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43)
제 1143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12)
진과 무라칸이 엘로나를 쳐다보았다.
“……미샤 님의 말이 맞아요. 영원한 이별은 아니죠. 하지만 진 경이 무라칸, 미샤 님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기에, 난 미안한 마음을 느낍니다.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아니면 그보다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습니다.”
불멸자라 불리는 존재들과 용의 입장에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준에선 요원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무라칸은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1년이든 100년이든. 아, 100년은 안 되겠군. 다 늙어 죽겠어. 10년이면 뭐, 괜찮아! 안 그러냐, 꼬마? 세상이 다시 복원된다는데 우리가 그쯤 못 만나는 게 무슨 대수겠어. 에잇, 괜히 질질 짜서 쪽만 팔렸잖아!]이미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마음으로도 받아들인 희생이었다.
[딸기파이에겐…… 인생을 실컷 즐기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라. 하지만 만약 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아서, 혹 나보다 더 좋은 놈이 생긴다면 결혼도 하라고 해.] [어, 그래. 오랜만에 옳은 이야기를 하는군. 그편이 딸기파이에게도 더 나은 미래다. 그 아이는 이딴 놈팡이가 대체 뭐가 좋다고.] [하? 하긴, 그래. 네가 뭘 알겠냐, 사랑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 음침한 짝사랑만 할 줄 알지.]뻐걱!
결국 미샤의 주먹이 나갔다. 무라칸은 연신 턱이 돌아가는 와중 몇 번 반격을 시도했으나 그럴수록 더 강한 주먹을 맞을 뿐이었다.
[아오 아파! 아프다고! 거, 그만 좀 때려 이제 가야 하는데!] [남은 건 나중에 맞을 줄 알아라.]다시 만날 수 있다.
희망이 있으니 진과 동료들도 방금처럼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모습이든,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래도 진과 동료들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무라칸과 미샤를 안아주었다. 미샤는 좀 징그럽다며 미간을 좁혔으나 정말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베라딘.]“엘로나 경…….”
[삶은 길고 짧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내게는 그렇습니다. 천수를 다 누려도 불행한 사람들이 있고, 찰나 같은 삶을 살아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죠. 나는 오랜 세월 괴물로서 괴로웠으나, 사람으로서 산 그 짧은 시간은…… 가주를 만나서 의미로 가득했었습니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경이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러니 제가 세상 속에 흩어져 이 모습을 잃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산과 들, 바람과 바다, 땅과 하늘이 된 나는 가주와의 시간을 기억하며 늘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멀리서부터 묵직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세상이 파괴되는 소리였다. 거대한 땅들이 비명을 지르며 쪼개지고, 바다는 부글부글 끓어서 말라가고 있었다.
곧 모르가니엘의 영역에까지 그 여파가 밀려들 터였다.
[마지막 순간을 어수선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군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려주세요.]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눈을 감았다. 진은 무라칸의 손을, 무라칸은 반사적으로 미샤의 손을 잡았다가 기겁하며 풀고는 발레리아의 손을, 발레리아는 단테의 손을, 단테는 시리스의 손을, 시리스는 엔야의 손을…….
그렇게 모두가 손을 잡고 있었다.
베라딘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엘로나는 베라딘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붙잡았다.
천천히 그의 눈을 감겨주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잘 지내요, 베라딘.]“잘 지내요, 엘로나 경.”
다시 눈을 뜨고 싶었다. 그러면 엘로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 베라딘은 눈두덩을 덮은 엘로나의 손바닥이 느껴지지 않는 걸 느꼈다.
“아…….”
다시 눈을 뜬 베라딘은 한 덩이의 태양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두 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그 태양기가 엘로나였다.
나머지는 온통 어둠이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들도 윤곽만 보일 만큼 어두웠으나, 누군가 베라딘의 손을 붙잡았다. 엔야였다. 베라딘은 남은 한 손으로 태양기를 품에 안듯이 감싸 쥐었다.
