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42)
제 1142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11)
하늘에서 한 줄기 어둠이 흘러내렸다. 땅에 닿은 어둠은 곧 사람의 형상이 되어, 마녀 헬루람이 되었다.
켈리악에게 당한 건 전부 거짓이었다는 듯, 그녀는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지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어둡고 무한한 심연이 온 하늘에 꿈틀거리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야, 야…… 헬루람! 아니지?]그녀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오르갈이었다.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가, 오르갈.] [너 설마 지금부터 빛을 없애겠다며, 우리와 싸울 건 아니지? 아니, 그나저나 너 왜 이렇게 멀쩡한데? 아까 분명 다 죽어 가지 않았어? 아니, 아예 죽었던 것 같기도.] [내가 멀쩡한 것이 굉장히 껄끄러운 모양이군.]오르갈은 무어라 따지려다가 흠칫하며 헬루람을 다시 살폈다.
[잠깐…… 너, 내가 알던…… 그 헬루람이 아닌 것 같은데? 비슷하지만 분명 뭔가 달라…… 너, 누구냐?] [자연엔 여러 모습이 있지.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뭐라고……?] [단지 그뿐이다. 네가 알던 내 모습은 부서졌어. 솔더렛이 그랬듯이…… 이제 나도, 그처럼 돌아가야 할 때가 왔군.]빛과 어둠은 하나다.
그리고 솔더렛과 헬루람은 그로부터 파생된 존재들이었다. 자연이 품은 욕망이 실체화된 존재, 그녀는 이제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더렛이라는 욕망이 사라졌으니, 자신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마땅하다는 사실을.
무한한 존재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상은 유한한 이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였다. 질서는 질서일 뿐, 무대의 구성원이 될 수는 없었다.
[나와 솔더렛이라는 자연이, 그 일부가 왜 킨젤로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인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솔더렛이 나보다 사람을 택해 우리가 분열된 것만이 또렷이 떠오를 뿐이지. 다만, 이제는 나도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세상에서 빛을 지워 솔더렛에게 복수를 하고 싶던 헬루람은, 켈리악의 손에 의해 소멸했다. 지금 진과 눈을 맞춘 헬루람은 어둠의 다른 한 면이었다.
[너희가 끝내 어둠을 감동하게 만든 셈이다. 솔더렛이라는 빛이 하지 못한 일을 너희가 한 것이지. 혹은 그가 내게 지은 죄를 대속했다고도 할 수 있겠군…… 지금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니 너희를 위하여 기꺼이, 이 육신을 내어주마.] [헤, 헬루람. 진심이냐……!?] [그리도 놀랄 일인가? 오르갈. 빛을 없애는 재앙이 되고 싶던 나조차, 수없이 많은 너를 심연의 병사로 만들어 주었었다. 나는 그때부터 이미 너희에게 감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진짜지……!?] [그렇다.] [진짜로 진짜지!? 이래 놓고 갑자기 뒤통수 치는 건 아니지?]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지는군…….]그 말에 진은 반사적으로 오르갈의 머리를 붙잡아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어서 사과해라 오르갈.”
[어, 어? 어, 그래! 미안하다, 헬루람! 그, 너무 꿈 같아서 내가 잠시 미쳤나 보다. 어우, 진짜 꿈 같아서 말이야…….]꿈 같다.
모두가 그랬다. 정말 세상이 복원되고 켈리악에게 무참히 짓밟혀서 죽은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헬루람의 난데없는 전향 따윈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 말처럼 자연은 여러 모습이 있을 뿐이니까.
세상이 돌아온다.
두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마신석과 태양신 킨젤로의 힘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다만, 진은 엘로나가 방금 한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비롯한 ‘몇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태양신…… 아니, 엘로나 지플. 블리기에트, 넵돌, 벨티안, 포칼을 불러들여라. 이제부터 너희가 살아갈 세상엔, 위험한 신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진의 근처로 날아온 라프라로사로부터 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태양신의 자아들은 이미 날아오는 동안 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엘로나의 의지는 그녀가 처음 깨어난 순간부터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진!”
[소가주……!]발레리아와 르엣이었다. 태양신의 자아들은 사람들의 뒤에 서서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벨티안도 동력원의 구속 장치에서 빠져나온 모습이었다.
[잠깐 친구들과 인사를 할 시간은 있겠지?]엘로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블리기에트와 넵돌, 포칼은 곁에 선 사람들을 한 번씩 안아 주었다.
[내가 온전하던 시절,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잊었던 게 미안하구나.] [그 마음은 우리 대신 엘로나가 보여 주는 중이라고 생각해…… 뀨, 싸우느라 가까워질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다들 보고 싶을 거야.] [이제야 세상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겠구나, 아니. 처음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겠다고 해야 옳겠어.] [벨티안, 너도 작별 인사 좀 해라. 이제 우리 피조물들 다시는 못 본다고.]벨티안은 블리기에트의 말에 잔뜩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끝까지 파멸의 자아인 티를 내야겠냐? 말루기아도 이제 킨젤로. 아니. 엘로나의 뜻을 따르기로 했는데?] [그래, 벨티안 그러지 말고 안아 주자, 뀨.] [미안했다…… 잘, 살아라 다들. 이제 너희를…… 저 공중요새에 싣고 어디로든 날아서 데려가 줄 수 없겠군.]이제 파멸, 재구축, 유지라는 자아는 사라졌다. 온전한 태양신, 엘로나 지플의 의지가 그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멸을 추구하던 자아들은 더 큰 고통을 느꼈다. 엘로나가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듯이.
