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58)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58화(58/280)
────────────────────────────────────
────────────────────────────────────
진짜 피는 물보다 진한가? 2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통화가 끝난 후 20분만에 모습을 드러낸 엄마.
엄마가 일하는 병원과 우리 집은 40분 거리다.
아무리 오는 길이었다고는 하나, 막 출발했다고 했었으니 엄청 밟은 게 분명하다.
경찰에게 안 걸린 게 용할 정도.
그 사이 공부방 놈들은 피자만 먹고 사사삭- 흩어졌다.
이런 경우엔 얽히지 않는 것이 최고라는 걸 다들 알 나이 아니겠나.
“엄마. 오셨어요?”
“리암은?”
“새 집에 계시겠죠.”
“아. 그렇지. 제이든. 가자.”
“저도요?”
“그럼 혼자 집에 있을래?”
“아뇨. 저도 갈래요. 저도 식구잖아요.”
“당연하지. 대충 분위기 알지?”
“네.”
“그래. 12살이면 알 때도 됐어. 그리고 넌 남들보다 훨씬 성숙하니까 괜찮을 거야. 쪽수에서라도 안 밀려야지. 가자.”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온 몸에 기운을 끌어올리는 엄마.
아무리 그래도 부몬데…
살벌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의외다.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할 줄은 몰랐다.
여전히 애 취급하며 집에 있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제 좀 든든해진 건가?
엄마 맘이 바뀌기 전에 후다닥 따라 나섰다.
마크와 헤나가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주먹을 쥔다.
뭔진 모르지만 이기라는 파이팅의 자세.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딩동딩동.
이제는 삼촌 집이다.
평소처럼 확- 문을 열 수는 없는 법.
초인종을 누르니 메디슨이 문을 열어준다.
엄마가 걱정스레 묻는다.
“메디슨. 괜찮아?”
“어우. 그럼요. 전 괜찮아요. 근데 분위기가 좀 그러네요. 일단 들어오세요.”
“걱정하지 마. 저 양반들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로 쫓아내 줄 테니까. 메디슨한테 무례하게 군건 없지?”
“식탁에 앉은 후 지금까지 서로 한마디도 안 해요.”
“그럴 거 뭐 하러 왔나 몰라.”
엄마가 투덜거리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따라 들어갔다.
“리암. 나 왔다.”
“왔니?”
할머니의 인사가 먼저다.
“누나. 피곤할 텐데 뭐 하러 왔어.”
“뭐 하러 오기는. 외부인들이 신혼집에 연락도 없이 쳐들어왔다는데 와 봐야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리사! 그게 무슨 말 버릇이야?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너는 여전하구나.”
“네에. 나이를 그렇게 드시고도 연락도 안하고 남의 집에 쳐들어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야 뭐 어때서요?”
“남의 집?”
“그럼 남의 집이지 엄마 집이에요? 엄마도 늘 그러셨잖아요. 내 집이니 얌전히 있다가 너네 아빠집으로 가라고요.”
“…그만들 해.”
만나자마자 싸움부터 시작하는 두 여자.
그래도 삼촌보다는 엄마가 더 편한 모양이네.
이제까지 말 한마디 않고 앉아만 있었다는데, 엄마가 들어오니 말문이 트인 걸 보면.
물론 시비를 걸고, 시비로 화답하는 관계지만.
참다못한 새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보탠다.
잠시간의 정적.
엄마의 물음이 먼저였다.
“여긴 어떻게 아셨어요?”
“도네이션을 했더구나.”
“아하! 심포니 스트릿 오케스트라? 와. 리암이가 도네이션 한지 1주일밖에 안 됐는데 그걸 알아요? 한 20년 꾸준히 2만불씩 도네이션 하시더니 한 자리 차지하셨나봐요. 원래 기부자 연락처 같은 건 관계자 외에는 모르는 거 아닌가요?”
“풋. 그걸 일일이 찾아봤니? 너도 어지간하다.”
“장난해요? 그리고 제이든이 먼저였어요. 1주일 밖에 안된 기부자 명단까지 확보할 정도면 제이든이 거기 멤버라는 것도 아셨겠네요? 그런데 리암 이름 확인하고 찾아오신 거예요?”
“리암은 내 아들이야.”
“그렇죠. 난 엄마 딸이고, 제이든은 엄마 손주죠.”
“…”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할 말이 없어서인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인가.
갑자기 할머니가 나를 쳐다본다.
“그래. 제이든. 내 손주. 많이 컸구나.”
“네. 감사합니다.”
“우리 리암이는 고맘때 5피트 5인치(대략 170센티)는 넘었던 거 같은데. 쯧쯧. 유전자를 모르니 얼마나 클는지 알 수도 없고. 어디서 저런…”
“미세스 밀러. 한마디만 더 하면 경찰 부르겠어요. 나가시죠.”
“이 집이 니 집이야? 어디서 경찰을 부른다만다 난리야? 주제넘게.”
“리사는 그럴 자격 있지. 엄마나 나가.”
“리암!”
