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27)
427화 얼음처럼 (2)
엘리바바(흑) 극딜 모드.
줄여서 흑화 모드는 [정령화]로 활성화 가능한 여러 모드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다.
모든 내성 수치 0.
더군다나 신성력에 피해를 입게 되기에 힐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 대신.
출혈, 중독, 기절, 마비, 속박 등 모든 종류의 상태 이상 면역.
이런 말도 안 되는 효과가 붙어 있다.
그래도 무작위 패널티는 상태 이상이 아닌 시스템 효과로 판정되기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작금에는 그리 중요치 않은 부분이다.
당장 이 흑화 모드의 핵심은 따로 있으니까.
「모든 종류의 공격이 피할 수 없는 일격 보정을 받습니다.」
무려 회피 불가의 타격.
[던전앤스톤]을 통틀어 흑화 모드에 밖에 붙지 않은 유니크 옵션.물론 등가교환을 사랑하는 이 게임의 모토답게 그 대가는 유리몸을 제하고도 더 있다.
「모든 자원 소모량이 20배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5배 증가합니다.」
멀쩡한 탐험가 한 명을 순식간에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두 줄의 문구.
하나 현재의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어차피 무작위 패널티 때문에 이미 반쯤 병신이 된 상태 아닌가.
신경을 써야 한다면 역시 이쪽 부분이겠지.
「유지 시간에 비례해 캐릭터에게 반동이 찾아옵니다.」
최대한 반동을 줄여야만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 순간 만큼은 시간이 금보다 귀하다.
‘자, 그럼 얼른 해보자.’
한 번 더 앞으로 걸음을 내뻗자, 식스가 잽싸게 간격을 벌린다.
타닷.
아무래도 뒤바뀐 내 모습을 경계하는 듯하다.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 하려던 걸 멈추고 다시 탐색전부터 시작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야 고맙지만.
‘오케이, 그럼 어그로는 다시 확실하게 끈 거 같으니…….’
늘어난 거리를 좁히며 망치를 휘두른다.
그야 허공에 휘두르면 공격 판정이 안 되거든.
설령 무의미하게 공기를 가른다는 결과는 같을지라도, 명확한 목표가 존재해야지만 회피 불가 보정이 붙는다는 걸 예전에 실험으로 확인했다.
탓.
이번 전투 내내 그러했듯, 최소한의 몸놀림으로 망치를 피해내는 여자.
「피할 수 없는 일격 보정을 받습니다.」
그와 동시에 보정 효과가 발동했다.
찌이이익-!
망치의 궤적을 따라 사선으로 찢겨져나가는 공간.
“······!”
이를 본 여자의 눈에 이채가 맺힌다.
이게 무슨 현상인진 알지 못해도, 언제든 대처할 수 있도록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것인데…….
———!
휘둘러지던 망치가 벌어진 틈의 어둠 속으로 쏙 들어가며 무기의 파공음도 멎는다.
데구르르.
사라진 무기의 흔적을 찾듯 시야각을 넓히며 굴러가는 동공.
거, 그래봤자 소용없구만.
“…!!”
그야말로 찰나의 가까운 시간 차를 두고서 나타난 망치가 공간을 초월해 식스의 몸을 강타한다.
처음 휘둘러지던 물리력은 고스란히 보존한 채.
퍼억—!
머지않아 이어진 둔탁한 소음.
애석하게도 손맛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야 꽂힌 게 복부였던 데다가…….
‘이 여자는 또 왜 이렇게 단단해?’
처음엔 단지 민첩 계열인 줄로만 알았는데, 방어 쪽에도 상당한 스탯이 투자된 듯하다.
뭐, 그래도 처맞을 때 표정을 보면 타격이 없진 않은 듯한데…….
‘쩝. [휘두르기]만 쓸 수 있었어도 어디 하나는 제대로 작살낼 수 있었을 텐데…….’
