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7)
제 1057화
251화. 대적자들(7)
* * *
진은 당연히 진마계에 가서 실키아를 만날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밀라 왕국의 장막으로 진을 불렀다.
“반가워두사람 잘지냈지? 연락받고깜짝놀랐어.”
“평화를 찾는 게 쉽지 않군. 지토보다 더한 놈들이 차원마다 존재하고 있었다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미솔과 틸리아스가 먼저 진과 시리스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진마계의 구원자, 비궁의 후예시여. 제가 티칸궁으로 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제 권능이 이상하게 이곳 장막 쪽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 이런 실례를 범하네요.”
비셉스의 단장, 실키아 아르시아.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는 진에게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이러지 마세요, 실키아 님. 부담스럽습니다. 본래 진마계로 직접 가려고 했는데, 실키아 님 덕분에 편히 뵙는군요. 능력 사용이 이제 용이해지신 겁니까?”
본래 실키아는 차원 이동 권능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진마대전 당시 바셋은 자신이 부상을 입었을 때조차 실키아가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진을 만나기 위해 진마계에서부터 장막까지 이어지는 길을 연 것이다.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전달받은 내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요.”
이번에 전달받은 내용이란, 당연히 오르갈이 말한 세계의 진실을 뜻했다.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까?”
“예, 오르갈이 말했다는 그 내용을 전달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분명 겪은 적 없던 일들이, 마치 겪었던 듯이 떠올랐습니다.”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실키아는 심연 군단의 ‘또 다른 자신’을 본 동료들과 유사한 일을 체험한 상태였다.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실키아가 떠올린 ‘다른 세계의 기억’은 이것이었다.
“우선, 저는 다른 세계에서 지플이라는 집단에게 이용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타 차원에 간섭할 때, 제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지토처럼 진마계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진이 세계의 진실을 깨닫자마자 실키아를 만나려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의 힘이 다중세계의 지플에 대항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말로 실키아의 권능은 차원과 차원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진보다 타 차원의 지플이 먼저 사용한 적이 있을 뿐.
“……지토가 부활하지 못한 세계에서도, 진마계는 지플에게 짓밟혔던 겁니다.”
“정말이지받아들이기 힘들어. 너나실키아가거짓말을 할리도없고.”
“실키아의 새로운 기억에 의하면, 진마계가 구원된 건 이 세계가 처음이다. 다른 모든 차원에선 그러지 못했어.”
“제가 차원 간 통로를 어떻게 열 수 있었는지는, 아직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떠오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땐 그 힘을, 지플이 아니라 연합과 세계의 안위를 위해 사용할 겁니다.”
실키아는 한동안 다중세계의 기억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오르갈과 마찬가지로 떠올리는 게 괴로운 듯 연신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세계는 총 다섯.
다섯 차원 전부에서 실키아는 지플의 노예이자, 차원 간섭을 위한 핵심 인력이었다.
“한데, 1기수를 비롯해 다른 자신을 본 동료들은 모두 심연 군단을 통해서 타 차원을 인식했는데. 실키아 님은 심연 군단 없이 다중세계의 기억을 떠올렸군요.”
시리스가 말했다.
현재까지 확인된바, 심연 군단 없이 다중세계의 기억을 마주한 건 헬루람 한 사람뿐이었다.
“시리스 님, 마신대는 타 차원을 향한 모든 간섭을 제가 만든 통로를 통해 진행합니다. 최근 이 세계의 통로가 사용되었고, 제 권능이 그 일에 반응해서 벌어진 현상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신대가 사용하는 ‘차원 간 통로’에 무언가 자극이 생기면, 같은 권능을 사용하는 이 세계의 자신도 반응한다.
진과 시리스는 실키아의 추측이 왠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지플은 타 차원으로부터 지원받고 있으니, 다른 세계의 실키아가 만든 통로가 사용되었을 터였다.
비록 마신대가 먼저 실키아를 이용한 건 뼈아픈 일이지만, 그리고 실키아 개인에겐 다중세계의 기억이 무척 버거웠을 테지만.
진은 생각지 못한 묘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실키아 님, 시간이 지나면 차원 간 통로를 연 방법이 떠오를 것 같다고 하셨죠?”
“예, 진 경.”
“그렇다면 역으로 통로를 닫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통로를 닫는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플은 근본적으로 타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물론 타 차원의 실키아는 다섯 이상이니, 이곳의 실키아가 통로를 닫는 것보다 그들이 새로운 문을 여는 게 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만 지플의 지원을 방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저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진 경. 다른 세계의 실키아들은 다 지치고 피폐해진 상태고, 생사조차 불분명합니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닙니다. 제가 온전히 각성하면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끔찍한 상황에 놓인 다른 세계의 자신과 싸운다. 실키아는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이 세계뿐이었다. 다른 차원의 진마계는, 이미 지플의 세뇌와 폭정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오히려 걱정되는 건, 지플이 제 권능을 마신석만으로 재현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른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들에 맞서 혼자 통로를 닫는 건 어렵겠지요.”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일단은 실키아가 충분한 권능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괴로울 텐데, 힘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키아 님.”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곳만큼은, 우리 마족들이 정말 어렵게 자유를 얻은 여기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습니다. 반드시.”
