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96)
제 1096화
256화. 모르가니엘(5)
“알 것 같다고?”
“오, 좋은 거냐?”
루나와 무라칸이 동시에 외쳤다.
“전부 다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껴집니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저는 이 기운을 부릴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검은 기운을?”
“……예, 누님.”
입구에 손을 대자마자 진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영기가 아닌, 검은 기운.
그 힘은 아직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 진과 창성들이 아는 한, 이 검은 기운은 지금까지 세상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솔더렛이 진을 위해 준비한 권능일 가능성이 높겠군. 진 형제, 그 힘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우린 여전히 이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검은 기운으로부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저 어둠일 뿐.”
“영기도 혼기도 아닌, 그보다 높은 차원의 권능……인 것 같군요, 투신 형제.”
창성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특히 무라칸은 충격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영기.
솔더렛을 상징하는 그 힘의 위상은, 언제나 가장 높았다. 오러와 마력은 물론이고 명왕족의 뇌기나 최상위 신들이 다루는 그 어떤 권능도 순수한 위상만 비교하면 영기보다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양신의 자아들이 사용하는 권능은 영기보다 우월한 지점이 없지 않으나, 그조차 명백히 앞선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오직 완벽하게 부활한 ‘킨젤로’의 힘만이 영기보다 격이 높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영기를 잘 아는 모든 이들은 그렇게 인식해왔다.
그런데 그보다 뛰어난 힘이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막내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으니…… 일단 좋은 소식이로군. 그 힘을 얻으면, 너는 더 강해지는 거겠지?”
더 강해지는 것인가.
루나의 지극히 단순한 물음에, 어째서인지 진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강해진다. 그런 인간적인 기준에는…… 어울리지 않는 힘이다.’
신.
흔히 신이라 불렸으나, 실은 각기 태양신 사후 그 기운으로부터 태어난 불멸자일 뿐인 존재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신이라 부를 수밖에 없을 만큼 초월적인.
지금 진이 느끼고 있는 어둠은 그런 힘이었다.
인간으로서 그런 권능을 손에 움켜쥐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두려움이 들 만큼. 이 어둠을 품게 되면, 더는 인간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켈리악과 말루기아라는 버거운 적들보다, 불현듯 자기 자신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다만 공포에 질린 와중에도 한 가지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힘을 움켜쥐면, 이길 수도 있다. 그들을.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맞설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반드시 받아들여야 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기만 하면, 그저 막연한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던 전쟁은 해볼 만한 싸움이 된다.
‘난…… 무엇이 되는 거지?’
이제껏 인간으로서, 무인으로서, 진으로서 쌓아온 모든 것.
무력, 권력, 명예.
그리고 사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 전부가 단숨에 이 어둠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았다. 인간 진 룬칸델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 진 룬칸델은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어딘가로.
“진.”
“아……! 아버지?”
시론의 단단한 손아귀가 진의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진은 저도 모르는 사이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엇이 그리 두렵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진, 나는 네가 지금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차피, 결국 우리 모두의 끝은 둘 중 하나다. 이기거나, 지거나. 투쟁하거나, 멈추거나. 죽거나, 살거나. 네가 무엇이 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진은 호흡이 가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일검에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을 죽일 수도 있다. 언제든 그렇게 허무하게 휩쓸려 사라질 수 있는 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지금 네가 느끼는 것보다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들처럼 공포에 질려 떨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진은 대답하지 않고 시론과 눈을 맞췄다. 나무라는 듯이 말했으나, 시론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 이유는 없다. 그저 내가 보기 싫기 때문이다.”
“예?”
“너는 내 아들이고, 나는 네게 사랑을 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 네가 떠는 모습을 보니 내 속에서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치미는구나. 아마 미안함, 죄책감,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산 그런 일반적인 감정일 테지. 이 아비는 이제 막 모르가니엘을 끝장내고 숙명을 완수한 참이다. 내 기분을 망치지 마라. 내가 죄책감에 몸부림을 쳐야겠느냐?”
황당한 논리였다. 진은 망치로 머리를 열 대쯤 두들겨 맞은 기분이 되어 눈동자를 끔뻑였다.
“상당히 뻔뻔하시군요, 아버지.”
