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God Dragon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용이 몸을 가라앉히면 숲이 고요해진다 (19)
『이건……?』
전설 속의 분신술이라도 쓴 걸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현상에 권희연의 눈이 덩달아 커졌다.
두 명의 정현은 가볍게 껄껄 웃을 뿐이었지만.
『남의 재주를 뺏는 게 원래 제일 재미난 법이지.』
『대놓고 강탈하는 건 더 재미있고 말이지.』
‘원영신!’
권희연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답게 정현이 부린 재주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조패왕의 것과 똑같은 기예.
어느 정현이 진짜고 어느 정현이 분신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원영신은 원래 도가에서 출발한 개념이긴 했다. 외부로 발현한 기를 정(精)의 형태로 단단히 뭉쳐 의지를 불어넣는 기술.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정립하고, 실전에서 활용한 건 신조패왕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냉큼 가져가서 써먹을 줄이야.
‘아냐. 이건 그 정도가 아니야. 몇 층은…… 더 깊어.’
그러다 권희연은 정현의 원영신이 신조패왕의 것보다 훨씬 완성도가 깊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신조패왕은 원영신을 부릴 때면 항상 본체를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보호받을 수 있는 곳에 두었다. 원영신을 형성하고, 의지를 불어넣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심력을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정현을 상대할 때에 동시 현현(同時顯現)을 선보이긴 했다지만, 그건 친자식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심력 소모가 적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현은 달랐다.
『그런데 시야를 이렇게 나눠서 보니까 영 어색한데.』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더 많아지니 두통이 따라. 이 점은 좀 보완해야 할 것 같은데?』
본체와 원영신이 전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라 할지라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심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공 소모는 두말할 것도 없겠지.
무엇보다.
‘옷차림도 달라.’
본체는 새하얀 태극 도포를 입은 그대로, 원영신은 그와 정반대되는 흑색 무복을 입은 상태였다. 머리에는 죽립까지 쓰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정현이 둘로 나누어졌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만약 원영신이 어르신만큼, 아니, 그의 절반 정도만큼만 실력을 발휘해도…… 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야.’
권희연은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천하제일인.’
하오문의 여러 존장들이 ‘검재는 인간이 지닌 상식의 범주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그러시더니, 실제로 이렇게 겪고 나니 확실히 실감되었다.
“그럼 가 볼까?”
흑색 무복의 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음요충을 이용하려 한다는 인회의 뒤를 밟으러 가자는 뜻이겠지. 본체는 아마 이곳에서 자리를 지킬 것이다.
권희연은 알겠노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이고! 나리들, 수고 많으십니다요.”
“이건 또 무엇이오?”
“앗! 듣지 못하셨는지요? 헤헤. 이건 숙설간(熟設間, 주방)에서 주문한 잔치 음식들인뎁쇼.”
“워낙에 들고 나는 물건이 많은 터라…… 음? 소림사의 표식은 또 무엇이오?”
“아! 저희 방(幇)의 방주께서 소림의 속가 출신이신지라.”
“그럼 이상 없겠군. 통과!”
흑건적의 택동은 지게꾼이 짊어지고 온 물건의 내용물들을 대충 훑어보고는 곧장 통과를 시켰다.
원래대로라면 보다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할 테지만, 개파대연이 진행되고 있다 보니 워낙에 많은 물건들이 들고 나는 까닭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였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숙설간이나 경내 곳곳에 배치된 다른 동료들이 제재를 할 것이니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기기도 했다.
더구나 소림사의 표식을 대놓고 사용하는 곳이다.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수고하십셔!”
“본 문의 중요한 행사 날이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리오.”
짐꾼들은 택동의 인사를 뒤로하고 산문을 완전히 통과했다. 간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던 얼굴은 그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 간사한 웃음으로 변했다.
“아주 쉽군. 멍청한 새끼들.”
“그러게 말일세.”
“이 강호에서 소림사의 이름을 팔아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나?”
짐꾼들은 인회에서 계획을 위해 심은 세작들이었다.
그들이 현재 나르고 있는 음식들 속에는 음요충의 모충이 낳은 알들이 심어져 있었다. 이것을 섭취한 순간, 알들은 저절로 부활해서 심장이나 경추 따위에 똬리를 틀게 된다.
무당파의 개파를 축하한다며 각지에서 많은 인파들이 몰려온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이니, 인회로서는 여러 자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다면 그동안 정현으로 인해 인회가 입었던 피해들을 전부 복구하고도 남겠지. 강호를 장악하자는 상층부의 계획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동안 골치를 썩이던 제일적(第一敵), 검재가 사라진다.’
‘그리고 본 회가 세상에 있음을, 만천하에 널리 알리게 될 것이다.’
한평생 조직을 위해 몸 바쳐 살아오며, 조직이 화려하게 기지개를 펼 날만을 기대하던 그들로서는 잔뜩 고무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첩자들은 계획대로 숙설간으로 이동, 숙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가져온 음식들을 내놓았다. 이미 그들과는 안면이 터서 호형호제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오늘 밤이 지나면 전부 죽을 목숨들이었지만.
