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33)
제 111화
43화. 독을 품는 사람들(2)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누님.”
“응…… 없어. 네가 아니었다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꽤나 다쳤을 것 같지만 말이야.”
루나가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이마를 짚었다.
방금 조슈아의 저택을 헤집던 살기와 투기는 온데간데없이, 수척한 얼굴에 짙은 그늘이 진 모습.
“하.”
이내 그녀의 붉어진 두 눈에 물기가 맺힌다.
타이뮨이 죽고 하루가 지났건만, 루나는 그녀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독에 물든 시신은 서서히 쪼그라들며 완전히 산화해 자그마한 검은 웅덩이만을 남겼고, 루나는 한동안 멍한 눈빛으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었다.
그런 것을 장례라고 부르진 못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유모가 과연 장례를 치러줘도 될 만한 사람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을 속이고,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니까.
“조슈아, 그놈은 타이뮨의 죽음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더구나. 그저 잔뜩 겁먹은 채 내가 먼저 검을 뽑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어. 네가 예상한대로 말이야. 그런데, 가문의 흑기사까지 모두 소집해놨더군.”
흑기사.
룬칸델의 수호기사 중에서도 모두에게 최고라 인정받는 이들만이 흑기사의 검은 로브를 입을 수 있다. 조슈아는 이미 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주와 그 반려의 직속이다. 두 사람이 함께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 룬칸델 최강의 수호기사들.
‘흑기사들까지? 어머니께선 이 시기에 이미 조슈아에게 흑기사들을 넘겨주셨던 건가. 아버지는 조슈아를 탐탁찮게 여기시니, 설득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적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었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일단 미뤄두고 누이의 손을 붙잡아주고, 손수건을 내어주는 게 우선이었다.
비록 배신자라지만 타이뮨은 그녀에게 가족이었고, 쓰레기라지만 조슈아 또한 그녀의 형제였다.
루나는 한꺼번에 그들을 모두 잃은 것이다.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이제 명백한 적이 되었다.
“하하, 유모…… 적어도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을 찾아 배신했다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 잘못이겠지. 내가 유모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줬다면.”
타이뮨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과,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끊임없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 상실감을 지울 수 있을까.
무엇으로 이 상처를 덮을 수 있을까.
조슈아를 만나 겁박하던 순간에도, 그녀는 겨우 이런 물음들을 떨쳐내고 있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유모가 나를 배신한 것도, 조슈아가 네게 저주를 내린 것도, 내 하인들이 형제들의 비수에 죽어가고 있던 것도. 내가 처신을 똑바로 했다면 없었을 일이야.”
잘못된 생각이었다.
루나의 논리대로 과거를 거슬러 인과관계를 찾는다면 결국 탄생부터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무엇보다 진이 보기에 저주만큼은 루나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건 자신이 루나와 전혀 친분이 없던 전생에서도 겪은 것이니까.
‘그 미친놈은 타이뮨이 아니더라도, 결국 누군가를 시켜 내게 저주를 내렸을 것이다. 여전히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군. 내가 선택의식에서 바리사다를 골랐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시기상으로 저주와 가장 관련이 높은 건 바리사다처럼 보이지만.
당시 조슈아는 이미 형제들 사이에서 패권을 잡아가고 있었다.
루나가 왕좌를 포기한 직후, 그를 차기 가주로 점찍은 로사가 은근히 지원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조슈아의 가장 큰 권력 기반은 어머니다. 벌써 흑기사를 내어준 것까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유독 놈의 편의를 살펴주신 건 형제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
작년, 연회를 주최하기 위해 시론이 검의 정원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로사. 그대가 고생이 많았겠군.
-아닙니다. 다 큰 자식이 알아서 준비했으니, 저는 할 일이 없었지요.
-다 큰 자식들이 알아서 잘한다면, 내가 지금 흑해를 빠져나올 필요도 없었겠지. 오늘 룬칸델을 찾을 손님들은 내 눈치를 보는 것이지, 우리 자식들을 어려워하는 게 아니니 말이오.
그때도 로사가 말한 ‘다 큰 자식’이란 조슈아.
시론이 말한 ‘우리 자식들’이란 모든 형제들을 뜻했다. 가문의 원로들과 순혈들이 모두 듣고 있는 자리였다.
‘아버지의 신임은 얻지 못했어도, 이미 조슈아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어. 나는 애초에 경쟁상대가 아니었지.’
폭풍성에 있는 어린 순혈을 공격하는 건 금기 중의 금기.
행여 그 금기를 깨다 발각되면 기수가 아니라 가주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바리사다’에 대한 룬칸델의 미신이 깊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조슈아가 진을 죽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너무 적었다.
‘내가 본가로 돌아왔을 때 죽이거나 저주를 내리는 쪽이 훨씬 안전하고 성공률도 높지.’
진은 회귀 후, 저주가 자신을 덮치는 건 열 살이 지난 후일 거라고.
혹은 로사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저주에 잠식당한 상태였으리라 생각했다. 때문에 다시 태어나자마자 ‘솔더렛이 풀어준 저주가 그대로일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후 어떻게 할지 걱정하던 찰나, 붉은 주박이 폭풍성의 요람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솔더렛의 권능이 발현되어 화를 면했고.
