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6)
제 1056화
251화. 대적자들(6)
끅, 끄윽, 끅……!
숨어있는 동료들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무라칸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그들이 끅끅대는 소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였다.
길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일단 쾅! 문을 닫고 말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 어어, 물론이지. 천천히 해!”
무라칸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길리는 문에 기댄 채로 한동안 가슴을 진정시켰다.
둘 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름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거나, 신청받는 일은. 무라칸은 과거 연애에서 언제나 제멋대로였으니 말이다.
특히 길리는 태어나 연애라는 걸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맥로란 가 입양, 룬칸델 유모 발탁, 진과 함께 한 모험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무라칸의 마음을 아예 몰랐던 건 아니나, 확실히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무라칸이 아무리 많이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들,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과 무라칸이 맺어지는 일은. 또한 가문의 법도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실패했나? 실패한 건가? 차인 건가? 차인 건가? 차였나?’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이내 길리는 눈에 힘을 주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순간적으로, 진이 떠올랐다.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소가주, 분명 다중세계의 그 수많은 삶 속에서도 자신은 언제나 진을 위해 살았을 터였다.
그녀와 무라칸은, 명백히 진의 진짜 부모였다.
한 번도 그 삶이 싫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마음 한 켠 깊은 곳에 언제나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슬픔과 공허가 한 톨도 없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문득 길리는 무라칸과 ‘공식적인’ 데이트를 나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번엔 왠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그녀는 다시 문을 열었다.
“좋아요, 무라칸 님. 나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고 술도 마셔요.”
오오오오……!
동료들이 숨죽여 감탄했다. 이제는 일반인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지만, 여전히 길리와 무라칸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세상에 서로만이 남은 듯한 감각에 빠지고 있었다.
“출발하죠!”
“그, 그래! 가자!”
복도를 빠져나가기 시작한 두 사람.
동료들은 물 흐르듯 그들을 뒤쫓으려 했으나 반의 제지에 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만 보는 게 좋겠군. 우린 두 사람을 축복하며 보석주나 한잔하도록 하지.”
“옳은 말씀입니다, 반 경.”
“자네 공이 아주 커. 무라칸을 아주 깔끔하게 만들어놨더군. 가끔 우리 형제들도 좀 봐주겠나?”
“물론입니다.”
왕궁을 빠져나간 길리와 무라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쭈뼛대기’였다.
방금까지 호기롭게 출발하자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두 사람은 걷는 내내 얼굴을 붉힌 채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흠흠, 날씨가 참 좋아. 그렇지 딸기파이여?”
“맞아요, 무라칸 님. 하늘이 정말 화창하네요…….”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이번엔 구름 모양이 어쩌네 저쩌네 말하는 게 데이트 시작 이십여 분 동안 벌어진 참사였다.
‘왜 이렇게 어색하지? 어딘가 쪼그라드는 기분인데. 그나저나 딸기파이가 원래 예쁘긴 한데, 오늘은 유독 더 예뻐서 돌겠군.’
‘내가 어색하게 행동해서 무라칸 님도 어색하신 건가? 무라칸 님…… 잘 생겼다.’
마음이 가는 대로.
길리는 우왕좌왕하는 와중, 중심을 잡기 위해 계속 그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덥석!
길리가 별안간 무라칸의 손을 붙잡았다. 무라칸은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흠칫하며 길리의 얼굴과 맞잡은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그게…… 잡고 싶어서…… 좀 그런가요?”
“아냐아냐아냐아냐 더 잡아 더 꽉 잡자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아주 좋다는 뜻이었어. 하하…… 갑자기 덥구만.”
이내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한 세월이 벌써 십수 년이었다. 새삼 손을 잡는 게 왜 이렇게 대수로운지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그래요, 그럼 우리 더 꽉 잡고 걸어요. 어느 식당으로 갈까요? 듣기로는 2층 거리에 훌륭한 식당이 많다고 하던데. 그리고 우리 너무 어색하지 않게 서로를 대하는 게 어떨까요? 평소처럼. 평소처럼 해주세요.”
무라칸은 ‘어느 식당’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섬주섬 헤도가 준 쪽지를 찾다가, 평소처럼 하자는 대목에서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무라칸은 언제나 길리에게 정면으로 다가갔다. ‘딸기파이여!’ 를 외치면서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자신 없게 군 적이 없었다.
“……맞다, 딸기파이여. 내가 너무 긴장해서 추태를 보였군.”
“추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귀여웠다고 말씀드리면, 법도에 어긋날까요?”
“어허, 법도는 무슨 법도냐. 룬칸델에서 이제 꼬마가 곧 법이고 내가 곧 법인데. 이 가문에서 법도 들먹이면서 널 해하려는 놈이 있으면, 즉결 처형이다. 딸기파이여! 사실 육체미 녀석이 이곳저곳 추천을 해줬었는데 말이야. 우리가 가야 할 식당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하하하, 왠지 나쁜 권력자가 된 기분인데요. 그런데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하심은?”
