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1)
제 111화
36화. 각자의 지원군들(2)
비궁.
대륙 서해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탑.
진이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의뢰를 맡기기로 결정한 곳. 일반적인 사람들은 당연히 비궁 근처에도 갈 수가 없지만, 카시미르는 칠색조라는 거대 정보기관을 운영하는 만큼 비궁 쪽에도 연락망이 있었다.
카시미르의 다급한 얼굴을 한 번 더 확인한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대륙 만지 섬으로 이동 관문을 개방시킬게. 다행히 만지 섬에 칠색조 정보원이 하나 있어.”
만지 섬은 비궁으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섬이었다. 그 외 공간에서 비궁으로 출입을 시도했다간 침입으로 간주, 즉시 비궁주와 휘하 무인들의 척살령을 받아야 했다.
물론 만지 섬을 통한다고 해서 모두가 비궁으로 들어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카시미르처럼 연락망이 형성되어 있거나, 확실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혹시 몰라 3년쯤 전, 비궁 쪽에 정보원을 파견해 둔 게 지금 빛을 보길 바라야겠군. 그 친구가 비궁 측과 핫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나? 이름이 루카스였던가?”
그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
만지 섬에 있는 정보원이 이 새벽에 비궁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만큼, 비궁 측에 잘 보이고 있었는지가.
“그건 직접 보고받은 내용이 없어. 칠색조 수장들 불러서 확인이라도.”
“아니, 시간이 없어. 만약 정보원이 놀고만 있었다면. 만지 섬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비궁주 욕이라도 해 봐야지. 그러면 누군가는 나오지 않겠어?”
알리사가 황급히 이동 관문으로 간 사이, 카시미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길리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순혈 지플을 죽였고, 그걸 감당하기 위해 비궁에 의뢰를 한다고요? 아아, 도련님. 왜 매번 이렇게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전 오러가 봉인되어 보필해드릴 수도 없는데.”
“진 녀석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간덩이가 붓다 못해 터진 것 같단 말이지.”
“퀴칸텔 님. 전 정말 도련님의 그 간덩이 때문에 미치겠어요. 어쩌죠? 카시미르 경의 말대로라면 이제 곧 마탑의 마법사들이 몰려올 텐데!”
길리가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었고 엔야와 라트리, 그리고 유리아가 길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도 길리, 너무 걱정 마. 네 도련님은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있잖아. 비궁주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가서 다 쓸어버릴게. 까짓것, 지플에 수배 한 번 당하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퀴칸텔도 걱정하고 있었다.
지플의 특급 마법사들이 떼로 몰려오면 그녀 역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퀴칸텔이 지플에 본모습을 보이면, 안드레이와 뷰렛타의 죽음이 다시 재조명되므로 뒷일은 더더욱 답이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길리. 내가 반드시 비궁주를 설득해서 진 공자와 무라칸 님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잠시 후 만지행 이동 관문이 준비되자, 카시미르가 비장한 얼굴로 저택을 나섰다.
* * *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만지 섬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만지 섬에 다녀온 사람은, 평생 만지를 잊지 못해 늘 그리워하곤 했다.
따뜻하고 작은 섬, 그 속을 뛰노는 작고 사랑스러운 야생 동물들, 운 좋게 비궁의 허락을 받고 그곳에 자리 잡은 10가구 정도의 선량한 인간들, 탁 트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비궁의 몽환적인 모습…….
3년 전 이곳에 파견된 칠색조 ‘공개’ 정보원, 루카스 맨프랜은 해변가 흔들의자에 앉아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검게 탄 피부, 헐렁하고 화려한 셔츠 차림. 어딜 봐도 정보원이라기보다는 휴양을 즐기러 온 여행자처럼 보였다.
“본부에 있을 땐 이런 여유를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지. 후후, 날마다 꿀도 이런 꿀이 없단 말이야.”
심지어 본부와는 3개월에 한 번, 짧은 서신만 주고받을 뿐이다. 칠색조의 수장들이 루카스와 자주 연락하다가 행여 비궁주의 노여움을 살까 우려한 결과였다.
또한 루카스는 비궁 측에도 미리 정체를 알린 공개 정보원인 만큼, 굳이 툭하면 비밀스러운 연락을 주고받으며 괜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루카스! 루카스 맨프랜!”
돌연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그러나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던 목소리에 술잔을 내려놓는 루카스. 그는 2초쯤 자신의 귀를 의심하다, 벌떡 일어나 자신의 수장을 맞이했다.
“카, 카시미르 님? 아니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신…….”
카시미르와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루카스의 머릿속엔 온갖 불행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근무 태만을 지적당하거나, 감봉을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다시 본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 행복한 나날에 종지부를 찍는다거나…….
그러나 루카스의 걱정과 달리, 카시미르는 그런 걸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대신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을 뿐.
“비궁주, 그분을 만나야 하네! 지금 당장! 혹시 비궁과 핫라인을 형성했는가? 제발 그렇다고 해 주게. 한시가 급박한 상황이야.”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던 루카스의 얼굴에, 급격히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봉급 상승 기회다! 어쩌면 승진까지도!’
본부에 있을 땐 마냥 하늘같던 칠색조의 진정한 주인이 직접 찾아와 핫라인을 열어 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루카스는 최고 상사의 명령을 즉시 이행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카시미르 님. 당장이라도 비궁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오오… 정말인가……!”
