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8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81화(81/280)
선택과 집중 2
정장을 차려입었다.
붉은 기가 도는 넥타이에 구두도 신었다.
지난 봄의 성당 야드세일에서 정장과 넥타이, 구두까지 거금 20불을 투자해 사둔 것이다.
SS1 콘서트 때마다 삼촌의 정장을 빌려 입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체형이 맞지 않아 고민하다 산 것이었다.
살 때는 대충 재킷만 입어볼 수 있어서 좀 크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맞다.
내년에는 2벌 사야겠다.
성당 야드세일은 우리 동네의 축복이다.
없어지면 안 되니 꼭 해마다 가서 거금을 투자해야겠다.
“이야. 이게 누구 아들이라고?”
“리사 여사 아들이요.”
“그렇지! 어쩜 이렇게 인물도 훤할까? 새 정장 사 준다고 할 때 그렇게 필요 없다고 빼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잘 어울린다.”
“누나. 적당히 좀 해라. 이제 제이든도 8학년이야. 팔불출이 따로 없어요. 근데 진짜 멋지긴 하다. 그치? 메디슨?”
“어. 내가 중학생이면 바로 프러포즈 들어가지. 진짜 반하겠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멋진 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람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
메디슨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
“어머. 아기? 메디슨. 아기 가졌어?”
“자기. 우리 아기 가졌어?”
“진짜요? 나 사촌 동생 생기는 거?”
엄마와 나, 삼촌이 동시에 반색을 하며 메디슨을 쳐다보았다.
메디슨이 양손을 내저으며 재빨리 말한다.
“어우. 아니아니. 무슨 말을 못 하겠어. 진짜. 그냥 제이든 보니까 너무 좋아서 그런 생각이 든 거죠. 못 말려들.”
“하하. 미안. 평소엔 아기 이야기 한 번도 안 하다가 하니까 그랬지.”
“네네. 괜찮습니다요. 아기 생기면 지체 없이. 바로. 이야기할 테니까 걱정들 말라구요.”
“어어. 그나저나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자라서 양복도 다 입고. 시간 가는 게 진짜 너무 아깝다.”
오늘 나는 모델 UN 콘퍼런스에 참가한다.
1시간 거리의 고등학교에서 치러지는 행사로, 모델 UN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학생들 대상이다.
2인 1조 시스템이며, 파트너로는 기존 멤버들이 동행할 수 있다.
알렉스는 클럽 회장인 라즈닉과 한 팀이 되었고, 나는 부회장 나타샤와 한 팀이다.
우리 학군에선 총 30여 명 정도가 참석한다.
8학년은 나와 알렉스를 포함해 5명 정도고, 9학년들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이기에 총 30명 정도가 된 것이다.
알렉스는 환경 정책(UNEP) 섹션에서 캐나다를 맡았고, 나는 사회적, 인도적, 문화 정책(SOCHUM) 섹션에서 브라질을 맡았다.
오늘의 주제는 교육과 문화유산 보호 정책에 관한 것이다.
브라질을 대표해 발표하려면 일단 브라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브라질이 교육과 문화유산 보호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현 체계를 개선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각국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달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국제적 협력과 파트너십의 활용까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브라질에 대한 자료 조사를 위해 지난 3일을 소비했다.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겠다.
복장의 경우, 남자는 무조건 정장에 구두, 여자도 단정한 옷차림이어야 한다.
토요일 오전 7시 30분.
고등학교 주차장에 스쿨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매번 티 쪼가리에 운동화나 신고 다니던 놈들이 정장을 입고 있으니 뭔가 달라 보인다.
알렉스가 먼저 와 있다.
“오. 알렉스. 멋진데?”
“방금까지 나도 그런 줄 알았지. 너 보니까 기죽는다. 쓰읍.”
“뭐래. 말과 표정이 너무 다른데?”
“으아하하하. 맞아 맞아. 나 너무 멋진 거 같아. 할 수만 있다면 거울 들고 나오고 싶더라니까. 우헤헤.”
“…….”
외모 칭찬은 되도록 자제해야지.
사실 미국인들은 외모 칭찬은 잘 하지 않는다.
