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43)
제 111화
48화. 무명(3)
사흘이 지났다. 진은 매일 눈을 뜨면 남자와 아침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해질 무렵에 돌아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사밀이 아니라 어느 휴양지에 왔다고 생각될 만큼 한가로운 날들이었다. 거리를 배회할 때도, 남자와 함께 집에 있을 때도 지금껏 암살 시도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애초에 진이 머물고 있는 곳은 무명 중급 생도의 집.
거리의 생도들은 대부분 그보다 떨어지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진이 그곳에서 첫날 살아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 아래 생도들에겐 공략 불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첫날 이후 아무도 날 노리지 않으니 오히려 찝찝하군.’
사르륵.
진이 나무에 기대 책장을 넘겼다. 사밀의 도서관에서 빌린 것으로, 각종 독초와 독에 대한 내용이 서술된 책.
물론 방문객도 빌릴 수 있는 만큼 전문적이고 깊은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진은 독에 대한 지식이 아주 많지는 않으니 꽤 흥미롭게 탐독했다.
그리고 건너편 나무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는 두 개의 눈동자.
‘히히. 막내는 책을 좋아하나보다. 형제들 중에 아마 유일할 거야.’
요나.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막내를 지켜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치도록 반가운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나가 사흘이나 진을 지켜보기만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정확한 수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해야 직접 수준에 맞는 암살자를 하나씩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나가 본 진은, 열여섯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쭉 살펴보니, 막내는 단순히 오러만 뛰어난 게 아니야. 위험을 인지하는 감각은 이미 몇 번이나 생사경을 딛고 일어선 베테랑 수준 같은 걸.’
룬칸델이라 할지라도 열여섯에 그만한 경험을 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룬칸델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억지로 궁지에 내몰지 않는 이상, 생사결단의 기로에 설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열여섯 즈음이면 한두 번쯤 죽을 위기를 극복하는 순간이야 있었겠지만…… 막내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열여섯의 룬칸델이라면 한두 번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순간은 겪는 편이지만, 요나가 느낀 진의 감각은 그 정도론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진은 다른 순혈 룬칸델의 소년소녀 시절에 비해 많은 역경을 해쳐왔으니 요나의 눈은 틀리지 않은 셈.
요나는 모르지만 전생까지 포함하면 진의 경험은 이미 40대 중반 수준인데다, 회귀 전엔 늘 약자의 입장에서 생사를 헤매곤했으니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흥미로워! 중급이나 중상급 정도론 부족하겠고…… 슬슬 상급 암살자들로 조를 짜서 보내야겠다.’
히히, 요나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숲을 떠났다.
‘음?’
그리고 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또 뭔가 저쪽을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인데…… 벌써 며칠 째 이런 감각이 계속되는 건지. 하. 첫날 박수소리부터 시작해서, 이러다가 신경쇠약이 오겠어.’
* * *
“너, 이제 그만 내 집에서 나가주면 좋겠는데.”
다음날 저녁, 남자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내어온 직후였다.
“혹시 제가 너무 많이 먹거나, 당신의 삶에 지나친 방해가 되고 있나요?”
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러면 갑자기 왜……?”
후우…… 긴 한숨을 내쉬는 남자.
“난 널 암살하는 걸 포기했다.”
“아…….”
“처음엔 널 단지 겁 없는 애송이라고 생각했지. 무가의 후계로 태어나 세상의 좋은 면만 겪으며 성장한, 그런 재수 없는 부류라고 말이야. 크나큰 착각이었더군.”
“그랬군요.”
진과 남자가 동시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4일. 무려 4일 동안이나 널 죽이려고 빈틈을 엿보았는데도, 단 한 번도 기회를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난 널 죽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음, 그런 이유라면 제가 나가는 게 맞겠네요. 하지만, 왜 시도조차 한 번 해보지 않으시고……?”
“방문객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건 큰 감점 요인이다. 나처럼 얼굴을 보였다면 반드시 한 번에 끝내야 하지. 그러나 넌 틈을 내어주지 않았고, 나는 곧 진급 심사 대상이야.”
위로를 해줘야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게 꽤 의미 있는 나흘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긴장을 유지하느라 배운 게 많은데, 당신도 뭔가 얻은 게 있다면 좋겠군요.”
그러자 남자가 처음으로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크하하, 그렇게 대답해줄 줄은 몰랐군. 나도 깨달은 부분이 많아. 최근 실력이 정체된 상태였는데, 큰 자극을 받기도 했지……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어.”
이내 남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암살 시도를 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내 집을 나간 후 네가 살아서 사밀을 빠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청하는 것이지.”
잠시 고민하던 진이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언젠가 당신이 무명의 살수가 되어 저를 위해 일할 날이 오면 좋겠군요. 그러니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며칠 얻어먹은 공짜 밥은 그때 넉넉한 의뢰비로 돌려드리죠.”
남자의 집에 의탁한 후 처음으로 편하게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곧장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자, 밖은 달도 없이 어두운 밤이었다.
‘이제 여관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어차피 여관에서 지내도 이제는 잔챙이들이 꼬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진은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끼곤, 제 발아래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아직 남자의 집 입구에서 다섯 걸음을 옮기기도 전이었다.
‘허. 이건?’
야생 짐승을 잡을 때나 쓸 것 같은 모양의 덫. 가운데를 밟으면 두 개의 날카로운 출렁쇠가 발목을 붙잡는 형태였다.
