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2)
22화 레벨 업 (2)
도서관, 도시 적응, 격투 훈련.
한 달간 매일같이 해 왔던 하루 일과는 모두 스킵 했다.
미궁이 열리는 날, 탐험가가 해야 할 일들은 그런 게 아닐 테니까.
[08 : 10]일어나자마자 아침도 거르고 아이나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조금만 늦어도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된다고 들은 탓이다.
“여기다! 얀델의 아들 비요른!”
놀랍게도 아이나르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와 있던 거지?”
“늦으면 날 두고 간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이 앞에서 잤다! 어서 와라! 우리가 첫 번째다!”
“…….”
오픈 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입구 앞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다만, 아이나르 덕분에 우리는 문이 열자마자 탐험가 길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결속 마법을 받으러 왔다.”
“팀원은 두 분이십니까?”
“그렇다.”
“여기에 같이 손을 올려 주십시오.”
지시에 따르자 수정구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온다.
색은 초록빛을 띠고 있다.
“9등급 탐험가가 두 분이시군요. 비용은 1만 5천 스톤입니다.”
15,000스톤이라…….
생활비를 아끼지 않았으면 조금 빠듯할 뻔도 했다.
나는 순순히 주머니를 열어 비용을 지불했다.
속이 쓰리지만 불가피한 소비였다.
미궁에 입장 시 스타트 포인트는 랜덤이지만, 이 마법을 미리 받아 두면 적어도 같은 곳에서 시작할 수가 있게 되니까.
“탐험가의 등급은 무엇을 기준으로 잡지?”
“영혼에 새겨진 정수의 총량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결속을 맺는 비용도 증가하나?”
“물론입니다.”
하, 이런 거까지 게임이랑 똑같을 필요는 없을 텐데.
“끝났습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만 유지가 되니 유의하십시오.”
“알겠다.”
이내 용무를 마치고 탐험가 길드에서 나오자 9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식사는 우리 여관으로 돌아가서 하도록 하지. 제법 맛이 괜찮다.”
“여관? 여관에서 요리를 해 준단 말인가?”
얘는 대체 어떤 생활을 해 온 거지?
은근슬쩍 돌려서 물어보자 아이나르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보통은 미궁에서 먹던 빵을 사 먹었다.”
아, 1개에 20스톤 하는 그거.
나도 식비를 아끼려 한 번 시도해 봤다가 얼마 못 가 포기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궁에서는 제법 먹을 만하던 게 여기선 돌처럼 딱딱했거든.
‘그래서인지 이름도 돌빵이었지…….’
근데 한 달 동안 그것만 먹었다니?
왠지 마음이 짠해져 고기에 스튜까지 시켜 줬더니 아이나르가 충성을 맹세해 왔다.
“비요른! 불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겠다! 그러니 나를 버리지 마라!”
눈물겨운 식사를 끝낸 뒤에는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꼼꼼히 해라. 필요한 상황이 왔는데 깜빡하고 챙겨가지 못했다면 곤란해지니까.”
“걱정 마라! 챙겨갈 것 자체가 없으니까!”
장비를 점검하고 탐험 용품 및 소모품들을 배낭에 차곡차곡 쌓고 있으니 의외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럼 이제 슬슬 한숨 자도록 하지.”
“이렇게 푹신한 침대는 생전 처음 본다. 두 명이 누워도 될 거 같다! 냄새도 안 나고!”
당장에라도 미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비를 끝마친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근데 얘랑 누우니까 꽤나 비좁다.
에르웬이랑 누웠을 땐 자리가 남았는데.
“잠이 안 오더라도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라. 한동안은 제대로 못 잘 테니—”
음, 내가 무슨 걱정을 한 거지?
드르르르르르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토종 바바리안식 네이티브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나도 피식 웃으며 눈을 붙였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20 : 30]조금 일찍 일어난 우리는 1층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사치를 부려 인당 800스톤짜리의 특식으로.
“대체, 이 맛은 무엇인가?”
식사 내내 호들갑을 떨던 아이나르가 디저트로 나온 크림파이를 배어 물고선 그대로 굳었다.
“마, 마법인가? 자, 자꾸 눈물이 흐른다.”
“아아, 그게 바로 ‘단맛’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의도한 건 아닌데,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된 거 같다.
“가지.”
짐을 챙겨 밤거리로 나서자, 평소와 달리 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대부분 나처럼 무장을 한 채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다.
말했듯 전부 그런 건 아니고, 맨몸뚱이에 무기 하나만을 소지한 바바리안들도 보인다.
오늘 막 성인식을 끝마치고 도시로 들어온 듯한데…….
“정지! 아무래도 길을 잃은 거 같다.”
