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4)
제 1054화
251화. 대적자들(4)
오르갈이 떠나고도 동료들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며 척결 대상이었던 킨젤로는 아군이 되었고, 지금껏 연합이 확인한 지플의 힘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었다.
특히 다중세계의 자신을 본 다섯 사람은 더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산드라조차 난동을 멈추고 머릿속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단 난 집사장께 이 이야기를 보고드려야겠군.”
“비궁을 비롯한 동맹들에겐 제가 상세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메리와 카시미르가 통신기를 들었다. 연합 전체에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흠, 판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구만. 오르갈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 마신대라는 새끼들은 언제든 우릴 쳐들어올 수 있는 건가? 그러니까, 놈들이 세계 간 간섭에 따르는 제약을 극복한다면 말이지.”
“그렇겠지, 무라칸 친구.”
“거참, 영 현실감이 없기는 하구만. 지금 연합 전력이면 뭐가 오든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타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다른 세계의 지플이라면.”
진이 입을 열자 동료들의 시선이 모였다.
“나는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다른 세계를 전부 정리했는데, 여기만 아직 끝을 못 낸 거니까.”
이 세계만 끝내면, 지플은 전 차원의 유일한 패자가 된다.
목표가 눈앞에 있으니 그들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제약이 있다고 하지만, 놈들은 우릴 관측할 수 있고 우린 놈들을 관측할 수 없어.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제약이란 건 깨지는 중이라고 봐야겠지. 놈들은 이미 수많은 세계에서 승리를 거뒀다. 우린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지만, 놈들은 아마 그보다도 훨씬 강할 테지.”
단일 차원만 상대한다면 모를까, ‘차원 연합’, 혹은 ‘통합 지플’이라 부를 만한 세력과는 결코 정면 승부로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속전속결로 지플을 끝내야 해. 놈들이 다른 세계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놈들을 끝내도 다른 지플이 여길 침공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지.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우선, 반 형제. 황금함이 복귀하면 즉시 이야기의 탑 추적을 시작해주십시오. 룬칸델 집사장 르엣 님이 함께할 겁니다.”
르엣은 현재 룬칸델의 내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페트로에게 그 일을 맡기고 르엣도 발레리아처럼 현장을 뛰어야 할 때였다. 그녀 또한 기록 능력자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다.”
“잠정적이긴 하나 킨젤로가 아군이 되었으니, 본토 방어에 투자되는 전력은 대폭 축소하겠습니다. 현 상황만 보면, 지플이 당장 우릴 침공하려고 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무엇보다 놈들도 우리처럼 타 차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면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맞는 말이지. 버티면 이기는 싸움일 테니. 마신석에 의한 조작이라는 수를 제외한 전력에선 우리가 압도적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탑은 현재 공중요새처럼 이동이 가능한 상태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록을 추적할 수 없도록 탑 근처에 계속 마신석이 모종의 조작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수비에 최적화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저와 무라칸, 그리고 루나 누님을 비롯한 초인들도 황금함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이야기의 탑을 추적할 겁니다.”
바멀 연합의 오랜 염원, ‘황금함대’는 이제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 상태다. 라프라로사가 해방되며 기술적 문제들이 대부분 극복된 덕이었다. 따라서 초인들은 모두 황금함을 타고 탑을 추적할 예정이었다.
“함대장 편성은 반 형제와 국왕께서 맡아줄 겁니다. 그리고 조작에 대비해서, 추적은 언제나 창성이나 기록 능력자를 보유한 상태로만 진행합니다.”
창성이 가진 ‘존재의 힘’, 그리고 기록 마법. 전자는 후자에 비해 다소 부족하나, 그래도 역사 조작을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다. 황금함이 아무리 많아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필요했다.
“수비에 전념하면서도, 놈들은 일반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위엄을 드러낼 겁니다. 그때 과거처럼 지플의 힘에 동조하는 세력이 나타날 수 있으니, 그 사태를 예방하고 진압하는 건 퀴칸텔 님이 맡아주십시오. 병력은 룬칸델과 티칸에서 제공할 겁니다.”
“알겠어. 하긴, 어리석은 놈들이 많기는 하지.”
“그리고 가네스토 추적은 이야기의 탑을 찾는 동안 당연히 병행되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오르갈에게 요청해 꿈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군요. 그리고 제트.”
“예이, 나리!”
“지금 즉시 진마계에 연락해서 실키아와 만날 수 있는 일정을 잡아.”
실키아 아르시아.
진은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진마계에서 그녀는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인물로,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규모 차원 이동’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밖에도실키아에겐 능력이더있어. 바셋경은그녀스스로도 아직자신의힘을 다깨우치지못했다고말했지. 그러니시간이좀지난후, 그녀의힘이필요할땐 언제든우리에게연락해. 아니면실키아가먼저 연락을할지도?