그리고 그런 덫이 대로변까지 얼추 서른 개는 깔려 있었다.
-암살자를 상대할 땐, 그들을 마술가. 혹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도련님.
가론 알테미로의 조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지 못했다면, 진은 몇 초쯤 더 덫에 눈이 팔렸을 것이다.
‘위다!’
스겅!
진이 재빨리 브라다만테를 뽑으며 남자의 집 지붕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가 그 위에 엎드린 채 얼굴만 지붕 바깥으로 빼놓은 모습이 보였다.
요나가 보낸 상급 생도였다. 그리고 얼굴만 내놓은 생도는 기다랗고 얇은 나무통을 물고 있었다. 독침을 쏘려는 것이다.
굳이 덫을 깔아놓은 이유는, 진의 집중을 잠시라도 흐려놓고 지붕에서 얼굴을 빼낼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핏!
브라다만테가 다 뽑히기 전에 독침이 먼저 발사되었다.
다행히 진은 반쯤 뽑힌 검신으로 독침을 막을 수 있었지만, 반격은 할 수 없었다.
생도가 곧바로 모든 덫에 묶여 있던 보이지 않는 끈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집 앞에 놓인 수십 개의 덫들이 한꺼번에 진을 향해 날아드는 모양새. 몸에 닿는 순간, 독 발린 출렁쇠가 닫히며 진을 물어뜯을 것이다.
‘이런 미친!’
마치 악어 떼가 주둥이를 벌린 채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챙! 채챙! 캉!
진이 브라다만테를 마저 뽑아 덫들을 쳐냈다. 현재 실력에서 낼 수 있는 최상의 쾌검, 새하얀 칼날이 잔상을 남기는 동안 출렁쇠 몇 개가 칼날을 붙잡았다.
생도는 그것을 노렸다. 암살에 실패했을 때, 진의 칼날에 덫이 끼게 만들어 도망칠 시간을 벌려는 속셈.
애초에 첫 독침을 막은 순간, 이미 실패한 것이니 덫으로 진을 죽일 의도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생도는 진이 추격하지 않고 검을 물고 있는 덫을 먼저 제거하리라 예상했지만. 또, 내심 덫에 의해 진의 검이 부서지는 걸 기대했지만.
“이 자식!”
고작 덫 따위가 고대 만년철로 주조한 브라다만테를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은 그냥 덫이 잔뜩 낀 검을 쥔 채 지붕으로 도약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곤 검보다는 몽둥이에 가까운 형태가 된 브라다만테를 힘껏 휘둘러, 막 지붕 사이를 뛰기 시작한 생도의 등에 집어던졌다.
후우웅!
브라다만테가 둔탁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갈랐다. 덫 때문에 날이 뭉툭해져 등을 찌르진 못했으나, 브라다만테가 생도의 허벅지를 때리며 그 옆에 떨어졌다.
챙그렁! 동시에 잠시 주춤한 생도에게 몸을 날리는 진.
‘잡았다!’
두 사람이 뒤엉키며 지붕에 떨어졌다. 진은 즉시 생도의 위에 올라타 주먹에 오러를 둘렀고, 얼굴을 내리치려는 순간.
“실패를 인정하오!”
생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뭐?”
“실패를 인정하오, 소년. 그러니 멈춰주시오. 그대가 이겼소.”
“너 같으면 멈춰주겠냐? 생도 신분에 감사해라, 죽이진 않을 테니.”
빠각!
진이 주먹을 내리치자 일격에 생도의 코와 광대가 주저앉았다. 핏자국이 튀었고 진은 생도가 기절할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오자마자 난리로군.’
대충 주먹에 묻은 피를 닦고, 브라다만테를 챙겼다. 검신에 덫이 여섯 개나 물려 있어 빼내기 전엔 검으로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서 빼내야겠… 아니지. 검신을 물고 있는 덫을 제거하려면 최소 3분 이상은 필요해.’
진이 브라다만테의 덫으로 뻗던 손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지붕. 자신은 몸을 숨길 곳이 없는 반면, 주위 다른 건물의 지붕엔 암살자들이 은신할 공간이 수두룩했다.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이놈은 내가 집을 빠져나올 걸 미리 알고 있었어. 미리 덫을 깔아놨으니.’
그렇다면 방금까지 진에게 거처를 내어줬던 남자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저녁 이후 진을 내보낼 테니, 그때 암살을 시도하라고.
‘그 남자가 내 뒤통수를 쳤다기보다는, 뭔가 더 윗선에서 이야기된 것이 있다고 판단하는 게 옳겠지. 가령, 실력은 대충 파악됐으니 본격적으로 날 사냥하라고 누군가 지시를 내렸다거나.’
거기까지 생각하기가 무섭게.
피이이잉!
피잉!
이번엔 진의 좌우 양방향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당연하게도 맹독이 발린 화살, 진은 겨우 몸을 틀어 피할 수 있었으나 발사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화살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명이서 쏘는 것인지, 사방에서 화살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일단 지붕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건물 벽이라도 있어야 적어도 전 방위 공격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망할, 왠지 내려가면 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당장 화살꽂이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진이 이를 악물며 거리로 뛰어내리자, 요나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히, 조금만 고생해 막내야. 한 일주일 이렇게 쫓기다 보면, 심안이 제대로 개안될 거야. 넌 이미 반쯤은 열린 상태거든. 못 버티고 죽으면…… 너무 슬프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흥, 흥흥-.
요나가 달려가는 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진심으로 진이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