그 말에 루나는 깜짝 놀라 진과 시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농담을 주고받은 것일 뿐이지만, 형제들 중 누군가가 시론과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 그녀로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시론이 이런 농담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냥 농담은 아니기도 하시겠지. 아버진 마성화를 넘어선 이후부터 줄곧 우리에게 미안해하셨으니.’
이내 루나도 시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막내 말이 맞습니다, 아버지. 그냥 죄책감에 몸부림을 치시죠.”
“가주와 소가주가 대화를 나누는데 어디 감히 기수가 끼어드느냐.”
“허…….”
“어쨌거나 막내 너는, 내 뻔뻔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너는 소가주이고 나는 가주이니 그러하다. 명령을 따르도록.”
시론과 진, 루나 세 사람이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진은 호흡이 차분하게 돌아왔고, 흔들리던 눈동자도 다시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좀 낫군요, 아버지. 어차피 제가 이 힘을 받고 잘못되거나 이상해지면 여기 있는 분들이 뒷감당을 해주실 텐데, 제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일단 돌아가죠. 문에 손을 대고 있을 때 느낀 것인데, 역시 초대 가주의 육신과 바리사다가 둘 다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메리스 님이 저주를 풀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희한한 일이군. 솔더렛께선 천 년 전부터 너를 선택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반드시 그 두 가지가 필요하게 만드신 것인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군요.”
“만약 솔더렛께서 그 안에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거라.”
“예, 아버지. 만약 같이 들어갈 수 있으면 함께 가시죠.”
“그것도 괜찮겠군.”
시론과 진, 루나. 그들은 어느 때보다 편한 사이처럼 보였다. 무라칸과 반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쳇, 아쉽네. 시론, 너 때문에 나는 복수의 기회를 놓쳤다.”
“그게 무슨 말인가? 무라칸.”
“나도 방금 꼬마처럼 갑자기 정신이 나간 적이 몇 번 있거든. 주로 천 년 전의 기억 때문이었지. 그때마다 꼬마가 정신을 차리라며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거든. 그래서 이번엔 드디어 내 차례구나, 싶었단 말이지. 한 방 아주 따끔하게 먹여줬을 텐데.”
“아쉬우면 다음 기회는 놓치지 마라.”
“어디 수호룡에게 가주 따위가 반말을 하느냐.”
“네가 하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성들은 다시 검은 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모르가니엘의 영역은 여전히 샛노랗게 빛났고, 하늘엔 공중요새 라프라로사가 그대로 있었다.
올 때는 신중하게 세 시간을 걸었으나 돌아갈 때는 속도를 높였다. 창성들은 순식간에 본대로 복귀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요 어르신!]오즈도크가 뛰어나와 창성들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모르가니엘과 원정대가 추격전을 치르는 동안 전장을 벗어나 있었고, 경계 중인 황금함에 발견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흑해 5왕을 모두 처단한 그 위대한 순간을 직접 뵙지 못한 게 이 오즈도크의 평생 한입니다요. 감축드리옵니다, 어르신!]평소처럼 아부를 떠는 게 아니라, 오즈도크는 실제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게도 흑해 원정은 삶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힘겨운 경험이었다.
“너도 그간 수고 많았다, 오즈도크.”
[헤헤, 제가 무슨 고생을 했습니까. 다 어르신 덕에 저 같은 미물도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이지요…… 도련님!(이 대목에서 오즈도크는 덥석 진의 손을 붙잡았다) 도련님 덕분이기도 합니다요!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도련님!]“루나 누님께 네가 원정대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해냈는지 들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라. 들어줄 것이니.”
실제로 오즈도크는 흑해 원정에서 무척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시론은 마성화를 넘어서기까지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요!? 그렇다면 지난번에 가져가신 제 내단을……! 물론 다른 마음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그저 허전해서. 킁, 킁. 가만, 여기서 제 내단 냄새가…… 도련님? 설마 제 내단을 검에 녹이셨습니까?]“흠흠, 미안. 다른 걸 말하면…….”
오즈도크는 잠시 울먹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어차피 이제부터는 룬칸델의 집사가 될 몸, 내단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 에구머니나! 저, 저게 뭐람!?]별안간 오즈도크가 탄식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차원문!?’
난데없이 하늘 위에 열린 차원문은, 지난번 제국에서 있던 전투에서 본 것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말루기아의 눈동자처럼 문 너머로 은하수가 흐르는 모양새. 그러나 그 속에서 빠져나온 건 그녀가 아니었다.
마신대의 함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