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91)
제 1091화
255화. 켈리악 지플의 죽음, 그리고……(8)
로키아의 협상은 실패했다.
제안을 거절한 루시는 곧바로 로키아의 분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분신조차 챙길 수 없었다.
그날 밤, 무라칸은 티칸궁 공중정원에 홀로 서 있는 루시를 찾았다.
“루시.”
“무라칸.”
무라칸은 챙겨온 술병을 따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길……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위로 같은 건 젬병이잖아, 내가. 괜찮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고, 미안하다.”
“무라칸이 뭐 미안할 게 있겠어요. 이 끔찍한 세상에 자식을 잃는 사람이 나뿐인 것도 아니죠.”
두 사람은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술잔을 들이켰다.
“……어차피 로키아는 헤일린을 죽이지 못해요. 이번 협상엔 실패했어도 이용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고 판단할 테니까.”
“후우.”
“설령 죽더라도…… 아락시온의 힘이 분리되고,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그 아이에겐 해방이겠죠.”
“시대가 모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러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시대죠.”
한동안 말없이 술을 넘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가주는 결정을 내렸나요?”
“그래…… 흑해로 간다더군.”
“테마르의 왼팔이 그곳에 있는 솔더렛의 안배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 까닭이로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무라칸.
“좋은 판단으로 느껴져요. 본진을 지키느라 적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어요. 이미 천 년 전에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죠, 특히 지플을 상대로는.”
흑해.
진은 연합이 일단 시론의 원정대와 합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는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물론 흑해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에 하루 이틀 만에 합류에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합은 시론이 처음 흑해로 떠날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전력과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태양신교조차 흑해를 아우르는 차원문을 만든 적이 있는 것이다.
“소가주가 가진 부담은, 단지 딸 하나를 인질로 잡힌 저에 비할 바가 아닐 거예요. 매 순간 적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짊어지고 판단해야 할 테니까.”
루시가 마지막 술잔을 비우며 몸을 돌렸다.
“가죠, 무라칸. 우린 룬칸델입니다. 싸우다가 고통과 슬픔에 무너질 것이었다면, 이미 천 년 전에 망했을 겁니다.”
* * *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켈리악과 말루기아의 행방엔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연합원들은, 흑해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창성이 흑해로 향한다.
연합은 이번 흑해 행에 단지 일부 주요 병력만 보낼 생각이 없었다. 창성 전원과 기함 사라, 명왕족의 황금함대와 투신전 본당 공중요새 ‘라프라로사’까지.
어떻게든 최단기간에 흑해를 돌파해 시론을 찾을 수 있는 전력을 구성한 것이다.
뒤가 없다. 어차피 시론과 합류하고 솔더렛의 안배를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었다.
“포칼 님과 실키아 님 덕분입니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었을 겁니다.”
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포칼과 실키아, 그들은 이번 흑해 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벨티안, 파멸의 자아인 그는 이번 전투에서 말루기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포칼의 권능에 묶여 고스란히 공중요새 라프라로사의 동력원이 되고 말았다.
실키아는 포칼과 함께 흑해 심부로 곧장 이어지는 차원문을 형성할 예정이었다. 도착 후 상황에 따라 가능하면 심부 이후까지 연결되는 차원문을 만들 수도 있었다.
“아버지께선 인세에 문제가 생긴 걸 분명 인지하고 계실 거야. 아주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당신조차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거대한 적들이 깨어난 건 분명 알고 계실 테지.”
루나의 말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로서도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실 겁니다. 흑해 5왕, 그들을 토벌하는 것으로 숙명이 완수된다고 여긴 부분이 있지 않으실까요.”
“맞아. 원정대 시절, 마성화를 극복하기 전의 아버지는…… 흑해 5왕과 함께 죽을 생각이신 것처럼 보이셨으니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좀 그렇지만, 그래도 조금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구나.”
시론 룬칸델.
룬칸델에서 그 이름은 여전히 가문 최후의 보루이자 무적의 상징이었다. 켈리악과 말루기아가 등장했으니 이제는 진짜 무적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그 한 사람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예전만큼 유효했다.
“든든할 것이다. 그가 돌아오면. 하지만 단지 만나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 형제의 말대로, 그에겐 이미 숙명이 있었으니.”
마지막 남은 흑해 5왕, 모르가니엘. 반은 그를 죽이지 않는 한 시론은 돌아오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다만 우리가 자신의 숙명을 거드는 걸 거부하지도 않을 테지.”
“맞아요, 반 경. 아버진 변하셨으니까요.”
흑해로 가서 시론을 찾고, 함께 모르가니엘을 토벌한 후 인세로 복귀한다.
