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4)
제 111화
35화. 콜론의 비극(4)
칼이 등 뒤에 닿자마자 석상처럼 굳어버리는 침입자.
당연하게도 그는 몹시 긴장한 듯 보였고, 진보다 키가 조금 작은 남자였다.
“두 번 묻지 않겠다. 신원을 밝혀라.”
와하하……!
멀리서부터 뮤론 지플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라칸과 카시미르는 뮤론과 남자 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저, 저는.”
꿀꺽!
남자가 굵은 침을 삼키며 몸에 힘을 주었다. 공포 때문에 덜덜 떨리려는 몸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그 대목에서 진은 남자가 꽤 괜찮은 근성을 가진 인물이라 생각했다. 무인이나 마법사가 아닌, 명백한 일반인인 것 같으니 말이다.
“디노…… 디노 재글런. 기자입니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디노 재글런이라면, 그 기자잖아!?’
회귀 전, 지플의 패륜과 콜론의 비극을 낱낱이 고발한 유일한 기자. 디노 재글런. 진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이 단검을 거뒀다.
“돌아서라.”
천천히 뒤돌아선 디노는 꽤나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20대 초반쯤으로 보였으나 전체적으로 그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
그 얼굴을 보자마자 진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초반, 비실비실해 보이는 몸. 이런 애송이가 나중엔 지플을 상대로 겁도 없이 그런 기사를 쓴단 말이지. 게다가 벌써부터 콜론을 조사하고 있다면, 무려 10년 가까이 정보를 캐냈단 말인가.’
장하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가진 것도, 배경도 없는 이 디노라는 남자는 단 하나, 투철한 직업 정신만으로 지플을 고발했던 것이다.
돌아선 디노는 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진은 이미 뮬타의 룬을 발동시켜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겁먹은 눈빛으로 진을 올려다보는 디노는 탐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과연 이 투구에 가려진 남자가 지플의 하수인일지, 아니면 유물 탈취범일지, 그도 아니면 자신과 같이 콜론을 위해 찾아온 사람일지.
“기자라고? 기삿거리라도 찾으러 온 거냐?”
진이 무뚝뚝하게 묻자 디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무슨 내용이지?”
“……말씀드리기에 앞서, 혹 여러분은 어느 소속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캬! 고놈 대쪽 같구만. 가끔 저렇게 뭣도 없는데 겁대가리 상실한 인간을 보면 정말 흥미롭단 말이지. 특히 그게 기자라면 말이야.”
무라칸이 키득대며 진 쪽으로 다가왔다.
함께 다가온 카시미르는 품속에서 복면을 꺼내 하나는 자신이 쓰고, 하나는 무라칸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이미 이 친구에게 얼굴이 보였잖습니까.”
“그래도 지금이라도 가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 나 이거 쓰기 싫은데.”
“써.”
“쳇, 알았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디노는 단숨에 이들 파티의 대장이 누구인지 알아차렸고 말이다.
‘아직 목소리에 소년티가 묻어나는데…… 대장이었군. 평범한 도적이나 용병 따윈 아니다. 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야? 악인 같지는 않은데.’
두 사람이 부스럭대며 복면을 쓰자 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치지 않을 테니 긴장 풀어. 우리가 어느 소속이냐고 물었나, 방금. 음…… 그냥 지나가던 행인들이라 해 두지.”
“행인… 이라고요?”
“묻지 말라는 뜻이야. 그럼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다. 여기 특종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면 저쪽에서 술 먹고 있는 지플 여섯째한테 용돈이라도 받으러 온 건가?”
진이 뮤론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일부러 디노가 굴욕을 느낄 만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래야 이 사명감 가득한 청년이 목적을 밝힐 테고, 자신도 목적을 밝혀 같은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디노가 쓴웃음을 지었다.
“용돈이라…… 그래요, 그런 기자들도 많죠. 전주들의 입맛대로만 기사를 쓰는 썩은 펜대들. 여러분이 지플의 하수인이라면 나는 죽은 목숨이겠군요. 나는 저 쓰레기를 고발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진이 투구 속으로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멋진 친구로군.’
용기는 힘이 없을 때 더 빛을 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은 이 디노라는 인물에게 크나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디노가 이번 일에 큰 실마리를 제공해 주리란 강렬한 직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뮤론 지플을 고발하겠다. 한낱 말단 기자 따위가! 내가 올해 들은 농담 중 가장 인상적이야.”
“당신들은 지플의 하수인입니까? 내가 뮤론을 고발한다고 말했으니, 날 죽일 겁니까?”
그때쯤 디노는 두려움을 잊은 듯 보였다. 이상하게도 ‘해치지 않겠다’던 진의 말에 묘한 신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만에. 우린 친구의 부탁을 받고 저쪽 원주민들을 구출하러 왔다. 네게 소속과 신분을 밝힐 순 없지만, 기자 디노 재글런. 왠지 우린 목적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디노가 눈을 끔뻑이며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디노의 가슴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요동치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 외로운 싸움 속에서, 우연히 동지를 만난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당신들, 콜론 원주민들의 사정을 알고 있군요……!”
“자세히는 몰라. 그들이 수백 년 전 지플에게 정복된 뒤, 노예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꼬마, 이 녀석한테 그런 걸 다 말해 줘도 되겠어?”
