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39)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39화(3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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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 동네 사람 아닌 거 확실하네.”
옆에서 들리는 제이콥의 혼잣말.
이 동네 옷차림으로 말하자면.
주말이라 부를 수 있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는 주로 옷이라기보다는 천 조각이라 부를 만한 걸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주말엔 정도가 심하다고나 할까.
그나마 쌀쌀한 겨울이라 겨드랑이 털은 안보여 다행일 뿐.
셔츠에 스웨터, 카키 바지를 입은 적당한 키의 중년인.
미스터 커나스와 닮은 것도 같고 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삼촌.”
“어. 에드. 왔어?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부탁한 건?”
“여기요.”
조카구나.
에드라는 사람이 내려놓는 커다란 서류 가방.
회사원들이 들고 다니는 일반적인 서류 가방이 아니라 서류 보관용 가방으로 용량을 한참이나 초과한 듯 몸통이 아주 두툼하다.
– 투툭.
에드가 잠금장치를 열자 악보들이 가득인데, 세션별로 구분이 딱딱 되어 있다.
보통 중학교에선 해마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정도면 현직으로 일했다는 22년 동안의 모든 악보를 들고 온 게 아닐까 싶다.
“고맙다. 잠깐 애들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네. 삼촌. 천천히 하세요. 전 그 동안 퇴원 수속 밟고 있을게요.”
‘퇴원?’
“그래. 부탁한다.”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다.
퇴원이라는 단어 하나에 들떠 있던 우리 클럽 놈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큼. 나 어디 안 간다. 이놈들아.”
“근데 방금 퇴원이라고…”
“여긴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말이다. 한 서너달 캘리포니아에 있을 거다. 자식 놈들이 다 거기 살거든.”
“아…그럼 다시 오실 거예요?”
“그래야지. 여기가 내가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자란 곳이거든. 부모님 고향도 여기고. 난 그냥 여기가 좋더라고. 근데 늙으니까 추운 날엔 관절이 쑤셔. 따뜻한 곳에 있다가 4월이나 5월쯤 되면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연습 잘 하고.”
“진짜 오실 거죠?”
“왜? 안 올까 봐 겁나냐?”
“네.”
“하하. 고놈 참. 자식 놈들이 근처에 살자고 성화긴 하지만 내 고집을 꺾을 순 없지. 내 네놈들 지휘는 꼭 한번 해 보고 죽어야지 않겠냐?”
“죽지는 마시고요. 건강해지셔야죠.”
“쿨럭.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엉망진창인 네놈들 밴드 수준도 끌어올려주지. 제이든. 이거 봐봐라. 이런 건 처음보지?”
미스터 커나스가 힘겹게 몸을 구부린다.
제이콥이 후다닥 다가가 가방을 들어올린다.
그 모습에 슬쩍 미소짓는 미스터 커나스.
복잡한 서류 가방에서 악보 하나를 쓰윽 꺼낸다.
대충 꺼내는데도 원하는 걸 바로 끄집어내는 걸 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소리.
“우와. 이게 뭐예요?”
“지휘자들이 보는 총보라는 거다.”
“총보가 이렇게 생겼구나.”
“와. 대박. 어지러워.”
“그럼 미세스 알링턴은 맨날 이걸 보고 지휘하는 거야?”
“장난 아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지휘도 못하겠어.”
.
.
.
친구 놈들의 너스레가 이해가 갈 정도.
하나의 악장에 엄청난 콩나물들이 그려져 있다.
바순 악보와 기타 악보, 피아노 악보들을 볼 줄 알기에 나도 악보 좀 볼 줄 안다 자부했지만 미스터 커나스가 내민 총보라는 것에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악기들이 각기 다른 악장을 사용한다는 건 잘 알지?”
“네. 그냥 피아노랑 바순만 봐도요. 피아노는 G랑 F 클럽으로 구성된 이중 악장이잖아요. 그런데 바순은 G 클럽 악장으로만 표기되죠.”
“잘 아는구나. 그래서 지휘자용 악보인 이 총보는 악기 세션별로 분리되어 표기된다. 어떠냐? 배워볼 테냐?”
“어우. 아뇨. 전 그냥 바순만 할래요. 내일부터는 기타도 배워야 해서 악기는 더 힘들어요.”
“하하. 그래. 그럼 이 중 필요 없는 악보는 내가 다시 가져가마.”
“네.”
앞에는 눈치 채지 못했는데 서류 가방에서 악보들을 꺼내는 손이 약간 떨린다.
추워서 떠는 것이 아닌 통제되지 않는 신체 때문인 것 같다.
서류들이 꺼내어진다.
이번에는 매튜가 후다닥 받아든다.
미스터 커나스의 미소가 짙어진다.
“아주 교육들을 잘 받았어. 고맙구나.”
“헤헤. 뭘요.”