진은 계약과 더불어 자신의 재능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후 줄곧 범인을 찾아왔다.
그렇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굳이 금기를 어겨가며 나를 노린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서 얻는 게 무엇인지는 기수가 된 후, 놈을 꺾는 과정에 알아내면 될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진이 누님에겐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진.”
루나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형제들의 피를 내 손에 묻히는 게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우리 부모 세대의 순혈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걸 보는 것도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어.”
“그래서 누님은 우리 세대의 형제들이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도록, 가문을 지키는 검이 되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윗세대와 달리 우린 모든 형제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삶을 누리고 있고요.”
시론의 자식들, 현 룬칸델의 2세대.
그들은 룬칸델 천년의 역사를 다 통틀어도 특별한 세대였다. 다른 세대는 보통 형제 열을 낳으면 다섯이 살아남고, 그중 한 사람이 가주가 되어 가문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의 형제들은 루나 덕에 혈육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았다. 서열 전쟁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살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뤄졌다.
루나가 매번 ‘죽이지는’ 못하도록 막은 덕이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으로.
말하자면 루나는 현 룬칸델의 균형추와 같은 존재.
그러나 형제들이 그 균형추를 바라보는 시선은 썩 곱지 않았다. 루나의 본질은 명백히 룬칸델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형제들에겐 그녀가 최강의 힘을 가진 주제에, 신선놀음이나 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그래, 내 덕분에 아직까지 모두가 살아있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이제야 알겠구나, 나는 그저 싸움이 겁나 굴레 바깥으로 도망친 채 안주하고 있던 것뿐이라고.”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젓는 루나.
“위선자. 그것보다 내게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이야. 나는 지금껏 행해온 그 역겨운 위선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다.”
“위선은 누님이 아닌 타이뮨의 것이고, 벌은 앞으로 조슈아가 받게 될 것입니다.”
“내 하인들이 죽어가는 동안, 유모가 스스로 목숨을 지키려다 날 배신한 동안, 그리고 조슈아의 명령을 받아 널 해하려는 동안. 난 대체 뭘 했지? 그저 외면했을 뿐이지, 착한 척을 하면서.”
“누님.”
“유모의 말이 옳아, 차라리 내가 왕좌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될 일은 없었어. 아니,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드는군.”
“그렇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좀 편하십니까.”
“아니, 무슨 짓을 해도 편해지지 못할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진은 루나에게서 전생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 하필 재능도 없이 룬칸델에서 태어나 이런 절망을 겪고 있을까.
루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 이토록 강한 힘을 갖고도 끝내 룬칸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까.
두 사람 다 천형이나 다름없는 재능과 성품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었다. 진은 천대받으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고, 루나는 가문의 이간질을 버텨 끝내 자신을 지켰다.
그 결과 전생의 진은 길리를 잃었고, 지금의 루나는 타이뮨을 잃었다.
‘그때의 내게 가장 위로가 된 이야기가 무엇이었더라.’
곧바로 떠오른, 한 목소리.
-도련님, 저는 언제까지나. 도련님이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있든 사랑해드릴 겁니다.
전생의 길리가 마지막까지 진을 포기하지 않으며 해준 말.
그리고 현생의 루나가 처음 폭풍성으로 진을 찾아와 건네준 이야기가 겹쳐 떠올랐다.
-하나만 기억해라, 진. 내 동생아. 네가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던. 나는 늘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내 진이 그 두 문장을 똑같이 발음하자, 루나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가렸다.
“내가 있습니다, 누님. 형제들의 피를 뒤집어쓰는 것은 내가 할 테니, 누님은 지금처럼 도망치십시오. 계속 도망쳐도 끝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면 내게 의지하세요.”
그러자 루나가 울음을 그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더는 도망칠 생각이 없다. 조슈아를 죽이는 건 너의 몫이어야 하겠지만, 또 다른 형제가 너를 노린다면. 나는 그 형제를 벨 것이다.”
“제가 기수가 되어 형제들과 전쟁을 할 때쯤이면, 누님보다도 강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부터 나는 가문을 수호하는 검이 아니라, 너를 수호하는 검이 되겠다는 뜻이다. 진 룬칸델, 내 막냇동생아. 내 너를 반드시 가주로 만들어주마.”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내 앞에서 타이뮨을 얼마든지 애도해도 좋으니, 굳이 참지 말고요. 저와는 나쁜 기억밖에 없으나, 누님께는 가족이지 않았습니까.”
이후 진은 한참 동안 루나가 읊조리는 타이뮨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들어주다 그녀의 영지를 나섰고.
티칸으로 돌아가는 내내, 복수와 조슈아 룬칸델에 대해 생각했다. 비열한 첫째 형님을 차근차근 짓밟을 방법에 대해.
‘타이뮨은 놈이 내 계약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지. 조슈아에게 그 정보를 흘린 자는, 저주가 통하지 않은 걸 확인한 마법사가 분명해.’
키다드 홀.
진에게 ‘날붙이의 미망’을 직접 시전한 9성 마법사.
전생에서도 숱하게 이름을 들어본 대마법사건만, 설마 그자가 자신의 저주와 관련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그놈을 죽여 조슈아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