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143
143
소드마스터 힐러님 143화
46장 도망친 마도학자(2)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푸른 눈에 곱슬 진 금발의 잘생긴 중년은 성준은 물론이고 리슈발트도 아는 얼굴이었다.
-마도학자 제로스가 분명합니다.
리슈발트가 말했다. 마도학자 제로스는 성준이 로우켈의 이름을 가졌던 전생에 그의 곁에서 활약했던 유능한 마도학자였다.
당연히 숙청당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운이 좋아서 도망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차원 이론 쪽에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차원인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게 많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한국어 잘하네? 이름부터 말해줄래?”
제로스를 알고 있는 건 현재의 성준이 아니라 전생의 로우켈이었기 때문에 그는 먼저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아하하…… 칼을 좀…….”
“자기소개부터 듣고 판단할 거니까, 재촉하지 마.”
성준은 겨누고 있는 검을 치우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경계는 늦출 수 없었다.
제로스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옷 밖으로 천천히 목걸이를 꺼냈다.
“통역 마도구…… 이곳에서는 아이템이라고 하죠. 아무튼 이거 덕분에 이곳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제로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기억보다 조금 늙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마도학자 제로스가 맞았다.
“날 미행한 이유는?”
“혹시 스승 되시는 로우켈 경에게서 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입니까?”
제로스의 말에 성준은 뒤늦게 ‘로우켈의 제자’라는 편리한 설정을 떠올렸다.
‘로우켈의 제자’라는 설정을 사용하면 환생에 대한 복잡한 설명을 생략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한 뒤,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들은 것 같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로우켈 경은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살아계신 거 맞지요?”
“그게…….”
성준은 상황을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했다. 그는 리도니아 대평원에서 로우켈이 죽은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성준은 그 전에 키워진 제자가 되었다.
-훌륭한 설명입니다.
거의 급조된 설정이었지만 리슈발트가 감탄할 정도로 치밀했다.
“그…… 렇군요.”
제로스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던 희망이 불꽃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성준을 향해 곧은 시선을 보냈다.
평생 모셔왔던 로우켈의 죽음을 다시 확답받았지만, 눈앞에 그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제자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에게 충성을 바치면 되는 일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성준.”
“과거 로우켈 경에게 했던 것처럼 강성준 경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물론이야. 환영한다.”
성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 이론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각성 던전 외에도 제국을 공격한다는 선택지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성준은 생각했다.
그는 마도학자였지만 마법과 마도구 사용에 능숙해서 과거에도 A급 헌터 수준의 전투력은 갖췄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맹세컨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믿을게.”
과거 제로스를 휘하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반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제로스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기에 고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처형당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도망쳤어?”
“저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관문에 관해 연구 중이었습니다. 로우켈 경께서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황제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저는 실험 중이던 차원 관문을 가동 시켜 지구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로스가 설명했다. 그는 운이 좋게 몸을 피했지만, 예상대로 황제의 숙청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차원 관문과 도약에 관해 연구한 자료들을 폐기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마 그것들은 제국과 종족 연합의 이계 침공 계획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지구에 던전 레이드 사태가 발생하고 헌터들의 시대가 찾아온 데에는 제로스가 미처 폐기하지 못한 연구 자료들의 도움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성준이 질문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다. 제로스의 대답에 따라서 기사 여단의 추적자들이 어떻게 그를 찾아냈는지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살기 위해서 제국의 조력자를 통해 기사 여단의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헌터 닷컴에서 강성준 경의 ‘정당방위’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영상에서 강성준 경이 구사했던 검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로우켈 경의 검술과 닮아 있었습니다.”
제로스는 흥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S급 헌터 차규태와의 싸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당시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마트폰의 동영상 촬영 기능을 사용한 이들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차원을 넘어 습격해 온 기사 여단의 추적자들이 있었다. 그들도 헌터 닷컴에 올라온 동영상을 봤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처음에 현대복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이곳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랬나……?”
“저 말고도 방문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로스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성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불청객’이라서 재워뒀어.”
기사 여단 추적자들의 시체는 정철에게 처리를 맡겼었다. 지금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혀서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역시 로우켈 경의 제자답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느 쪽이었습니까?”