“그럴 수가! 우리는 정해진 시간 안에 미궁까지 가야만 한다!”
“파르툰에겐 이끄는 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거, 매달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구나.
얘네는 어떻게 매번 미궁까지 도착하는 거지?
진심으로 고민을 해 보던 때였다.
“저들을 따라가면 미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나르가 그들에게 다가가 조언을 해 줬다.
어린 전사들은 그녀를 보더니, 흡사 성공한 선배를 대하는 눈빛으로 고마워했다.
“고맙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멀어지는 바바리안들을 보며 아이나르가 코를 쓱 닦았다.
“…후후, 옛 생각이 나는군.”
부디 옛날 일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지금이나 그때나 딱히 달라진 게 없어 보이니까.
“다들 물러나십시오!”
차원광장에는 벌써 수천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 틈에 껴서 자정이 되길 기다리고 있자니, 중심부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크기였지만 순식간에 형체를 키운 빛무리는 구체의 형태로 일렁거렸다.
“이제 입장하셔도 됩니다!”
공무원이 소리치자 주위에 있던 탐험가들부터 빠르게 포탈 속으로 몸을 던진다.
나는 아이나르를 이끌고 인파의 물결을 피해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비요른, 우린 안 들어가나?”
“기다려 봐라.”
광장에 모여 있던 탐험가의 숫자는 초당 수십 명씩 사라졌지만 인파는 여전했다.
때맞춰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다른 탐험가들 때문이었다.
포탈이 열리고 40분쯤 지나고서야, 붐비던 차원광장도 제법 한산해져 칠팔백 명 선을 유지했다.
“…이제는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이미 수만에 달하는 탐험가들을 집어삼킨 포탈은 어느덧 그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아이나르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목소리를 달리했다.
“비요른, 뭘 기다리는 거지?”
글쎄, 얘기하자면 너무 긴데…….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그래도 제법 시간이 남기에 간략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차원이 불안정할 때를 노려 진입할 생각이다. 책에서는 백 년에 한 번 있는 일이랬지만, 만약 이 현상을 이용하면—”
“뭔진 모르겠지만 네 말을 따르겠다.”
“……?”
“어차피 이해 못 할 거 같단 느낌이 든다!”
솔직히 이럴 줄 알았다.
물어봐놓고 저러는 건 열받지만…….
사실 행동 하나하나에 설명을 생략해도 된단 건 나름 편리한 부분일지 모른다.
“곧 게이트가 폐쇄됩니다! 물러서십시오!”
이윽고 포탈의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현시점에 남아 있는 탐험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아이나르와 함께 천천히 미궁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우리를 보며 관계자가 외쳤다.
“지금 들어가시면 위험합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왜 위험하다는지는 모르겠다.
난 얘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통계를 낸 책까지 있는 걸 보면, 분명 이들도 이 현상을 인지하고 있는 게 맞을 텐데…….
“비, 비요른! 높아 보이는 사람이 위험하다고 한다! 어서 물러나야 한다!”
어째서 이걸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지?
***
1초, 2초, 3초…….
음, 숫자를 세는 건 의미가 없으려나?
이 정도면 됐겠다고 감이 빡하고 왔을 때.
“지금이다. 들어가자.”
“꾸엑!”
나는 아이나르의 등을 떠밀며 동시에 미궁 속으로 입장했다.
번뜩-!
섬광이 눈앞을 가렸고, 이내 다시 떴을 때 깊은 어둠이 나를 반겼다.
내가 의도한 바가 제대로 통했단 뜻.
“앞이! 앞이 안 보인다! 역시 높아 보이는 사람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비요른은 바보다!”
“아이나르, 침착해라.”
서둘러 배낭에서 꺼낸 횃불에 불을 붙이자 아이나르도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말해줘도 이해 못 할 것이다.”
“그건… 그렇겠군!”
손쉽게 아이나르를 납득시킨 나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막다른 벽 앞에 위치한 비석을 발견하고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역시 차원불안정 현상은 포탈을 타는 기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 사실이 기쁜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다.
이 말인즉슨, 첫 진입 때 1분만 빨리 결정을 내렸어도, 한쪽 발이 씹창난 채 세 발로 기어갈 일은 없었다는 뜻 아닌가!
후우우우우웅-!
이내 비석 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 빛무리가 터져 나오며 구체의 형태로 화한다.
“이게 무엇인가?”
“2층으로 올라가는 포탈이다.”
즉, 우리는 나침반을 보며 방향을 찾고, 보이는 대로 몬스터와 싸우고,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는 모든 과정을 스킵했다.
최소 하루이틀의 시간은 아낀 셈.