“울지마실키아괜찮아.”
“맞아, 실키아. 진은 우리 진마계를 구원했고, 이제 우리 진마계도 네 덕분에 연합을 도울 수 있게 된 거다.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거라고. 잘될 거야.”
미솔과 틸리아스가 실키아를 위로해주었다. 실키아는 울음을 그치고 진과 시리스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너무 복받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잊어주시길. 그리고, 이제 태양신의 제단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진마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태양신의 제단. 실키아는 그 태양신의 성향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중세계의 기억 덕분이었다.
“그 제단에 잠든 킨젤로의 자아가 가진 이름은 포칼, 그는 세계 유지를 원하는 자아입니다. 지플은 그를 마신석의 재료로 사용한 적이 있어요. 깨어나면 연합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겁니다.”
오르갈조차 모르던 정보였다. 미솔은 실키아를 대신해 과장되게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실키아최고지? 차원간섭을 막을수도 있는방법, 태양신포칼에 대한이야기를 어디서한번에 듣겠어?”
지플, 그리고 마신대에 대항할 아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무조건 좋다. 태양신의 자아 같은 초월적 존재라면 더더욱. 그들은 무력을 떠나 신격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블리기에트’가 지플과 협력한 정황이 포착된 지금, 포칼 같은 존재가 아군이 된다면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최고네 미솔. 실키아 님, 태양신의 제단 위치도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마계로 연합의 귀중한 인력을 보내진 마세요. 어차피 제 능력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위치입니다. 대신, 오늘 가져오신 그 검만 두고 가시면 됩니다.”
실키아는 진을 만나기 직전, 티칸에 있을 한 자루 검을 내어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태양검 테탈론. 적명족 투신 시마트의 검이자, 태양신의 육신을 빚어 만든 물건.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의 마지막 무렵, 시마트는 그 검을 내팽개친 채 자줏빛 뇌기로 새 검을 빚어 루나를 상대했었다.
덕분에 테탈론은 상한 곳 없이 고스란히 연합이 확보한 상태였다.
“그 검이 포칼의 제단을 개방하는 열쇠였습니다. 우스운 일이지요. 적명족은 늘 세상이 바뀌길 바랐는데, 그들의 투신이 사용한 검은 세계가 자연스레 유지되길 원하는 포칼의 육신으로 만든 것이었으니.”
진은 챙겨온 테탈론을 틸리아스에게 건네주었다.
진마계가 연합으로서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들은 실키아를 중심으로 차원 간섭을 막고, 포칼을 부활시키는 역할이었다.
“어깨가 너무 무겁겠습니다, 실키아 님.”
“자유를 위해, 구원을 위해 싸우는 일엔 익숙합니다. 부디, 이번에도 저희를 승리로 이끌어주십시오. 진 경.”
“어깨무겁겠다고 했더니 진어깨를 무겁게 만들어버리네실키아가.”
“이만하면 회의는 다 끝난 것 같군. 진, 지상의 연합원들은 다 잘 지내고 있나? 해방된 명왕족들도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말이지.”
이후 그들은 한 시간쯤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진마계의 재건 상황과 지상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럼우린이만 돌아갈게! 다들안부전해줘!”
“보고드릴 내용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 경. 항상 몸조심하시길.”
실키아가 차원문을 열었다. 진마계의 동료들이 사라지자 장막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았다.
“수확이 상당하네, 진.”
“예, 시리스 님. 하지만 결전을 위한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겠죠.”
두 사람이 동시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지플과의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되겠지. 우리 동료들 중에서도 전사자가 나올 수 있어.”
상상조차 하기 싫고, 입에 올리기는 더더욱 싫은 내용이지만 현실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 겁니다.”
“물론, 우린 최선을 다할 거야. 아끼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정말로 치열하게 싸우겠지. 하지만…… 요즘은 기분이 이상하네. 왠지 너한테 괜한 얘기들을 하고 싶어져. 나도 모르게 네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뜻이겠지.”
“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시리스 님. 그리고 아마 시리스 님이 그간 제게 의지한 것보다, 제가 시리스 님과 비궁에 의지한 바가 훨씬 클 겁니다.”
시리스가 진과 눈을 맞췄다. 이내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넌 무엇일까? 진 룬칸델. 나는 그 고민을, 최근에야 끝낼 수 있게 되었어. 바로 어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