‘오늘 예쁘네’, ‘옷이 멋지다.’ 등의 말도 성희롱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고, ‘오늘 힘들어 보이네’, ‘안색이 어둡다’라는 등의 말도 걱정으로 받기보다 ‘힘들어 보이는데 왜 나왔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고.
초긍정 사회인 것 같은데, 엄한 데서 부정적이다.
아직도 이들의 문화에 감을 못 잡을 때가 종종 있다.
그냥 어떤 방식이든 외모에 대한 건 입을 다무는 게 낫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리버럴 아트 칼라지(LAC).
대학원 과정이 없는 대학 교육 위주의 작은 학교다.
어림잡아 300명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큰 강의실에 교수가 나와 학교 소개를 한다.
―우리 학교는 작지만 실속 있는 학교로, 학생과 교수 비율이 5:1로 최고 명문대 부럽지 않은 비율을 자랑하며…(중략)…그러므로 우리 학교에 입학하면 빵빵한 지원을 받을 수 있고…(하략).
학교에 대한 자랑이 이어진다.
한마디로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에 지원하라고 영업하는 거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럼 각자 자신들의 룸으로 이동하기 바랍니다.
나와 나타샤는 SOCHUM 섹션 강의실로 이동했다.
총 300여명 중 50명의 학생들이 우리 쪽으로 왔다.
그다지 크지 않는 일반 대학교 강의실이다.
앞쪽에 기다란 테이블 하나가 우리 쪽을 향해 바라보는 형식으로 놓여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의자들만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보통의 경우엔 ‘ㄷ’자로 앉거나 원형으로 둘러앉아 진짜 유엔에서 하는 것처럼 한다던데.
오늘은 처음 온 애들이 많아서인지 그냥 일렬로 주르륵 배열해 놓았다.
나와 나타샤는 브라질의 국기와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저쪽에 보니 백인 2명이 태극기가 그려진 한국 플래카드가 있는 곳에 앉아 있다.
쟤들은 한국의 교육과 환경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대로 조사는 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 앉은 나타샤가 부른다.
“제이든.”
“어?”
“너 오늘 발표 많이 할 거야?”
“글쎄. 대충 분위기 봐서? 난 처음이니까 네가 많이 도와줘.”
“음. 난 말을 논리적으로 잘 못해. 대신 네가 원하면 자료는 빨리빨리 찾아 줄 수 있어. 사실 나도 모델 UN은 몇 번 안 와 봐서 잘 몰라.”
“남이 찾아 줘도 돼?”
“우린 같은 팀이잖아. 괜찮아. 거기다 오늘은 대부분 처음 온 애들이라 옆에서 좀 도와줘도 익스큐즈가 되지.”
“…….”
12학년이 8학년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솔직해서 좋네.
그때 심판 3명이 들어온다.
딱 봐도 대학생들이다.
정치, 외교, 사회학과 쪽 학생들일 것이다.
약간은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자신들을 소개하고, 각 나라의 이름을 부른다.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큼. 이제 모델 UN의 SOCHUM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오늘은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하략)”
말이 길다.
모델 UN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부터, 모델 UN에 속한 하위 위원회들, 투표 방식, 순서 등등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가운데 앉아 있던 심판의 말이 끝나자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말을 잇는다.
“그럼 어떤 주제를 먼저 토론할지에 대해 투표하겠습니다. 교육부문 먼저. 플래카드를 들어주세요.”
― 착.착.착.
패를 들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빨리 좀 진행됐으면 싶은 마음에서였을 뿐이다.
“다음 사회 이슈에 대한 부문 먼저 하자는 팀. 플래카드 들어 주세요.”
― 착. 착. 착.
어차피 오늘의 주제 둘 다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냥 본인들이 순서를 정하면 될 것을 투표를 하네.
그다음엔 또 발표 시간과 투표 방식, 기본적인 룰 등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투표한다.
“보통 저렇게까지 하진 않아. 오늘은 첫 참가자들 위주라서 저러는 것 같아.”
나타샤가 소곤거리며 부연 설명을 해 준다.
이런 저런 기본적인 룰을 정하는 데만 10분이 넘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교육 부문 먼저 토론하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각 나라의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설명한 후 마지막 법률 제정까지 순차적으로 해 나갈 것이며, 이 안건에 대한 토론은 12시 30분에 종료됩니다. 점심 식사 후 사회 이슈로 넘어가겠습니다.”