“뭣?! 부족장은 포탈을 찾으려면 3일은 걸릴 거라던데!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어차피 말해 줘도 이해 못 할 거면서.
「최초로 포탈을 개방했습니다. EXP +2」
「캐릭터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영혼력이 +10 상승합니다.」
「최대 흡수 가능 정수가 +1 증가합니다.」
원래 고인물이 되려면 버그도 잘 써야 한다.
***
「비요른 얀델」
레벨: 2 (New +1)
육체: 66 / 정신: 37 / 이능: 11 (New +10)
아이템 레벨: 218
종합 전투 지수: 168.5 (New +10)
***
「2층 고블린 숲에 입장했습니다.」
약 3m 정도 공중에 떠오른 나는 재빨리 균형을 잡아 두 발로 착지했다.
툭!
그야 연습했거든.
바바리안들이랑 레슬링을 하면서.
“으갹!”
엉덩방아 찧으며 넘어진 아이나르를 보고 있자니 새삼 스스로의 성장이 느껴진다.
날 보며 꺄르르 웃던 에르웬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고.
“으으, 엉덩이가 저리다.”
보고 있자니 꽤 재밌다.
뭐, 얘 운동신경이면 금방 제대로 착지하겠다마는.
“뭔가? 그 아쉬운 듯한 표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충 둘러댄 나는 시계를 꺼내 0시 5분으로 조정했다.
원래 눈을 뜨자마자 해야 됐는데 깜박했다.
그래도 5분 빠르게 맞췄으니 문제는 없겠지.
“…아이나르, 너도 느껴지나?”
“뭐가 말인가?”
“마치, 심장이 진동하는 느낌이 든다.”
밀도 높은 무언가가 혈관을 타고 들어와 몸속을 가득 메우는 듯한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포탈을 타고 넘어온 순간부터 그러더니, 이제는 선명히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체 뭐지?
증상을 설명하자 아이나르가 빠르게 진단을 내렸다.
“영혼의 격이 승격했나 보군! 축하한다!”
아, 레벨 업을 한 거구나.
[던전 앤 스톤]에도 레벨이 있다.레벨에 따라 영혼력. 즉, 이능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인 MP가 늘어나며, 흡수 가능한 정수의 총 개수가 증가한다.
예를 들자면, 1레벨이었던 나는 딱 한 개의 정수만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2레벨이 되며 최대 두 개까지 가능해졌다.
뭐, 둘 다 정수가 나와야 의미가 있겠다마는.
“신기하군. 아직 아무 몬스터도 잡지 않았는데 영혼의 격이 올라가다니!”
“신기해할 거 없다. 최초로 포탈을 열은 게 공적으로 인정된 걸 테니.”
공적이란, 여기서 경험치를 뜻하는 용어다.
“음, 그런 것도 공적으로 인정이 되나?”
된다.
아니,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스피드런’이야말로 가장 경험치를 올리기 쉬운 수단이다.
[던전 앤 스톤]은 조금 특이한 성장 시스템을 가진 게임이니까.동일 몬스터에게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최초의 한 번뿐. 따라서 도감을 채우듯, 다양한 몬스터를 처치해야지만 레벨업을 할 수 있다.
어, 잠깐만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아이나르, 이번 일은 너와 나의 비밀이다. 알겠나?”
“비밀? 무엇을 말인가?”
“포탈을 처음 열었던 것. 이것 하나면 된다. 누가 물어본다면 이틀 정도 걸려서 2층에 올라왔다고 대답해라.”
포탈 개방 경험치는 고작 2. 즉, 9등급 마물 2개체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몬스터와 달리 몇 번이고 누적이 되지.’
따라서 일정 수준에 도달한 모험가들은 기를 쓰며 스피드런에 목을 멘다.
몬스터와의 상성, 활동하는 구역, 마법사의 유무, 신관이 모시는 신의 특성 등에 따라 사냥 가능한 몬스터는 한정되기 마련이니까.
벽에 가로막혔을 때, 벽을 뚫을 수단이 공적 노가다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쪼렙부터 이게 가능하다니?
이 꼼수는 나만 알고 꿀을 빨아야 한다.
알려지면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테니까.
“전사의 명예에 걸고 맹세하겠다.”
내 표정이 사뭇 진지했을까?
아이나르는 눈빛을 달리하더니 시키지도 않은 맹세까지 해 주었다. 덕분에 제법 안심이 됐지만 서둘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곳부터 떠야겠군.”
몇 시간만 지나도 곧 모험가들이 2층으로 진입할 것이다. 그리고 초심자처럼 보이는 우리를 보며 의문을 갖겠지.
넌 뭔데 우리보다 빨리 왔니?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다.
늘 그랬지만, 난 몬스터보다 탐험가 새끼들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