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3)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54화(153/280)
굿바이 친구야 1
엄마와 샘은 빨갛게 익어서 돌아왔다.
백인들은 피부가 타는 것이 아니라 익는다.
그리고 좀 지나면 기미며 주근깨가 피부를 덮는다.
태생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이들은 어떻게든 햇볕을 더 쬐려고 한다.
젊은 층이 많은 주택가 길거리에는 맨날 헐벗고 뛰어다니는 백인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가슴팍부터 어깨, 목 등이 잡티로 뒤덮인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도 그사이 온 얼굴에 잡티가 5%는 더 많아진 얼굴로 들어섰다.
“아들, 잘 있었어?”
“네, 근데 엄마 선크림 안 발랐어요?”
“발랐어. 많이 탔니?”
“네. 정말 재밌었나 봐요. 오이 마사지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좋지. 에구구, 죽겄다. 놀아도 젊을 때 놀아야 해.”
“여행은 심장이 떨릴 때 떠나라고 하잖아요. 다리 떨릴 때 말고요.”
“하하하, 그런 말이 있어? 그러게. 가니까 좋긴 하더라. 아, 넌 내일이지?”
“네, 짐은 이미 다 쌌어요. 괜히 일찍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아침에 미스터 패트릭 차 타고 바로 출발할 거거든요.”
“그래도 깨워. 인사는 하고 가야지.”
“네.”
“와, 근데 집이 완전 탈바꿈했네? 멋지다. 고생했겠어.”
“아뇨, 재밌었어요. 그럼 얼른 쉬세요.”
“그래.”
샘하고도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나는 다시 물품 준비 리스트를 체크했다.
7학년 이후로 해마다 여름이면 가는 워크캠프.
작년과 재작년에는 6월에 갔지만, 올해는 일찌감치 날짜를 미뤘다.
그래서 내일 출발이다.
공부방 놈들이 총출동했다.
매튜와 미아만 빠진 상태.
라이언과 헤나, 조나단까지 합류해서 우리 공부방 놈들만으로도 대군이다.
매튜는 여전히 정비소 일로 바쁘고, 미아는 그저 ‘못 간다.’라고만 했다.
현재 미아하고는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
분명 단체 챗방도 꾸준히 보는 것 같은데, 답은 없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별일 아니라고 하니 더 캐물을 수도 없다.
캠프를 다녀온 후 크리스틴과 함께 만나 보기로 했다.
오디도 어제 첫 일주일짜리 캠프가 끝났고, 크리스틴도 여행에서 돌아왔다.
제이콥은 첫해는 이리저리 빼고 안 오더니 지난해부터는 같이 가고 있다.
워크캠프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낀 점을 에세이에 녹여낸다면 제법 괜찮은 글이 나올 거다.
장소는 매번 같다.
웨스트버지니아.
어째 이 동네는 올 때마다 조금씩 더 낙후되는 느낌이다.
제이콥과 라이언이 미스터 패트릭과 함께 운전대를 잡았다.
미스터 패트릭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편도 6시간 거리다.
혼자 하기 좀 벅차긴 하지.
워크캠프.
우리도 이젠 3년 차 봉사자들이다.
이젠 준비물도 빠삭하고,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대충 안다.
전기는 매번 올 때마다 나갔다.
시일이 하루일 때도 있었고, 이틀일 때도 있었다.
올해는 5시간이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일은 해마다 비슷비슷했다.
처음처럼 휠체어 경사로를 만들기도 하고, 다 무너져가는 베란다를 고쳐 주기도 하고, 페인트칠도 했다.
“으아, 한 살 한 살 먹는 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삭신이 쑤신다.”
“알렉스, 우리 아직은 클 때거든? 일을 할수록 몸이 단단해지는 거라고.”
“누가 몰라? 마커슨, 내가 힘이 없어서 그러는데 저기 저 오디 주둥아리 좀 쳐 줄래? 책임은 내가 질게.”
“흑인이 폭력 쓰면 선입견이 더 심해지는 거 모르심? 나 그런 사람 아니다.”
“와, 여기서 인종 드립을 날리면 내가 뭐가 되냐? 백인이 유색인종 치는 건 괜찮고?”
“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네가 왜 백인이냐? 홍인이지. 지금도 니 얼굴 봐라. 머리색이랑 똑같이 빨간색이잖아.”
“와. 마커슨, 또 한 번 이 예민한 문제를 건드려 보시겠다?”
“어우, 시끄러. 니들은 왜 자꾸 이 방에서 난리야! 제발 좀 가라. 몸이라도 좀 깨끗하게 씻든가. 샤워했다면서 왜 이렇게 냄새가 안 빠져?”
