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209
209
소드마스터 힐러님 209화
65장 모스크바 방어전(2)
처음에는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헤츨링 2체의 기습으로 인해 집중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었고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마물 무리는 생각보다 대규모였다.
아니, 단순한 마물 무리가 아니었다.
종족 연합 용족령의 ‘군대’였다.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제기랄! 화력 지원은 아직입니까?”
공격대 헌터들 간에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헤츨링을 상대할 때부터 화력 지원이 전혀 없었다.
‘불길한데…….’
성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그의 통신 회선은 레이드 관제국 상황실에서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통신 요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용족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지만, 아직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서 짧은 통신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조금 전부터 화력 지원이 끊겼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주요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화력 지원을 맡은 군부대들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통신 요원은 성준의 물음에 곧바로 응답했다. 자세한 상황 설명은 없었지만 당분간 화력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성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화력 지원이 없더라도 차원 관문을 파괴할 자신이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레이아가 합류한다.’
SSS급 헌터 레이아. 그녀는 광역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마법계 헌터였다. 그녀와 공격대가 추가로 합류한다면 4번 차원 관문의 파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는 2천 정도입니다. A급으로 추정되는 마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S급도 10체 이상 파악됩니다.
리슈발트가 보고했다. 그나마 헤츨링 2체가 선공을 취해서 먼저 처리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성준은 검을 들어 올렸다.
“광역 마법 지원 부탁합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난사하세요!”
한석이 성준의 지시를 통역해서 전달했다. 성준은 이미 용족 군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뭐, 뭔가 온다!”
“대응해!”
보이지 않는 위험이 접근해 오고 있다. 용족 마검사들은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들조차 뭔가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 정도를 간신히 눈치챘을 뿐이었고 성준의 잔상조차 눈에 담지 못했다.
“커, 커헉……?”
“쿨럭!”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몸이 조각나고 있었다. 뜨거운 핏줄기가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 팔과 다리가 절단된 용족 마검사들이 쓰러져 나뒹굴었다.
“히, 힐!”
용족 사제들이 힐을 퍼부어 치유를 시도했지만 그들의 실력으로 잘린 팔과 다리가 붙을 리가 없었다. 지혈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 어디야!”
“모르겠습니다!”
사방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공격의 연속에 용족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리빙 아머들은 건드리지도 않고 용족 이상의 고급 전력만 노렸다.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용족 진영은 혼란에 잠겼다.
S급 마물로 분류되는 용족 마검사들조차 대응하지 못했다. 절반 이상의 고급 전력이 당한 뒤에야 하나의 용족 가문을 이끄는 ‘가주’의 지휘하에 성준을 포위하는 진형이 갖춰졌다.
가주는 S급 최상위 티어의 강자였기에 성준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완벽한 포위망입니다.
리슈발트가 우려했지만,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는 검에 마력을 주입하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 피어.”
시동어와 함께 성준이 들고 있는 검, 로엘이 부르르 떨렸다. 잠자고 있던 마룡의 영혼이 흘러들어 오는 마력에 자극받아 잠시나마 깨어난 것이다.
-크롸롸롸롸롸!
마룡의 포효가 주변을 휩쓸었다. 성준을 향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던 용족들이 일제히 무너지듯 쓰러졌다.
“큭!”
“몸이 움직이지 않아!”
“이, 인간이 드래곤 피어를?”
S급 최상위 티어의 실력자인 용족 가주조차 일순간 몸이 경직될 정도였다.
그는 그나마 제일 먼저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연속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성준이 조금 더 빨랐다.
“폭풍검.”
동조율 70%를 넘으면서 제한이 완전히 풀린 폭풍검은 사방에 500개의 검풍을 쏟아냈다.
“크아아악!”
“커헉!”
용족들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가주는 방어 마법을 펼쳐서 검풍을 막아냈지만, 어느새 그의 앞에는 성준이 다가와 있었다.
“환영검.”
“크아악!”
31개의 환영검에 당한 용족 가주의 몸이 토막 났다. 그는 일격을 벝지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드래곤 피어와 폭풍검, 그리고 환영검의 연이은 사용으로 소모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성준은 왼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흡수.”
쓰러진 마물들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다량의 마력이 흡수되었다. 성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이걸로 종족 연합의 하수인들을 도륙할 힘을 보충한 것이다.
-동조율이 75%가 되었습니다!
리슈발트가 보고했다. 그리고 직후, 그는 심상치 않은 기척을 감지하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성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주군! 다수의 마물들이 추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벌써 다음 웨이브가 진행되었을 리는 없을 텐데……?”