무라칸이 끼어들자 카시미르가 조심스레 그를 제지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손으로 무라칸의 입을 틀어막으며 몇 걸음 물러선 것이다.
‘웁. 무슨 짓이냐, 미물. 미쳤냐?’
당연히 무라칸은 맹수 같은 눈빛으로 미물, 아니. 카시미르를 쏘아보았고.
‘진 공자는 이 기자를 통해 뮤론 지플을 단죄해도 될 만한 명분을 얻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냥 지켜보시죠.’
카시미르는 은근한 승리감에 취해 그렇게 속삭였다. 그의 말대로 진은 디노를 이용해 명분을 얻을 생각이었다.
안드레이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순혈 지플이 사망하고도 거대 세력 간에 피바람이 불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게다가 디노라면 이미 지플의 콜론 탄압에 대한 여러 정황과 증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이렇게 목숨 걸고 지플의 제한 구역을 찾아올 정도니까.’
물론 확인할 사안이 몇 가지 있기는 했다.
“디노, 우린 사실 낮에 여길 도착해 지금까지 뮤론을 지켜보고 있다.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적절한 순간을 모색하고 있던 거지. 우리 목적은 뮤론 암살이 아니라 원주민 구출이니까.”
우선 디노가 얼마만큼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가. 어쩌면 지금의 디노는 열의만 있을 뿐, 실질적인 정보는 쥐고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노는 즉각 진을 만족시켜 주었다.
“내부엔 뮤론 한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당신들에게 원주민들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3년 전 탈출에 성공한 라오사 신녀일 테지요. 맞습니까?”
“설마 그때부터 벌써 여길 조사하고 있던 거냐?”
“그건 아닙니다. 제가 콜론을 본격적으로 조사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라오사 신녀는 원주민들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이름이고요.”
디노의 이야기는 이랬다.
라오사가 탈출한 후 지플은 꽤나 극렬하게 남은 원주민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작년에 화재 사고가 벌어진 이후론 콜론을 폐쇄한 뒤 뮤론 한 사람만 보내 관리하고 있다고.
“그 모든 게 콜론의 신물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전까진 지플이 신물을 얻는 일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뮤론만 남겨 뒀어요. 아마 전보다 흥미가 떨어진 것이겠죠. 300년 이상이나 얻지 못하고 있으니.”
디노가 품속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진에게 내밀었다.
뮤론이 콜론에 온 후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가 빼곡히 적힌 노트였다.
1796년 1월 3일.
원주민 세 명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뮤론의 지하실로 끌려간 듯하다.
1796년 1월 5일.
나와 접촉하던 원주민들이 또 사라졌다. ‘라티카 티카 마무티카’라는 또 다른 원주민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바로 뮤론은 모종의 실험을 자행하는 듯 보였다…… 티카, 그녀의 떨리는 눈빛이 지워지질 않는다.
차분히 노트를 살펴보던 진은 ‘실험’이라는 단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잘도 이런 걸 들고 다녔군. 뮤론에게 이 노트가 보이기라도 하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텐데.”
“어차피 놈에게 내 의도가 읽히는 순간 끝입니다. 이건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감이죠. 노트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뮤론은 원주민들을 실험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확실한가?”
“확신합니다. 원주민들에게 콜론이 폐쇄되기 전, 이곳에서 생체 골렘 실험이 있었다는 증언도 들은 적이 있으니까요. 제게 증언한 원주민들은 그게 생체 골렘인지도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디노는 진이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었다.
“뮤론의 지하실이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놈이 오기 전엔 원주민들의 숫자가 200을 넘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이 지하실로 끌려갔고, 남은 건 50명 남짓입니다.”
으득, 디노가 이를 악물었다. 그사이 진은 계속 노트를 살펴보았는데, 디노는 콜론 원주민들과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하실.
그 현장을 보존하거나 스케치해 공론화시킬 수만 있다면, 뮤론을 죽여도 될 만한 명분을 얻을 수 있을 터.
“최근엔 원주민들을 실험체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물을 얻기 위해서인지, 최소한의 인원을 남긴 것 같았어요.”
계속해서 노트를 읽는 진.
1796년 2월 6일.
취재 도중 뮤론에게 발각되었다. 다행히도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내게도 술을 권하며 별다른 해를 가하지 않았다. 이를 잘 이용하면 뮤론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1796년 2월 7일.
뮤론이 날 기억하고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찾아갔는데, 다행히 그는 날 기억했다. 지플의 제한 구역을 찾아온 건 용서해 줄 테니 가끔 술 상대를 해 주러 찾아오라는 말까지. 성공이다.
그건 불과 2주 전이었다.
“……허. 뮤론에게 접근하는 걸 성공했군?”
디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내가 찾아온 것도 그를 지켜본 후, 술 상대를 해 주며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뮤론은 항상 저 한가운데 술판을 벌이고 자리를 뜨는 법이 없거든요.”
이쯤 되자 카시미르와 무라칸도 놀라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낮부터 대기하며 전전긍긍했는데, 우연히 만난 기자 덕에 내부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여러분과의 만남이 운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내가 뮤론의 주의를 끌 테니, 여러분이 지하실을 확인해 보는 건.”
잠시 디노를 쳐다보던 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