“왜 찾아왔어? 여기가 어디라고 당신이 날 찾아와? 내가 14살 때 이미 버린 거 아니었나?”
엄마와 나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자 참지 못하겠는지 입을 여는 삼촌.
서로간의 존중은 애저녘에 버린 집안이다.
삼촌이 괜찮은 성인으로 자란 건 무조건 엄마 덕이다.
“결혼한다고? 그런데도 연락 한 번을 안 해? 니네 누나는 그래도 배우자 될 사람 소개는 했었어. 넌 어떻게…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야. 뭐. 살아있는 거 봤으니 됐다. 결혼식 때 보자.”
“내 결혼식에 당신들 자리는 없어. 그걸 몰랐다니 유감이네.”
“부모는 안중에도 없어?”
“풋. 나한테 언제부터 부모가 있었다고. 다시는 서로 아는 척 하지 말자고요. 너. 헤이든.”
“…나? 왜?”
“니 부모들 모시고 내 집에서 꺼져. 지금 당장.”
“어…그게…”
헤이든이 당황하는 사이 할머니가 메디슨을 쳐다본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스캔을 한다.
레이저가 쏘아지는 것 같다.
메디슨이 차분한 눈길로 할머니의 눈길을 받고 있는데, 그 앞을 엄마가 막아섰다.
“리암이 선택한 사람이야. 단 한마디라도 하기만 해 봐. 그때는 진짜 엄마고 뭐고 없어. 어디서 행패야. 행패가.”
“행패? 너 지금 행패라고 했어? 이 년이 진짜 두고보자하니까! 엄마가 그 정도도 못해? 너도 엄마라며?”
“엄마가 엄마 자격이나 있어? 난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 잘못했으면 용서 빌고, 누가 내 새끼 건드리려고 하면 가만 안 있어. 알아? 엄마처럼 내 몸뚱아리 좀 편하자고, 내 새끼 가슴에 피멍들게는 안한다고!”
“지 배로 낳은 새끼 하나 없는 주제에 뭘 안다고 건방을 떨어?”
“뭐라고? 지금 말 다했어?”
흐미.
막장이다. 막장.
그런데 엄마와 삼촌의 삶이 어떠했는지 다 알기에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나설까 말까.
여기서 나까지 끼어들면 완전 패륜으로 치달을 것 같아 자제하는 중인데.
마귀할멈이 엄마를 더 후벼 파면 가만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순간 새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할머니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만 가지. 다들 좀 식을 필요가 있겠어.”
“…”
“…”
몸을 휙- 돌려 나가는 할머니.
그 뒤를 헤이든 삼촌이 머리를 긁적이며 졸졸 따라 나간다.
새 할아버지가 나가다가 멈칫거리며 돌아섰다.
“리사. 늦은 감이 있지만 패트릭의 일은 미안하다. 지금까지 상처를 안고 사는 줄은 몰랐구나. 너희들 엄마는…제법 용기를 내서 찾아온 거야. 너희 둘이 같은 동네에 사는 줄도 몰랐고, 리암이 이 도시로 돌아온 것도 몰랐지. 아무튼. 둘이 잘 지내는 걸 보니 보기 좋구나.”
“…새아버지께 진 빚은 다 갚았어요. 더 이상 엄마가 우리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친아버지와 산 세월보다 새아버지랑 산 시간이 더 많은 분이에요. 새아버지 여자니까 새아버지께서 책임지세요.”
“노력해보마.”
“…”
“그리고 제이든. SS1에 합격한 걸 축하한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보기 좋구나.”
새 할아버지는 직업이 변호사라고 했다.
자기 아들 패트릭이 엄마를 성추행한 걸 알고도 모른 척한 세월이 20년이다.
겉으론 젠틀한 척 하지만 속은 절대 그렇지 않다.
엄마가 삼촌과 독립할 때 작은 도움을 줬다고는 하나 사실 두 사람을 집에서 쫓아내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할머니에게 끊임없이 눈치를 줘서 자식들을 쫓아내게 만든 진짜 빌런일 지도.
할머니 가족들이 모두 나가자 적막이 찾아왔다.
삼촌이 마른세수를 하고, 엄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메디슨이 삼촌을 감싸 안았고, 나는 엄마를 안았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메디슨. 미안해. 못볼 꼴을 보였네.”
“그러게. 진짜 미안해. 우리 남매가 상처가 많아. 어떻게든 너에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할게.”
“어머. 아니에요. 리사. 나도 가족들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전 좀 가만히 당하고 있는 스타일이라…솔직히 조금은 시원했어요. 하하. 리암. 너도 우리 집 꼴 봤잖아. 부끄러워 하지 마. 우리끼리 진짜 잘 살아보자.”
“…고마워. 메디슨.”
어느 집 대문이든 열어보면 뚝배기 하나씩은 끓고 있다더니.
다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전생의 우리 집은 이 집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끓고 있는 집이었다.
이제 내가 사라졌으니 좀 달라졌으려나.
화목이란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는데.
그렇게 할머니의 방문은 끝나는 것 같았다.
양쪽 집으로 크리스마스 초대장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
1주일 후, 7학년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올해의 마지막 널싱홈 공연 연습을 위해 모두 모인 참이다.
