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32)
제 111화
43화. 독을 품는 사람들(1)
휴페스터 연합국, 조슈아의 비밀 별장.
검은 로브를 입은 기사 열 명을 등진 채, 조슈아가 무릎 꿇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
쿠잔 마리우스와 베리스 마리우스.
아직도 울음에 젖어 붉어진 눈동자를 한 채, 그들은 조슈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타이뮨이 자네들을 파문했단 말이지.”
“예…….”
“조슈아 님, 무엇이든 할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한 번만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주세요. 저희 두 사람은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베리스가 애원하며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조슈아에게 기어가자, 수호기사들이 그녀의 어깨를 짓밟았다.
“경께 함부로 다가오지 마라.”
베리스가 미친 사람처럼 죄송하다고 속삭이며 울음을 터뜨렸고, 쿠잔은 참담한 심정으로 한숨을 삼켰다.
“베리스, 어머니께서도 조슈아 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부린 적은 없다. 이러는 것도 어머니께 누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울음 그치고 정신 차려.”
쿠잔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베리스가 숨을 죽였다.
수호기사들이 베리스를 거칠게 잡아끌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려는 순간, 조슈아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됐어, 그만들 둬. 두 사람이 이해해주게, 지금 내 기사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터라.”
“흑, 흑흑……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슈아 님.”
조슈아가 씁쓸한 미소를 꾸미며 그들과 눈을 맞췄다.
‘진짜 혈육도 아니면서 어머니 운운이라니. 죽은 타이뮨에게 네놈들은 그저 한낱 사냥개에 불과했다는 걸 모를 테지, 직접 보니 우습기 짝이 없군.’
그러나 조슈아는 이 우스운 놈들을 전부터 탐내고 있었다.
타이뮨은 제 수족이나 다름없던 그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지만, 조슈아는 그들의 ‘충성심’이라는 가치를 높게 사고 있던 것이다.
‘능력이 좋은 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명령이라면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를 수도 있는 개는 결코 흔치 않아.’
조슈아가 본 베리스와 쿠잔이 딱 그랬다. 주인의 명령이라면 고통스러운 자살조차 서슴없이 실행할 수 있고, 능력까지 갖춘 개.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충성이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니라 타이뮨이라는 것이다. 타이뮨은 분명 조슈아의 부하였지만, 쿠잔과 베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타이뮨만을 위해서 일했다. 간혹 조슈아를 도울 때도 타이뮨의 명령이 아니면 결코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타이뮨도 마찬가지였지. 그녀도 막내가 아니라 루나 누님을 해하라고 명령했다면 나를 배신했을 것이다.’
타이뮨의 진심은 루나에게, 쿠잔과 베리스의 진심은 타이뮨에게.
조슈아는 전부터 그게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타이뮨은 그의 여러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끝내 완전한 충성은 바치지 않았으니, 언젠가는 제거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타이뮨을 없애고, 이 딱한 사냥개들을 진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기회가.
“쿠잔, 그리고 베리스.”
“예, 조슈아 님.”
“안타깝게도 나는 자네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어.”
“아…….”
“그리고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아직 소식을 모르나보군. 타이뮨이, 자네들을 무척 급하게 파문시켰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지금껏 어머니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적은 없지만, 설마 단 한 번의 실패로 저희를 내치실 줄은.”
“그게 아닐세.”
“예?”
“……자네들의 어머니가 자네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겠군. 그녀는 결코 그대들에게 실망해서 절연을 선언한 게 아닐 것이야.”
“자,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쿠잔의 목소리가 떨렸고, 베리스는 발작에 빠진 사람처럼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채 조슈아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그럼 저희를 왜.”
“후우, 타이뮨. 그녀는.”
조슈아가 고개를 저으며 뒷말을 이었다.
“……살해당했다네. 자네들과 싸운 그 정체불명의 마검사에게. 정확히는, 그자의 수호룡인 흑룡이 타이뮨의 목숨을 거뒀다더군.”
“아, 아아. 아아. 그럴 리 없어요. 어머니께서, 정말.”
