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44)
제 111화
48화. 무명(4)
새벽 내내 암살자들의 추격이 이어졌다.
처음 독침을 쏜 상급 생도는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지붕에서 뛰어내린 직후엔 곧장 독무가 피어올라 골목을 헤맸고, 골목의 어둠 속에선 잠시 멈출 때마다 날붙이가 날아들었다.
골목을 빠져나간 다음엔 또다시 후방에서부터 화살 세례.
그걸 다 흘려내고, 피하고, 쳐냈더니 도시 배수로에 매복하고 있던 상급 생도 셋이 덮쳤을 땐 정말 죽는 줄만 알았다.
그뿐일까.
우여곡절 끝에 여관을 찾은 순간엔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독무가 번졌다. 뿌연 독무 사이로 날아든 열댓 자루의 단검은 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화를 다 면했을까. 그것도 아무 준비조차 없이.
진 본인조차 놀라울 지경이었지만, 여관 문을 열자마자 삐져나온 독무를 반의 반 모금쯤 들이마신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헉, 헉… 미, 친놈들…….”
진은 엊그제 낮에 책을 읽은 숲으로 겨우 피신한 채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퉷!
진이 피 섞인 침을 토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고열에 시달리며 붉은 침이 아니라 핏덩이를 뱉고 있을 것이다.
‘이건 조직적이어도 너무 조직적이잖아. 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이 생도들을 보내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반드시 찾아서 족친다……!’
까드득!
이를 악문 진의 두 눈동자가 진한 투기로 불타올랐다.
울창한 잡목 저 멀리 동이 트는 모습이 보였지만, 과연 아침이 된다고 놈들이 추격을 끝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얼굴은 식은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입고 있던 로브는 헌 걸레짝처럼 군데군데 찢어지고 구멍이 났다.
그러나 몸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다는 놀라운 사실에 진은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후우.”
5분쯤 주위를 살피던 진이 나무에 몸을 기댔다. 바로 그 나무 위에 요나가 숨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히히. 최고다, 막내.’
팔랑…….
이내 요나가 종이 한 장을 떨구며 나무를 타고 다시 모습을 감췄다.
‘이건 또 뭐야?’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붙잡는 진.
-저녁부터 다시 놀자.
순간적으로 꼭지가 도는 것 같아 하마터면 애꿎은 나무를 벨 뻔했다.
부글부글 치미는 화를 가까스로 억누른 진이 하하,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무명의 최고 살수 중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요나 누님이었군. 차라리 잘됐어, 다 버티기만 하면 만독주를 달라고 더 뻔뻔하게 부탁해도 될 테니까.’
* * *
요나가 직접 메시지를 전했으니 저녁까진 마음 놓고 푹 쉬었다. 여관에서 방문만 잠그고 숙면을 취했더니 피로감이 제대로 씻겨나갔다.
체내로 들어온 소량의 독기 역시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자는 동안 호흡을 통해 다 빠져나간 것이다.
물론 독무가 진짜배기 무명의 암살자들이 쓰는 맹독을 농축시켜 만든 것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앤 누님이 만독주를 선물 받은 것도, 요나 누님과 잘 놀아줬다는 이유였지. 지금 나랑은 좀 다른 느낌으로 놀아준 것이지만…….’
전생의 앤은 요나에게 꽤 끈질기게 다가갔다.
외로움 많이 타고, 심히 독특한 성격을 지닌 요나의 마음을 집요하게 공략한 것이다. 요나는 처음엔 앤을 경계했으나 점차 마음을 열고는 만독주를 내어줬다.
내가 이렇게까지 널 사랑해주는데, 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거야?
앤은 그렇게 억지로 요나의 죄책감을 자극해 만독주를 손아귀에 넣었다. 앤이 만독주를 얻은 직후 요나의 성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시 거리를 둔 건 형제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요나 누님이 가문으로 돌아와서 늘 의기소침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앤 누님에게 상처받은 것도 결코 작지 않았지. 당시의 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물론 진은 애초에 그런 식으로 요나의 마음을 갖고 놀며 만독주를 얻을 생각 따윈 없었다.
찰방, 찰방!
