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50)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50화(50/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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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지뢰밭 1
방학이 지루할 틈은 없었다.
매일매일 삼촌 집으로 가 마리화나 냄새를 빼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미니 오븐을 갖다 두고 쿠키도 굽고, 빵도 굽고,
촛불도 켜두고,
디퓨저는 24시간 꽂아두고,
창문은 비가 오지 않는 한 항상 활짝 열어두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사이 SS 실기 오디션을 보았고, 널싱홈 봉사는 계속했다.
체스는 건너뛰었다.
자세히 보니 1등을 해도 상금이 200불이더라.
상금이 1000불 이상으로 큰 건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인데, 대회 장소까지 가긴 힘들다.
일단은 온라인 점수나 올리면서 묵혀두기로 했다.
지금은 삼촌의 집을 정돈하는 게 더 중요하다.
7월이 되었는데도 미스터 커나스는 연락이 없었다.
이메일을 몇 번이나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읽는지 안 읽는지도 모르겠다.
웬만하면 전화는 자제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음성 녹음을 남겼다.
– 안녕하세요. 미스터 커나스 선생님. 저 제이든이에요. 선생님이 주신 악보는 정말 잘 활용하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특별한 걸 찾았어요. 선생님이 한국의 민요들을 모아 만드신 ‘Variations on a Korean Folk Song’을 연주했죠.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드셨는지 정말 감탄했어요. 곡의 첫 부분에 나온 아리랑은 한국의 정서를 정말 잘 표현한 듯 아련했고, 뒷 부분은 경쾌했어요. 근데 선생님. 언제 돌아오시나요?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도 답은 없었다.
***
7월 초.
방학의 패턴은 늘 비슷하다.
아침에 모여 1시간씩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어떤 공부를 하든 상관없다.
수학이든 영어든 1시간만 채우면 된다.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칸 아카데미를 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그리고 30분 악기 연습을 한 후 저녁에 집에 갈 때까지 논다.
가끔 삼촌 집에 가서 일을 돕기도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로 없다.
점심은 각자 싸온다.
보통은 과자부스러기나 에너지 바, 빵에 잼 발라오는 것 정도다.
가끔 특식이 배달되기도 하지만 잘 사는 오디가 인도로 가 버려서 확실히 횟수가 줄었다.
오늘은 헤드밴드(Headbands) 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술래가 이마에 카드를 붙이고, 나머지들이 힌트를 주면 그걸 맞히는 게임이다.
사실 초등 저학년들이 하는 게임이다.
지루하긴 한데 날이 더워 밖에 나가 놀기는 싫고, 그렇다고 책읽기는 싫으니 하는 거다.
“나 9월부터 중학생인데 이거 해야 돼?”
“헤나야. 헤나야. 그럼 무엇을 하고 놀까?”
“마크야. 마크야. 너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면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니?”
“헤나야. 헤나야. 싸가지가 없구나.”
“마크야. 마크야. 동생한테 말하는…”
“앤드슨 패밀리. 시끄러!”
“…”
“…”
“해산!”
“아잉. 집에 가도 할 일 없는데.”
“나도.”
세상에 어느 나라 중학생들이 이렇게 한가할까.
시대가 좋으니 맨날 놀 생각만 하지.
농사짓는 때였다면 바쁘게 일 도와야 할 놈들이다.
“그래도 오늘은 해산이다. 가라!”
주섬주섬 느릿느릿 일어서는 놈들.
때마침 오늘 오프인 엄마가 케이크를 가져왔다.
삼촌 집 냄새 뺀다고 또 구운 모양이다.
“케잌 먹어라.”
– 와!!!
1회용 접시가 배당되고, 각자의 접시에 케이크가 올라온 순간부터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기 시작하는 놈들.
엄마가 만족한 표정으로 텃밭이 있는 뒷야드로 나가려고 문을 열다가 후다닥 닫는다.
“엄마. 왜 그러세요? 거기 뭐 있어요?”
“하하. 얘들아. 이리 와 봐.”
애들이 먹던 숟가락을 그대로 입에 문채 창가로 다가왔다.
우리 집 베이스먼트는 뒷 야드랑 연결되어 있다.
앞에서 보면 지하지만 뒤쪽에서 보면 1층인 셈이다.
출입문은 커다란 통창이다.
밖이 훤히 보인다.
“저기 보여?”
“어? 사슴들이네요?”
아기 사슴 두 마리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풀숲에 앉아있다.
뒷산으로 연결된 곳은 펜스가 쳐져 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펜스 안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몸에 꽃무늬 있는 걸 보니까 아직 아기들이네요?”
