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66)
제 1066화
252화. 전쟁 시작(5)
“엘로나 경!”
엘로나 지플.
그녀는 성수관에 잠식된 괴물이 아닌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원치 않게 저지른 일들에 치를 떠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벗어나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신석, 혹은 태양신의 자아 말루기아.
적들은 엘로나를 그렇게 정의하고 있지만, 진과 동료들이 본 그녀는 그저 상처받은 인간이었다.
지금도 엘로나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켈리악을 지키기 위해 마신석이 무리하게 그녀를 분리해낸 것이다.
“미안해요, 진 경. 지금 나는 경을 공격할 수밖에 없어요. 마신석과 연결이 완전히 해제된 게 아니라.”
다만 ‘무리한’ 분리이기 때문에 지플은 그녀의 자아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연결을 끊을 수 있는 겁니까?”
진은 흉신의 아공간에서 룬티아를 구했을 때처럼 엘로나와 마신석 사이의 연결점을 찾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창성의 감각으로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불가능해요.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윽…… 잘 들어요.”
일순 엘로나의 눈동자가 은하수처럼 변했다가 돌아왔다. 마신석이 그녀의 자아를 다시 잠식하려 하고 있었다.
후우우, 터엉-!
엘로나의 마력 창이 한 차례 더 진의 불꽃을 쳐냈다. 그사이 켈리악은 마신석을 통해 연속으로 단거리 공간 도약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인 공간 폭발이 쉴 새 없이 진과 발레리아의 근처에 난사되기도 했다. 게다가 마신석은 더 격한 울음을 토해내며 전장을 흔들었으니, 진은 발레리아를 지키느라 무리하게 전진할 수 없었다.
“진 경, 현재 이 공간에 펼쳐진 힘이 너무 거대합니다. 마신석은 그 힘을 이용해 그들을 불러들일 계산을 하고 있어요.”
“그들이라면?”
“마신대, 타 차원의 지플입니다……!”
타 차원의 ‘승리한 지플’들이 형성한 최강의 마법사 부대.
연합은 현재 마신대의 전투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개의 차원을 정복한 이들인 만큼 아득한 수준이라고만 짐작할 뿐.
“그러니 지금은 물러나셔야 합니다. 제가 경을 공격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게 보일 거고, 또 속임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으윽……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엘로나의 공격이 초 단위로 거칠게 변하고 있었다. 그만큼 마신석이 그녀를 다시 속박하고 있다는 뜻.
‘물러나야 한다라.’
만일 이대로 싸움이 계속된다면.
진은 그대로 켈리악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마신석은 지금 엘로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만큼 취약한 모습을 보였고, 켈리악도 쉽사리 먼 거리를 물러나지는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업화 때문에 마신석의 조작, 왜곡 능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마신대가 참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창성의 통찰력은 지금 엘로나로부터 어떤 거짓도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믿을 수는 없다.
느낌만으로 판단하기엔 너무 많은 목숨이 걸려 있었다. 애초에 켈리악을 기습하기 전, 초인들의 출격을 유보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진은 우선 자신이 직접 켈리악을 상대한 후 마신석의 위력을 판단한 다음 초인들을 내보낼 계획이었다.
“발레리아.”
“응.”
그녀는 이미 기록 마법으로 엘로나가 한 말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즈 밀처럼 확실하게 진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엘로나에 대한 마신석의 제어는 확인할 수 있었다.
“제 말을 믿어주세요, 진 경. 마신대의 목적은, 이 세계의 승리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멸망시켜도 상관이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진 경과 연합이 통합 지플에 위협이 되지만 않으면 되는 겁니다!”
엘로나의 말소리가 빨라졌다. 눈동자는 실시간으로 변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있었다.
“제어는 확실히 풀렸어. 이제 곧 다시 속박되겠지만…….”
발레리아의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가 자신의 의지로 말한 게 확인되었으니,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통합 지플은 ‘승리’만을 원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차원을 멸망시켰다. 이 세계의 지플이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그냥 차원 그 자체를 멸망시키는 게 더 수월하다면, 굳이 전자를 고를 이유가 없었다. 승리와 멸망, 어차피 둘 중 하나로 귀결되기만 하면 통합 지플에겐 그야말로 더 이상 적이 없는 것이다. 어떤 차원에도 그들에게 저항할 이들이 남지 않게 될 테니까.
켈리악과 이 세계의 마신석을 잃더라도, 통합 지플의 입장에선 그리 큰 손해가 아닐 수 있었다. 애초에 오르갈은 이곳의 켈리악이 자신이 겪은 다른 차원의 켈리악에 비하면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엘로나의 머리 위로 빛나는 고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성수관에 잠식되었다.
그어어어어……!
동시에 마신석의 포효가 이어졌다. 혼기, 태양기, 그리고 조작과 왜곡의 힘에 엘로나의 마법까지. 진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공격에 물러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업화는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고, 명왕군림검도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블리기에트는 반과 루나의 합공에 맥을 못 추는 모습.
