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5)
제 11화
8화. 검의 정원(1)
“아니, 그러게 왜 변신에 부작용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주지 않은 거야?”
룬칸델 비공식 3인조가 결성되고 한 시간이 흘렀다.
여관 밖에선 흑왕단이 분주하게 출발 준비를 하는 중이고, 세 사람은 방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눴다.
“꼬마, 네놈이 천 년이나 잠들어 봐. 머리가 굳나, 안 굳나. 어? 깜빡 잊었어. 그리고 변신이 너무 오랜만이라, 유지가 어렵기도 했고.”
“이 미친 용이. 너, 하마터면 고양이가 될 뻔한 거잖아!”
오직 용들에게만 허락된 특권, 변신.
그것은 분명히 특권에 가깝지만 ‘축복’이라 부를 것까진 없는 능력이다. 극히 치명적인 제약 몇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신 상태의 용은 매우 약하다.
고양이로 변신하면 고양이 정도의 전투력밖에 지닐 수 없다. 사자나 물고기, 새 같은 것으로 변신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두 번째로, 변신 상태가 일정 시간 이상 계속되면 용은 두 번 다시 자력으로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 단계에 이르면 용으로서의 자아도 서서히 사라지고, 평범한 동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후우… 나도 식겁했다고. 예전에 말이야. 물고기로 변신해서 유희를 즐기다가, 돌아올 때를 놓쳐 낚시꾼한테 잡힌 놈을 보고 한 이백 년은 웃었거든? 근데, 염병. 내가 그 꼴이 될 뻔했군.”
“하하하!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용도 있…… 앗.”
무의식적으로 웃은 길리가 표정을 싹 지웠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무라칸 님.”
“딸기파이여. 잘 웃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가?”
“호위 중에 너무 큰 웃음을 보였습니다.”
“아니, 딸기파이 자네, 무슨 골렘이야? 사람이 좀 웃을 수도 있지, 어? 야! 꼬마! 대체 네 유모를 그간 어떻게 취급한 거냐?”
“무, 무라칸 님. 도련님께서는 평소 제게 무척 잘해 주시고.”
“앞으로 저 사악한 꼬맹이가 너를 함부로 대하면 내게 말하거라. 아주 혼쭐을 내 줄 테니.”
아주, 죽이 잘 맞네, 잘 맞아…….
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생기 넘치는 길리를 보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무라칸. 인간으로 변신하는 건 상관이 없는 거냐?”
“어. 인간 변신엔 딱히 큰 제약이 없어. 오히려 더 편해. 본모습일 땐 쉴 새 없이 마력이 소모되거든. 큰 몸뚱이를 유지하는 것도 다 힘이 필요한 일이니까.”
“왜 인간 변신만 제약이 없는데?”
“신이라는 것들이 나름 우리 용들을 배려한 거다. 우리도 태어날 땐 인간이랑 똑같은 모습이야. 용의 모습으론 아무래도 종족 번식이나 다양한 욕구 해소에 다소 문제가…….”
“응, 거기까지.”
자기 딴엔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한 모양인 듯, 무라칸은 혼자 쿠헬헬 웃어 대기까지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길리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에 경련이 올 지경이었다.
말세.
일순 그런 단어가 떠오를 지경이지만, 진은 급작스레 결성된 이 기묘한 파티가 싫지 않았다.
아니, 아주 흡족했다.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동료가 생기는 건, 언제나 좋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무튼, 곧 출발할 모양이니까. 다시 변신해.”
무라칸이 툴툴대며 고양이로 변신했다. 진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한동안 이런 변신이 계속될 예정이었다.
* * *
이후 이틀 동안, 흑왕단은 아주 훌륭하게 진 일행을 미텔 왕국의 수도로 이송했다. 용병단이 아니라 정식 기사단의 품격 있는 호위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도중, 호위 대상에 길에서 주운 웬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흑왕단은 어린 제왕에게도 마음씨 따뜻한 애 같은 면모가 있다고 이해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흑왕단 3군 부대장 무르카. 추가 의뢰에 대한 보수는 차후 룬칸델 본가에서 섭섭하지 않게 지급할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번 임무는 좋은 경험이었소, 길리. 그대가 모시는 어린 룬칸델의 미래가 기대되는군.”
길리와 무르카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진은 어깨에 무라칸을 올려 둔 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길리 맥로란.”
“말하세요, 무르카.”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그대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았으니 묻지 않을 수 없군. 칼밥 먹는 처지로서, 존경스러운 마음이 일 정도였거든. 맥로란 가문은 왜 그대를…….”
길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르카는 헛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안하오. 10초 전의 내 입을 틀어막고 싶군.”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흑왕단이 떠나자마자 길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표정을 고친 그녀는 진과 무라칸을 데리고 미텔의 이동 관문 관리소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미텔 이동 관문입니다.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오.”
길리가 룬칸델의 문양, ‘흑검’이 각인된 단검을 내밀었다.
“아! 룬칸델의 권속이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휴페스터 연합국의 칼론으로 가시겠지요?”
칼론은 룬칸델의 본가, ‘검의 정원’이 위치한 도시였다. 또한 휴페스터는 사실상 룬칸델의 통치 아래 놓인 연합국이었다.
“그렇소.”
“이쪽으로 오시길. 특석으로 모시겠습니다.”
미텔 역시 휴페스터 연합국에 포함된 만큼, 룬칸델의 땅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동 관문 관리자는 진 일행을 안내하는 게 몹시 영광스러운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두 시간만 기다리시면,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하실 겁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미텔의 특급 이동 관문 대기실은 웬만한 귀족가 응접실 못지않게 화려한 모습이다. 특석에 다른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진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필사 노트를 꺼내 들었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하는 건, 마법사 시절 생긴 습관이었다.