악마분쇄기의 대미지 증가 효과는 둔기류 스킬을 썼을 때만 발동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한 번으로 안 되면 한 번 더.’
아쉬워 하는 건 모든 게 실패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터.
후웅-!
미련을 버리고 재차 망치를 휘두른다.
타닷.
식스는 이전보다도 더 멀리 거리를 벌렸다.
아무래도 아까 맞은 일격이 경계가 되기는 했던 듯한데…….
이게 그런 식으로 파훼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퍼억-!
어김없이 거리를 초월해 적중한 일격.
‘드디어 머리빡에 꽂혔네.’
이번엔 적지않은 손맛이 전해졌으나, 놀랍게도 식스는 작은 신음성조차 내뱉지 않았다.
몸도 한 번 살짝 휘청거린 게 전부.
스윽.
이내 식스가 숙여졌던 목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퉷.”
기계적으로 입에 머금고 있던 핏물을 뱉어내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났다.”
…응?
“5등급 마물, 플로라의 이능 [정령화]. 거기에 어둠 정령이 더해졌을 때의 효과였지.”
어…….
‘얘도 설마 정수들 효과를 달달 외우고 다니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 왕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요원들이잖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파악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말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나는 즉시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대시했다.
“지금부터는 다를 거다.”
이전과 달리 식스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타닷-!
나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행동을 통해 직감적으로 할 수 있었다.
방금 한 말들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하, 아직 두 대 밖에 못 때렸는데.’
이제부터 지옥길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
후웅-!
달려드는 식스의 동선에 따라 망치를 내리친다.
식스는 피하지도 않았다.
갖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냉정하게 판단을 내린 거다.
‘피하지 않으면 타격 부위를 자기가 정할 수 있으니까.’
먼저 닿은 것은 망치였다.
퍼억-!
다만 망치가 식스의 어깨를 강타한 그 즉시.
푸욱-!
오러가 코팅된 단검이 내 팔뚝을 두부처럼 헤집고 틀어박힌다.
‘씁, 이래서 암흑바바 모드는 아껴만 두고 있던 거였는데…….’
똑같이 한 방을 주고 받은 격이나, 어느 쪽이 더 손해인지는 명백하다.
저 기고만장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생각보다 기민하군. 목을 노린 거였는데.”
빌어먹을.
차라리 저주를 퍼부었다면 극찬으로 여기며 입꼬리가 올라갔을 텐데.
생각보다 기민해?
이거야말로 최고의 모욕이나 다름없다.
욱씬.
고통 내성도 0으로 변한 덕에 찔리 팔뚝에서도 아린 통증이 선명하게 올라온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암, 내성 0으로 오러에 당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관통 부위가 팔뚝, 그것도 살갗 쪽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부상이 심각했을 거다.
그래, 그러니까…….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저릿한 고통조차도 연료 삼아 기합을 내뱉는다.
“질긴 녀석.”
이 승부는 생각보다 일찍 끝날 테니까.
‘한 번 더.’
다시금 망치를 내리친다.
방금 전과 똑같은 구도였다.
식스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으며 단검을 뻗었다.
그리고…….
퍼억-!
서걱.
서로가 한 방씩 주고 받는 일격.
“…….”
식스는 아까도 처맞았던 어깨였고.
‘니미럴.’
내 경우에는 방패를 들고 있던 손이었다.
방패를 이용해 한 번이라도 턴을 넘겨볼까 했지만, 오러를 머금은 단검은 방패를 꿰뚫은 것도 모자라 손바닥을 관통했다.
철커덩.
손목에 방패를 고정하던 끈까지 잘라냈는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방패.
아, 방패 말고 새끼와 약지손가락도 껴있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러거나 말거나 재차 망치를 휘두른다.
다만, 이번에는 구도가 조금 바뀌었다.
피하지 않고 덤벼들던 식스가 양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단검을 나란히 모으며 망치의 궤적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찌이이이익-!