무라칸과 미샤가 입자로 흩어지며 태양기 속으로 사라졌다. 무라칸의 손을 잡고 있던 진의 손이 잠깐 비었으나, 발레리아가 다시 그 손을 잡아주었다.
[진, 내게 슈리를 보여다오.]헬루람의 목소리에 진은 두말없이 적옥에서 슈리를 꺼내주었다.
[먀!] [너에게 불사의 저주를 걸었을 때, 나는 네게 영원한 어둠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로 이런 풍경만이 계속되는 어둠이었지.] [먀먀…….] [빛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이 재가 되면. 누군가는 그 모습을 봐주길 바랐던 것이다. 실은, 나조차도 아무것도 없는 심연에서 혼자 존재할 자신은 없던 게지. 그래서 너를 죽지 않게 만들었어. 그런 세상이 오면 너와 둘이 지내려고.]슈리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 어두운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알아보았다. 불사의 저주가 풀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언어로는 악독하고 이기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군.] [먀나냐…….]슈리는 헬루람의 마지막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짐승이란 어리석고 애처로운 존재로군. 내 손을 왜 피하지 않는 것이냐? 하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 새 주인은 나와 달리 네게 다정하니, 남은 삶은 즐겁게 지내거라.]이내 헬루람도 어둠 속에서 형체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검은 물줄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태양기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태양기는 점점 하얗게 물들었다.
한 덩이의 빛이 되었다. 태초에 세상에 가장 먼저 존재한 그 빛처럼, 어둠을 홀로 밝히고 있었다.
그 시점에 이르니 눈이 부셔서 아무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지팡이의 모습을 유지하던 마신석도 잘게 부스러져 빛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손을 잡은 사람들은 서로의 몸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세상이 정말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과 기대감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는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목소리들이 사람들의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어……? 뭐야, 나 죽은 게 아닌가?”
“데이토나?”
“린파 형제!?”
싸우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였다. 깨어나자마자 보이는 낯선 풍경에, 그들은 자신들이 사후세계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머릿속으로 빛의 의지가 전해졌다. 부서진 세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세상 곳곳에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동시에, 다중세계라는 수많은 오류가 닫히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역사 조작이라는 만행에서 시작된 차원들이, 닫히고 있다는 사실을.
천 년이나 이어진 모든 왜곡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침내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감각이 흐려지는 와중,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며 의식을 잃었다.
* * *
1805년 7월 30일, 검의 정원.
상복처럼 검은 로브를 입은 한 마법사가 정원으로 들어섰다.
베라딘이었다. 그는 세상이 복원된 이후 늘 검은 옷만을 입었다. 자신은 여전히 죄인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사라진 엘로나를 기리는 의미로.
“베라딘 공, 이제 그만 다른 옷을 입는 게 어떻소? 볼 때마다 너무 칙칙한 느낌이오…….”
“그래요, 베라딘 경. 많은 사람들에게 베라딘 경은 나쁜 놈이 아니라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매번 그렇게 나는 죄인이오, 할 건 없다고 봐요.”
단테와 엔야였다. 그들은 진을 보러 검의 정원을 찾은 상태였다. 그러나 진은 자리에 없어 다른 기수들과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나를 곱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여전히 지플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도 셀 수 없다고. 그런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우리 가문은 모조리 검은 옷만 입는다.”
“지플은 이제 경밖에 남지 않았잖아요.”
“아니지, 한 사람 더 있잖아.”
옥타비아, 베라딘은 검의 정원 지하감옥에 있을 자신의 고모를 만나고자 이곳을 찾았다.
“아, 옥타비아. 그 양반도 이해하기 어렵지. 어쨌거나 마지막에 스스로 항복을 선언한 덕에 세상이 무사히 돌아온 셈이니까, 그냥 감옥에서 지내고 싶은 만큼만 지내고 나와도 좋다고 했더니…… 아직도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
메리였다.
