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04)
제 1111화
246화. 미트라 대사막 쟁탈전(15)
공간 붕괴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반은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녀가 균열 바깥으로 공격을 한 순간은 오로지 벨리즈와 린파를 내보낸 순간뿐이었다.
하나 그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공격이 아니라, 단지 두 사람이 나갈 길을 여느라 ‘조금’ 힘을 쓴 것일 뿐.
그 힘은 차원의 균열을 찢어발기고, 바깥으로 빠져나가 한동안 대사막 중심부를 휘저어 그곳에 있던 적명족 정찰조를 모조리 몰살했었다.
이제 그녀는 명백한 살의를 실어 정체불명의 적들을 칠 생각이었다.
스릉……!
서늘한 쇳소리가 나며 반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레칸, 그녀가 시그문드를 완성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애검.
검신에 반의 뇌기가 들어서기 시작하자, 마치 맹수가 포효하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레칸은 오랜만에 받은 주인의 뇌기를 아귀처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강도를 비교하면 시그문드조차,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검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레칸은 제작될 때부터 오로지 반의 그 광대한 뇌기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검이었다.
그렇기에 칼날은 여타 명검들보다는 투박하고 자그마한 장식조차 없었다. 어차피 부족한 모든 것은 반이 직접 채우면 그만이었다.
한계까지 응축된 뇌기는 그 칼날을 한없이 날카롭게 벼리고, 검을 타고 끝이 없이 솟구치는 푸른 뇌전은 적들에게 투신의 위엄을 드러낸다.
“음……!”
보호막을 형성하던 뇌기가 반의 광심장과 검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럴수록 투왕들이 견뎌야 할 무게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반의 뇌기가 증폭될수록, 형제들과의 공명도 더욱 단단해졌다.
명왕족은 투신과 공명할 때 가장 강해진다. 보호막은 작아졌으나, 명왕족들은 이제 거대한 한 덩어리의 빛처럼 보였다.
무엇도 그 빛의 군집을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윽고 서서히 반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투신전 본당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라프라로사를 내리찍던 적뇌포와 마력 창들의 궤도가 꺾였다. 뇌기를 버티지 못하고 도중에 소멸하기도 했다.
가끔 유달리 강한 적뇌나 마력은 틀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리꽂히려 했으나, 그때는 반이 레칸을 휘둘러 직접 쳐냈다.
일검에도 수백 갈래의 포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 번 펼쳐진 검기는 적들의 공격을 베고도 무뎌지거나 작아지는 일 없이, 천천히 하늘을 장악해 갔다.
검기와 적뇌, 마력이 백병전을 치르는 군대처럼 뒤엉키고 있었다. 반은 한동안 뻗어 나가는 검기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적들의 기운이 가진 특질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반은 먼저 마력을 주시했다. 적뇌와 달리, 마력 창들은 반의 검기에 닿고도 한 번에 분해되지 않고 잘게 흩어지며 다시금 본래 형태를 되찾으려는 형질을 갖고 있었다.
‘창성의 마력…… 아니, 정확히는 신적인 존재의 권능이로군. 마치 마녀나 솔더렛의 권능처럼 모든 힘에 상성 우위인 힘이다. 마녀의 분신 같은 존재인가? 기묘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군.’
반은 즉시 엘로나에 대한 평가를 끝냈다. 그녀가 보기에 엘로나는 자신이 보유한 초월적인 권능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수련을 통해 얻은 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플이 행한 그 수많은 실험에 유린된 탓에, 사람에 빗대면 엘로나는 손발조차 뜻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테면, 권능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엘로나는 본래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완성된 존재였어야 했다.
이내 반의 시선이 적뇌에 닿았다.
‘……확실히, 이건 진 형제가 말한 명인이라는 생체병기의 뇌기가 아니다. 결속력과 순도에서 격차가 있기는 하나,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유사해. 이건 분명 우리의 아종이라 불러도 될 만한 존재들의 뇌기로군. 바깥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숨어 살던 명왕족이라도 있던 것인가.’
차라리 명인이었다면 불쾌감이 덜 차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들은 그저 명령을 따를 뿐인 생체병기일 테니까.
그러나 같은 명왕족의 한 종, 이를테면 아종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의 공격은, 명백히 도전이었다.
감히 ‘명왕’이라는 이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도전. 혹은, 라프라로사의 명왕족 전체를 부정하겠다는 의지.
그게 반을 분노케 만들고 있었다. 그 분노를 따라 광심장과 레칸에 들어찬 뇌기는 더욱 광폭해졌다.
“명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우리가 여기서 나가거든, 네놈들은 단 하나도 살아서 이 세상에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명왕검 투신기 제1검
섬멸
반이 레칸을 양손으로 쥔 채 횡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형제들은 어금니를 악물며 서로에게 친 보호막을 더 단단하게 결속했다. 레칸을 타고 발산되는 뇌기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때와 달리, 지금은 평전사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기가 하늘을 반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진노한 반의 일격은, 무의 끝에 다다른 사람의 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사납고 거친 기세를 보였다.
그 검기에 닿은 적뇌와 마력 덩어리들은 차마 베였다, 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하게 찢어지고 뜯기고 있었다.
섬멸은 처음에만 직선으로 뻗어 나아갔을 뿐, 이후에는 유영하는 고래처럼 하늘 사방을 휘저으며 적뇌와 마력을 분쇄했다.
살아 있는 먹잇감이 가득 찬 울타리 안에 맹수가 풀린 격이었다.
