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5)
제 1055화
251화. 대적자들(5)
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발레리아는 옳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만일 그의 회귀만이 지플이 모르는 유일한 수라면, 결코 발설하면 안 될 문제였다.
“진,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겠지?”
“이해했어.”
“나 말고, 살면서 누군가 네 비밀을 눈치챈 적은 있어?”
있었다.
키다드 홀을 죽일 때 진은 직접 복수까지 ‘44년’이 걸렸다는 이야길 했었고, 론은 창성에 오른 후 검황지의 빛이 될 때 진의 회귀를 알아차렸다. 아율라 또한 소멸 직전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켈리악은, 키다드 홀을 통해 44년이라는 키워드를 전해듣고 진을 떠본 적이 있었다.
진은 회귀와 44년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고 이런 내용을 발레리아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인지한 건 론 경과 아율라 님, 둘뿐이군. 다행이네. 마신대가 완성된 마신석들로 이 세계를 분석하고 있다면, 아직 네 비밀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 무엇보다, 분기점 이전 시점 같거든…….”
“분기점?”
“헬루람은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불멸자인데, 최근 들어서야 다중세계의 진실을 깨닫고 오르갈을 만났지. 나는 그 이유를 분기점이라고 생각해. 세계가 어느 분기점에 들어서야 이런 정보를 알 수 있게 되는 거지. 특별히 신격이 높은 존재들에 한해서.”
발레리아가 분기점에 대한 가설로 생각한 건 다름과 같았다.
첫째, 타 차원이 이 세계에 간섭을 시작한 경우.
둘째, 세계의 역사가 일정 구간에 다다른 경우.
셋째, 타 차원의 히스터가 적절한 구간에 일부러 해당 차원으로 정보를 전달한 경우.
“셋 다 가능성이 있어. 어쨌거나 누군가 다중세계를 인식하기까지는 분명 특별한 조건이 필요할 테니, 내내 방관자처럼 지내던 헬루람이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지. 그리고 네 비밀이 밝혀졌거나, 밝혀질 수 있던 순간들은 모두 헬루람이 다중세계를 인식하기 전이야. 때문에 마신대가 그 정보를 알아내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내 추측이고. 간섭 이전일 테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나, 주의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이 가설을 제외하면 회귀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도 맞지만, 반드시 밝혀야만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솔더렛의 비밀을 어서 밝혀주시면 좋겠군.”
“나도 궁금해. 오르갈의 말대로라면 솔더렛과 나 사이에도 어떤 접점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감이 잘 안 잡혀.”
“기다려보자고. 어쨌거나 고마워, 실수할 뻔했다.”
그 말에 발레리아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잠깐만 시간 내서 나랑 여기서 차나 한잔 마셔. 마시고 일하자.”
“좋지.”
차를 끓이는 동안, 진은 왠지 옛적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귀하기 전, 발레리아와 스승과 제자로서 여행하던 그 시절 같았다.
* * *
“꼬마, 너 이 자식 무슨 짓이야…….”
다음 날 아침.
무라칸은 도끼눈을 뜨며 진을 노려보았다.
“왜?”
“왜? 왜냐고? 넌 어젯밤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쭉 역사쟁이와 함께 있었다…… 그것도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그게 왜?”
“왜? 왜냐고!? 하! 설명해주지, 그건 말이다. 나는 딸기파이랑 한 번도 그런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네놈 눈치를 보느라고 말이다. 너 뭐 했냐!?”
“차 마셨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차만 마셨어? 설마 손이라도 잡은 건 아니겠지!?”
진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 뭔…… 시끄럽고 티칸이나 잘 지키고 있어. 난 가서 진마계 친구들 만나고 올 거니까. 이제 황금함대 완성되고 본격적으로 탑 추적이 시작되면 시간이 하나도 없을 테니, 딸…… 아니, 길리한테 데이트라도 신청해보든지.”
“뭣!? 데이트!?”
“그리고 난 눈치 준 적 없다. 네 접근 방식이 문제였겠지……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딸기파이는, 아니. 하, 길리랑 연인이 되는 건 포기해라.”
그길로 무라칸은 길리의 방을 찾았다. 그녀는 이제 막 일어나서 방을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딸기파이여!”
“무라칸 님?”
“오늘 시간 있지!?”
“시간이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으시는…….”
무라칸은 오늘따라 길리가 더 예뻐 보인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잔뜩 신이 나서 흥분한 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썩 보기 아름답지 않을 것 같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이건 아닌 것 같군. 다시 오지.”
“예?”
돌아선 무라칸은 생각했다.
이 티칸에서 옷을 가장 멋지게 입고, 행동엔 품격이 흘러넘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무라칸은 잠시 그런 생각에 빠졌다.
그건 바로 무라칸이 평소 육체미라 부르는 인물, 헤도였다. 무라칸은 1초가 아쉬운 듯 헤도의 방을 계단이 아니라 비행을 통해 찾았다.
“육체미!”
“무라칸 님. 사람을 찾을 땐 보통 창문이 아니라 문을 통하지 않습니까?”
“열어봐!”
헤도의 방에는 산드라와 베일이 함께 있었다. 산드라는 다행히 어제 진과 발레리아가 밤새 함께 있던 걸 모르는 상태였다. 티칸의 동료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산드라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옷 좀 빌리자.”