“음. 보자. 너희들한테 맞는 악보들은…여기. 플롯이랑 트럼본, 프렌치 혼, 바순, 클라리넷. 트럼펫이나 색소폰이 하나 정도 있으면 딱 좋을 텐데.”
“아. 동네 친구 중 헤나가 색소폰을 해요. 내년에 중학생 되거든요. 여름방학 때부터 조인시키려고요.”
“잘됐구나. 그럼 색소폰 악보도 남겨둬야겠군….됐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매튜의 두 팔 위에 두툼하게 악보들이 쌓였다.
“악보들에 전부 악기 이름이랑 중요부분들을 체크해 두었으니 보면 도움이 될 게다. 내가 편곡한 것도 있고, 아닌 곡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학생들이 연주하기에 적당한 곡들이니 연습하는데 무리는 아닐 테지. 몇 개는 고등학생용도 있다.”
“와.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연습할게요.”
“내가 고맙지. 덕분에 묵혀놨던 내 악보들이 이렇게 세상 구경을 하게 되니 말이다.”
“…”
“그럼 다들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새해 복도 많이 받고. 내년에 보자구나. 다들 또 키가 자라있겠지? 하하.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제일 재밌는게 뭔지 아느냐?”
“…”
“방학 지나고 오면 또 달라져 있다는 거야. 키가 크고, 몸집이 커지고…하하. 몸만 쑥쑥 자라지 말고, 여기 이 머리와 마음…여기도 자라서 보자구나.”
“네.”
“네. 고마워요. 선생님.”
“내년에 뵙겠습니다. 우리 지휘해 주신다는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그래. 그러지. 클클.”
아무리 인사가 끝났다지만 미스터 커나스만 두고 가기 애매했는데, 시간 딱 맞춰 에드라는 조카가 다가왔다.
“삼촌. 서류 정리 끝났어요. 말씀은 다 나누셨어요?”
“그래. 우리도 끝났다. 가자. 애들아. 다들 메리크리스마스다!”
“네! 선생님도 조카분도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
.
왜인지 다시 못 볼 것 같은 예감.
도리도리.
대체적으로 내 예감이 잘 맞긴 하지만 100% 맞는 건 또 아니다.
무시하자.
그나저나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준다고 했으니 적당히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면 잭팟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
제이콥의 손에 들렸던 서류 가방은 미스터 커나스의 조카가 다시 회수해 갔고, 매튜의 손에는 우리에게 남겨진 악보들이 있었다.
“매튜. 안 무겁냐?”
“뭐. 이까짓 거 가지고.”
“허세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알면 가져가지?”
“내려놔 봐.”
매튜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악보들을 내려놓았다.
저쪽에 테이블도 있는데, 굳이 이 대리석 바닥에…
별 수 있나.
여기 내려놨으니 여기서 담판을 봐야지.
우리 모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악기에 맞는 악보들을 줍기 시작했다.
“색소폰 파트는 마크가 가져가. 헤나한테 미리 연습도 해 보라고 하고.”
“퍽이나 걔가 그러겠다. 지금 주면 어디뒀는지도 모르고 다 잊어버릴걸?”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내가 가져갈게. 공부방에 두었다가 때 되면 줘야겠다.”
“내 생각도 그게 나을 듯.”
“어. 이거 지휘자 총본 아냐? 아까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거랑 똑같은데?”
“떨어뜨리셨나?”
“잠깐. 이거 일부러 두고 가신 것 같은데? 우리가 아까 연주한 곡이잖아. 스타워즈 메인 테마.”
“우리 연주가 엉망이긴 했나 봐. 하하. 한번 보라고 주신 것 같아. 이건 무조건 제이든꺼지.”
“그렇지. 제이든. 선생님이 너를 포기하지 않으신 모양인데? 이걸로 연습하란 소리 아냐?”
“흠. 줘봐.”
.
.
.
그대로 쭈구려 앉은 채 미스터 커나스의 총본을 보고 있는데, 눈앞에 간호사들의 애용품으로 소문난 구멍이 숭숭 뚫린 크록스(Crocs) 두 개가 멈춘다.
나중에 엄마한테 사줘야지.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부터 우리를 안내했던 그 간호사다.
내려다보는 얼굴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연주할 때는 그래도 환하게 웃더니.
도대체가 감정을 종잡을 수가 없는 종족이다.
백인여자들의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니다.
이것도 인종차별이다.
평소 인종차별을 자주 받는 사람으로 나라도 하지 말아야지.
편견은 넣어두자.
“너희들 아직 안 갔니? 시간 지났는데 이렇게 계속 있으면 곤란한데? 거기다 여기 바닥은…어우. 아무튼. 얼른 챙겨서 가. 다음 주엔 크리스마스 연휴니까 안올거지?”