“예, 지난 3년간 핫라인을 형성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꼭 필요한 순간, 카시미르 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루카스가 한껏 생색을 냈다.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겠네. 비궁주와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자넨 뭐든 큰 기대를 해도 좋을 거야.”
“전 그저 정보원으로서 사명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비궁 측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피잉……!
펑, 퍼펑!
루카스가 품속에서 폭죽을 꺼내 쏘아 올렸다.
“폭죽? 이게 신호인가?”
“예, 그리고 잠시 후에 놀라지 마십시오. 뭔가…… 거대하고 따뜻한 보자기 같은 것이 저와 카시미르 님을 덮칠 거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비궁일 겁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인…… 엇!”
불쑥, 와압!
루카스의 말대로 거대한 실루엣이 두 사람을 덮쳤다. 그건 무언가의 ‘입’처럼 보였으나 워낙 빨라 자세히 알아볼 순 없었다.
‘무언가 날 집어삼켰, 허!?’
퉤!
루카스와 카시미르를 삼킨 입이 두 사람을 다시 뱉어 냈다.
카시미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만지 섬의 따뜻한 해풍은 온데간데없이 뼈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온몸을 덮쳤다.
온통 푸르고 새하얀 수정 벽이 가득한.
그리고 바닥마저 냉기를 뿜는 수정으로 이뤄져 있어, 닿는 즉시 기묘한 냉기가 올라와 사람을 흠칫하게 만드는.
비궁의 내부였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카시미르. 옆에는 함께 괴생명체의 입속에서 떨어진 루카스가 있었고, 앞에는.
“애기야, 내가 웬만하면 새벽엔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묘하게 애정과 싸늘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기다란 곰방대를 문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탈라리스 엔도르마.
51대 비궁주이자, ‘심연의 거미’라는 이명으로 전 세계에 위세를 떨치는 10성 기사.
“게다가 내 허락 없이 손님까지…… 후후, 우리 애기. 며칠 안 본 새에 많이 늠름해졌네. 나도 가끔은 이렇게 겁이 없다고 어필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핫라인?
루카스는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와 ‘핫’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기…… 갑자기 연락한 것도, 허락 없이 손님을 데려온 것도 미안해요, 하지만 여기, 카시미르 경은 내게 봉급을 주시는 분이죠. 자길 꼭 만나고 싶다기에 모셔 왔어요.”
두 사람의 분위기를 파악한 카시미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의 남성 편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우리 측 정보원까지!? 아니 그보다 루카스 이놈, 그간 이 사실을 우리 측에 보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카시미르는 그 이유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탈라리스와 루카스는 엄밀히 말하면 ‘연인’이 아니다.
루카스는 탈라리스의 수많은 정부 중 하나일 뿐이고, 그녀의 정부들이 함부로 관계를 떠벌리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건 흔한 풍문이었다.
“흐응…… 그래, 애기한테도 사정이 있겠지. 애기는 나가 봐. 나중에 혼날 각오하고.”
텁!
탈라리스가 손짓하자 어디선가 또 거대한 입이 튀어나와 루카스를 삼키고 사라졌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카시미르조차 반응하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그리고 탈라리스와 단둘이 남게 되자.
카시미르는 느낄 수 있었다. 그저 편하게 누워 있는 탈라리스가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위압감이, 시론 룬칸델에 버금간다는 것을.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난 시론 경 앞에서도 할 말 다 해 본 기사야!’
꾸욱, 카시미르가 이를 악물자 탈라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카시미르 비먼트. 아, 이제 비먼트란 성은 안 쓰겠군. 어쨌거나 자긴 유부남인 데다 생긴 것도 내 취향이 아닌데, 대체 뭘 믿고 날 찾아왔을까?”
카시미르가 흠칫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비궁의 51번째 주인이시여. 저는 카시미르, 티칸 자유 도시의 유지 노릇을 하는 무인입니다. 제가 이토록 무례하게 비궁주를 찾은 것은.”
“아아, 딱한 사정 같은 건 듣고 싶지도 않아. 간결하게 이야기해 줄래? 내가 물어본 것만 대답하란 말이야. 대체 뭘 믿고.”
날 찾아왔지?
탈라리스가 마지막에 기운을 가득 담아 물어보자, 카시미르의 동공이 흔들렸다. 미처 오러를 일으키지 않은 상태에서 탈라리스의 강대한 기운을 직격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군. 이게 10성 기사의 위압감인가.’
이러이러해서 문제가 생겼으니 도와주십시오.
아무래도 그렇게 설명해 봤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시미르는 곧장 품속에서 한 송이의 비궁설화를 꺼냈다.
“비궁주의 외동 따님께서 이 꽃을 맡긴 소년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풋!”
탈라리스가 뜻 모를 웃음을 터뜨렸다.
* * *
뮤론이 죽고 세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카시미르를 기다리고 있던 진과 무라칸, 그리고 살아남은 콜론인들은.
‘젠장…….’
갑작스레 콜론 상공을 뒤덮기 시작한 여섯 마리의 용을 올려다보며, 새벽녘 하늘의 어둠이 한층 더 짙어지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진 일행과 콜론인들은 아직 뮤론이 죽은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콜론인들이 막 신물을 꺼내기 위한 의식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뮤론이 죽은 자리가 옛 콜론인들의 재단이 있는 땅이었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뭔가 의식 같은 걸 하고 있습니다. 탑주의 명령을 따른 건 아닌 듯 보이는군요, 부탑주.”
“탑주를 찾아라! 일대에 있는 모든 인간은 단 한 놈도 빠뜨리지 말고 붙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