실제로 옥타비아는 의외로 상당히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마신대와의 마지막 전투와 세상이 복원된 과정이 대부분 일반에 공개된 까닭이었다.
오직 진만이 ‘기억을 가진 채’ 회귀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대중들은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다.
진은 그 내용도 공개하자 했으나 동료들의 만류로 무산되었다. 동료들은 자신들만 알고 싶은 비밀이라는 논리로 진의 입을 닫았다.
“아무리 그래도 옥타비아 고모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마지막에 한 번 잘했다고 죄가 없어지나? 그런 논리라면 누구든 다 괜찮은 사람이지. 우리 고모는 나쁜 사람이 맞아. 본인도 그걸 알아서 감옥을 나오지 않는 거고. 나도 마찬가지죠.”
메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새 잔을 두 개 꺼내 차를 채워주었다.
“가서 네 고모랑 마셔라.”
“하늘 같은 룬칸델의 호의는 감히 거절할 수가 없군요…….”
“웃기고 있네. 그러다 한 대 맞는다.”
베라딘은 메리의 주먹을 보곤 찻잔을 챙겨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옥타비아의 방은 다른 죄수들과 달리 문이 열려 있었다.
“왔느냐.”
“예.”
옥타비아는 베라딘이 내려둔 찻잔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손에 쥐었다. 1년 전 세상이 복원될 때, 그녀는 누구의 손도 잡지 않았다.
“이제 나를 그만 찾아오거라.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너는 나와 달리 네 의지로 저지른 죄들이 아니니, 나와 엮여서 좋을 게 없다.”
“그래도 우린 혈육인데 어떻게 그럽니까.”
그 말에 옥타비아는 피식 웃으며 죽은 켈리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살아남아서 천수를 누리도록 해라. 한 번쯤은 빛나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나처럼 세상에 다시 없을 괴물이 되는 것도 괜찮지. 그래도 너는, 내 동생이지 않더냐.”
“예?”
“마신대의 켈리악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래도 혈육이라고 말하는 너를 보니 떠오르는군.”
그래도 동생이다, 그래도 혈육이다.
세상에 남은 두 지플은 서로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마법 교육이나 연구에 지식을 보태는 게 더 좋은 속죄 아니겠습니까? 저처럼.”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익혔던 마법은 전부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는 일에만 특화된 것들이지.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고모라면 금방 사람을 살리는 마법 연구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려던 베라딘은 그녀의 손발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옥타비아가 스스로 파괴한 육신은 세상이 복원될 때 돌아오지 않았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죽을 때까지 감옥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내 삶을 결정했다. 빛나는 존재도, 괴물도 될 수 없지만 이것이 속죄를 위한 내 나름의 결론일 뿐이야.”
“그래도…… 고모의 마지막 선택은 분명히 빛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고모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엘로나 경은 이렇게 무사히 세상을 복원할 수 없었어요.”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속죄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얻은 것이지. 나는 괜찮으니, 너나 이제 상복을, 수의를 벗도록 해라. 엘로나 경이 네 친구에게 그토록 부탁을 하지 않았느냐.”
베라딘은 대답하지 않고 차를 홀짝였다.
“모레, 진의 가주 계승식이 있다고 들었다. 적어도 거기 참석할 때는 옛날처럼 하얀 로브를 입어라. 그 자리에선 룬칸델만이 검은 옷을 입을 수 있으니.”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지플이었다는 걸, 지금도 그 이름을 쓰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너 자신이 잊지 않으면, 모두가 잊어도 괜찮을 것이야.”
그 말에 베라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지하감옥인데, 어디선가 두 사람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베라딘은 손으로 그 바람을 움켜쥐며 미소를 지었다. 엘로나가 온 것 같았다.
“그러네요. 신기하게 여기도 이런 따뜻한 바람이 부는군요, 고모. 우리 계속 이렇게 잊지 말고 지내죠. 우리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속죄하며 살아갈 것인지.”
옥타비아가 처음으로 찻잔에 입을 가져다댔다.
“……그러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