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
제 11화
8화. 검의 정원(2)
베라딘은 진이 요구한 대로 빚을 갚았다.
그는 이동 관문이 작동하는 순간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끔 슬금슬금 진 쪽을 살펴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긴 했지만 말이다.
‘진 룬칸델…… 몇 년쯤 뒤엔,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녀석이 될 것 같군. 으으, 궁금해! 더 얘길 나눠 보고 싶은데 조용히 해 주라니 그럴 수도 없고.’
진을 힐끔대는 베라딘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저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뿐이지만, 오늘의 만남은 베라딘에게 강렬한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베라딘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엔 약간의 호의도 묻어나고 있었다.
‘룬칸델만 아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됐을지도…… 가치 있는 적을 발견한 기분 정도로 만족해야겠어. 어쩌면 평생의 적수가 될지도 몰라!’
베라딘이 콧바람을 뿜으며 그렇게 소년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이, 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 마법사들의 우상이고 뭐고, 귀찮은 녀석이군.’
심지어 베라딘은 어쩌다 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리기까지 하고 있다.
‘상기된 얼굴과 눈빛을 보니 좀 제정신도 아닌 것 같고. 하, 그냥 손가락 몇 개 잘라 둘 걸 그랬나?’
이렇게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집중이 될 리 없다. 진은 그냥 필사 노트를 덮고 무라칸이나 쓰다듬어 주며 이동 관문이 작동하기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잠시 후 순간이동이 시작됩니다. 순간이동 여파로 두통과 현기증이 올 수 있으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우우웅!
특급 대기실 내부가 시퍼런 마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몽글몽글 피어난 마력이 진 일행과 베라딘 일행을 뒤덮었다.
“즐거웠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진 룬칸델!”
베라딘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착하면 곧장 가는 길이 달라질 테니, 인사할 순간이 지금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응, 됐어.”
베라딘은 진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베라딘은 입국 수속대로 순간이동되었고, 진은 룬칸델인 만큼 특급 대기실로 도착했다.
휴페스터에서 룬칸델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하늘같은 명망을 지닌 가문. 반면 지플은 천하의 죽일 놈들이니 입국에서부터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세계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룬칸델과 지플이 양분하고 있다. 두 가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웨에엑, 웨엑……!”
토닥토닥!
길리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무라칸의 등을 두들겼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넌 무슨 용이…….”
“웨으억, 크흑. 후! 내 시대엔 이런 장치가 없었단 말이다. 으, 내장이 다 뒤틀린 기분이야.”
마법사들이 이동 관문을 개발한 건 약 100년 전.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술과 장치인 만큼 용들이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한참 토악질을 해 댄 무라칸이 좀 살겠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무라칸 님. 괜찮으세요?”
“끄떡없다. 토하는 것도 천 년 만이로군. 옛날엔 용의 토사물을 향수 재료로 사용하는 머저리들도 많았는데.”
“그건 아직도 그래. 네가 쏟아 낸 저거 귀족들 갖다 주면, 환장하면서 금화를 내놓을 거다.”
“오, 아직도 그렇단 말이지? 딸기파이여. 갖고 싶은 게 있는가? 내 저걸 팔아서…….”
“시끄럽고, 저기 소각로에 버려. 밖으로 나가면 가문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대기실 밖으로 나오니 휴페스터 연합국의 이동 관문의 한산한 풍경이 보였다.
평소엔 휴일이 아니어도 사람이 바글대는 곳이지만, 오늘은 룬칸델의 막내가 오는 날인만큼. 극단적인 통제가 이뤄진 모습이었다.
철컥, 철커덕!
의장 갑옷을 입은 한 무리의 기사가 진 일행에게 다가왔다. 룬칸델의 수호기사들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내 도련님. 처음 인사 올립니다. 저는 2등 집사 페트로입니다.”
기사들 사이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진 일행은 그들이 준비한 강철 마차를 타고 검의 정원으로 향했다.
* * *
검의 정원.
룬칸델의 상징과도 같은 곳.
이름 그대로, 이 드넓은 정원엔 꽃이나 나무보다도 땅에 꽂힌 검이 더욱 많아 보일 지경이다.
그 수천 자루의 검들은 모두 죽은 룬칸델이나 권속의 것이지만, 일원이라 하여 모두가 이 땅에 자신의 검을 꽂는 영광을 누릴 순 없다.
가문의 번성에 기여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인 것이다.
검의 정원에 들어서자 강철 마차가 서행을 시작했다. 진은 창밖으로 천천히 흐르는 검들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빠졌다.
‘한때는, 나도 죽어서 이 땅에 검을 꽂는 게 소망이었지.’
그때는 왜 그렇게 순진하고 미련했을까?
일찌감치 현실을 직시했다면, 전생의 진은 아마 조금 더 빨리 가문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스물다섯에야 1성 기사가 된 ‘가문의 수치’에게 여기 검을 꽂을 기회 따윈 주지 않았을 테니까.
