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3)
제 111화
35화. 콜론의 비극(3)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칠색조를 미리 보내 볼 걸 그랬군요.”
카시미르가 난처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이 콜론에 오기 전 칠색조를 파견하지 않은 이유는 행여 꼬리가 밟힐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또한 콜론은 한적한 관광지나 다름없던 만큼, 굳이 사전 답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
“네 부하들을 미리 보냈어도 여기가 제한 구역이 된 건 어차피 변함이 없었겠지.”
“그건 그렇습다만…….”
모두 당황한 와중, 진은 자신이 회귀하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회귀 전에 콜론 유적지는 늘 개방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자의 고발도 가능했던 건데…… 아무래도 내가 생도 시절 여기서 임무를 수행했던 게 영향을 미쳤나 보군.’
당시 진은 유적지에서 생체 골렘이 된 용병들을 처치하고, 곳곳에 방화를 저지른 채 본가로 복귀했었다.
지플은 그걸 테러나 침입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닌, 단순 화재 사건으로 발표했고 말이다.
책임감.
문득 그런 단어가 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회귀 전엔 지금으로부터 11년 뒤 기자의 고발에 전 세계가 지플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로 인해 운명이 바뀌었으니…… 적어도 그보다는 빨리 알려져야 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콜론의 원주민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회귀로 인해 그들의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라오사의 바람대로 내가 그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다만, 이런 짓거릴 하고 있는 지플의 수뇌부와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지.’
진이 지플의 용 문양이 그려진 제한 구역 푯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꼬마, 어쩔 거냐? 무시하고 진입하는 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안쪽 상황, 전력을 확인할 수 없으니 말이야.”
“맞습니다. 게다가 지플은 여길 금지 마법 실험장으로도 사용했었다면서요? 경비 병력으로 배치된 마법사가 적지는 않을 것 같군요, 진 공자.”
“음…… 금지 마법 실험에 대한 흔적은 다 지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한테 노출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푯말,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카시미르와 무라칸의 시선이 진이 가리킨 푯말로 향했다.
“뭐가?”
“철조망만 설치해 둔 채, 경비도, 경계 마법도 없이 푯말만 달랑 하나잖아. 지플이 중요한 제한 구역을 이런 식으로 관리하진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 말대로 세계 최대 가문의 제한 구역이라기엔 지나치게 허술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진 공자. 물론 푯말에 지플의 문양이 있는 이상, 경비가 없다 할지라도 함부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이들은 세상에 별로 없을 테지만…… 허술한 건 사실이군요.”
“제가 임무 때문에 여길 처음 찾아왔을 땐, 하급 유물만 보관한 창고에도 꽤 많은 경계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지플은 이 땅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라오사 님은 지플이 콜론 원주민들의 신물을 찾고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수백 년이나 원주민들을 탄압한 건데, 이렇게 방치한다는 건. 이미 신물을 찾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군요.”
“글쎄요, 수백 년이나 원주민들을 쥐어짜 내고도 허탕만 친 데다, 금지 마법 실험까지 외부인에게 한 차례 노출되었으니 그냥 놔 버렸을지도 모르죠.”
진은 지플이 ‘거울’을 벌써 찾았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지플의 아카데미에서 벌써 7성 양산 마법사들이 쏟아지고 있었을 테니까.
“게다가 이 푯말, 보면 볼수록 너무 허접해요. 철도 아니고 나무인데다 삐뚤삐뚤하기까지, 내부 관리인이 대충 박아놓은 느낌입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여행자들 찾아오는 게 귀찮아서, 지플 본가에 공문 보내서 제한 구역 허가 받고 그냥 휴식지로 한 것일지도. 어느 단체든 나태한 관리인은 있는 법이니까요.”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더 잴 필요가 없었다.
세 사람은 그냥 푯말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고, 내부로 들어설수록 추측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보도 곳곳에 잡초가 피어 있다. 관리가 안 된다는 뜻,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야생 동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내부에 사람이 있긴 있다는 건데.’
박물관, 창고, 관리자들의 숙소 등 건물들도 모두 그대로였다.
심지어 진이 임무 때 저지른 방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도 했는데, 해가 지나도록 그걸 방치했다는 건 지플이 이 땅을 버렸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어, 저기 인간이 좀 보이는데. 라오사와 똑같은 홍인이로군.”
원주민들의 모습이 보인 건 진입로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일행은 즉시 나무에 몸을 숨긴 채 잠시간 그들을 관찰했는데,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아직 여기 있다는 건, 거울은 아직 여기에 있다는 거다. 그런데 지플은 대체 왜 여길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거지……?’
아까 카시미르에게 말한 것처럼 수백 년이나 허탕만 쳤으니 그냥 포기한 것일까?
진이 그런 의문을 가진 찰나, 무리 지은 원주민들 사이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은발의 소유자. 그는 원주민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술에 취한 듯 보였다.
‘베라딘과 머리색이 똑같은 남자…… 그리고 손에 저건 술병처럼 보이는데, 혹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생에 ‘마탑의 광인’이라는 이명으로 이름을 떨쳤던 마법사.
‘뮤론 지플?’
켈리악 지플의 여섯째 아들.
뮤론은 광인이라는 이명답게, 툭하면 기행을 일삼아 곧잘 세간의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지플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순혈이라 더욱 부각되었던.
