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31)
제 111화
42화. 타이뮨 마리우스(5)
타이뮨은 룬칸델의 유모인 만큼 7성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나. 무방비상태에서 아군인 줄 알았던 이들의 갑작스러운 기습에는 도리가 없었다.
푸욱!
진이 던진 단검이 암살자의 어깨에 꽂혔다. 때문에 암살자는 제대로 단검을 내지르지 못했고, 뒤늦게나마 반응한 타이뮨은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핏, 칼끝에 어깨를 스친 정도. 그럼에도 타이뮨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위험했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타이뮨은 당했어.’
그녀에게 캐내야 할 정보가 산더미였다.
결코 타이뮨이 좋아서 살린 것이 아니다.
한 살 이후, 무려 15년 동안 단서조차 찾지 못한 저주의 범인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을 뿐. 또한, 그녀를 단죄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 할 뿐.
타이뮨은 물론이고, 그녀의 배후에 있는 형제까지 찾아내 전생의 한을 풀리라. 진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를 악물었다.
“감히, 내 땅에서!”
루나가 크란텔을 휘두르자, 그 일섬에 암살자 둘의 목이 잘려나갔다.
진짜 룬칸델 집행기사였다면 최소 일격은 버텼을 것이다. 루나도 그 순간 그들이 가짜라는 걸 깨닫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암살자들의 목이 채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진이 타이뮨과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누가 보낸 것이냐! 룬칸델의 이름을 더럽힌 게 누구냔 말이다!”
루나의 진노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남은 암살자들이 일순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힘이 두려워서 뒷걸음질을 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반사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
목소리에 담긴 기운에 몸에 힘이 빠질 정도라면 암살자들은 6성 이하. 게다가 다섯밖에 되지 않으니, 첫 일격에 암살을 실패한 순간 그들은 모든 기회를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무인이 아니라, 극도로 훈련된 암살자들.
한순간에 동료가 둘이나 죽었건만, 그들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타이뮨만을 노리고 있었다.
“진!”
“걱정 마십시오!”
진이 처음에 타이뮨을 노린 암살자에게 브라다만테를 내질렀다. 동시에 타이뮨을 끌어당겨 후방으로 집어던진 사이, 균형을 되찾은 암살자는 재차 단검을 휘둘러 응수하는 모습.
서걱!
그러나 진은 단검을 쥔 암살자의 팔을 통째로 베어낸 후, 몸을 회전시키며 놈의 뒤를 잡아 목을 그어버렸다.
선혈이 튀는 와중, 진은 어쩐지 놈들이 이미 죽음을 예견하고 왔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 예상대로 암살자들은 처음부터 타이뮨과 자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내 말이 옳았군, 타이뮨 마리우스. 네 주인은 널 살릴 생각이 없어.”
진이 덤덤하게 말하며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냈고, 그때쯤 루나는 남은 두 암살자의 팔다리를 부러뜨려 제압을 끝냈다.
놈들에게 추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죽이지 않은 것이다.
우즈즉!
이내 암살자들의 면갑을 우그러뜨리며 벗겨내는 루나. 집행기사의 물건을 그대로 재현한 두꺼운 강철면갑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있었다.
“상세히 고하면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자들은 살려…….”
흠칫.
암살자들의 맨얼굴을 확인한 루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곁으로 다가온 진도 헛숨을 삼켰다.
마치 누더기를 이어 붙인 듯 흉측한 몰골. 암살자들은 이마부터 하관까지 온통 흉터가 가득하고, 귀도 반쯤 잘려나간 모습이었다.
흉이 도드라지고 붓기가 덜 빠진 점을 미루어보아, 최근에 이런 꼴이 된 게 분명했다. 신원노출에 대비해 일부러 얼굴을 뭉개놓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피거품을 물고 있기까지 했다.
“뭐 이런……!”
“잠깐만요, 누님.”
진이 죽은 암살자들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혀는 잡히지 않았으나, 어금니 근처에 자그마한 알갱이가 가득 만져졌다.
“이빨 사이에 독약을 끼워두고 있었어요. 누님에게 제압당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깨문 것 같고요.”
“빌어먹을, 이딴 짓을.”
루나가 심란한 듯 이마를 짚었다. 이미 타이뮨 때문에 암살자들이 찾아오기 전부터 마음이 어지러웠건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유모가 진을 해하려고 했었다고, 배후에는 분명 형제 중 하나가 버티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형제는, 타이뮨을 미리 제거해 흔적을 지우려는 계획이었다고 말이다.
분노와 함께 허탈감이 치솟았다.
“어떻게…… 유모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도대체 어떻게! 누가 시킨 거야? 내가 진을 해하려 한 놈이 누군지 조사해보라고 할 때도, 그렇게 뻔뻔하게 모르는 척을 했단 말이지……?”
루나는 차마 타이뮨이 있는 쪽을 돌아보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타이뮨은, 루나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루나는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어머니나 다름없는 타이뮨을 제 손으로 베는 것은, 형제들을 베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 테니까.
‘참담하시겠지. 내게 길리가 그렇듯, 누님께 타이뮨은 어머니보다도 더 어머니 같은 존재였을 테니.’
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씁쓸함은 타이뮨을 용의선상에 올린 순간부터 각오한 일.