얼핏 보기에 전황은 여전히 연합이 압도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진을 비롯한 창성들은 느끼고 있었다. 정말 엘로나의 말대로, 업화와 명왕군림검의 힘에 무언가 낯선 기운이 스미고 있었다. 그 기운은 마치 장작처럼 창성들이 펼친 오의를 증폭시켰다.
누가 신호를 하기도 전에.
진과 반, 루나는 동시에 오의를 거뒀다. 화염과 뇌기, 심홍기로 들끓던 전장이 한순간에 탁 트이며 무너진 탑의 모습이 나타났다.
함대도 포격을 중지하고 있었다. 그러자 오의를 증폭시키고자 스며들던 정체불명의 기운은 갈피를 잃은 채 허공을 떠다녔다.
‘마신대의 타 차원 간섭엔 제약이 있다. 그러니 놈들은 이 기운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사용하려 할 것이다. 우리 연합을 공격하는 형태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진이 정체불명의 기운을 재보는 사이 블리기에트는 태양기를 폭발시키며 물러날 틈을 벌고 있었다.
‘지플은 여기까지만 공격한다. 그러나 저것까지 두고 갈 수는 없지.’
진의 시선이 블리기에트에게 닿았다. 그는 뇌기와 심홍기가 사라진 틈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비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과 루나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업화와 명왕군림검을 해제했을 뿐, 두 사람은 오의가 아니어도 블리기에트를 얼마든지 압박할 수 있었다.
“켈리악, 네놈 명줄이 길기는 하구나.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꼈을 테지. 네놈이 언제든 소모될 수 있는 패 한 장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달았을 테고.”
타 차원의 지플은 이곳의 켈리악 지플을 아끼지 않는다.
켈리악은 마신대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으나, 방금 엘로나의 발언으로 인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마신석이 오롯이 자신을 위한 계산만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에 네놈은 무게감이 부족해. 돌아가서 이 치욕을 잘 견뎌봐라.”
진은 엘로나의 공격을 정교하게 방어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엘로나는 그를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다. 켈리악의 안전이 우선일뿐더러, 진과 계속 직접 전투를 하는 것보다 마신석을 제어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인 까닭이었다.
업화가 사라졌으니 마신석은 그만큼 더 강력한 왜곡을 유발할 수 있었다.
진은 엘로나와 거리를 벌리자마자 벌써 그녀와 자신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켈리악을 보호하려고 공간을 왜곡한 결과였다.
동시에 마신대가 보낸 기묘한 기운이 마신석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모이는 현상도 포착되었다.
‘응축되고 있다, 폭발인가? 아니면 이야기의 탑 전체를 순간 이동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겠군.’
어느 쪽이든 지플이 이미 내다 버린 블리기에트까지 챙길 일은 없을 터.
진은 켈리악 쪽에 더 미련을 두지 않고 그대로 블리기에트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블리기에트는 곧바로 진이 접근하는 걸 인식했으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명왕검과 심홍검이 이미 블리기에트의 사방을 묶어두고 있었다. 태양기를 폭발시키는 정도로는 그 두 사람을 결코 저지할 수 없다.
창성 세 명의 합공을 받는 건,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였다. 이내 블리기에트의 뒤를 잡은 진이 영기로 물든 검은 칼날을 휘두르자, 그의 등에서 빛나는 핏물이 터져 나왔다.
[큽……!]“네놈이 정녕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면, 적어도 저놈들 편에 서지는 말았어야지, 블리기에트.”
재차 이어진 연격에 한 번 더 블리기에트의 등허리가 베였다. 환부엔 영기와 더불어 흐리게 불타는 화염, 영원화가 남았다.
블리기에트의 권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세 사람을 상대하며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끔찍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수세에 몰렸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야기의 탑은 이미 퇴각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마신석은 탑을 연합 함대의 포위망 바깥으로 순간 이동시킨 후, 응축된 타 차원의 기운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나더러 치욕을 견디라고 하였나, 진 룬칸델…….”
그리고 켈리악은 멀리서 창성들과 블리기에트를 노려보았다.
마신석이 모아둔 타 차원의 기운.
이제 그 힘을 폭발시키면 창성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는 없을 테지만, 연합 함대에는 확실히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켈리악은 그것만으론 진을 충격받게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너는 죄책감을 견뎌보아라.”
키이이이익……!
탑 상부로 마신석이 돌출되고 있었다. 이내 마신석은 마치 한 자루의 주포와 같은 형태로 변모했고, 타 차원의 기운이 그 속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한창 블리기에트를 압박하던 진은 그 순간, 홱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켈리악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켈리악, 이 미친 새끼가! 저들은 얼마 전까지 네놈과 네놈의 가문이 통치하던 사람들이다!”
콰아아아!
마신석으로부터 거대한 광선이 쏘아졌다. 단번에 하늘을 양분한 그 광선은, 연합의 함대나 창성들을 노리고 쏘아진 게 아니었다.
소타 사막 오른편, 구 드락카의 자치구들이 모여 있는 지역.
즉, 민간인 거주 구역으로 초장거리 포격을 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네놈이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될 악몽의 시작에 불과하다, 진 룬칸델.
불의 인장으로 하늘에 메시지를 남긴 채, 켈리악은 전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