성준은 다가오는 용족의 목을 베며 대답했다. 리슈발트가 잘못 감지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정신없는 전투가 한 차례 지나가니 이곳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마물 무리의 접근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른 차원 관문에서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리슈발트의 의견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새로 등장한 마물 무리는 종족 연합 오크령의 군대였다.
다른 차원 관문을 통해 상륙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 용족들의 지원 요청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리라.
파벌은 다르지만 하나의 연합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더라도 공통된 적을 향해서는 같은 전선에 서는 게 종족 연합의 특징이었다.
이런 면 덕분에 여러 마물이 모여서 지금까지 하나의 연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 오크들이다!”
“오크령에서 지원군을 보내 주었다!”
용족들의 사기가 상승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쾅! 쾅!
굉음의 연속과 함께 묵직한 뭔가가 날아와 성준의 주위를 강타했다. 이어진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높이 피어올랐다.
“멍청한 오크 놈들! 여기에 아군이 있다! 기수는 어서 공격 중단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라!”
기수가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지만, 오크들은 중형 철포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더러운 오크 놈들이 우리까지 묻어버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기랄! 저 하등 생물들이!”
용족들이 욕설을 내뱉는 모습만 봐도 평소 두 종족 간에 감정이 얼마나 나빴는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성준은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종족 연합 내부에 분열의 징조가 있다면 연합 위원회의 승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승리를 확신하고 서로 점령 경쟁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리슈발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성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느냐를 두고 다투는 점령 경쟁은 제국에서도 흔히 있는 현상이었지만 지금 종족 연합의 용족과 오크가 보이는 것처럼 과격하지는 않았었다.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준은 아군이 있는 곳을 향해서 ‘힐링 스프레이’를 뿌렸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성준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부상자들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준은 대답 대신 오크 무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주력이 포병 부대인 것인지 중형 철포의 모습이 꽤 많이 보였다. 그들은 성준이 있는 용족 무리뿐만 아니라 공격대의 헌터들을 향해서까지 포격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에 제거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석아. 이쪽으로 공격대 헌터들 보내줘. 나는 중형 철포를 처리할게.”
공격대 소속의 헌터들이 용족 무리를 상대할 동안 성준은 오크 무리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용족 무리는 성준의 공격으로 주요 전력 대부분이 무력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난하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무력하게 중형 철포 공격에 노출된 상태로 방어 마법만 전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온다! 검성조 앞으로!”
성준이 용족 무리를 뚫고 나오기 무섭게 중형 철포의 포격과 주술 공격이 쏟아졌다.
성준의 접근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서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찰나의 시간은 벌 수 있었고 그 틈에 오크 검성들이 진형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전력을 다해서 ‘하얀 악마’를 차단한다!”
“부족의 이름을 걸고!”
오크 검성들이 전투의 함성을 토해냈다. 성준은 그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블링크.”
“블링크다!”
“차, 차단 주술을!”
“소용없습니다! 이미 접근했어요!”
오크 제사장이 블링크를 차단하는 주술을 펼치려고 했지만 이미 오크 검성들의 진형 중앙에 성준이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마, 막아……!”
“대응해라!”
“크아아악!”
마침 그곳에 있던 오크 부족장이 성준의 접근을 알아채고 경고했지만 대응해야 할 오크 검성들은 차가운 땅 위에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붉은 피가 그들의 시체를 덮었다.
“으아아아아!”
오크 부족장이 성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로 다른 오크 검성들과 전쟁군주들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오크들은 수가 많습니다. 전력을 다해서 부족장을 즉참하고 다른 오크들을 상대할 때는 마력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리슈발트가 조언했다. 성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 부족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그 모습에 오크 부족장은 창을 내찔렀다. 한 번의 찌르기로 보였지만 수십 번의 공격이었다.
‘환영검보다는 참검이 좋겠어.’
0.1초가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성준은 정면의 오크 부족장이 내찌른 연격의 경로를 모두 읽어냈다.
환영검을 사용할 경우 한 번에 죽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이런 경우 대량의 마력을 소모하더라도 강력한 일격을 펼치는 게 나았다.
“참검.”
차원조차 절단하는 궁극의 참격에 오크 부족장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성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흡수!”
무려 SS급 마물을 일격에 사냥했지만 리슈발트가 말이 없는 걸로 보아 동조율의 상승은 없는 것 같았다.
“전방 병력이 전멸했습니다! 이대로라면 포병대가 위험합니다!”
“‘하얀 악마’가 이미 포병대에 침투해서 휩쓸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지휘부도 위험합니다!”
“추가 지원이 필요합니다!”
성준이 날뛰기 시작하면서 포병대의 중형 철포 포격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진형이 대혼란에 잠겼다.
-포격이 중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부상자들이 소수 있지만 마물 무리를 쉽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밀리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런 것 같았다. 30명의 오크 대전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