바셋은 생전에 실키아를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라 표현했고, 그녀가 가진 차원 이동 능력은 이미 그 자체로 신적인 권능이라 해도 무방했다.
진은 어쩌면 그 힘이 지플을 상대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플의 조작을 뚫고 이야기의 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차원문, 혹은 타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통로.
물론 실키아가 그런 일을 반드시 해내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리 작아도 들여다봐야 할 때였다. 애초에 그 두 가지가 아니어도 실키아의 권능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또한 진마계는 여러모로 다시 살펴야 할 땅이기도 했다.
지토로부터 해방된 지난 두 달 동안, 진마계는 재건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켈리악이 남긴 ‘멸망의 불’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으니, 재건에 더해 본격적으로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진마계에 남은 태양신의 제단을 찾는 것. 만일 그가 ‘유지’를 원하는 킨젤로의 자아라면, 든든한 아군이 될 것이다. 그 반대라면 블리기에트처럼 부활하기 전에 소멸시켜야 했다.
“알겠습니다요!”
실키아를 만나는 것 외에, 다른 모든 일엔 오르갈의 말대로 발레리아가 가장 중요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돌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니, 다들 각별히 주의해주십시오.”
이내 진은 발레리아를 만나기 위해 회의실을 나섰다.
‘격납고, 붉은부엉이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겠지.’
모두 머릿속이 무겁듯 진 또한 그랬다.
회귀.
격납고로 가는 동안, 진은 회귀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는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밝힐 때가 다가오지 않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엔 힘이 없어서 밝힐 수 없었다. 밝힐 이유가 없기도 했고. 힘을 가진 후엔 설명할 수가 없어서 밝힐 수 없었지.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합의 동료들은 진이 회귀자였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를 탓하거나 등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진의 회귀로 인해 삶이 바뀐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그들 모두가 진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아직 내가 회귀하기 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없고, 누군가는 반드시 내 회귀로 인해 불행해졌다.’
지금까지 그 부채감을 헤아려준 유일한 존재는, 소멸하기 직전의 아율라뿐이다.
-네가 가는 길에 놓인 죽음들은 너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너를 그렇게 만든 존재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네가 그 길의 끝에 도달할 때…… 어쩌면 너는 그렇게 많은 죽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가 창성이 되자마자 재생의 권능을 얻은 이유가 있을 것이야.
아율라가 한 말은 분명 위로가 되었으나, 아직 현실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재생의 권능…… 이 힘이 그들이 겪은 불행을 다 되돌릴 수 있을까, 과연.’
불가능하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회귀자로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지금 진이 회귀 사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실키아의 힘을 살펴보려 하듯이, 자신의 회귀에도 무언가 사태를 돌파할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건 두렵지 않았다. 만에 하나 동료들이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에 실망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운 건 오로지 자신의 회귀가 세상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발레리아.”
진이 붉은부엉이의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발레리아는 조종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왔어?”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아까 회의실에서 나는, 너한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런 말들을 했던 게 아니야. 알지?”
“알지. 다만…….”
“네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발레리아는 또 한 번 혼카 섬에서 진을 만난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 진은 사실상 ‘비밀’의 존재를 알렸고, 발레리아는 일부러 대답을 듣지 않았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맞아.”
진이 결심한 듯 뒷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발레리아는 고개를 저어 그를 말렸다.
“하지 마.”
“어?”
“나도 엄청나게 궁금하긴 한데, 그게 무엇이든 지금은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현실적인 이유?”
발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에게 다가섰다.
“솔직히 네 비밀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되었어. 너는 모르는 내 개인적인 체험들이 몇 개 있었고, 이번에 오르갈이 가져온 정보는 쐐기나 다름이 없었지.”
개인적인 체험이란, 발레리아가 진과 함께하며 겪은 이상한 일들을 뜻했다. 가령, 그가 식당에서 전생의 발레리아가 즐겨 먹던 음식을 그대로 주문한 일 같은 것이었다.
“그럼 왜…….”
“난 네 비밀이 지금 이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아마 오르갈이나 헬루람과의 만남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일 거야. 그리고 오르갈은 말했지. 자신과 헬루람의 만남은 타 차원의 지플들이 가진 완성된 마신석에 기록될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의 만남을 지플들이 인지하게 될 거라고.”
발레리아는 경계하고 있었다.
진이 비밀을 고백하는 순간, 완성된 타 차원의 마신석들은 그 내용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완성된 마신석들이 이 세계의 모든 걸 기록할 순 없을 거야. 제약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들, 오르갈과 헬루람의 만남이나…… 네 비밀 같은 건 잡아낼 가능성이 높겠지? 따라서, 네 비밀이 밝혀지면 우린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를 잃게 되는 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말하면 안 된다고 한 거야,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