“어. 너무 귀엽지?”
“근데 쟤네들 저기서 뭐해요? 엄마는 어디가고?”
“잘 봐봐. 둘 다 귀가 위로 올라가 있지?”
“네.”
“저건 엄마가 ‘여기 있으라.’고 하고 잠깐 어디 간 거야. 귀가 내려가 있으면 엄마를 잃은 거고. 와. 가슴이 웅장해진다. 우리가 사슴한테 선택받았어.”
“??”
“?”
엄마의 말에 아이들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찍힌다.
이 동네 널린 게 사슴이다.
튤립 같은 건 밖에 키우지도 못한다.
꽃송이가 올라오자마자 다 따먹어버려서 멋모르고 심었다간 줄기만 댕강댕강 남는 처참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튤립은 사슴들의 캔디라나 뭐라나.
어디 튤립뿐일까?
고추부터 오이까지 작은 모종들의 여린 잎사귀들은 올라오자마자 희생된다.
그래서 꼭 텃밭에는 철조망을 친다.
가끔 그 철조망을 뚫고 들어와 잎사귀와 꽃잎을 따 먹는 놈들도 있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토끼나 다람쥐, 오소리들과 또 전쟁을 벌여야 한다.
아무튼 사슴 따위 별거 아니라는 소리다.
고등학교 때의 사고로 사슴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진짜 가슴이 웅장한 표정으로 ‘사슴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하니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엄마.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아. 쟤들이 저기 저렇게 앉아있는 건 엄마 사슴이 보기에 우리 집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애들을 두고 간 거지.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잘 못 뛰거든.”
“버린 거 같은데요.”
“이 근처에 엄마 사슴이 있을 거야. 먹이도 가져다 줄 걸? 애들이 잘 뛸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거지. 아기 사슴들은 몸에서 냄새가 안 나서 저렇게 둬도 공격을 안 받거든.”
“아…”
“우리 집을 그만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사람이 이렇게 들락거리는데요?”
“그건 좀 신기하네. 어쨌든 너네들 당분간 이 뒷문 이용하면 안 된다. 야드에도 나가지 말고. 쟤네들이 놀라서 도망가면 엄마 사슴이 못 찾아. 그리고 사람 냄새가 배여도 안돼. 엄마 사슴이 자기 애들 아닌 줄 알고 버릴 수도 있거든.”
머리에서 신호가 번쩍 온다.
잘 됐다.
이놈들 좀 쫓아내야겠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공부방도 방학이다. 2주간 문 닫을 테니까 오지 마.”
“앞문으로 조심조심 다니면 되잖아.”
“맞아. 심심하다고.”
“여기도 못 오면 진짜 심심해서 죽어버릴 지도 몰라. 그 때 그 일 이후로는 컴퓨터도 마음대로 못 쓴다고.”
“맞아. 방학이라고 학교에선 아이패드도 다 수거해 가 버리고.”
불만들이 폭주한다.
“그럼 뭔가 다른 대안을 제시해 보던가.”
“아. 우리 수영장 가자.”
“하트우드 팍(Park) 수영장? 거기 너무 오래돼서 요새 아무도 안가. 카운티가 돈이 없는지 수리도 안하고, 고칠 생각을 안 하잖아. 맨션말곤 볼 것도 없는데. 거길 왜 가냐?”
“아냐아냐.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올 봄에 누가 기부를 크게 해서 거길 싹- 고쳤대. 원래는 6월에 오픈하려고 했는데 일이 좀 늦어져서 2주? 전엔가 오픈했다더라고.”
“근데 왜 소문을 안냈지?”
“소문 안내기는. 우리가 관심이 없었던 거지. 아지트 망가지고 난 후로 거의 안가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근데 입장료 있지 않아?”
“있지. 이 동네 주민은 5불이야. 그리고 학생들은 2불이고.”
“아씨. 그런 게 있었음 진작 말해야지. 벌써 2주나 그냥 까먹었단 소리잖아.”
“알려줘도 지랄이야. 갈 거야? 말거야?”
“당연. 가야지. 가자.”
“아싸. 가자아!”
“그럼 오늘은 이대로 찢어지고, 내일 12시 거기서 집합.”
“집하아아압!”
“시끄러. 사슴들 놀랜다.”
“아. 쏘리쏘리.”
그렇단 말이지.
하루에 2불이라.
먹을 걸 싸가지고 가야겠다.
분명 저놈들 아주 지쳐 늘어질 때까지 놀려고 할 거다.
머릿속으로 챙겨야 할 물품들을 떠올렸다.
***
다음날 12시.
