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41)
제 1141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10)
진은 옥타비아를 노려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켈리악처럼 젊어진 모습이지만, 차원문을 빠져나온 인물은 분명 옥타비아 지플이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아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옥타비아는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그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바멀 연합 전체를 짓밟을 수도 있었다. 현재 연합엔, 옥타비아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녀는 천천히 진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도중에 허리를 숙여 땅에 떨어진 지팡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켈리악이 떨군 지팡이, 마신석이었다.
걸음을 멈춘 그녀는 한동안 멍한 시선을 지팡이에 고정했다. 지팡이는 그녀의 손에서 진동하며 스멀스멀 마력을 발산했다.
꼭 적들을 죽이라고, 켈리악의 원수를 갚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변치 않는 것을 변화시키고 싶다라…….”
옥타비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더 꽉 그러쥐었다.
-이제 내가 해 준 이야기들을 모두 믿을 수 있을 테지. 다중세계, 끝없이 이어진 전 차원의 전쟁 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선 살아남아라.
-예?
-수많은 차원을 제거하고, 정복하며. 가끔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띄더군. 신기하게도 말이지. 그중 하나가 바로 너다, 옥타비아. 내가 알던 모든 세계에서, 너는 단 한 번도 살아남은 적이 없다.
켈리악이 자신을 구해 준 후 한 말이 떠올랐다.
“경께선 성공하셨군요, 세상과 지플이 전부 멸망했는데도 저는 이리 살아남았으니.”
“옥타비아 지플…… 크윽.”
진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검은 손아귀에서 빠지지만 않았을 뿐이다. 쥐고 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남은 희망은 엘로나의 태양기라는 생각이 든 찰나, 진은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와 몸을 숙이는 옥타비아를 볼 수 있었다.
지팡이로 진을 내리찍으려는 듯 보였다.
막 눈을 뜬 베라딘은 그 모습을 보며 악을 질렀다.
“고모! 멈춰……!”
“목소리를 낮춰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니.”
“어?”
“그나저나 내 모습이 많이 젊어졌는데도 용케 바로 알아보았군, 베라딘.”
옥타비아의 지팡이, 마신석은 진의 몸에 살짝 닿은 채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지팡이를 통해 자신의 진기 일부를 진에게 나눠 주었다.
진은 다시 몸을 일으켜 옥타비아와 마주 섰다.
“무슨…… 생각이지? 옥타비아.”
지금 옥타비아는 마음만 먹으면 단지 바멀 연합을 학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신대를 다시 일으킬 수도 있었다. 완성된 마신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마신대가 아니라 지플의 일원이었다. 우린 마신대가 오기 전, 너희에게 패배했었지.”
말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았다.
회색지대.
지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언제나 회색지대에 선 채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을 외면하던 날들뿐이었다.
그랬던 자신이, 지금 감히 이들을 힘으로 꺾을 수는 없다.
이 빛나는 이들이 끝끝내 싸워서 지켜 낸 것을 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항복을 하러 왔다, 진 룬칸델.”
“뭐……?”
“이제 지쳤다. 싸우는 것도, 가문도, 나 자신에게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지만…… 지쳤어. 이런 건, 내가 알던 세상도 아니다. 내가 원하던 세상은 더더욱 아니지.”
다중세계, 마신대, 그리고 파멸을 맞이한 677차원. 이 세상에 살던 모두가 그렇듯, 옥타비아에게도 그것들은 전부 낯설고 끔찍한 일들이었다.
“……그러니 선조께서도 그만 경계하고 이리 나오시지요.”
옥타비아가 그렇게 말하자 태양기의 한가운데가 양옆으로 갈라지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나 지플이었다.
“엘로나 경……!”
“엘로나 경!”
진과 베라딘이 소리쳤다. 엘로나는 말루기아로 각성한 형태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신석을 내게 넘기세요.”
엘로나가 순식간에 옥타비아와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옥타비아는 순순히 엘로나가 내민 손으로 마신석을 건넸다.
마신석이 엘로나에게 넘어간 걸 본 후에야 진은 안심할 수 있었다. 다시 말루기아의 의지가 그녀를 잠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옥타비아 지플, 이렇게 해도 당신은. 아니,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츠즈즛, 퍼걱!
별안간 옥타비아의 팔목과 발목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입에서는 시뻘건 핏덩이가 쏟아졌다.
엘로나가 한 게 아니었다. 옥타비아는 자신이 더는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역류를 일으키고 사지를 폐한 것이다.
“후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은 건 한 사람의 지플로서……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은 내가 가문의 노예로 살며 본 지플 중, 두 번째로 나은 사람입니다.”
“첫 번째는 베라딘이겠군요. 하하, 그러나 나와 비교되어서는 안 될 아이지.”
“내가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이 마지막 순간이, 전투와 살인으로 채워지지 않게 된 점도 다행이군요…….”