망치는 단검과 부딪히기 직전에 보정을 받으며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퍼억-!
공간을 무시하며 식스의 발목을 강타했다.
지방층이 적은 만큼 뼈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을 게 분명함에도 식스는 아무렇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군?”
하, 이러니까 뭐 공략 당하는 몬스터가 된 거 같네.
‘한 번 더.’
망치를 휘두른다.
퍼억-!
한 대를 후려치고.
푸욱.
몸에는 칼자국이 하나 더 늘어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몇 번의 공격을 더 주고받았을까.
비로소 나는 식스를 인정했다.
‘이 여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
본연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오러를 쓸 수 있으며, 칼질 또한 오르큘리스의 단장 만큼이나 매섭다.
퍼억-.
심지어 이 여자는 무지한 타입도 아니었다.
고작 몇 번의 수교환 끝에 흑화 모드에 대한 지식이 활용되기 시작했고.
푸욱-.
판단력도 매한가지다.
“이쪽 어깨는 이제 못 쓰겠군.”
이를 증명하듯 식스가 미련없이 왼손으로 쥐고 있던 단검을 땅에 버린다.
어차피 이제 더는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엘리전이 시작된 후, 이 여자는 내 공격의 대부분을 왼쪽 팔뚝, 어깨로 받아냈으니까.
피해를 한 곳으로 몰겠다는 냉철한 마인드.
‘열 방을 넘게 때려서 팔 하나라…….’
물론 몸 여기저기가 베이고 구멍이 송송난 내 꼴에 비하면 양반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욕심을 버렸다.
‘적어도… 얘 만큼은 내가 여기서 어떻게든 처리해야해.’
목표가 간소화되니 한결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래,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바바리안 전사답게.
퍼억-!
매 순간순간에 모든 게 걸린 듯 집중한다.
언젠가 저 여자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드러냈을 때.
들개처럼 달려나가 물어뜯을 수 있도록.
푸욱.
팔뚝, 살갗, 손목, 허벅지 등.
급소 만큼은 피해가며 처맞던 칼침이 하복부 깊숙이 파고든다.
“……!”
씁, 이건 위험한 거 같은데.
지이익.
휘청이는 몸을 하체 힘으로 억지로 잡아내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아니, 정확히는 몇 초가 남았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아직이야.’
최대한 조급함을 덜어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테니까.
기다려왔던 승부수를 띄울 순간이.
퍼억-!
푸욱-.
그렇게 쉴 새 없이 공방이 이어진다.
아니, 사실 공방이라고 하기에도 웃겼다.
서로가 방어를 도외시한 채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공격하고 또 공격할 뿐인 순간의 연속.
“아까 죽은 성기사.”
말 한 마디 없이 내 몸을 난도질하기 바쁘던 여자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뭔 말을 하려는가 했더니.
“많이 친한 자였나?”
왜 그게 궁금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후우우웅-!
일단 한 번 더 무기를 휘두르며 나는 답했다.
“아니.”
친하다기에는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렇다면 이해가 안 되는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런 곳에서 죽을 놈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보아온 것은 미궁에서 내비치던 그의 많은 면모 중 일면 뿐.
그렇기에 더욱더 아쉽다.
준과 함께하는 탐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쁘지 않았을 거 같다.
평소엔 죽이 잘 맞다가도, 이단심문관 시절 버릇이 나오면 어딘가 질린듯한 표정을 지었겠지.
무조건적인 지지가 부담스럽긴 해도, 때론 그 누구보다도 의지가 되었을 테고.
후우웅-!
술자리에서는?
술은 잘 마시는 편일까? 꼭 저런 애들 중에 술만 마시면 성격이 바뀌는 애들이 있던데.
과연 녀석은 어떤 타입이었을까.
후웅-!
모른다.
그 기회를 이놈들이 앗아갔다.
아니, 비단 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푸욱-!
이렇게 허무히 아스라질 삶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움직인다.
이놈들이 내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가도록 두지 않기 위해서.