그러나 계속 균열을 뚫고 새로운 적뇌포와 마력 창이 쏟아지는 탓에, 섬멸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상공을 할퀴었다.
이제 균열 바깥, 대사막에서도 라프라로사의 변화를 알아채고 있었다. 적명족은 난데없이 대사막으로 쏟아지는 반의 뇌기에 기함했고, 엘로나는 보호막을 강화하며 전장에 퍼진 일부 마력을 회수했다.
“갇혔다고 하여 죽은 것이 아니고, 흔적이 없다고 하여 사라진 게 아니다. 이제부터 너흰 끔찍한 날들에 짓밟히고 뭉개질 것이니.”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멸절
츠하아악-!
반의 등 뒤로 시퍼렇게 빛나는 열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 거대하고 푸른 날개는 우선 형제들의 머리 위로 부드럽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껏 고양된 형제들의 포효가 반의 등을 두들겼다.
날개와 마주한 적들의 기운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적뇌는 불가에 놓인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뚝뚝 지상으로 떨어졌고, 창이 깨지며 흩어진 마력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았다.
이어 날개들이 레칸을 따라 일제히 앞으로 기울어지자, 반의 눈이 닿는 곳마다 뇌기의 소용돌이가 번졌다.
겹겹이 펼쳐진 열 쌍의 폭풍이 균열 바깥으로 뇌기를 토해 내고 있었다. 폭음과 함께 차원의 균열들이 찢어졌고, 명왕족들은 조금 전보다도 공간이 급격히 수축하는 고통을 느꼈다.
그 차원의 반동 때문에 반이 지금 명왕군림검을 펼치지 않은 것이다.
이미 벨리즈와 린파를 내보냈고, 바깥에선 분명 진이 남은 형제들을 꺼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터였다.
지금 굳이 형제들을 더 위험에 빠트릴 필요가 없었다.
처음 진으로부터 해방을 약속받은 그날부터, 단 한 번도 그 믿음은 흔들린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나가기 전까지, 그 가늘고 초라한 목숨을 잘 붙잡고 있도록.”
마지막으로 반은 자신의 정면에 놓인, 가장 큰 균열을 노려보았다.
방금까지의 격돌로 인해 새로 형성된 균열이었다. 육안으로는 균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으나, 반은 바로 앞에 서 있는 듯 생생하게 적들을 느꼈다.
날개와 소용돌이를 형성한 뇌기가 레칸의 검신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적들은, 차원 너머에서 시퍼렇게 타오르는 반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반 또한 그들의 감정을 느꼈다. 처음으로 검을 쥔 바로 그날부터 지금까지, 반이 타인으로부터 느낀 가장 익숙한 감정.
공포, 그리고 절망.
차원과 차원이라는 아득한 거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공포에 빠진 적들의 얼굴이 반의 두 눈동자에 삼켜지고 있었다.
일검.
섬광처럼 내지른 반의 일격이 차원의 균열로, 그 너머에서 내내 안전하다고 믿은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 * *
반이 일격을 내지르기 직전, 시마트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함교를 열어라!”
그 역시 창성이기에 직감한 것이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이 위험한 것이, 곧 차원의 균열을 빠져나와 공중요새와 함대를 덮치리라고.
함교 바깥엔 방금까지 균열을 빠져나온 반의 뇌기와 적뇌, 그리고 엘로나의 마력이 뒤섞여 마경을 펼치고 있었다.
시마트는 테탈론을 휘둘러 길을 열며 균열 앞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함대를 지켜야 하는 그와 달리 엘로나는 이미 물러나며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피빌의 앞으로 포진한 함대는 단 한 척도 남김없이 전멸했을 것이다.
“흡!”
시마트는 균열 위로 있는 힘껏 테탈론을 휘둘렀다. 함정이라도 밟은 듯 불길한 기분에 빠진 채로.
크즈즈즉……!
잠시 후, 균열 바깥으로 반의 검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적명족들은 시마트가 그것을 받아친 순간에 맞춰 공중요새의 포격을 지원했다.
적명족과 엘로나의 공격이 차원의 균열을 통과하며 약해졌듯이, 반의 검기도 온전히 인세에 닿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그 검기는 최전방을 지키던 적명족 함대를 말 그대로 지워 버리며 막 그 뒤에 다다른 시마트까지 덮쳤다. 이미 시마트가 급하게 펼친 적뇌는 죄다 찢어진 상태였다.
반의 검기와 격돌한 순간, 시마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검기가 견디기 버거울 만큼 무겁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중요새의 지원이 없더라도, 본래의 위력을 이토록 많이 잃은 검기는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그저, 이해할 수 없기에 뇌리가 잠시 멈춘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채로 닿았음에도, 반의 검은 시마트마저 일순 얼어붙게 만드는 격을 품고 있었다.
‘이게, 정녕 청명족의 후손이란 말인가……?’
오싹한 한기가 목덜미를 찔렀다.
뒤이어 울분이 치솟기도 했다. 대봉인에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못한 청명은 이런 후손을 남겼건만, 적명은 아무런 축복이 따르지 않는 것 같았다.
“전 함대! 라프라로사와의 거리를 더……!”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시마트는 한 번 더 균열을 뚫고 다가오는 새로운 검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 검기는 방금처럼 사납고 거대하지 않았다.
실처럼 가늘고, 빛처럼 빠르며, 한밤처럼 조용한, 끊거나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그 검기를 받아치기 위해 시마트는 테탈론을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검기가 노린 것은, 적명족이 아니라 엘로나 지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