그게 이번 일로 연합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 모르가니엘은 흑해 5왕 중에서도 가장 강할 게 분명하나, 연합으로서는 그래도 켈리악이나 말루기아와 대등한 수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창성 전체가 모이는 만큼, 모르가니엘은 반드시 최소한의 피해로 잡고 솔더렛의 마지막 안배를 찾을 겁니다.”
“진 형제, 출발은 언제 할 건가?”
“자정에 있을 발레리아의 보고에 결정적인 특이 사항이 없으면 즉시 출발할 겁니다.”
“알겠다.”
회의실 밖에서도 모든 연합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론과의 합류라는 도박수를 던진다고 해서, 그 기간 동안 인세를 완전히 내팽개치는 건 아니었다.
이주.
바멀 연합은 인세의 일반인들을 지하세계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세상에 근본적으로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지상보다는 지하가 더 나았다.
당장 말루기아와 켈리악의 격전에 제국이 멸망하는 동안에도 지하세계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물론 지하는 현재 재건 중인 만큼 인세보다 생활 수준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걸 감수하더라도 이주를 신청했다.
죽더라도 고향에서 숨을 거두겠다며 이주를 거부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연합원들은 그 의견을 모두 존중해주었다. 일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진은 명상을 하며 자정을 기다렸다.
앞으로의 전쟁에 생길,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이 머릿속을 거칠게 부유하고 있었다. 매 순간, 그중 가장 빛나는 수를 붙잡아야만 했다.
자정이 다가올 때쯤, 오르갈이 발레리아보다 먼저 진을 찾아왔다.
[진.]“오르갈, 마녀가 대답을 해주었나?”
[젠장, 아니. 마족 삼인방을 통해 네 말을 전달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마녀를 만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심연의 거주자들인 그들도. 아마 이번 말루기아와 켈리악의 전투에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 같군.]“알았다.”
[소식이 들려오면 무엇이든 다시 알려주마. 이제 곧 흑해로 가겠군?]“그래. 최중요 전력이 한동안 부재할 테니, 네가 할 일이 많겠군.”
[걱정 마라. 행여 놈들이 갑자기 우릴 치더라도, 네가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을 테니. 옛날부터 도망치는 거 하나는 우리가 알아주잖냐. 다른 차원에서도 늘 그랬어.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고 튀다가 궁지에 몰린 후 악을 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게 내 주된 패턴이었지.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오르갈이 씨익 웃으며 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진은 처음으로 그와 주먹을 가볍게 맞대며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마.”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오르갈이 떠나자마자 회의실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발레리아가 돌아온 것이다.
“진.”
“고생했어, 발레리아. 말루기아와 켈리악에 대한 기록이 나왔어?”
“말루기아는 아직이고, 켈리악에 관한 기록을 하나 찾았어. 베라딘의 말대로야. 그는 옥타비아 지플을 의식하고 있어.”
발레리아는 곧바로 진과 동료들에게 그 기록을 보여주었다. 상황과 심리가 드러나는 자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내용이었다.
“……그 격전 속에서 굳이 옥타비아를 보호했다라. 아니, 애초에 16일까지 옥타비아가 살아 있었다는 건, 그간 계속 옥타비아를 지키면서 싸웠다는 뜻인데. 그 괴물 놈에게 가족애 같은 게 남아 있는 건가? 무슨 마음이든 희망이 하나 늘었어.”
희망이 늘었다, 그건 단지 켈리악과 옥타비아의 관계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이 기록은 ‘엘로나 지플’이 말루기아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플과 말루기아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인형처럼 이용되고도, 엘로나의 진심은 훼손된 적이 없었다.
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동료들이 따라 일어섰다.
이제, 흑해로 갈 때였다.
* * *
1번 통로, 마신대 본부.
말루기아의 습격으로 인해 본부는 전과 달리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각 세계로 이어지던 차원문들은 대부분 뭉개진 채 끔찍한 기운을 발산했고, 켈리악 지플은 엉망이 된 치료실에 앉은 채 온몸에 투명한 관을 꽂고 있었다.
“옥타비아.”
켈리악의 갈라진 목소리에 옥타비아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녀는 켈리악보다도 훨씬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켈리악은 치료 장치를 가장 먼저 옥타비아에게 사용했고, 그녀는 마치 누메루스의 피를 받은 듯이 말끔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 내가 해준 이야기들을 모두 믿을 수 있을 테지. 다중세계, 끝없이 이어진 전 차원의 전쟁 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선 살아남아라.”
“예?”
“수많은 차원을 제거하고, 정복하며. 가끔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띄더군. 신기하게도 말이지. 그중 하나가 바로 너다, 옥타비아. 내가 알던 모든 세계에서, 너는 단 한 번도 살아남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