“아. 그때는 오면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니고 올 건지 묻는 거야. 보통 연말에는 대부분의 행사들이 취소되니까. 다들 가족이랑 시간 보내는 날이잖니.”
“여기 남아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아픈데 어딜 가겠니. 대부분은 가족들이 잠깐 방문하고 가.”
“그럼 우리도 올게요.”
나의 산뜻한 대답에 오디가 내 팔꿈치를 잡는다.
“저기. 제이든. 난 못 오는데.”
“나. 나도.”
“나도 어쩌면…”
크리스틴과 마커슨이 각기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든다.
생각해보니 오디는 그때쯤 인도에서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아버지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각.
아버지는 새 학기가 시작된 후 지난 반년 동안 자식들이 얼마나 제대로? 성과를 나타냈는지 확인한다고.
예전에는 그래도 반년씩은 미국에 머물던 오디의 아버지는 어느 순간 1년에 2번 정도만 오고 있다.
그래도 인도로 돌아갈 생각은 없단다.
미국에 살면서 인도에 사업체가 있는 것과 그곳에서 아예 사는 건 다르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4학년 때 16살의 나이로 CMU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과정에 있던 큰 형은 이제 18살, 성인이 되었다.
올해 정식으로 구글에 입사하여 연봉 50만불을 받고 일한단다.
한 살 어리던 여동생은 내년에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원래는 올해 준비하려고 했는데 나이가 너무 어리고, 몇 과목이 부족해 1년을 늦췄다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 오디.
학년에서 공부로는 탑 10%안에 들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모지리다.
여담을 하자면 우리 학교는 성적을 10%, 20%, 30%…로 나눈다.
정확한 등수는 알려주지 않는다.
12학년이 되면 톱 5%, 10%, 20%…로 톱 그룹은 한번 더 나누기도 한다.
교사들은 누가 전교 1등인지 알 테지만 학생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입시생이라도.
다만 평균 평점 4.0, 3.5, 3.0은 나누어 학기마다 Highest Honor, High Honor, Honor로 나누어 상장을 준다.
이것도 중학생부터다.
초등생은 그것도 없다.
물론 여기도 구멍은 있다.
AP 클래스라고 고등학교부터 대학 수준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일반 클래스보다 확실히 더 어렵고, 수준도 높다.
이 클래스에서 B+를 받는 것과, 일반 클래스에서 A+를 받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는 거고.
그러니 일반 클래스에서 전부 A를 받아 4.0 Highest Honor와 어려운 AP 클래스를 들어 B를 받아 Honor가 된다면 후자의 경우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AP 클래스에는 가산점이 적용.
최고 5.0까지 학점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부턴 점수 산정이 좀 복잡해진다.
학교마다 어떤 학교는 AP 클래스가 3-4개만 있는 곳도 있고, 아예 하나도 없는 학교도 있고, 어떤 학교는 13개까지 들을 수도 있다.
우리 동네 고등학교는 11개까지 제공한다.
학군 점수에 비하면 AP 클래스가 많은 편이다.
학생들은 AP 클래스를 아예 안듣기도 하고, 1-2개만 듣는 경우도 있고, 11개 전부를 듣고도 모자라 근처 대학에 가서 수강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각설하고 아무튼 그래서 오디는 크리스마스 시즌과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장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는 무서워한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꾸며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디의 머리카락도 남아나질 않는다.
스트레스로 워낙 쥐어뜯어 대니까.
이번엔 특히 아버지가 있는 동안엔 아예 집밖으로 못 나올 가능성도 크다나 뭐라나.
마커슨과 크리스틴은 모르겠다.
왜 안되는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럼 시간 되는 사람만 오는 걸로 하자. 그래도 되죠? 안되면 저 혼자라도 올게요.”
“뭐. 그래도 되긴 하는데 우리도 정확한 인원을 알아야하니까.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몇 명이 참석하는지 알려줘.”
“네. 그럴게요.”
특별한 명절이 되면 가장 외로워지는 곳 중 하나가 이곳이다.
그냥 마음이 좀 쓰였다.
아시안 없는 시골의 아시안 입양아로서 약자 중의 약자로 자라다보니 약자들의 환경에 자꾸 눈이 간달까.
아무튼 우리는 두 손 가득 악보를 들고 쫓기듯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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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커나스가 준 악보 중 하나에 이메일과 전화번호, 그리고 짧은 메시지가 하나 적혀 있었다.
다른 악보들에 있는 글씨체와는 완전 다른 걸 보니 선생님이 불러주고, 조카가 받아 적은 모양이다.
– 우연인지 필연인지 드디어 내 악보를 건네줄 친구를 만나 정말 기쁘구나. 크게 값어치가 있는 물건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아껴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웃었다. 고맙다.
전화는 잘 이용하지 않지만 이메일은 일주일에 한번씩 체크한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거라.
리차드 커나스. –
나도 선생님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