“타이뮨이 급히 도움을 요청해서 내 집행기사 다섯을 보냈네. 그들조차 모두 흑룡과 싸우다 전사했고, 이후 추가로 파견한 기사들마저 전멸할 뻔했지.”
베리스가 실신할 듯 엎어졌고 쿠잔의 두 눈에서 굵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짓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 조슈아는 어머니의 주군이자, 든든한 후원자였으니까.
“어머니의 마지막은…… 평안하셨답니까.”
“그러기를 빌 뿐이네. 하, 아니야. 그대들에겐 솔직하게 말해야겠군. 시신조차 남지 않을 만큼 격렬하게 저항하다 사망했어.”
“그 마검사는…… 누구입니까, 조슈아 님.”
“백방으로 파악 중이지만 아직 알 수 없군. 타이뮨은 알고 있던 게야, 자네들이 솔더렛의 계약자와 맞서게 된 순간, 이미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이야. 자네들이라도 살리고 싶었겠지. 파문당한 자네들이 내게 올 줄 알았을 테니.”
“그자가, 도대체 왜 저희가 아닌 어머니를 해했단 말입니까.”
“글쎄…… 그자는 자네들의 성을 조사하고 있었으니, 언젠가 타이뮨과 원한을 산 일이 있겠지. 하필 수호룡이 없을 때 자네들과 마주친 모양이지만 애초부터 목적은 타이뮨이었을 것이야.”
“얼굴을 가렸지만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어머니와 원한을 질 만한 일은.”
“그자 역시 과거 그녀에게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솔더렛과 계약을 해 힘을 얻게 되었고, 복수를 하러 왔다…… 이런 상황이 아닐까 싶군. 계속 조사해봐야겠지만.”
쿠잔이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그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하자, 조슈아가 그를 안아주었다.
그때쯤 베리스는 완전히 실신한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 당장 놈을 찾아 죽일 것입니다……!”
“지금의 자네들은 놈을 감당할 수 없어. 그때는 수호룡이 없어 대등한 싸움을 한 모양이지만, 흑룡이 붙어있을 땐 개죽음밖에 안 돼. 타이뮨이 그걸 원해서 자네들과 연을 끊은 것 같나?”
대답하지 못하는 쿠잔.
“나와 함께 때를 기다리게. 나 역시 타이뮨과 내 기사들을 죽인 그놈에게 받아야 할 빚이 있으니. 또한 솔더렛의 계약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지플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거나, 죽여야 할 테니.”
“다른 누구에게도. 그것이 지플이라 할지라도.”
까드득, 쿠잔이 이를 악물며 뒷말을 이었다.
“놈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는 없습니다. 오직 저와 베리스만이, 놈을 죽일 수 있습니다.”
조슈아가 웃음을 억누르며 그와 눈을 맞췄다.
“그래, 내 자네들의 원한에 작은 보탬이 되어주지.”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십시오.”
“물론일세. 하지만 너무 늦게 돌아오진 말게, 혹 놈에게 자네들까지 잃을까 우려되니 말이야.”
두 사람이 별장을 나서자, 조슈아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뱃불이 빛나자 그의 짙은 눈썹과 반듯한 콧대가 도드라졌다.
“조슈아 님, 괜찮겠습니까? 저자들, 어디선가 헛소리를 하거나, 당장 복수를 하겠다고 난리라도 치면…….”
“후후, 걱정 말게. 맹목적인 집념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사냥개를 다루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니. 금방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야, 독기를 잔뜩 품은 채.”
치이익.
담배연기가 퍼지는 동안, 조슈아는 이제 곧 찾아올 게 분명한 자신의 누이를 생각했다.
‘그 늙은 사냥개가 죽기 전, 얼마나 많은 정보를 불었든 상관없어. 루나 누님과 막내가 증거도, 명분도 없이 함부로 날 친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결국 모든 건 내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 * *
콰드득!
루나가 내지른 주먹에, 거대한 철문이 우그러지며 찢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 무슨 짓입니까, 1기수님!”