“공자, 저자는 아무래도 뮤론 지플 같군요. 은발은 순혈 지플의 상징이죠. 그리고 순혈 지플 중에 대낮부터 술병을 들고 다닐 만한 사람은 뮤론 하나뿐입니다.”
카시미르도 뮤론을 알고 있었다.
“뭐? 순혈 지플? 그런 놈이 왜 이런 오지에 처박혀있어?”
“무라칸 님, 뮤론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아 지플 내에서 대우가 별로 좋지 않은 인물입니다. 얼마 전까진 지플 7마탑의 탑주였다고 들었는데, 좌천된 모양이로군요. 휴가를 즐기고 있는 중이거나.”
“흐음, 순혈 지플이 있다면 호위 마법사들도 꽤 되겠군. 대충 호위가 얼마나 되는지 규모를 알아보고, 놈들을 치든지 후퇴하든지 결정하면 되겠어.”
“일단 뮤론이 건물로 다시 들어가면 원주민들과 먼저 접선해 보자. 그들에게 내부 사정을 듣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할 테니까.”
세 사람은 그렇게 나무 뒤에 숨은 채 뮤론이 들어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 * *
문제는 밤이 될 때까지, 뮤론이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저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벌써 여덟 시간째 한자리에서 술을 퍼먹고 있잖아? 왜 화장실도 안 가는 건데?”
뮤론은 모습을 드러낸 직후, 곧장 그 자리에 앉아 혼자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리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고 말이다.
“……뮤론 지플이 말술이라는 소문은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건 좀 심하군요.”
그래도 숨어서 그를 지켜보는 동안 아예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뮤론이 종종 혼자 떠들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세 사람에겐 정보가 된 것이다.
우선 뮤론은 별다른 수행원이 없는 듯 보였다.
또한 뮤론이 콜론에 온 이유는 가문 차원에서 그에게 내린 ‘징계’인 것 같았다.
-크하하, 망할 원로 새끼들이 감히 이 몸을 이런 벌레 틈바구니로 보냈단 말이지. 크히힛, 이 귀여운 놈들…… 술 더 가져와!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른 순간이 꽤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의 뮤론은 완전히 무방비해 보였으나 원주민들은 감히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
심지어 뮤론이 조금만 손을 크게 휘저어도 원주민들은 크게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계속 지켜보니 다른 호위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저놈 모가지 따고 원주민들 데리고 탈출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무라칸이 짜증스러운 듯 이를 갈았다.
“무라칸 님, 뮤론 지플은 8성 마법사입니다. 게다가 7마탑의 탑주인 만큼, 온갖 아티팩트도 소유하고 있을 테고요.”
“그게 뭐가 문제야? 미물, 내가 힘을 많이 잃긴 했다지만 8성 마법사 하나 어쩌지 못할 것 같냐? 게다가 꼬마도 있고, 네놈도 있잖아.”
“평범한 8성이 아니라 순혈 지플이잖냐, 무라칸. 순혈 지플을 죽이는 건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자칫하면 얼마 전에 안드레이를 죽인 것까지 포함해서, 크게 번질 수도 있어.”
“설마 내가 그걸 모르겠냐. 답답하니까 그렇지, 답답하니까!”
차라리 내부에 지플 소속의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다수 포진한 상태였다면, 고민할 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싸워서 이긴 다음 원주민들을 탈출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뮤론이 순혈이라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시기가 안 좋다. 지금 저놈을 죽였다간 까딱하면 피바람이 불어.’
안드레이의 죽음 이후, 룬칸델과 지플의 냉전은 한층 더 수위가 높아진 상태였다.
룬칸델이 죽였다는 증거가 없기에 지플도 가만히 있는 것이지만, 순혈이 하나 더 죽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암살도 불가능할 확률이 높았다. 뮤론이 무방비하다 할지라도, 자기가 잠드는 공간만큼은 확실하게 경계 마법을 걸어 뒀을 테니.
‘뮤론을 죽이더라도 지플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명분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명분은 금지 마법 실험에 대한 증거다. 뮤론이 죽더라도, 실험에 대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지플을 억제할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지 마법 실험 흔적은 이미 다 치워진 게 확실…… 어?’
돌연 진이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생각하던 도중, 놓치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라칸! 라오사 님이, 분명 남은 원주민이 이백여 명쯤 된다고 했었지?”
“그랬지. 그래서 미물이 일부러 범선까지 대기시켜 놨잖아.”
“……그런데 우리가 지금껏 본 원주민은 몇 명이었지?”
“대충 오십…… 어?”
무라칸과 카시미르가 동시에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이 지금껏 본 원주민은 오십이 채 되지 않았다. 뮤론의 근처를 다녀간 이들을 모두 포함해도 말이다.
“남은 원주민들이 그냥 쉬고 있을 것 같진 않고…… 설마 생체 골렘 실험을 또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뮤론이 생체 골렘 실험을 하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명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뮤론이 잠들면 건물들을 확인해 보자고.”
흠칫!
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이 동시에 진입로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부스럭, 부스럭…… 누군가가 서서히 유적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우리처럼 허가 없이 들어온 사람이야.’
그러나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누구냐.”
진이 영기로 기척을 지운 채 새로운 침입자의 등 뒤에 단검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