이따금 흑건적의 도적놈들이 여기저길 다니면서 음식과 술에 이상이 있지 않나, 은침을 수시로 찔러 넣곤 했지만 아무 이상도 찾을 수 없었다.
‘백날 천날 해 보아라. 그런다고 해서 나타나나.’
음요충의 알은 아주 작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고, 그마저도 지회에서 특별히 파견된 주술사의 ‘손길’이 닿아 절대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들을 끝마친 뒤, 첩자들은 조심스럽게 다시 산문을 나섰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택동에게 수고하라는 전별까지 하고서.
그리고 그들은 산길을 내려오다 말고, 도중에 방향을 꺾어서 길이 없는 비탈을 내려갔다. 따로 움직인 다른 첩자들과 합류하기로 한 지정 장소로 이동해 변복을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팟!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내려오고.
스걱, 스걱―
푸우우!
섬광이 번뜩인다 싶더니, 그들의 머리통이 줄줄이 분리되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어떻게 죽었는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표정들.
정현의 원영신은 바로 그런 시체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조용히 뒤따라온 권희연이 화골산으로 시체들을 소각하는 동안, 정현은 녀석들의 품을 뒤적여 자그마한 약병을 찾아 꺼냈다.
“그것이……?”
“음요충의 모충이지.”
권희연은 약병 안에서 이리저리 꿈틀대고 있는 벌레를 보면서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약병에서 떼어지질 않았다. 특징을 찾기 위한 전문가의 눈빛이었다.
“아마 적당한 시간이 되면 모충을 자극해서 알을 부화시켰을 거야. 이 녀석이 내뿜는 파장은 자충을 깨어나게도 하니까.”
“그랬다면 대참사가 벌어졌겠군요.”
“문제는 모충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란…… 하!”
정현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콰직, 약병이 부서지면서 안에 있던 모충까지 같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권희연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정현이 차갑게 웃던 그대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
“함정이었군.”
“……!”
권희연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쏴아아!
적막 속, 산들바람이 풀잎과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쪽으로 달려오는 작자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권희연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제야 이것이 하오문을 낚기 위한 인회의 덫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회도 자꾸만 누군가가 자신들을 쫓아온단 사실을 진즉에 눈치챘을 터. 하지만 도무지 그 정체가 밝혀지질 않으니 이렇게 미끼를 던져 역으로 함정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정현은 그걸 진즉에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 것이고.
‘이러고도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권희연은 언급을 삼간 정현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못난 스스로에 대한 질책을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회도 다되었네. 이딴 저급한 함정이나 짜고 말이야. 설마설마했는데 말이지.”
정현은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그리고.
타닥!
곧 그들 주변으로 일련의 무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검은 무복과 복면을 쓰고 있는 자들. 너무 은밀한 움직임이라 나타난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환각인가 싶을 정도였다.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어떤 사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하지만 권희연은 복면 위로 드러난 녀석들의 두 눈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쥐새끼’를 잡기 위해 움직인 곳에서, 연회장에 있어야 할 정현이 있었으니까.
“미각(未閣)이라? 이거, 제법 대어가 낚였는걸?”
인회를 구성하고 있는 십이각 중 미각은 원래 어둠 속에서 활동하던 곳.
그래서 정현으로서도 좀처럼 녀석들의 꼬리를 잡아챌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출몰할 줄이야.
아마 권희연을 납치해서 곧바로 ‘쥐새끼’들의 뒤를 쫓을 계획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안 되겠지만.
팟!
그사이, 녀석들 중 후미에 있던 놈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정현이 그들의 뒤를 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이쿠! 하필이면 가더라도 그런 방향들로 가냐? 그쪽은 안 될 텐데.”
하지만 달아나던 놈들의 움직임도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퍽!
퍼걱―
다른 무언가가 풀숲에서 불쑥 일어나더니 달리던 그들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으니까.
미각 무인들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어둠을 가르며 나타난 이들은 충허암의 하인들이었다.
독심마유와 사검경혼, 그리고 낭화조는 간만에 맛본 피 맛에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왔냐?”
“예. 그보다 이놈들이 말씀하셨던…….”
“맞아. 하늘산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회’다.”
순간, 세 거마의 눈빛이 차가운 빛으로 일렁였다.
지난날, 그들이 하늘산을 내려왔던 건, 미치도록 부는 피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하늘산에서 변고가 있은 후, 일을 저지른 놈들이 중원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행적을 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현은 약속대로 놈들의 끄나풀을 그들에게 찾아 건네주었으니.
“어떻게 할까요?”
독심마유는 몇 놈이나 남길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속으로 부디 전원 제압을 하라거나 하는 명령만은 피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들의 복수심은 너무 목말랐고 허기가 졌다. 웬만큼 피를 보는 게 아니고서야 좀처럼 꺼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들의 소원은 아주 간단하게 이뤄졌다.
“전부 죽여.”
그 순간.
화아악!
세 거마가 내뿜은 마기가 한데 뒤엉키며 회오리가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