“……옷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길리한테 데이트 신청할 건데. 아무래도 평소처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어? 내가 이런 것까지 말해야 되냐?”
헤도는 바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천천히 무라칸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그럭저럭 야성미가 느껴지긴 하지만 거칠게 중구난방으로 뻗친 장발, 먼지가 잔뜩 묻은 검은 코트, 곧 해질 것 같은 셔츠는 단추가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산드라와 베일은 바로 흥미를 보이며 눈을 반짝였다.
“이야, 무라칸이 이제 남자가 됐네. 그런 걸 다 신경 쓰고? 하지만 무라칸, 길리가 너를 좋아한다면 네가 어떤 모습이든 다 예뻐 보일걸. 난 진 자기가 육편 같은 모습으로 변해도 사랑할 수 있거든. 안 그래, 베일?”
“안 그래…… 미친, 육편이라니. 제정신이냐?”
“그게 왜?”
“맞습니다, 안 그렇습니다. 아가씨가 하는 말은 무시하세요. 흠…… 지금 매우 급한 상황 같으니, 그냥 제게 맡기시길.”
“어, 그래 그래, 알아서 폼 나게 좀 해봐.”
착, 착!
무라칸이 의자에 앉자 헤도는 능숙하고 빠르게 스타일링 준비를 마쳤다.
“머리는 우선 점잖게 빗도록 하겠습니다. 이 향유는 제가 아주 아끼는 것인데, 특별히 사용하도록 하죠.”
“내가 저 향유 몰래 한 번 썼다가 헤도한테 허리가 접힐 뻔했어.”
“셔츠는…… 무난하게 이게 좋겠군요. 예? 호랑이무늬는 안 되냐고요? 이건 제가 수집한 극단 배우용 옷입니다…… 일상복이 아니란 뜻입니다. 제 옷은 치수가 안 맞는데, 다행히 나중에 진한테 주려고 만든 것들이 몇 벌 있군요. 코트는 안 입어도 되는 계절입니다. 구두도 얼추 맞을 것 같고.”
“크기가 안 맞으면 그런 건 변신 미세 조정으로 맞추면 돼.”
“다행입니다. 입어보십시오. 셔츠는 꼭 다 잠가서 입도록 하세요. 평소처럼 풀지 말고, 그겁니다. 깃을 세워서도 안 됩니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는 잠시 뒤돌아 계세요. 바지를 입으셔야 하니…… 잠깐, 속옷만 왜 이렇게 화려…… 뭐,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벨트는 왜 버리려고 합니까? 딱 맞춰서 하십시오. 행여 배부르다고 풀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옷을 다 입은 무라칸은 답답한 듯 한동안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헤도는 마지막으로 시원하면서도 진한 느낌이 나는 향수를 뿌려준 후, 전신 거울을 돌려 그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날카로우면서도 깔끔하게 빗은 머리, 단정한 감색 셔츠, 아이보리색 바지에 앞코가 둥근 구두. 낯선 느낌이었다.
무라칸은 반신반의하며 헤도를 쳐다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미샤 님조차 칭찬할 겁니다.”
“까이면 네 탓이다.”
“그런 좋지 못한 마음가짐은 버리도록 하세요. 가서 차분하게 말하는 겁니다. 이제 곧 연합 전체가 바빠질 예정이니, 나는 너와 꼭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함께 근사한 식사도 하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자. 참고로 티칸에서 제일 괜찮은 식당과 주점은 이곳들입니다.”
“좋아…… 간다.”
무라칸이 쏜살같이 사라지자 산드라와 베일은 아쉬운 듯 어깨를 으쓱였다.
“멘트가 좀 약하지 않아?”
“멘트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아가씨. 이미 길리는 무라칸 님을 좋아하는데.”
“길리가 무라칸을 좋아했어?”
“그걸 몰랐던 바보가 있다니 신기하네, 무불멸.”
“사실 제게 오지 않고 그대로 갔어도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다시 길리의 방 앞에 선 무라칸은 한 차례 심호흡을 골랐다.
똑, 똑.
“딸기파이, 나야.”
길리는 문을 열자마자 그를 보곤 흠칫했다.
“옷을…… 갈아입고 오셨네요?”
“아, 그게. 흠흠, 이상해?”
무라칸은 그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아뇨, 아주 잘 어울리셔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리고 길리도 대답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둘 다 서로의 눈동자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뭉게뭉게 어색한 기류가 피어났고, 둘 다 왠지 더워서 등에 땀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무슨 일로 왔냐면.”
무라칸은 헤도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바빠지기 전에 너와 시간을 꼭 보내고 싶다, 함께 근사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
그러나 입을 열려는 찰나, 왠지 그렇게 말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길 찾아온 건,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딸기파이.”
히이이익! 헤엑!
길리가 아니라, 헤도를 비롯해 뒤쪽 복도 벽에 숨어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던 동료들의 입에서 난 소리였다.
길리는 커다래진 눈동자를 끔뻑이며 무라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라칸은 일시적으로 뇌가 멈춘 바람에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식사랑 같이 근사한 시간에 가서 이야기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