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30)
제 1130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20)
아메리스와 로키아의 발소리보다, 먼 폭음이 먼저 들려왔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전투도 재개되고 있었다. 타 차원의 발레리아에 의해 시간이 멈췄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복도가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탈라리스의 대봉인이 예정보다 빨리 해제되었으니 르엣과 승무원들이 달려온 것이다. 르엣은 탈라리스에게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비궁주, 봉인이…… 아니, 소, 소가주!? 팔이, 안 돼, 발레리아!]모두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진과 그녀에게 묶인 발레리아를 쳐다보았다. 분명 그들의 인식 속에 두 사람은 방금까지 창성들의 격전지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으니까.
르엣과 함께 온 신관들은 황급히 진을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진은 손짓으로 그들을 물렸다. 라니를 포함해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상처였다.
“집사장, 시간이 없으니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방금까지 저와 아메리스 님, 로키아를 제외하고 전장의 시간이 멈췄었습니다.”
네? 르엣은 그렇게 되묻지 않았다. 그녀 또한 탈라리스처럼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무엇이든, 소가주가 지금 여기에 있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듣겠습니다.]“다른 세계의 발레리아가 도운 겁니다. 덕분에 테마르의 왼팔에 걸린 저주가 지금 풀린 거죠.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안배로 들어설 겁니다. 거기…… 이 전쟁을 끝낼 무언가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무엇에 기도하는가, 신은 아니다. 사람들이었다.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올리는 기도였다.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준비하겠습니다.]이내 진은 작업실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아메리스와 로키아는, 테마르의 팔이 놓인 관 옆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저주를 빠르게 푸느라 둘 다 한계까지 지친 것이다. 특히 로키아는 얼굴과 몸 곳곳이 썩어 문드러진 정도였다. 갑자기 지난 천 년의 세월이 몰아 불어오기라도 한 듯이.
“……당연히 네가 배신을 해서 쓸데없는 싸움이 하나 늘 줄 알았는데, 그럴 일은 없겠군.”
명확했다.
로키아는 지금 그저 흔한 이야기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늙고 힘없는 마녀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오랜 광기와 악에 젖은 검은 손톱은 무언가에 닿으면 바로 떨어질 듯 보이고, 누렇게 물든 이도 그랬다.
로키아는 처음에 르엣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자신을 구속하라 말했었다. 최소한의 마력만 있어도 저주 해제를 돕는 건 문제가 없다고.
그때 르엣이 로키아를 구속했다면, 그녀는 지금처럼 썩은 몸조차 남지 않았을 터였다. 로키아는 처음부터 소멸을 감수하며 작업실로 들어선 것이다.
이내 그녀는 주름에 파묻힌 힘없는 눈동자로 진의 왼팔과 옆에 놓인 테마르의 왼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푸흐흐…… 정말 왼팔을 잃은 채 왔잖아…… 짜증 날 정도로 세상의 사랑을 받는구나, 후손아. 정말로 질투가 치솟는다고.”
“지금 희생했다고 하여 네 배신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난 투쟁했을 뿐이야.”
“네가 지난 천 년간 행한 건 투쟁이 아니라 모략과 조작이지. 네 눈엔 지플이 투쟁하는 자들로 보였나? 똑같다.”
진이 테마르의 왼팔을 집으려는 찰나, 로키아가 재차 클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쓰려고? 유산으로 들어서려면, 테마르의 육신으로 바리사다를 휘둘러야 한단다. 그래야 결계가 해제되지. 설마 그 팔에 바리사다를 억지로 묶고, 네 오른팔로 그 팔을 잡아 휘두를 건가? 그거참 볼만하겠군!”
덥석! 로키아가 진의 허리를 붙잡았다. 몸의 절반 이상이 늪처럼 녹은지라 아무리 손을 뻗어도 허리를 잡는 게 한계였다. 떼어 내려는 찰나, 로키아는 또 클클 웃었다.
“자, 한 번 네 팔에 붙여 봐. 저주를 해제하며 기능을 하나 더 넣었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았거든.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았단 말이지…….”
진은 대답하지 않고 아메리스를 쳐다보았다. 아메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은 망설임 없이 테마르의 왼팔을 자신의 왼쪽 어깨에 갖다 대었다.
스스스스…… 츠즈즛……!
태엽이 감기는 듯한 부드러운 마찰음이 일며 환부와 테마르의 왼팔 사이에 가느다란 마력의 끈들이 형성되는 모습이 이어졌다. 수천 가닥 실 같은 마력은, 채 십여 초가 지나기도 전에 진의 어깨와 테마르의 팔을 한 몸처럼 이어 주었다.
진은 왼팔에서부터 진하게 용솟음치는 기운이 온몸으로 뻗어 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테마르의 왼팔에 남아 있던 그의 진기가 퍼진 것이다. 천 년 동안 온갖 저주와 실험에 시달린 만큼 창성 기사의 팔 하나 분 온전한 진기라고는 할 수 없으나, 당장 진을 이보다 더 많이 회복시킬 수단은 존재치 않았다.
“하하하……! 역시 잘 어울리네, 실패한 선조의 마지막 선물이다. 잃어버리지 말고 잘 쓰라고…….”
시잇, 씨이잇! 로키아의 숨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소멸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사장.”
진은 그제야 발레리아를 몸에서 풀어냈다. 진기를 회복한 까닭일까, 그토록 무겁던 발레리아는 거짓말처럼 가볍게 진의 품에서 르엣에게로 옮겨졌다.