“당연히 제국 쪽이야.”
성준은 대답과 함께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다시 제로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국에 거점이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 체류 문제는 해결해두었습니다.”
“그럼 내 거점으로 가자. 이제부터 거기서 지내면 되겠네.”
성준은 제로스를 식구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와 함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전생의 경험 덕분에 정철과 신철, 그리고 장훈보다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성준이 로우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제로스는 자신을 쉽게 믿어주는 성준을 보며 질문했다.
부하로 받아줄 것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설마 거점에서 같이 생활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문제없어. 그런데 짐은?”
“차원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짐이 많지 않은가 봐?”
성준이 물었다. 그도 차원 주머니를 쓰고 있지만, 용량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제로스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제 차원 주머니는 개조해서 용량이 큽니다.”
차원 주머니는 복잡한 구조이지만 제로스는 차원 마도학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권위자였기 때문에 개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가자. 할 이야기도 많을 것 같으니까.”
성준은 제로스를 재촉했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성준은 제로스와 함께 헌터 세단을 타고 저택으로 이동했다.
저택 주변에는 검문소가 있었지만, 성준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제로스는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형님! 이제 오십니까?”
홀로 차고 주변을 산책하고 있던 장훈이 달려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도 빨리 끝내셨네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A급 던전이라서 별거 없었어. 그러고 보니 초면이지? 이쪽은 제로스라고 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야.”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장훈은 의심 없이 인사를 건넸다. 성준이 소개했다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장훈은 산책을 계속했고 성준은 제로스와 함께 저택 내부의 밀실로 들어갔다.
“저택의 방어 설비가 상당하군요. 순찰하는 병력도 많고요.”
대부분의 방어 설비가 정원에 매설되어 있었지만 제로스는 마도구의 힘을 빌린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기사 여단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니까 대비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
성준이 대답했다.
“최근 제가 접한 소식에 의하면 제국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로스가 말했다. 사실 기사 여단의 기사들이 차원을 넘어 성준을 추적했다는 것만으로도 제국이 예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제국이?”
“기사 여단과 차원 기동부대의 훈련소가 공격당하고 전술 마탑이 불에 탔습니다. 로우켈의 제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제로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성준은 제로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에게 듣기로는 방어 목적의 마법 함정에도 재능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아주 수준 높은 거는 힘들겠지만요.”
“상관없어. 제국과 종족 연합의 특무군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니까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이미 저는 강성준 경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군대가 공격해 와도 버틸 수 있도록 방어 마법진으로 도배를 해두겠습니다.”
제로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마도학은 물론이고 마법에도 재능이 있는 천재였다. 성준의 전생, 로우켈이 괜히 그와 친밀하게 지냈던 게 아니었다.
“본채에서 지내면 돼. 원하는 방 골라서 쓰면 되고, 지하실을 공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줄게.”
마법사나 마도학자에게 있어서 공방의 존재는 필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성준의 말에 제로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게 있는데…….”
“뭐든 질문하세요.”
“우선은 이것부터 설명해야겠네.”
성준은 각성 던전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끝까지 들은 제로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이곳에서 던전과 레이드라고 부르는 현상은 모두 이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국과 종족 연합에서 인위적으로 차원 관문을 만들어 연결한 것이죠.”
제로스는 기초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던전이나 레이드와 연결된 차원 관문이 오래 열려 있을수록 차원이 불안정해집니다.”
“던전과 레이드는 차원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나……? 왜 차원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거지?”
“차원이 불안정해질수록 더욱 거대한 차원 관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제로스는 성준에게 물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다. 성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군대가 넘어오겠지.”
“그렇게 되면 차원 전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차원이 불안정해지면서 흘러들어온 마력으로 헌터들이 각성했다고는 하지만 이계는 일반 병사조차 마력을 보유할 정도로 마력이 풍부한 곳입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서는 무장한 일반인을 죽여도 흡수할 마력이 거의 없었지만 이계에서는 병사들을 죽여도 마력을 조금이나마 흡수할 수 있었다.
“제국과 종족 연합의 군대가 진정한 침공을 시작하면 지구는 전멸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