꽈악-!
잘려나간 허벅지 근육에 강제로 힘을 불어넣으며 균형을 잡는다.
휘이익.
그런 나를 반드시 꺾고야 말겠다는 듯, 서슬퍼런 오러가 공기 저항을 무시하며 내 배때기를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캐릭터에게 깃든 행운이 피해를 차단합니다.」
마침내 기다려왔던 순간이 찾아왔다.
툭.
투명한 장막에 부딪치기라도 하듯 허공에 멈춰서는 단검.
‘그래, 드디어 터진 거구나.’
가챠본의 이능 [확률적 보복]이다.
패시브는 액티브 스킬이 봉인됐든 말든 작동을 하니까.
「입은 피해의 15%를 적에게 반사합니다.」
좌측면에 생성된 스켈레톤이 식스를 향해 단검을 휘두른다.
그것도 평범한 단검이 아니라.
식스의 오러와 똑같은 색상의 오러가 이글거리는 단검을.
타닷.
이에 공격일변도로 덤벼들던 식스가 얼른 자세를 갈무리하고서 뒤로 물러났다.
이전에도 몇 번은 봤던 장면이었다.
흑화 모드를 켜기 전에도 [확률적 보복]은 꾸준히 터졌고, 식스 저 여자는 재수없을 정도로 날렵하게 반격을 회피했다.
하지만…….
씨익.
오랜만에 긍정적인 징조다.
‘흑화 모드에 대해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던 건 아니었나 보네?’
그랬다면 저런 순간적 판단을 내렸을 리 없다.
흑화 모드의 회피 불가 보너스는 패시브에도 확실하게 적용이 되니까.
바로 이렇게.
찌이이익.
소환된 스켈레톤의 단검이 허공을 가른 즉시.
허공에 생겨난 균열이 단검을 뒤삼킨다.
그리고 머지않아.
푸욱-!
공간을 초월하며 식스의 몸을 꿰뚫는다.
“크윽.”
정말이지 오랜만에 저 강철 같은 여자에게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니미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게 허벅지에 꽂히냐.’
만약 목이나 심장, 미간 같은 곳에 꽂혔다면 그 즉시 게임 끝이었을 텐데.
아쉽지 않다면 거짓이나, 나는 미련을 버렸다.
‘애초에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수정 동굴에서 만났던 한스 A부터 시작해 수 많은 적들과 맞부딪쳐왔다.
그리고…….
‘그래, 오히려 이게 내 마지막답지.’
그때마다 날 승리로 이끈 것은 플랜 B였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준비했던 대로.
타닷.
승부수를 던질 시간이다.
푸우우우웃-!
앞으로 대시하며 입에 차있던 핏물을 식스의 면상에 토해낸다.
시체골렘의 [산성체액]은 더 이상 없지만.
그래도 시야는 가릴 수 있을 테니까.
후우웅-!
핏물을 뿌리는 것과 망치를 휘두른 것은 거의 동시에 이뤄진 일이었다.
시야각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일격.
그러나 식스는 궤적이 보이기라도 하듯이 어깨를 내밀었다.
이미 작살이 나서 덜렁거리는 예의 그 어깨였다.
아주 그냥 팔 한 쪽으로 뽕을 뽑는구나.
퍼억-!
망치가 어깨를 내려친다.
휘익-!
그 와중에도 여자는 단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푸욱-!
하복부를 깊숙히 파고드는 단검.
스윽.
통증을 무시한 채 기다렸다는 듯 팔을 앞으로 뻗는다.
평소에는 방패를 차고 있던 팔이자, 아까 손을 당한 뒤 축 늘어진 채로 쓰지 않고 있던 그 팔.
식스의 눈매가 굳었다.
“……!”
오, 그래 너도 이건 예상 못했던 거구나.
지금까지 안 쓰고 참은 보람이 있네.
툭.
이내 손끝이 식스의 목에 닿은 즉시.