발레리아를 받아 안은 르엣은 그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정족의 후예, 히스터, 그 마지막 생존자, 평생을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던, 이제야 겨우 마음 누일 곳을 찾은, 혈육.
그러나 이 전장엔 그렇게 고독하게 싸우다 죽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진은 자신을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레리아를 내내 안았으나, 르엣은 아니었다. 그녀는 발레리아만을 특별히 여겨 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어도.
“가겠습니다.”
초가 지날 때마다 켈리악과 마신대의 공세가 격해지고 있었다. 지금 라프라로사는 태양의 무자비한 폭격에 쉴 새 없이 부서지고 흔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은 이제 켈리악을, 그의 힘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두렵지만, 유산에 정말 그를 쓰러뜨릴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목에 검을 쑤셔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일신을 자처하는 미친 괴물을 마침내 도륙할 수 있을 것이다.
‘켈리악, 네놈은 내가 이걸 얻기 전에 우릴 끝장냈어야 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였어야 해. 하지만 그 거대한 힘을 갖고도 그러지 못했군. 길은 찾았다, 내가 유산을 얻을 일만 남았다고. 내…… 차례라는 뜻이다.’
테마르의 왼팔엔 진기만 남아 있던 게 아니다.
천 년 전 솔더렛이 설정한 일종의 ‘인증’이 발현되며 유산의 정확한 위치도 머릿속으로 전달된 것이다. 인증자는 진 룬칸델, 유산의 위치는 흑해 모르가니엘의 영역. 붉은 바다에 가려져 있어도 이제 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예, 무운을…… 가서 쟁취하십시오. 거머쥐십시오! 투쟁 끝에, 결국 마지막에 서는 건 우리라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르엣이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자 근처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검례를 올렸다. 룬칸델의 권속이 아닌 이들도 모두 저마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표했다.
“진, 너는 내게 갚을 빚이 많아. 무슨 짓을 해도 갚을 수 없을 테지. 하지만 이번에 살아 돌아온다면, 놈들을 꺾는다면. 모두 받은 것으로 하마. 이자까지 모조리 다 갚았다고 생각할 것이야…… 너는, 반드시 은혜를 갚는 사람이다. 잊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탈라리스는 짧게 진을 끌어안았다. 눈주름 사이로 눈송이처럼 빛나는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진이 떠났다. 있는 힘껏 복도를 내달려 곧장 함교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자리를 떠날 때였다. 탈라리스는 잠시만 회복한 후 지상으로 나갈 생각이고, 아메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르엣은 함교로 돌아가 태양에 무너져가는 라프라로사를 이끌어야 했다. 소가주가 돌아와서 가장 먼저 볼 풍경이, 파괴되어 추락한 라프라로사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클클…… 큽…… 르엣…….”
[아직 더 할 말이 남았나요? 배신자. 당신은 소가주께서 지플을 베는 모습을, 룬칸델이 마침내 그 천 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볼 수 없군요. 끝내 구원받지 못하는 결말, 만족스럽습니까? 가문을 향한 뒤틀린 마지막 애정은, 그래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뿐이지만.]르엣은 로키아가 알아서 죽게 두고 어서 함교로 가려 했다. 천 년 전 함께 싸우던 시절의 우정과 지금의 배신감이 일순 어지럽게 교차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일말의 동정심이 생긴 건 아니었다.
“들어…… 우리 조카…… 얘기니까.”
그 말에 르엣의 눈동자에 불길이 번졌다.
[뭐라고요? 우리? 우리라고? 헤일린은 당신 조카가 아니야!]로키아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로키아가 지닌 물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은 구슬이었다.
“헤일린…… 푸흐흐, 그 아이의 육신은 살아 있어. 정확히는 살아 있었지. 보아하니 지금은 태양신의 힘을 얻은 켈리악에게 흡수된 것 같지만…… 어쨌든 이건, 아락시온에게서 분리한 헤일린의 영혼이다.”
[……헤일린의?]“보여 주려고 했거든, 이 아이에게.”
로키아 가네스토.
그녀는 지난 천 년 동안 세계를 ‘되돌릴’ 방법을 모색했었다. 빛도, 어둠도, 물질도 없는 상태로 세계를 되돌린 후, 자신이 창조한 땅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도래하면 로키아는 헤일린의 영혼에게 그 세계를 보여 주려 했었다. 자신이 천 년을 배반한 대가로 만들어 낸 ‘온당한’ 세계의 풍경을.
이를테면 로키아에게 헤일린의 영혼은 그녀가 룬칸델로서 가진 마지막 욕심이었다.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굳이 수백 년에 걸쳐 헤일린의 영혼을 깨끗하게 분리한 이유였다. 우리는 못 보았으나, 우리의 아이는 룬칸델이 승리한 세계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로키아는 르엣에게 내막을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실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루시에게 줘……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진 룬칸델이 지플을 꺾는다면, 볼 수 있겠지. 헤일린도.”
르엣은 이미 구슬을 빼앗듯 받아서 낚아채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로키아의 말을 더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클클.”
로키아는 마지막으로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가네스토의 일원들을 생각했다. 란, 뷔고, 뮤, 앤, 그리고 조슈아.
천 년을 배신해서 얻은 대가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조금도 예뻐할 수 없던 아이들이었다. 애초에 로키아에게 그들은 단지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는 소모품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옆에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가네스토의 기수들은 이미 전장에서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일로아누와 융합한 조슈아마저도.
“……끝이로군.”
가네스토가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