방으로 들어오기 전 미리 대야에 받아놓은 물로 간단히 세수를 끝냈다.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지 않도록 넘겨서 묶기도 했다.
그리고 바늘과 실로 찢어진 로브를 대충 깁고, 검을 비롯한 여러 장비들을 한 번 점검하는 진.
어젯밤 한 번 경험해보았기 때문일까.
‘분명 여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생각 없이 열었다간 벌집이 될 거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능숙하게 암살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 전체가 자신을 노리는 감각에 벌써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어제처럼 우왕좌왕하진 않아. 내가 검만 쓰는 것에 감사해라, 생도 놈들.’
마법과 영기까지 사용한다면 솔직히 생도 수준까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진은 어제부터 핸디캡을 지닌 채 싸우는 셈이다.
끼익!
푸슉! 시시식! 콱콱!
예상대로 문을 열자마자 생도들이 벽에 설치해놓은 함정이 발동되며 독침이 다발로 쏘아졌다.
진은 문 바로 옆에 몸을 바짝 밀착시킨 채였고, 복도에 대기 중인 암살자들도 이 정도는 예상한 듯 당황하지 않고 숨을 죽였다.
‘네놈들 페이스에 말려줄 생각이 없다, 오늘은.’
쾅!
진이 브라다만테의 폼멜에 오러를 둘러 문 옆의 벽을 무너뜨렸다. 두껍지 않은 목벽이 그대로 산산조각 부서지며 사람이 드나들 만한 구멍이 생겼고, 진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제는 다 살려줬다만, 지금부터는 날 죽이려면 네놈들도 사지 하나쯤은 잃을 각오를 해라!”
진심이었다.
굳이 생도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또한 쉴 새 없이 쫓겼기 때문에. 어젯밤엔 나름대로 자비를 베풀었으나.
오늘은 진도 제대로 날을 갈았다. 놈들의 신분이 생도든,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든. 어쨌거나 진짜로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놈들이니까.
스각-!
진이 벽에 뚫린 구멍으로 몸을 빼내며 곧장 보이는 생도의 옆구리를 옅게 찔렀다. 생도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칼날을 돌려 상처를 비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5분 내로 치유사한테 안 가면 죽을 거다.”
이내 다른 생도들이 진을 포위하며 온갖 암기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암기는 쳐내거나 피하면 그만이지만, 오히려 위협이 되는 것은 ‘갈고리’였다.
맹금류의 발톱을 수백 개씩 꼬아 만든 것 같은 흉측한 갈고리는,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콱 물고는 놓아주는 법이 없다.
게다가 탄력이 어마어마해 서슬 퍼렇게 오러가 둘러진 칼날에도 도무지 베어지질 않는다.
‘어제부터 저걸 볼 때마다 대형 마물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단 말이지.’
처음엔 그 ‘잘 베어지지 않는’ 속성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로브를 다 찢어놓은 원흉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진이 아니다.
‘찔러서 튕겨내면 될 것을, 어제는 왜 그렇게 베려고만 했는지.’
화살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드는 갈고리를 정확히 찌르는 방법은 보통 생각하지 않는다.
팅, 티팅! 그래서 진이 잽을 치듯 브라다만테를 가볍게 찔러 갈고리를 튕겨내자, 생도들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안타깝게도 생도들에겐 진 정도의 검술과 신체능력이 없다. 반사된 갈고리가 역으로 생도들에게 들러붙자, 귀를 긁는 비명이 이어졌다.
“카아아악!”
“끄으으……!”
순식간에 좁은 여관 복도가 피와 살점으로 낭자된 가운데, 진은 쓰러진 생도들을 밟으며 서서히 1층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방금까지 만난 놈들은 어제보다 수준이 떨어져. 내가 자만하거나 방심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이겠지. 1층에서부터 만날 놈들은, 분명 생도 중에서도 특출한 놈들일 거다.’
무명관까지 한두 걸음을 남겨둔, 최상위 생도들. 진의 생각대로 1층과 거리에 배치된 암살자들은 그런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놈들이 원하는 동선으로 움직여선 절대 안 돼. 그러면 당한다. 어느 쪽에서 공격이 들어오든, 피할 생각 말고 그 방향으로 강행 돌파해야 한다.’
