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164
164
소드마스터 힐러님 164화
52장 정의로운 방패(1)
“퇴로는 제가 확보하겠습니다.”
“괜찮겠어?”
성준이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점의 병력을 직접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중앙헌터국에 위험을 경고할 시간이 부족할지도 몰랐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입하면서 보셨겠지만, 거점의 주요 전력은 조금 전의 일등 살수와 벨로크 경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최전선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조사 부대원들의 전투력도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안펠스는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좌천된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안펠스가 말했다. 성준은 안펠스가 기사 여단 서열 226위 출신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렇게 하니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럼 뒷일을 부탁하겠다.”
성준은 ‘리오딘 수정’을 차원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안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진을 조작했다. 그러자 벽이 열리고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저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입니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말없이 리슈발트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직 안펠스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기에 리슈발트를 정찰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성준의 의도를 눈치챈 리슈발트는 정찰을 갔다가 3분 만에 돌아왔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함정이나 매복은 없었습니다.
리슈발트의 보고를 들은 뒤에서야 성준이 움직였다. 그가 비밀 통로로 들어서자 안펠스는 입구를 폐쇄하기 위해 마법진을 조작했다.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살아남으면 알려주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말해줄게. 내 이름은 강성준이다.”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통로에 설치된 마법등이 켜졌다. 성준은 비밀 통로를 따라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5분쯤 걷자 출구가 나타났다. 밖으로 나오자 뉴욕의 뒷골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사 부대의 거점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전투의 소음이 성준의 귓가로 파고들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는 안펠스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지.”
리슈발트의 말에 성준도 동의했다. 성준 서둘러 거점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제니퍼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욕에 도착하셨나 보네요?
“지금 안부나 주고받을 때가 아닙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성준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지자 제니퍼도 심각해졌다.
“뉴욕에 SS급 이상의 대규모 레이드 상황이 발생할 겁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확실합니다.”
-상부에 보고해야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대규모 레이드 상황이 발생하면 주 방위군이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제니퍼에게는 관련 권한이 없기 때문에 상부에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시간이 문제네…….”
성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 *
성준과 통화를 끝낸 제니퍼는 미국내 레이드 상황을 관리하는 베타 본부 건물로 건너갔다.
중앙헌터국의 각 본부 건물들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델타 본부 소속인 그녀는 본부장인 루이스에게 보고해야 했지만 지금 그는 부재중이었다.
“제니퍼 요원? 베타 본부에는 무슨 일이에요?”
보안 검색대를 맡은 요원이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그는 평소 제니퍼와 알고 지낸 사이였다. 제니퍼는 보안 검색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급하게 보고할 일이 생겼습니다.”
“문제없네요.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제니퍼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무섭게 본부장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미 베타 본부 측 관계자한테 연락을 해두었다. 덕분에 특별한 절차 없이 베타 본부장인 에키드를 만날 수 있었다.
델타 본부 공작과 2팀의 평범한 특수요원이었던 시절이었다면 타 본부의 수장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강성준의 전담 요원이 되면서 직위가 다소 상승하여 과장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제니퍼 요원? 무슨 일이십니까?”
본부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A급 보조계 헌터이자 베타 본부장을 맡은 에키드였다. 그는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뉴욕에 최소 SS급 이상의 대규모 레이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정보…… 어디서 들었습니까?”
에키드의 얼굴에서 귀찮은 기색이 사라졌다. 그는 놀란 표정이 되어 질문했다.
“뭔가 알고 계신 겁니까?”
제니퍼는 마른침을 삼켰다. 에키드의 반응을 보니 성준이 한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관측국에서 차원 균열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차원 균열은 레이드 상황의 징조가 되기도 합니다.”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헌터였기 때문에 차원 균열에 대한 상식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차원 균열을 관측했다면 왜 레이드 경보를 울리지 않은 겁니까?”
“레이드 상황으로 발전하기에는 균열이 너무 미약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레이드 경보를 발령할 때는 신중해야만 했다. 한 번 발령되면 해당 구역에 군대가 배치되고 모든 민간인의 피난이 시작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손해가 엄청나다.
베타 본부 관측국이나 대한민국의 던전 관리국 레이드 상황실과 같은 전문 기관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두고 차원 균열을 감시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레이드가 발생하기 직전에 경보를 발령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니퍼 요원. 정보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대한민국의 SS급 헌터 강성준입니다.”