“티칸 처음 왔을 때 먹은 칵테일이랑 새우 요리, 기억하지?”
-티칸에선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아요. 오자마자 이런 행운이 생긴 걸 보면요. 어머, 이 칵테일이랑 새우 요리도 너무 맛있어요, 도련님. 드셔 보세요. 더 시켜도 되나요?
-맙소사, 길리. 뭘 그런 것까지 물어봐? 시켜, 얼른 시켜.
지금으로부터 9년 전, 1795년 7월의 둘째 날.
진과 무라칸, 길리는 알리사의 추천서를 받아 당시 티칸 내 최고급 여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카시미르와 처음으로 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지만, 무라칸에겐 그보다도 더 중요한 기억이 있었다.
그날 여관에서의 길리는 무척 들떠 보였다.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칵테일을 마셨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듯 보이기도 했었다.
길리도 그날을 떠올리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잊었겠어요? 너무 좋아요, 거기로 가요!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가봤지? 티칸 개편 이후 사라진 건 아니겠죠?”
“안 사라졌어, 종종 지나가면서 봤거든. 그, 흠흠. 엄밀히 말하면 거긴 식당이 아니라 숙소긴 하지만 말이야. 흑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줘.”
이미 길리는 그의 손을 끌고 총총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난 기색이었다.
카시미르의 눈치는 때로 비범하다.
그는 무라칸과 길리가 데이트를 나서자마자 그들이 그 숙소로 향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재빠르게 9년 전 그날처럼 숙소를 통째로 대여해두었다.
또한 숙소 역시 진 일행의 방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숙소 역사상 최고의 자랑거리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라칸 님, 길리 님. 두 분은 티칸 왕국의 은인이시니, 오늘은 저희가 성심성의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시 모실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칵테일! 그리고 새우 요리.”
“혹시 9년 전 드신 그대로 준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크, 최고지. 뭘 좀 아는 친구구만, 안 그래 딸기파이여?”
두 사람은 지배인의 안내에 따라 자연스레 예전에 묵은 방으로 올라섰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방이었다.
“주문하신 술과 요리는 금방 준비될 겁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잠깐, 지배인. 뭔가 좀 오해한 것 같은데. 우린 식사하러 온 거니까 그냥 1층에…….”
“새우 요리는 많이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지배인이 사라졌다. 길리는 벌써 발코니로 나가서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와 따뜻한 해풍을 만끽하고 있었다.
“와아! 지금도 이렇게 예쁜데, 이따가 노을이 질 때는 얼마나 예쁠까요? 추억이네요, 정말.”
무라칸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용기를 내서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부드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이 풍경은 지금도, 노을이 질 때도, 달이 떠오를 때도 예쁠 거야. 딸기파이처럼.”
“어머, 좀 느끼한 것 같기도.”
“흠흠, 지나쳤나?”
“농담이에요. 그렇게 예쁘게 말씀해주시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떤 말을 돌려드려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아서, 괜한 농담을 하게 되네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서툴 수밖에 없어서.”
곧 종업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발코니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술과 요리를 만끽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재잘재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무라칸은 새우로 수염을 만들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길리는 웃느라 내내 얼굴이 새빨개졌다.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두 사람이 앉은 의자 사이의 간격이 좁아졌다.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길리는 무라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라칸 님.”
“응, 딸기파이여.”
“전 이제 나이가 든 편이에요. 물론 인간의 기준이지만. 하지만 무라칸 님은 제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저를 똑같이 대해주시겠죠.”
“물론이지. 두말을 하면 입이 아픈 이야기다.”
“그래서 더 겁이 나요. 무라칸 님의 시간은 영원이나 다름없는데, 그에 비하면 제 삶은 한순간에 불과하죠.”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영원이지. 그런 의미에서 넌 내게 이미 영원이다, 딸기파이여.”
언젠가 네가 떠나면, 나는 그 누구와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무라칸은 그 뒷말을 삼키며 길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이 붉어진 채 무라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열 가지도, 백 가지도 약속할 수 있다.”
“춘화집은 그만 모으라는 것도……?”
“그건 좀.”
“와, 사랑이 이렇게도 얕을 수가 있나요? 처음 해보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아닌데?”
“처분하겠다.”
“아하하하! 눈물이나 닦고 말씀하시죠. 제가 부탁하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라, 이제 다시 시작될 전쟁에서,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는 부탁이었어요. 무라칸 님은 도련님과 함께, 언제나 가장 위험한 적들과 싸울 테니까…… 꼭, 끝까지 살아남아서 제 여생을 함께해주세요.”
“나 흑룡 무라칸, 솔더렛의 이름과 내 계약자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나의 연인에게 맹세하노라. 내가 죽지 않는 것은 물론, 꼬마 녀석도 끝까지 지켜줄게.”
길리가 무라칸의 목을 끌어당겼다.
무라칸은 믿을 수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후 두 사람은 창문 바깥으로 노을이 지는 모습과 달이 떠오르는 모습, 그리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까지 전부 함께한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