“…….”
“…….”
“나 궁금한 거 있어. 왜 너는 냄새가 안 나?”
“뭐?”
“맞아. 희한하게 같이 땀 흘리는데 제이든은 땀 냄새가 안 나. 제이든 너는 데오도란트(Deodorant)도 안 쓰잖아.”
“뭐가 안 나? 사람인데 당연히 나도 나지.”
“아냐. 인간들 특유의 쩐 내 같은 게 안 난다니까. 마커슨도. 흡흡, 우웩. 이거 봐. 악, 나 토할 거 같아. 그리고 오디도. 우엑, 후후. 커리 냄새 나지. 다들 냄새나. 근데 넌 흡흡, 이거 봐. 안 난다니까.”
“알렉스, 아무래도 니 주둥아리를 쳐야 할 거 같다.”
“으악, 마커슨, 진짜야. 다른 놈들 냄새 맡아 보라니까.”
“…그래?”
― 흡흡, 으악. 흡흡, 토, 토할 거 같아.
― 흡흡, 우엑, 우웩.
― 흡흡, 우에엑.
아주 개판이다.
다들 코를 벌름거리며 서로의 체취를 흥겹게 마셔 댄다.
“왜? 왜? 다들 뭐하는데? 어?”
― 킁킁. 킁킁.
그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크리스틴과 헤나마저도 놈들 하는 짓거리를 보며 잠시 멈칫거리다가 같이 코를 킁킁거린다.
― 흡흡, 쾅! 으악, 왜 때려!
― 이게 돌았나?
그 와중에 마크는 크리스틴과 헤나에게 코를 들이밀었다가 얻어맞는다.
“이거 봐. 여자들도 냄새난다니까.”
억울한 듯 항변하는 마크.
골이 다 아프다.
이만하면 다 키웠다 싶은데 가끔 저렇게 단체로 또라이 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싶다.
“니들은 또 왜 왔어?”
“심심해서.”
“심심하면 그냥 자. 내일 또 일해야 하는데 체력이 남아도냐?”
“근데 무슨 놀이하는 건데? 개 놀이 하는 거야?”
“크리스틴, 들어 봐 봐. 사람한테는 체취라는 게 있잖아.”
“어, 제이콥, 니들한테는 암내가 나.”
“너도 나거든?”
“…확, 씨. 내가 어디서 냄새가 난다고 그래! 킁킁. 샤워했는데. 날이 더워서 그래, 날이. 씻어도 바로 땀이 나는 걸 어쩌라고. 데오도란트 발랐는데. 씨, 헤나야. 나 냄새나냐?”
“…….”
“이리 와 봐. 너 좀 맡아 보자.”
“으악, 저리 가. 크리스틴!”
우리 방은 2인실이다.
이 좁은 방에 사냥개 열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냥 내가 나가자.
“야. 제이든, 어디 가? 너 냄새 안 나서 찾기 힘들다고.”
“허얼, 안 덥냐?”
“더워. 안 되겠다. 얘들아, 로비로 가자. 여기 썩은 내 나.”
“와, 라이언, 그게 다 니들 때문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로비로 나왔다.
드문드문 더위를 피해 나와 있는 팀들이 좀 있다.
방금까지 각자의 적나라한 암내를 맡아서 그런가, 우리는 조금씩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나마 나오니까 좀 사람답게 가만히 앉아 있는다.
조나단만 빼고.
한 명 한 명 다니면서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댄다.
그리곤 확인하듯 토악질을 해 댄다.
암튼 쟤도 별종이라니까.
“그래서 뭔데? 왜 저러는데?”
“크리스틴, 들어 봐 봐. 우리 전부 데오도란트 안 바르면 썩은 내가 나는데 제이든한테선 그런 냄새가 안 나.”
“아, 그건 그렇더라. 예전에 크로스컨트리하고 좀 쉬다 보면 애들 냄새 장난 아니잖아. 근데 얘는 그런 게 없어. 쿰쿰한 땀 냄새는 나는데, 그 뭐냐. 그 인간 냄새 있잖아. 그런 게 안 난다니까.”
“오, 그래? 제이든, 일루 와 봐. 냄새 한번 맡아 보자. 킁킁. 킁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크리스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찍어 밀어냈다.
“귀지 때문일 수 있어.”
“귀지?”
“어. 뭐, 마른 귀지랑 젖은 귀지 차이라고는 하던데.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이 마른 귀지가 제일 많은 유전자라고는 하더라.”