내가 SS1에 등록하고, 오디와 알렉스가 SS2의 단원이 되면서 널싱홈 봉사는 일요일 오후로 미뤄졌다.
아예 시간을 4시쯤으로 잡았기에 마커슨도 참석한다.
다만 제이콥은 몇 달째 빠지고 있는데 그게 돈 때문이다.
겨울방학 동안 돈을 바짝 모아야겠다며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을 제외하곤 방학 내내 일을 하겠다 자원했다.
한창 공부해야 할 9학년이 돈맛을 보는 바람에, 학업에 소홀하다.
지난 학기엔 B-까지 나왔다고.
그 부모들은 B도 충분하다며, 돈 버는 게 남는 거라고 했다고.
내가 ‘공부에는 때가 있고, 기초가 튼튼해야 나중에 성적을 올리기 쉽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대자 그제야 이번 겨울방학때까지만 바짝 하고 이 후엔 시간을 줄이겠다고 했다.
아직은 16살이라 하루에 5시간,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은 일하지 못한다.
다만 일하고 나면 체력이 고갈되니 공부에 신경을 못 쓰는 거다.
“힘들지 않겠어? 연말이고, 방학이라 사 먹는 사람들 대따 많을 텐데.”
“그거 알아?”
“??”
“우리 체인점 주방장이 요리 솜씨가 더럽게 없어요. 손도 느리고, 맛도 없어. 청결은 해. 근데 사람들이 그걸 알겠어? 암튼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는 사람들이 열에 3-4명은 된다니까. 매니저가 왜 주방장을 안 바꾸는지 모르겠어. 이러다간 분명 본인이 먼저 잘려나갈 거 같은데.”
“그럼 손 빠른 니가 주방에서 일한다고 해.”
“미쳤냐? 그 힘든 걸 하게. 난 이제 갓 16살 밖에 안된 여린 소년이에요. 주문받고, 테이블 닦는데도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고.”
“…”
“너네들은 이번 방학에 뭐할 거야? 크리스틴. 넌 이번에는 여행 간다고 그러지 않았어?”
“어. 디즈니월드 간대. 그런 델 뭐 하러 가는지. 소피가 너무 졸라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주는 거야. 내가.”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치곤 SNS에 너무 도배를 해 두셨던데?”
“티났냐?”
“어.”
“크크큭. 아. 진짜. 촌스러울까봐 티 안 낼라고 했는데. 야. 나 디즈니월드 처음 가잖아. 자그마치 4박 5일 일정이다. 신나지 안나겠냐? 그래도 쿨함은 유지되어야 하니까. 너네들 내 SNS에 댓글 달지 마라. 죽여버린다.”
“암튼 저 입을 꿰매버려야지.”
“근데 크리스틴. 혹시 너네도 마지막 파티 같은 거야? 우리 아빠 감옥 들어갈 때처럼?”
“마커슨. 그런 사연은 그리 흔한 게 아니야. 훅 치고 들어오니까 갑자기 슬퍼지네. 흑. 그거 아니고. 소피가 지 친구들 중에 디즈니 안 가 본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울고불고 쌩 난리를 쳐서 가는 거야. 작년에 가려고 했는데 아빠가 일이 생겨서 못 갔잖아.”
“제이든. 너네는 진짜 할머니 집 가냐?”
“몰라. 안가면 쳐들어올 기세라는데…삼촌은 그래도 안 간다고 하고, 엄마는 살짝 고민하더라고. 나야 어른들이 가자고 하면 가고, 말자면 마는 거지.”
“진짜 멘탈 갑. 난 가끔 제이든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니까. 가면 또 이상한 소리 들을 텐데 적극적으로 말려야지.”
“난 제이든보다 알렉스 니 머릿속이 더 궁금하긴 하다. 근데 제이든 너네 할머니 진짜 이상하다며? 말도 엄청 못되게 하고. 완전 마귀할멈이라던데?”
“어? 오디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마크가 밖에서 다 들었대.”
“마크으!”
“히익. 궁금한데 어쩌냐고. 야. 오디. 넌 그걸 또 일러 바치냐?”
“아. 모르는 거였어.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지. 그러게 남의 집 염탐은 왜 하냐?”
.
.
.
이 동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집에 얌전히 틀어박힌 나를 끌어내던 마크였다.
1시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것까지 다 알던.
마크네 아버지도 온 동네 소식을 다 아는 사람인데, 마크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는 무섭다.
엄마와 삼촌이 어떻게 결정할지는 모르겠다.
메디슨은 상관없다는 반응이지만 엄마는 이 일을 계기로 두 집이 서로 왕래를 하게 될까봐 겁난다고.
미국 사람들이라고 가족 간의 갈등이 없는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하지만 할머니가 또 선을 넘으면 삼촌은 아마 멀리 이사를 가 버릴 것 같다.
그건 좀 싫다.
없을 땐 몰랐지만 친척이라는 게 생각보다 든든하더라.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자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일.
두 사람이 옳은 결정을 내리길 바랄 수밖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