“강성준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군요.”
에키드는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SS급 헌터씩이나 되는 성준이 아무 생각 없이 근거 없는 정보를 건넬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차원 균열이 발생하기도 했고 조치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지금부터 레이드 상황을 선포하고 경보를 발령하겠습니다. 제니퍼 요원은 강성준 씨에게 지원을 요청해주시겠습니까?”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까?”
“네. 공교롭게도 지금 뉴욕 근처에는 SS급 헌터가 한 명도 없습니다.”
뉴욕 근처에 SS급 헌터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종족 연합 원정군의 상륙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중앙헌터국에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제국 측이 공작한 결과였다.
“제니퍼 요원. 당신에게 전권을 위임하겠습니다. 강성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니퍼가 대답했다. 에키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화기를 귓가로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레이드 상황을 선포합니다.”
* * *
레이드 상황이 선포되고 경보가 발령되었다. 주 방위군이 시내로 진입했으며 헌터들이 소집되었다. 선진국답게 헌터들이 소집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빨랐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성준은 제니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강성준 씨? 뉴욕에 레이드 상황이 선포되었습니다.
“지금 확인했습니다.”
성준이 대답했다.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고 무장한 군인들이 도로 통제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곧 레이드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강성준 씨. 현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제니퍼는 뉴욕과 그 주변에 SS급 헌터가 없다는 것을 성준에게 알렸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노린 건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종족 연합이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이라면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성준이 마른침을 삼키는 동안 제니퍼는 설명을 끝냈다.
-가장 가까운 SS급 헌터는 2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미국은 강성준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시간이면 격전지가 확대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성준의 말대로 SS급 레이드 상황이라면 소집된 S급 헌터들만으로는 보스를 사냥하기 힘들다. 설령 처리한다고 해도 S급 헌터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성준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했다.
“제가 도와준다면 미국은 제게 무엇을 해줄 수 있습니까?”
성준이 물었다. 제국과 종족 연합을 저지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았지만,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았다.
-당장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강성준 씨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성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미국은 약속을 지킬 것이다.
“협력하겠습니다.”
-차원 관문이 열리면 본진이 상륙하는 곳을 막아주시길 바랍니다. 베타 본부 소속의 레이드 기동대와 주 방위군이 강성준 씨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든든하네요.”
-헬기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좌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준은 메시지에 적혀 있는 좌표로 이동했다.
이름을 모르는 공원의 중앙에서 치누크 헬기 1대와 레이드 기동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상공에서는 공격 헬기 편대가 대기 중이었다.
“반갑습니다. 강성준 씨. 저는 지원 임무를 맡은 레이드 기동대의 팀장 이든이라고 합니다.”
금발의 헌터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통역 마법을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S급 헌터입니다. 복장을 보니까 마법계가 분명하군요.
리슈발트가 말했다.
“강성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주고받기 무섭게 강한 마력 반응이 퍼져 나가더니 하늘에서 차원 관문이 열리고 거대한 비공정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에서도 차원 관문이 열렸고 마물이 쏟아져 나왔다.
주 방위군은 그들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모든 화력을 동원해 공격을 시작했다.
“강성준 씨! 지금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든이 다급하게 외쳤다. 성준이 기동대원들을 따라 치누크 헬기에 탑승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플라이!”
시동어와 함께 그의 몸이 떠올랐다. 뒤이어 헬기가 이륙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주변은 잠식하는 가운데, 이든이 입을 열었다.
“저희 기동대가 작전 지역까지 엄호하겠습니다!”
동시에 그는 헬기 조종사에게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성준이 탑승한 치누크 헬기는 공격 헬기 편대의 지원을 받으며 가장 큰 차원 관문이 열린 곳으로 나아갔다.
“적이 이미 대공 저지선을 구축했습니다!”
“고도를 올려!”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긴박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크 무리를 완성한 대공 저지선 탓에 저공비행은 힘들었다. 기장은 짧은 고민 끝에 고도를 올렸다.
공격 헬기 2대가 치누크의 고도 상승을 지원하다가 공격 주술에 타격 당해서 추락했다.
검붉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에 추락한 공격 헬기 주변으로 오크들이 몰려들었다.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기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전진한다. 우리의 목표는 강성준 헌터님을 ‘근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기장이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