― 땅땅땅.
작은 나무 망치 소리가 울리고,
“스피킹 타임입니다. 발표자는 7명, 발표 시간은 각 2분으로 제한합니다. 발표하고자 하는 분은 플래카드를 들어 주세요.”
― 착. 착.
플래카드들이 올라간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참가에 의의를 둔 채 이 시간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순 없지.
내가 맡은 나라에 대해 발표를 하고, 도움을 달라 동의를 구하고, 마지막에 전 세계적으로 교육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발표가 이어지고, 나도 플래카드를 들었다.
“브라질. 발표하세요. 2분입니다.”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인 PISA에 따르면, 브라질은 평균적으로 성적이 낮게 평가됩니다. 브라질 학생들은 독해, 수학 및 과학 세 가지 카테고리의 평균 점수가 국제 평균보다 낮습니다…(중략)…브라질의 흑인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백인 학생들보다 1년 정도 더 짧은 교육을 받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브라질의 대학들은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보완프로그램을 고심, 적용하고 있습니다…(중략)…끝으로 브라질의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비용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 비용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땡큐 체어(Chair).”
2분 만에 브라질 교육의 현주소와 안건, 추후 발전적인 요소까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
준비했던 자료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자료를 보지 않고 말로 모든 걸 설명한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받는 건 아니다.
― 끄덕끄덕.
심판들의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여기저기서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중요 포인트들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법률 제정할 때 참고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론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한 안건들이 나온다.
―부유한 지역이 아닌 빈민층의 학교 구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원합니다.
―저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은 플래카드를 들어 주세요.
―착. 착.
―빈민가의 학교 구제 방안에 대한 토의를 시작합니다.
.
.
.
하나 발표하고, 동의하는지 의견 구하고, 또 다음 의견이 나오고, 그것에 대한 토의를 할 것인지 동의하는지 의견을 구한다.
심지어 5분 휴식에 대한 것까지 누군가 의견을 내고,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조용하고, 숙연한 가운데 계속 진행되는 발표들.
절반이 처음 참가하는 이들이었기에 입 꾹 다물고 구경만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많은 순서가 지나고,
“다음으로 법률 제정에 들어가겠습니다. 교육 부분에 있어 전 세계가 공통으로 제정해야 하는 법률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눠 주는 종이에 적어 주세요.”
하얀 종이가 돌고, 거기에 각자의 의견을 담는다.
직접 제정하고 싶은 법률은 없으나 누군가 의견을 낸 안건들 중 동의하는 것이 있으면 그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낸다.
마지막으로 심판에게 돌아간 종이.
“지금부터 읽어 드리는 각 안건에 대해 동의하는 국가에서는 플래카드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각 나라에서 해마다 10억씩 아프리카에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유는 아프리카 나라의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가 힘들고…(하략) 동의합니까?
―성교육을 좀더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합니다. 그냥 성교육이 아닌 제3성에 대한 것과, 성적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 주어 편협함을 없애고…(하략) 동의합니까?
―중동 국가들의 여학생들은 히잡을 벗어야 하며, 학교에서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없고…
―북한의 어린 학생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실태 조사가 필요하며, 교과서에 대한 검증도 유엔에서 직접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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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각 안건마다 플래카드를 들어 찬반을 표명한다.
중고등학생들이다.
간혹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안건들도 나온다고 하던데, 오늘 이 자리에는 없는 것 같다.
나도 평범한 수준의 의견을 제시했다.
―모든 교육기관은 깨끗한 물을 제공해야 합니다. 비용적인 측면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급식은 손댈 수 없다 하더라도 물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합니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식수원 공급이 제대로 되어야 하며 안정적인 식수원 설치를 위해 각 학교의 실태 조사 후 유엔 기금을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브라질의 의견입니다. 이 안건에 동의하는 사람은 플래카드를 들어 주세요.
―착. 착. 착.
나온 의견들 중에는 가장 많은 투표수를 받았다.
종이에도 내 의견 아래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이들도 많다.
그렇게 오전의 모델 UN 콘퍼런스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