이른 점심을 먹고, 대충 빵이랑 잼, 바나나 같은 걸 싸고, 수영복이랑 고글을 챙겨서 자전거에 올랐다.
마크랑 헤나, 조나단, 제이콥이 튀어나온다.
3학년이 되는 필립까지 따라나선다.
길목에 마커슨이 대기중이다.
같이 가려고 먼저 와서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들 잘 따라와라. 차 조심하고.”
“오케이.”
자전거로 10분 거리.
학생들이 주르륵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 차들은 알아서 비켜가거나 우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완전 서행한다.
되도록 찻길이 아닌, 예전 아지트가 있던 산길을 돌아 최단 거리로 밟았다.
그리고 도착한 수영장.
“음….뭐가 바뀌었단 거지? 똑같잖아.”
“안에는 좀 바뀌었겠지. 일단 들어가자.”
“그래. 덥다. 잘못된 뉴스여도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은 놀다 가면 될 거 같아.”
“오키오키. 들어가자아.”
입구로 가자 라이프가드들이 돈을 받고 있다.
라이프가드들은 대부분 고등학생들이다.
자격증을 따고 여름 내내 여기서 일을 하는 거다.
수영을 선수만큼 잘 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몸이 좋다.
2불을 내고 입장하려는데 한 놈이 나만 붙잡는다.
“야. 너.”
“나?”
“어. 너도 이 동네 사람이야?”
“어.”
“그걸 어떻게 증명할건데?”
– 아씨. 물 더러워지게.
첫 말은 다 들리게.
뒷말은 나만 들리게.
하. 씨.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어딜 가든 방심하면 튀어나오는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주의자들.
수치심에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데 옆에 놈들이 대신 나선다.
“우리 이 동네 사는 사람들 맞거든.”
“맞아. 제이든. 우리랑 같은 골목에 살아.”
“애들아. 다들 비켜 봐. 자. 이거 확인해 봐.”
멜버른 중학교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너네들 보호자도 없이 왔지? 15살 밑으로는 무조건 보호자 한명 동반이야. 여기 15살 넘는 놈들 있어?”
제이콥이랑 매튜가 9월에 9학년이 된다.
9학년이면 14-15살이다.
제이콥과 매튜가 9월생이다.
한국으로 치면 1월생과 같은 느낌.
제이콥은 이미 지난 9월에 15살이 되었고, 매튜는 이번 9월에 15살이 된다.
그리고 때마침 매튜가 크리스틴, 알렉스와 함께 오고 있었다.
매튜의 아버지가 애들을 내려주고 가다가 우리가 붙잡혀 있으니 되돌아와 차에 앉은 채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15살인데. 9월이면 16살 되고.”
“나도 곧 15살 돼. 그리고 저기 우리 아버지도 있고. 뭐. 불만 있어?”
“…들어가.”
덩치가 큰 제이콥과 매튜, 마크가 압박하듯 놈을 둘러싸자 귀찮다는 듯 팔을 휘-저으며 손바닥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한다.
기분이 나쁘지만 흠잡을 수는 없다.
본인의 업무에 충실한 거니까.
거기다 뒤엣말은 나 혼자 들었다.
녹음을 하지도 않은 상황이라 본인은 그런 적 없다 딱 잡아떼면 할 말이 없다.
“뭐냐? 저거?”
“그러게. 엄청 기분 나쁜데? 제이든. 괜찮냐?”
“확-씨. 기다려봐. 헤일리한테 말해서 조져버려야지. 저 새끼 저거 분명 우리 고등학교 다닐 껄? 딱 봐도 인종차별이잖아. 왜 제이든만 붙잡아?”
“애들아…놀자. 재밌게.”
“…어.”
마커슨의 표정도 좋지 않다.
다른 애들은 못 봤지만 나는 봤다.
요즘 흑인들은 조금만 차별을 받아도 난리를 피우기 때문에 일부러 말을 걸어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인은 준다.
본인만 알 수 있게.
좀 전의 그놈이 나에게는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었고, 마커슨에게는 아니꼬운 눈빛을 던졌다.
지금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저 새끼 몸이 좋다.
배에 왕(王)자가 새겨진 것이 평소 운동 좀 하는 놈이다.
속은 쓰리지만 애써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깨끗하다.”
“와. 저거 좀 봐. 미끄럼틀도 완전 새 거야. 밖에서는 안보이던데.”
“다이빙대도 완전 새거. 대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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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의 겪지 않은 수모다.
남들은 금방 잊는다.
탓할 수는 없다.
한쪽 언덕에 소지품들을 널브러뜨리고는 모두 탈의실로 향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