쫓기는 게 아니라, 따라오도록 만드는 것. 오늘 진은 생도들을 상대할 때 그 원칙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다 때려 부수며 이동하면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어. 대형 마물 취급을 당했으니, 그에 걸맞게 어울려주마.’
스걱! 콰지직!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진은 미친 사람처럼 사방에 검기를 날려대며 멀쩡한 여관 내부를 작살내기 시작했다. 기둥은 보일 때마다 베었고, 벽은 닿을 때마다 부숴버렸다.
물론 그 과정에 끊임없이 무명 생도들의 공격이 이어졌으나, 그들도 어제보다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검기에 휩쓸리면 사지가 아니라 자칫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들 당황하지 마. 어차피 여관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면, 거리에선 옥상 조들이 저격을 시도할…….’
여관조의 조장 생도가 그렇게 신호를 줬지만, 그 예상은 10초도 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진이 거리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부술 수 있는 자그마한’ 건물들을 모조리 박살내는 것이었으니까. 가령, 생도들의 집이라거나 작은 상점 같은 것들을.
“으아악!”
“어억! 내, 내 집!”
당연하게도 진 암살조로 편성되지 않은 중, 하급 생도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경 쓸 게 무엇이겠는가. 설령 이 무지막지한 소란에 무명왕이나 다른 최고 살수들이 찾아와 책임을 묻더라도 진은 할 말이 있었다.
당신들이 먼저 나를 조직적으로 노렸다고 말이다. 단순히 생도들의 암살 시도가 아니라, 제대로 작전을 짜서 수십 명이 함께 움직이는 건 이곳이 사밀이라도 지나치지 않느냐고.
‘생도들이 더 끈질기나 내 오러가 먼저 동나나, 아니면 무명왕이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어 먼저 찾아오나 한 번 해봅시다. 요나 누님.’
자그마한 벽돌집들이 한 채씩 폭삭 주저앉을 때마다 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그렇게 난동을 부리길 무려 세 시간.
진 암살조로 배정된 생도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계속 진을 따라가고 있었다.
갖가지 변수와 선택을 계산해 짜놓은 동선과 함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으며, 도시 한쪽은 마법 폭격, 혹은 대형 마물의 습격이라도 받은 듯 반쯤 폐허가 됐다.
피해 구역이 그리 넓지는 않다지만, 근래 사밀에 벌어진 사건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후우, 훅……!”
진은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브라다만테를 뒤덮은 오러는 처음과 비할 바 없이 흐려졌고, 어깨에 쇳덩이를 얹은 듯 몸이 무거웠다.
때문에 잠시 난동을 멈춘 진은 한 식당 건물에 숨어들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망할, 무명왕이 내 생각보다도 요나 누님을 훨씬 아끼는 것 같군…….’
사실 진은 이쯤 되면 무명왕이나 원로, 최고살수 급의 인사가 등장할 줄 알았다.
그 다음 적당히 명분과 퀴칸텔이 준 물건을 들먹이며 협상을 시도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도록, 진을 추격하고 있는 것은 요나가 보낸 생도들뿐이었다.
무명왕은 요나의 결정이라면 일단 무엇이든 존중해주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이만한 사고를 쳐도 요나는 차후 반성문이나 백 장쯤 쓰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대로라면 생도들도 곧 내 오러가 떨어진 걸 눈치 채고 이를 악물며 달려들 텐데. 어쩌지? 마법이나 영기를 써야 하나? 퀴칸텔 님이 준 것을 벌써 쓰기엔 아깝고, 자존심이 상해.’
고민하던 진의 눈빛이 돌연 매섭게 변했다.
“거기 숨어 있는 놈들, 나와라. 기둥이랑 같이 뭉개버리기 전에. 기척을 숨기는 게 어설픈 걸 보니 내 암살조로 배정되지 않은 생도들 같은데, 그냥 나가면 해치지 않겠다.”
다음 순간, 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허, 뭐야, 왜 너희들이 나와?”
기둥에서 빠져나온 것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단테와 베라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