“오호, 그런 게 있어?”
“나도 몰라. 주워들은 거야.”
― 킁킁.
“진짜 안 나네. 아니다, 좋은 냄새 나.”
“으악! 조나단, 안 떨어져?”
어느새 뒤쪽으로 와 내 겨드랑이 사이로 코를 집어넣고 있는 조나단.
진짜 너무 놀라서 펄쩍 뛰었다.
“이건… 섬유유연제 냄샌데? 빨래할 때 넣는 종이 쪼가리 있잖아, 그거야.”
“…조나단아. 그 정도면 경찰이 아니라 구조견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이언! 나 사람이거든. 사람 중에도 유독 코가 잘 발달된 사람이….”
“잠깐! 다들 이메일 확인해 봐. 이거 누구야?”
“…….”
크리스틴의 말에 조나단의 말이 끊겼다.
그리고 우리의 고개가 모두 휴대폰으로 처박혔다.
“뭔데, 뭔데? 왜 그러는데?”
아직 고딩이 되지 못한 헤나와 조나단에겐 오지 않은 알림.
학교 교장이 직접 보낸 전체 이메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Loss in the Central Fox Family. (센트럴 팍스 가족을 잃었다.)’
Dear Central Fox Family,
It is with great sadness that we inform you of the death of a student at Central Fox High School. The loss of a young person raises many emotions, concerns…(하략)
한마디로 학생 중 한 명이 죽었는데, 자살했다는 뜻이다.
― 띠링.
― 띠링.
― 띠링.
.
.
.
끊임없이 울려대는 우리들 각자의 휴대폰.
자살자가 누구인지 쉼 없이 연락이 오고 가는 중이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NOOOOO!!
― 허억!
― 안돼!
.
.
.
이메일의 주인공은 미아였다!
***
다음 날이 워크캠프의 마지막 날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캠프가 끝나기도 전에 짐을 챙겼다.
주어진 일은 이미 끝냈다.
오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까운 친구의 자살은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크리스틴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고, 헤나와 조나단조차 몇 번 공부방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기에 그야말로 우리들의 분위기는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지러웠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러 숨쉬기가 어려웠다.
분명 뭔가 있는 거 같긴 했다.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좀 귀찮기도 했기에 그냥 두었다.
평소 같았으면 물어봤을 거다.
디베이트, 체스, 뮤지컬, 밴드 등의 활동에 알바까지 하면서 지난 1년을 정신없이 몰아쳤다.
육체적으로 조금 지치긴 했었다.
그래서 슬쩍 모르는 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아는 웃는데도 울고 있었다.
진작 좀 챙길걸.
미아가 힘든 걸 알고 있었는데.
워크캠프 시작하기 전에 찾아가 볼걸.
끊임없는 후회와 죄책감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휴대폰 진동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학교 측에선 누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정신 상담이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미아의 죽음은 그녀의 형제 중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아는 백인 가정에 1남 3녀 중 셋째, 그중 입양인은 본인 혼자라고 했었다.
어린 시절 인도의 친부모가 양부모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팔았다고 했다.
현재 가족들이 찐 가족처럼 잘해 준다고 했었는데.
홈커밍데이에 머리에 솜사탕을 꽂고 웃으면서 장사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도대체 왜?
― 드르르륵. 드르르륵.
더 듣기도 보고도 싶지 않다.
휴대폰을 꺼 버렸다.
***
집으로 들어서니 이미 소식을 들은 엄마와 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안아 주었다.
어떤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멍한 상태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웠다.
― 우우우웅.
― 아직도… 열이 104도… 우우웅… 이머전시….
― …앰뷸런스… 웅웅… 어릴 때… 우웅우… 피곤해서….
.
.
.
― 야! 제이든! 일어나라고!
― 제이든, 부탁이다. 제발 일어나. 이러다 리사도 죽겠어.
― 제이드은! 나 두고 가면 안 된다.
― 제이든, 나 너 좋아해. 제발 가지 마.
.
.
.
친구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오래전 들었던 엄마의 간절한 기도 소리와 울음, 삼촌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중간에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 찰박찰박. 제드으, 인나, 인나! 찰박찰박.
작고 축축한 손바닥이 뺨을 후려친다.
그 손바닥 참 야무지네.
찰싹찰싹 잘도 때린다.
살짝 아프다.
힘없는 팔을 들어 양쪽 뺨을 분주하게 오가는 엘리의 손을 잡아챘다.
“으으, 엘리이, 아파아….”
― 꺄아악! 제이든!
엄마와 헤나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귓가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