동시에 저택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룬칸델 수호기사들이 검을 뽑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루나가 지나온 길에 백여 명의 수호기사가 바닥에 쓰러져 혼절해 있었다. 모두 그녀를 가로막다 당한 것이다.
“조슈아가 이곳에 있느냐.”
“일단 진정하십시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안쪽까지 들어오시면, 저희로선 전쟁 선포라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조슈아가 있느냐.”
“2기수께서 계신다 할지라도 길을 열어드리진 않을 겁니다. 서열 전쟁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찾아오신 건 룬칸델의 법도를 너무 벗어나지 않았.”
크득!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 루나가 그의 목을 그러쥐었다.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는 결코 아니었으나, 수호기사들은 루나의 기운에 압도되어 함부로 반격하지 못한 것이다.
“법도? 조슈아의 기사들은 두 번 다시 그 단어를 언급해선 안 될 것이다. 나를 막고 싶다면 그냥 검을 휘둘러 맞서라. 추후 벌하지 않겠다.”
이내 기사들이 동시에 루나를 향해 달려들며 칼날을 내질렀고.
루나는 공격을 피하지도 않은 채, 잡고 있던 수호기사를 내던지고 안채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카앙! 키이잉!
동시에 내지른 일곱 개의 칼날이 루나의 몸을 긁고 튕겨나간 순간, 수호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공격을 시도해봤자 결과는 같았고, 오히려 루나의 몸을 휘감고 있는 오러의 파편이 튀는 것을 피하기도 급급할 지경.
“오셨습니까, 누님.”
그때쯤 줄곧 바깥을 지켜보던 조슈아가 저택 중앙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그의 뒤엔 검은 로브를 입은 기사 열 명이 함께였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양이구나, 조슈아. 가문의 모든 흑기사를 대기시켜놓고 있을 줄은 몰랐네?”
“누님께서 이토록 진노하셨는데, 이 정도 방비는 해두어야겠지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풋…….”
돌연 루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내가 널 죽일 줄 알았더냐? 그토록 배포가 작아서야,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구나. 괜히 찾아왔나 싶군.”
조슈아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루나는, 그게 둘째 동생이 굴욕감을 감출 때 짓는 얼굴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제 기사들을 다 때려눕히고 잘도 그런 말씀을…… 누님께 뭔가 속상한 일이 있는 듯하니, 동생 된 도리로서 오늘은 그냥 눈감아드릴 수 있습니다. 차후 정신이 멀쩡할 때 다시 찾아오시지요.”
열 명의 흑기사는 제아무리 루나라 해도 당해낼 수 없다.
그래서 조슈아는 루나가 당장 등에 멘 크란텔을 휘둘러주길 바랐다. 루나를 죽일 생각은 없지만, 이번 일을 빌미로 그녀의 힘을 뜻대로 이용할 그림을 만들어보려는 마음인 것이다.
‘누님이 이 시점에 나를 친다면, 어머니께서 직접 누님을 통제할 명분이 생긴다. 내가 가주가 되기 전까지는 누님도 살아있어야 해. 지플의 견제를 막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니까.’
가문을 지키는 검.
아직까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조슈아였다. 또한, 그는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일대일 결투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루나에게 굴욕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간다.
그렇게 판단한 조슈아가 다시 한 번 도발을 행하려는 찰나.
“동생아. 네놈이 개만도 못한 쓰레기라 할지라도, 어쨌거나 너는 내게 혈육이며 가문의 두 번째 기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네게 애정을 담아 경고를 해주러 찾아왔다.”
루나가 온 진심을 다해.
조슈아를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장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너는 절대로 당해낼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늦기 전에 차라리 도망치라고 충고해주고 싶구나.”
홱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던 루나가, 한 번 멈춰서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누이가 등을 보여도 먼저 검을 뻗지는 못하는 것이냐? 흑기사까지 다 데려오고도 말이다. 정말이지, 어릴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군.”
이내 루나가 쓰러진 조슈아의 수호기사들을 밟으며 저택을 빠져나갈 때까지.
조슈아의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굴욕감을 억누르고 있는 그 미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