“하아, 도련님.”
“왜?”
“솔직히, 이 유모는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도련님께서 신의 계약자란 것이나, 무라칸 님의 정체는. 행여 가문에 탄로가 나도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법 말이지?”
“예. 그것만큼은, 룬칸델의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요.”
“걱정 마. 알아서 잘 숨길…….”
그때, 누군가 특급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귀족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옅은 구릿빛 피부에, 진보다 한 뼘쯤 키가 크고 두 명의 호위를 대동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평온했던 특급 대기실에 급격히 긴장감이 흘렀다. 길리와 소년의 수행원들이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룬칸델과 지플이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당연했다.
‘지플 새끼들이잖아? 누구지?’
진이 차분히 소년의 얼굴을 뜯어보며 생각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지만, 전생에서 지플을 가까이서 본 적이 많지 않아 누군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어쩐지 휴페스터로 가기가 싫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재수 없는 놈들을 마주치려고 그랬나 보군.”
진과 멀찍이 떨어져 앉은 소년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호위들은 이제 길리뿐만이 아니라 진에게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다분히 유치한 도발이다.
길리의 목에 핏대가 불거졌지만, 진은 한번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길리 역시 가만히 있었다.
“냐아옹.”
고양이로 변한 무라칸은 상황이 즐거운 듯, 그들 사이를 빙글빙글 오가며 울음소리를 냈다.
“오, 그래도 키우는 고양이는 귀엽군. 저 겁쟁이가 키우긴 아까울 지경인데? 이리 온, 우쭈쭈.”
“냥!”
폴짝 뛰어 소년의 품으로 안긴 무라칸. 그는 한동안 소년의 손길에 몸을 맡기다가…….
“캬악!”
별안간 발톱을 세워 소년의 콧등을 긁어 버리곤, 재빠르게 품을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진은 풉,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큭!”
“여덟째 도련님!”
호위들이 검을 뽑으려 허리춤에 손을 얹은 순간, 소년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아아, 괜찮아. 그냥 좀 할퀸 거야. 사람도 아니고, 동물이 그런 건데, 뭘. 시비 걸다 혼났군.”
콧등을 쓱 닦고 일어선 소년이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룬칸델 앞에서 검을 뽑는 건 멍청한 짓이지.”
소년이 어깨를 으쓱하며 진 쪽을 살펴보았다.
‘겁먹은 게 아니라, 침착한 쪽이었군. 아니, 나를 신경도 안 쓰는 건가?’
소년이 특석에 들어서자마자 진을 유치하게 도발한 건, 의도한 것이다.
이제 막 폭풍성을 나온 룬칸델의 막내가, 어떤 싹수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결론을 내렸다.
“진 룬칸델. 꽤 재미있는 녀석이네?”
소년이 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난 베라딘 지플이다. 한번 떠보고 싶어서 몇 마디 던져 봤는데, 정식으로 사과하지.”
베라딘 지플!
이름을 듣자마자 진은 왜 소년의 얼굴이 낯익었는지를 깨달았다.
그의 전생에서 베라딘은 서른에 9성 마법사가 되어, 지플의 차기 가주로 유력하게 지목된 인물이었다. 엄청난 유명인이었던 만큼, 진도 곧잘 소식지에서 그의 얼굴을 봐 온 것이다.
실력과 인품, 배경을 고루 갖춰 젊은 마법사들의 우상이었던 자.
당시 막 5성 마법사가 된 진에게도 베라딘은 한없이 멀고 높기만 한 존재였다.
“그래? 나도 네가 어떤 놈인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아주 멍청한 녀석은 아니라 다행이군.”
“호오, 내 어떤 점을 그렇게 평가했지?”
“네 부하들이 칼을 뽑게 뒀으면, 그게 장난이었다 할지라도. 너는 휴페스터를 수행원 하나 없이 돌아다녀야 했을 거야. 너도 손가락 두어 개는 없어졌을 거고.”
“하하, 재미있는 농담이군.”
“농담 같나?”
진의 싸늘한 시선을 확인한 베라딘이 일순 움찔했다.
“……뭐, 좋아. 멋지군.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선배로서 조언 하나 하지. 나중에 다른 지플을 만나 다소 불쾌한 일을 겪더라도, 함부로 손가락을 자르진 마. 각자 가문이 너무 피곤해지지 않겠어?”
그런 일을 벌이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이야기.
베라딘은 진심으로 충고하는 것이었다.
“그거야말로 재미있는 농담이야, 베라딘 지플.”
“음, 왜지? 우리와 룬칸델이 사소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피 터지게 싸우면, 세상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전쟁에 고통 받는 민중들 쪽도 생각해 주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야.”
“내 아버지 시론 룬칸델. 그리고 네 아버지 켈리악 지플.”
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분들이 고작 애들 싸움에 가문 전체를 움직일 것 같나?”
이야기를 들은 베라딘의 눈동자가 커졌다.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내가 네 손가락을 잘랐어도, 룬칸델과 지플이 전쟁을 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금괴나 수천 개쯤 물어주고 끝낼 문제지.”
눈동자를 끔뻑이던 베라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교훈을 얻어 가는군. 이 빚은 나중에 꼭 갚도록 하지.”
“나중은 됐고, 지금 갚아.”
“어떻게?”
“이동 관문이 작동될 때까지, 조용히 있어 주면 좋겠군. 내 휴식에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