꽈악-.
나는 검지와 엄지, 그리고 중지를 사용해서 목을 세게 움켜 쥔 뒤.
콰직-!
이 상황에도 크게 동요가 없는 상판데기에 이마를 냉큼 박았다.
그리고…….
콰앙-!
관성에 의해 쓰러지는 식스의 몸을 붙잡는 대신 짓누르듯 그 위에 포개어졌다.
푸욱-!
옆구리가 불타는 거 같았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칼빵을 꽂은 거야?
후웅-!
마운트 자세에서 짧게 고쳐 잡은 망치를 내리친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허… 미쳤네 진짜.’
상체가 구속된 상황에서도 반사신경으로 목만 움직여서 망치를 피한 것인데…….
놀랍긴 하지만, 크게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근거리라고 해서 회피 불가 보정이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니까.
콰직-!
머리를 향해 내리친 망치가 허공을 관통하며 식스의 발을 짓이긴다.
푸욱-!
그 대가로 옆구리에 칼침이 하나 더 늘었다.
일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현기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 힘을 내서 한 방 내리쳤다.
콰직-!
이번엔 타격지가 제법 좋았다.
망치가 손목을 제대로 내리꽂았는지, 저 여자가 어느 순간에도 꽉 쥐고 있던 단검이 튕겨져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좋아, 그럼 이제 무기는 없고.’
반격 걱정을 버리고서 재차 망치를 내리친다.
콰직-! 콰직-! 콰직-!
신묘한 움직임으로 세 번이나 목을 틀어 머리를 보호한 식스였지만, 네 번째부터는 달랐다.
그야 이번엔 정수리에 제대로 들어갔거든.
콰직-!
뇌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며 발작을 하듯 굳는 몸.
다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망치를 내리쳤다.
더 이상 회피 불가 보정은 터지지 않았다.
이 괴물 같던 여자도 뇌진탕이 제대로 온 상태에서 목만 움직여 피한다는 묘기를 보여줄 수는 없었던 모양.
콰직, 콰직, 콰직-!
그렇게 세 번을 더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고.
‘한 번 더.’
네 번 째 일격을 준비하며 망치를 들었을 때.
살과 뼈가 짓뭉개지고 피범벅이 된 얼굴 사이로 식스의 눈이 보였다.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수 많은 적들의 머리통을 쪼개봤지만, 그 중에서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
“…….”
곤경에 처한 사람처럼은 절대 보이지 않는 평온한 눈.
그러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졌다.”
허, 쿨한 거 보소?
목숨 구걸을 할 여자처럼 보이진 않았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니, 아… 라프. 도니아······.”
나는 있는 힘껏 망치를 내리쳤고.
콰직-!
섬찟한 타격음과 함께 아래 깔린 식스의 몸이 정지했다.
“허억, 허억, 허억….”
가파르다 못해 턱끝까지 차오른 호흡.
‘정말… 죽은 건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 만큼 강적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쉴 수는 없겠지.
스윽.
멍하니 호흡을 고르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에르… 웬, 이제 됐으니 [정령화]를—.”
어서 해제하라고.
그렇게 말을 하려던 순간.
[아저씨—!!!!]기립성 저혈압 증상이라도 온 것처럼 눈앞이 하얗게 번지며 몸이 휘청인다.
‘이런 씹….’
당장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 해치워야 할 놈들이 많은데.
이대로 잠들면 또 무엇을 잃어버릴지 모르는데.
스르륵.
눈이 감긴다.
***
「캐릭터가 [기절]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령화]가 해제됩니다.」
「심연의 잔재.」
「유지 시간에 비례해 캐릭터에게 반동이 찾아옵니다.」
「유지 시간 318초.」
「3,180초 동안 캐릭터의 모든 내성 수치가 50% 감소합니다.」
「3,180초 동안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모든 치유 및 재생 효과가 90% 감소합니다.」
「3,180초 동안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