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02)
제 1102화
257화. 마신대의 습격(6)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시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시야가 백색으로 물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게…… 시론 룬칸델의 오의?’
‘저자는 마검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감각 교란을, 어떻게?’
마신대가 내보낸 열 명의 창성,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육신이 제 의지를 벗어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창성의 통찰력을 뛰어넘는 현혹, 각 차원 최강의 대마법사들은 지금 시론이 벌인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환상을 자아내는 마력이나 권능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야가 점점 더 새하얗게 변하는 와중,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시론만이 본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신대의 창성들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적이든, 아군이든 시론을 바라본 이들은 전부 똑같은 현상에 잠식되고 있었다.
새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온통 백색일 뿐인 막막한 풍경.
그 속에 시론은 홀로 설원을 나아가는 구도자처럼 보였다.
‘이게 아버지의 검…… 삶인가.’
진이 주먹을 그러쥐며 생각했다. 오의가 시작되고 난데없이 변한 전장의 풍경은 시론의 인생을 닮아 있었다. 고독과 정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쿵, 쿵, 쿵, 쿵…….
시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와 가슴 속에서 북이 울리는 듯했다.
바멀 연합은 그 뒷모습을 보며 투지와 전의, 긍지가 용솟음치며 끓어오르는 걸 느꼈고, 적들은 그의 눈을 마주하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는 단지 원리를 알 수 없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시론은 이렇게 시야를 하얗게 가려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적들로서는, 오의가 무척이나 시론답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느 차원에서나 자신이 하늘임을 자처한 기사의 검이라기엔, 지나치게 정적이었다.
또 빈틈은 얼마나 많은가.
잔뜩 지친 듯이 느린 걸음, 땅에 무겁게 쓸리는 검, 거친 호흡…… 오의가 시작되고 이제 겨우 십여 초가 흘렀을 뿐이건만, 시론은 방금까지의 압도적인 모습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마신대의 창성들은 당장이라도 지상으로 내려가 시론의 목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내려갈 필요도 없이, 상공에서 그대로 그를 저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창성은 소리를 질렀다.
더 현혹될 것 없소, 우리가 시론 룬칸델에게 너무 겁을 먹은 것이오……!
정확히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목은 물이 들어찬 듯 겨우 꺽꺽대는 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제 목을 어루만지고 주위를 살피려 했으나, 그조차 할 수 없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다른 창성들도, 백색함대에 탑승한 다른 모든 마신대원들도, 심지어 차원문 안쪽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론도와 간부진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이 무언가에 칭칭 감긴 듯 아무리 힘을 써도 옴짝달싹하는 게 전부다. 전장의 모두가, 석상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그때야 마신대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속임수 따위가 아니다!’
눈앞은 시론을 제외한 모든 게 새하얗게 지워지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일은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다. 각 차원의 수장 중엔 짧게나마 33차원의 켈리악에게 저항한 인물도 있는데, 그에게 제압되고 굴복한 이들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전장에만 창성이 열 명, 수천 명의 마법사, 차원문 안쪽에 대기 중인 수십 명의 창성과 수없이 많은 마신대원까지.
단 한 사람이 그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이런 일이.’
마력도, 오러도, 그 어떤 특별한 권능도. 시론은 아직 그 어떤 기운도 전장으로 발산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야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 시론은 겉보기엔 무척 지쳐 보이지만, 이대로라면 그 혼자서도 마신대 전체를 얼마든지 학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지쳐도 일검에 함선 수십 기 정도는 가볍게 파괴할 테니까.
‘후, 일단, 우리만 몸이 묶인 것은 아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적들의 포격이나 추가 공격이 없는 걸 보면, 시론의 힘은 자신의 아군들까지 묶고 있어.’
론도가 생각했다. 연합도 마신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것, 그리고 아직 시론이 검을 휘두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희망이었다.
‘시론은 어떻게 그 모두를 묶어두고 있는가. 오러나 마력, 권능이 아니라면…… 그런데 왜 시야가 완전히 닫힌 게 아니라 시론만 보이는 것이지? 잠깐…… 설마?’
전장의 모든 게 지워졌는데, 시론만 뚜렷하게 보인다. 꼭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이내 론도는,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말았다.
존재감.
시론 룬칸델이라는 기사가 가진, 이루 말할 수 없이 광대한 존재감.
그게 전장의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마신대에서 가장 먼저 그 사실을 깨달은 론도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다시 한번 시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시론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다시 시론이 있던 자리로 시선을 옮겼음에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저 아득하게 거대한 하나의 눈동자.