[하지만 내가 없어도, 다들 어디로든 자유롭게 날아라…… 어디서든 정말로 날 수 있는 듯이 살아라. 너흰 우리가 창조했지만 우리보다 더 낫고 빛나는 존재니까, 그럴 수 있겠지.]태양신의 자아들이 조금씩 흐려지며 엘로나에게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뒤에 남아 있는 거대한 태양기도 엘로나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사람의 모습을 잃어 갔다. 젖은 두 눈동자에는 은하수가 맺히고, 온몸이 금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그래서 베라딘은 더욱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와 온몸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진 경.]“말씀하십시오, 엘로나 경.”
[마지막으로 더, 필요한 존재들이 있어요…….]질끈, 진은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빛…… 솔더렛으로부터 빚어진 존재들을 뜻하는 겁니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로나.
빛과 어둠, 빛과 그림자.
세상의 복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지막 요소는, 서로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이었다.
[미샤, 이리 나오너라.]헬루람의 목소리에 어두운 하늘 한가운데가 열렸다. 그 속에서 미샤가 지상으로 하강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미샤는 본래 자신이 나서야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켈리악의 힘이 세상을 파괴할수록, 그녀는 진이 영기를 잃지 않도록 그림자의 질서를 제어하느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다 진이 유산에 닿았을 때, 미샤는 솔더렛이 남긴 진실을 함께 마주했다. 이 세상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자신이 무엇인지를. 솔더렛을 대리한다는 건, 곧 솔더렛 그 자체가 되는 일인 까닭이었다.
[아, 거참…… 이 좋은 순간에 저거 얼굴을 보네, 또. 어으, 싫다 싫어.] [잘했다, 무라칸. 네가 마지막에 정신 차린 덕에 진이 해냈어.] [왜 이래 징그럽게? 소름 돋으니까 하던 대로 해, 하던 대로.] [하여간 너는 맞아야 사람처럼 말을 하지…….]진은 아무렇지 않은 자신의 수호룡들을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엘로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 진을 쳐다보지 못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그의 멍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안해요, 진 경.] [아니, 네가 뭐가 미안하냐? 너 아니면 세상 이대로 끝이야. 꼬마한테 괜히 죄책감 주지 마라. 어?]“아니…… 잠깐만. 엘로나 경, 헬루람. 무라칸과 미샤 님은 안 됩니다.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영기는 어차피 제게 제일 많지 않습니까? 조금이지만, 빛을 직접 다룬 것도 저뿐입니다.”
[안 된다.]“왜,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너는 본질적으로 나나 솔더렛 같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자연이지. 이 아이들만 희생하는 것도 아니다. 마신석에 봉인된 모든 불멸자들. 불, 물, 바람 같은 자연도 전부 돌아가는 것이지.]“그래도 이건.”
이건 아니다.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무라칸과 미샤를 위해서라면 진은 몇 번이고 목숨을 바칠 수 있으나, 그들을 살리기 위해 세상의 복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혼자 싸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싸워서 얻은 승리가 아니었다. 세상을 지키려고 함께 싸운 이들이 셀 수도 없었다.
[꼬마.]진은 웃고 있는 무라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무라칸, 야…… 내가 대신. 아.”
[안 된다는데 자꾸 왜 그러냐, 자식아. 그리고 우리가 명색이 수호룡인데, 어떻게 우리 대신 널 희생시켜? 나나 미샤나 삼천 살이 넘었다. 우린 살 만큼 살았다고. 그에 반해 너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애송이다. 핏덩이도 이런 핏덩이가 없어. 당연히 네가 살아야지.]“너, 딸기파이는, 길리는 어쩌라고.”
무라칸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럼 너는 인마. 네가 죽으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그리고 너는 불가능하다니까!]진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오, 머리 아파. 꼬마, 딸기파이한테는…… 젠장, 딸기파이한테는…… 으흑…… 흑, 망할. 내가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고 전해 줘라…… 아니지, 이건 너무 잔인해. 그냥 갖고 논 거라고 거짓말을 해. 아이 씨 이것도 너무 좀. 믿지도 않을 거고. 어쩌지, 하. 그래, 사랑했다고 전하자. 그게 맞는 것 같다. 정확히 뭐라고 전해 주냐면. 음, 딸기파이여…… 딸기파이여, 크흡…….]무라칸은 눈물과 콧물을 범벅으로 흘리며 진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딸기파이에게 무어라 전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미샤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주 놀고 있네. 누가 보면 우리랑 세상이 영원히 이별하는 줄 알겠다, 이 멍청한 자식아. 징그러워 죽겠네, 진짜.]훌쩍거리며 고개를 드는 무라칸, 그는 태어나 처음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마귀 같은 누이를 쳐다보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여…… 영원한 이별은 아니냐? 미샤? 나 꼬마랑 딸기파이 다시 만날 수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