엘로나는 몸을 돌려 베라딘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노예로 대하지 않은, 두려워하거나 혐오하지도 않은 단 한 사람의 지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파괴와 학살뿐이었던 그녀의 삶 속, 베라딘은 단 한 줄기의 빛이었다. 그녀가 직접 닿아 본 유일한 빛이었다.
“진 경, 부탁이 하나 있어요.”
“엘로나 경?”
“지플은 오랜 시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들을 저질러 왔습니다. 옥타비아가 지금 패배를 인정한 것도, 제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도…… 참작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엘로나는 베라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좁고 떨리는 어깨, 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어떤 말을 할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한 번만 욕심을 부리고 싶습니다. 베라딘 지플. 나의, 베라딘이 이제부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진 경이 도와주세요.”
엘로나가 손을 뻗자 베라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곧 그녀의 품으로 감겨 들어왔다. 베라딘은 울고 있는 엘로나의 얼굴을 매만졌다.
“엘로나 경, 아무래도 경은 곧 떠나시는 모양이군요. 경이 부탁하지 않아도 진은 그렇게 할 녀석입니다. 우리가 한 짓은 물론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 조금이라도 죗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제가 닿는 데까지, 죽을 때까지 치를 것이니 마지막은 좀 더 즐거운 생각을 해요.”
엘로나가 베라딘을 안은 채 다시 뒤돌아 진을 바라보았다.
“이것 참, 이렇게 누구에게 안긴 채로 친구를 보려니 좀 민망한데. 진, 그래도 네가 이해해라. 엘로나 경이랑 이럴 수 있는 게 마지막이거든.”
“그래…… 물론이다.”
“진 경, 저는 이제부터 세상을 복원할 겁니다.”
“세상을, 복원…… 한다고 하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엘로나.
이내 그녀가 가볍게 마신석을 바닥으로 내리치자, 저 뒤편에 놓인 태양기에서 사방으로 금빛 곡선들이 퍼져나갔다. 그 빛은 모든 쓰러진 이들에게 스미는 모습을 보였다.
“허, 헉!”
“켈리악은……!”
“갑자기 몸에 힘이……?”
“우리가, 이긴 것인가!?”
엘로나가 퍼뜨린 태양기는 살아남은 이들의 기력을 급속도로 회복시켰다. 켈리악과의 전투를 끝까지 지켜본 이들은 거의 없으므로, 의식을 되찾은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싸움은, 끝났다!
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싸움은 끝났다, 싸움은 끝났다, 싸움은 끝났다. 목이 터져라, 진은 연신 같은 말을 소리쳤다.
여느 전쟁터처럼 함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신없이 달렸다.
하나둘씩, 진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직접 진을 두 눈에 담은 다음에야, 그가 소리친 것이 틀림없다는 걸 직접 확인한 후에야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온 세상이 파괴되고 셀 수 없는 이들이 죽었어도, 지킨 것이다. 싸움은 정말로, 끝난 것이다.
그리고 엘로나는 이제 세상을 복원하겠다 말하고 있었다.
“마신석, 태양신 킨젤로의 권능. 그리고 경이 남긴 빛과…… 저를 비롯한 몇 명의 희생이 따른다면, 세상을 다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가능한 겁니까……?”
“네. 부서진 땅들을 되돌리는 일은 물론, 죽은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근본적으로 켈리악 지플이 하려던 일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제 욕망은 그와는 다를 뿐. 저는, 세상이 아름답길 원합니다. 저 같은 괴물도 없고, 이토록 잔인한 싸움도 없는…… 사람들을, 생명을 멋대로 주무르려는 신들도 없는, 마신석도 없는, 그러므로 다중세계라는 오류도 없는 세상을 원합니다.”
엘로나에겐 온전한 태양신의 권능과 마신석이 있다.
그녀는 켈리악처럼 원하는 걸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다. 마신석을 넘기기 전까지의 옥타비아와 마찬가지로,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을 복원하기로 택했다.
‘태양신’으로서 파괴된 세상을 재구축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사람으로서 세상을 사랑하기로 했다.
“진 경, 나는 원치 않게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조작에 의해서, 그리고 말루기아라는 내 본질에 의해서…… 그러나 이제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나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요. 그리고 나 또한 살아서 베라딘과 함께 언제까지고 죗값을 치르고 싶다는 나쁜 욕심도 있으나,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괴물이지만, 그래도 켈리악 지플보다는 나은 괴물이니까요.”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인가?”
“끔찍한 짓이에요, 베라딘. 그건 복원이 아니라, 조작입니다.”
“그래요, 나쁜 짓이군…… 또 엘로나 경에게 그런 짓을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엘로나 경,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면 저도 하겠습니다.”
그 말에 엘로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 경은 할 수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경의 사람들이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희생은 저처럼, 신이라 불린 존재들과…… 빛의 몫입니다.”
그렇게 말한 엘로나는 고개를 들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루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