참에 그놈도 정신 좀 차리겠지.”
“애슐리 때문에 대학 간다고 그러는 거 아냐?”
“굳이 그럴 거 같지는 않아. 정비소 차리는 게 꿈인데 괜히 비싼 학비 낭비할 필요 없잖아. 사장 아저씨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는데.”
“…그러게.”
사랑의 대가가 크네.
이러다가 또 둘이 붙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