이번 생은 괜찮으니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루나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날붙이의 미망. 그 저주 때문에 무려 25년이나 비참한 나날을 보내다 가문에서 추방됐다. 타이뮨 마리우스, 넌 그에 관한 모든 걸 내게 말하게 될 것이다.’
진이 천천히 타이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망설임 없는 발소리에, 루나는 질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아.”
“예, 누님.”
“이제 나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구나. 타이뮨 마리우스, 나의 유모가 널 해하려 했던 것에 대해 나 또한 책임을 질 것이며, 그녀의 모든 혐의가 밝혀지기까지 네게 간섭하지 않으마.”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루나가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누님께서 책임지실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전말을 밝힌 후, 제가 누님을 위로해드려야겠지요. 그 어떤 위로도 누님의 배신감과 슬픔을 달래줄 순 없을 테지만…….
진이 뒷말을 삼키며 벽에 기댄 타이뮨을 내려다보았다.
“후, 후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요, 진 도련님.”
떨리는 목소리.
그러나 공포나 혼란에서 비롯된 떨림이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기력이 다해 가늘어진 목소리였다. 게다가 거친 호흡까지.
‘설마!’
진이 황급히 몸을 숙여 타이뮨의 안색을 확인했다.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고, 살짝 벌어진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도 입속에 독을 숨겨두고 있던 것이냐? 타이뮨 마리우스, 정녕 누님께 마지막까지 비열한 모습만 보일 생각이냔 말이다.”
“아니요…… 도련님, 큽! 아니, 이건 이것대로 비열한 모습이겠군요…….”
울컥! 고개를 젓던 타이뮨이 피를 토하며 몸을 떨었다.
이상한 기색을 느낀 루나가 그 곁으로 다가와 제 입을 가렸고, 진은 타이뮨의 코트 어깨부분이 검게 물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 건틀릿에서 단검을 꺼낸 암살자의 칼날이 닿은 자리였다. 칼끝만 살짝 스친, 그 상처.
놈의 칼날에는 독이 도포되어 있었다.
맹독 중의 맹독.
쿠잔 마리우스, 바로 그의 독이다. 얼마 전 진을 위협한 독보다도 월등히 순도가 높은.
“커흑, 제가 늙긴 늙은 모양이군요. 기습이었다지만, 그걸 피하지 못하다니…….”
“그만 말해라, 타이뮨. 독이 퍼진다! 치유사를 데려오겠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도련님.”
“유모! 조금만 기다려, 여긴 내 땅이잖아. 치, 치유사를 당장 부를 테니까.”
그러나 다급하게 소리치는 루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타이뮨의 독은, 당장 치유사를 불러도 손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아가씨. 커흑!”
“유모, 유모! 이런 마지막은 안 돼. 이러지 마, 정말 안 된다고.”
“이 독은 내가 잘 압니다, 아가씨…… 쿠잔, 그 아이의…… 역작이군요.”
울컥, 울컥…… 타이뮨이 시커멓게 덩어리진 피를 한 움큼씩 뱉어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환부에서도 피가 솟구쳤는데,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독이 혈관을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단검에 스친 순간, 타이뮨은 이미 자신의 목숨이 다한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라도 지니지 않은 한, 스치기만 해도 절명을 피할 수 없는 독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런 게 업보인가.’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 목전까지 찾아온 죽음의 어두운 냄새.
죄에 파묻혀 있는 인간은,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죽고 싶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가씨와 진 도련님께 용서를 빌어 살아남고 싶다. 계속 아가씨의 곁에 머물고 싶어.’
주마등을 대신해 그런 구차한 욕망이 타이뮨의 뇌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엎드려 빌고,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누메루스의 눈물을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분명 루나는 그 부탁을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이내 타이뮨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까지 아가씨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만 보여선 안 되겠지.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씨께.’
비록 지금껏 루나를 속이고, 루나가 모르게 진을 죽이려하고, 루나의 다른 형제에게 붙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으나.
타이뮨이 루나에게 가진 애정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비록 그 애정이 한없이 뒤틀려 있었다 할지라도.
“아가씨…… 그리고, 진 도련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유모, 무섭게 왜 그래. 마지막인 것처럼. 진짜 이럴 거야……?”
루나의 눈에서 떨어진, 굵고 따뜻한 눈물이 타이뮨의 이마를 적시고 있었다.
“이제와 고백한다한들…… 제 죄가 씻어지진 않을 겁니다. 아가씨를 속여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만, 멈춰, 유모. 피가, 더 쏟아진단 말이야.”
“……15년 전 막내 도련님께, 저주를 내린 마법사의 이름은. 키다드 홀.”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타이뮨의 목소리가 조금씩 어눌해지고 있었다. 독이 혀까지 타고 올라온 것이다.
“제게, 도련님을, 해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조, 슈아. 조슈아 도련님입니다.”
쉭, 쉭. 쇠를 긁는 것 같은 숨소리를 내뱉는 타이뮨의 눈동자가 독으로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분은, 막내도련님의. 힘. 그 계약을 알고 있어요.”
“유모, 아, 엄마아…….”
루나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타이뮨의 두 손을 붙잡고, 제 볼에 비비고, 이마를 맞대고,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죽어가는 어미의 품을 파고드는 어린 짐승처럼.
타이뮨이 마지막 기력을 토해, 이미 멀어버린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상처를 줘서 미안해요, 아가씨. 이 추한 사람을 너무 오래 기억하지는 마십시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