그건, 시론의 눈동자였다.
방금까지는 그의 존재감을 인지하지 못했으니, 론도는 시론의 모습을 자신이 기억하는 그대로 인식했었다.
그러니 이제야 지금 시론의 형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가 바로 앞에 있는 인간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듯이, 지금 론도는 시론을 한눈에 담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가 자신을 내려보는 눈동자 하나를 마주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이제라도 격차를 깨달은 미물이 기특하다는 듯이.
그때쯤 마신대의 다른 창성들도 그처럼 현상을 깨닫고 있었다. 무엇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지, 무엇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지.
하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 아아, 아아아악……!”
“아니다…… 네놈은…… 그저 창성에 오른 인간일 뿐…… 크으아아아!”
론도는 애써 악을 쓰고 있었다.
창성 중엔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힘을 쓰다가 피를 토하는 이도, 창성이라는 자신의 위업이 부정당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시론의 눈동자를 향해 간신히 지팡이를 뻗은 이도, 자신도 모르게 실금하며 질질 침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마신대는 시론이 일으킨 현상의 원인을 알면, 대응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응할 수 없다.
하늘이 비를 내리면 우산을 쓸 수 있고, 하늘이 우박을 내리면 동굴에 숨을 수 있고, 하늘이 천둥 번개를 내리치면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지상에서 무슨 짓을 해도 하늘은 절대적으로, 광활하게 존재한다.
이 전장에서, 시론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방금까지 시론은 뒤늦게 격차를 깨달은 론도와 창성들에게 미소를 보냈으나, 그는 결코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패도 그 자체.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야만과 투쟁, 시론 룬칸델이라는 기사의 본질.
그는 이제 바닥을 무겁게 쓸던 바리사다를 추켜들고 있었다. 물론 적들은 그 모습을 볼 수조차 없다, 단지 갑자기 불어오는 풍압에 짐작할 수 있을 뿐. 이제, 검이 떨어질 것이라고.
검이라는 폭우가 쏟아지리라고.
츠아아아악-! 스스슷……!
전장에 무수한 섬광이 번진다.
시론은 제자리에서 자세를 낮춘 채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궤적은 하나하나가 길이 열리면 무한히 나아가는 빛처럼 적들을 지나쳤다.
일섬이 적들을 휩쓸 때마다 백색으로 물든 시야에 하얗게 빛나는 입자가 쏟아졌다. 그 존재감을 잠시라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그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며 가루가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창성이라 할지라도 그저 흩뿌려진 검기에 몸 어딘가를 베여 쓰러질 수밖에 없다.
육체의 안전이 보장되는 이들은, 오로지 아직 차원문을 나서지 않은 이들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시론의 검에 함대와 마법사들이, 마신대의 최정예들이, 그들을 이끄는 창성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에 가쁜 호흡을 토하고 있었다.
차라리 일검에 입자가 된 이들은 그 공포를 느끼지도 못했다. 어떤 면에선, 시론의 존재감에 터진 벌레처럼 짓눌려 있던 몸과 영혼이 드디어 죽음으로 해방된다는 느낌마저 받을 지경이었다.
시론이 검을 쓰기 시작하자 굳어 있던 마신대들은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나약한 이들이 한 선택은, 일부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죽어서 이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도록.
물론 어떻게든 항전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안식에 들고자 몸을 내던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다.
창성, 그리고 그에 아주 근접한 일부 초인들만이 조금씩이나마 시론을 향해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다만 원거리에서 쏟아부은 공격은 모조리 검기에 삼켜졌고, 거리를 좁히려고 진입을 시도하면 그 순간 목이 떨어졌다.
존재감에 짓눌려 시론을 한눈에 담지 못했듯이, 그의 검이 어디서 얼마나 날아드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 싸움이라고 부를 수 없다. 시론은 마신대를 상대로 전투나 전쟁이 아닌, 소탕을 하고 있었다.
마신대와 마찬가지로, 이제 바멀 연합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은 여전히 백색이었으나, 연합의 창성들은 시론이 조금씩 아군의 시야를 조절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막내, 이제 슬슬 움직이도록. 우측, 운 좋게 빠져나온 놈이 하나 있구나.”
그 말에 진과 루나, 무라칸은 즉시 시론을 지나쳐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쇄도했다.
그들과 함께 있던 투신 반은 뒤늦게 시론을 지나치며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궁극 무인의 모습이로군, 시론 룬칸델. 내 옛날을 보는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