왜 그렇게.
순진하고 미련했나?
한 번 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지만 본가에 왔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겠다는 의미였다.
‘내가 약했기 때문에. 약한 주제에 약삭빠르게 주도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진이 씨익 웃으며 눈을 감았다.
솔더렛과 계약해서 되찾은 검술 재능과, 원래부터 있던 마법적 재능, 도합 38년을 살며 얻은 잔머리에, 이미 한 번 죽어 봤기에 가질 수 있는 배짱, 회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
거기에 길리와 무라칸.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강한 동료들까지. 심지어 그중 하나는 전설적인 흑룡이다.
‘그래, 이번엔 이 거지 같은 곳에서도 살 맛 나겠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꽤나 긴장될 줄 알았건만. 정원에 꽂힌 검들을 보니 오히려 자신감과 투기가 치솟았다.
“충!”
“충!”
마차가 검의 정원 중앙에 서자 사열하고 있던 룬칸델의 수호기사들이 검례를 올렸다.
그리고 수호기사들 앞에 서 있는, 진의 열두 형제들과… 부모님.
룬칸델의 주인과, 주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인간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들이 본가에 모두 모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끼이…….
페트로가 마차 문을 열었다. 무라칸을 안고 있는 진과 길리가 사뿐히 바닥으로 내려섰다. 길리는 내리자마자 몸을 숙여 시론에게 예를 표했고, 진은 가볍게 목례했다.
“오랜만이구나, 막내야.”
어머니, 로사 룬칸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어머니.”
저벅, 저벅.
진이 찬찬히 시론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는 내내 양옆으로 늘어선 형제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라칸 때문이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막내가, 고양이 따위를 어깨에 이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미간을 좁힌 시론이 진에게 이렇게 물었다.
“주운 것이냐?”
무라칸에 대한 질문이다.
진은 자신의 아버지라면, 당연히 인사보다 이 질문을 먼저 꺼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또한 어떻게 대답해야 이 까다롭기 그지없는 최강자가 흡족해할지도.
“거둔 것입니다, 아버지.”
“주운 게 아니라 거뒀다라…….”
시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확실하고 대담해서 좋구나. 그래, 룬칸델은 무언가를 얻을 때, 늘 그런 자세여야 마땅하지.”
일부 형제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대부분 어린 시절, 귀여운 동물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가 호되게 혼난 기억을 지닌 이들이었다.
혹은, 그냥 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거나.
진이 고개를 돌려 형제들의 면면을 살폈다.
‘저놈들 중에…… 내게 저주를 건 녀석이 있다.’
누굴까?
9년 전, 요람에서 두 눈으로 저주를 목도한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궁금했던 문제다.
그리고 왜 그랬을까?
한 살짜리, 그것도 아직 아무것도 보여 준 게 없는 자신의 막냇동생에게. 룬칸델로서는 죽음보다 더한 저주를 걸려고 시도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작 내가 바리사다를 골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리미리 경쟁자를 제거하자는 단순한 의도였나.’
당장이라도 한 놈씩 붙잡아 캐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열두 형제 중 진보다 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폭풍성에서 부하처럼 부린 토나 형제마저도 2년간 룬칸델 검술을 익혔으니 현재로선 더 강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쁜 날이 아닌가?
앞으로 피를 볼 날은 무수히 많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은 진이, 무라칸을 바닥에 내려 두었다.
“냐야옹.”
폴짝 뛰어 로사에게 안긴 무라칸. 로사는 의외로 차분히 무라칸을 쓰다듬었다.
“아들아.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냐?”
“나비 룬칸델입니다, 어머니.”
풋.
로사가 웃음을 터뜨렸고, 형제들 대부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시론은 묵묵히 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막내가 아무리 어리다지만, 이럴 수는 없습니다.”
“감히 룬칸델의 이름을 하찮은 미물에게 붙이다니요. 저도 넷째 오라버니 말에 동의합니다.”
“길리! 네년, 막내를 어떻게 키운 거냐? 애가 어떻게 고양이 따위에게……!”
형제들이 성토하는 사이, 시론이 나지막이 입을 열자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왜 하필 룬칸델의 성을 붙여 주었느냐?”
진은 시론과 눈을 맞추며 이렇게 대답했다.
“제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한낱 짐승이라 할지라도, 제가 제 의지로 직접 거둔 첫 번째 생명이니. 이름이 무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았어요.”
입을 닫은 형제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으나, 시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구나. 하지만 막내야… 룬칸델이란 이름이 갖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너는 이해하고 있느냐?
묵직하게 이어진 질문에, 진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누구든 나비를 해하려 한다면 제가 직접.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지요.”
방금까지 죽일 듯 진을 노려보던 토나 형제의 표정이 팍 찌그러졌다.
이제 막내가 와도 두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폭풍성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막내야, 너는 적을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구나. 네 형제들이 이토록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그건 시론의 경고였다.
본가에 입성하자마자 말 몇 마디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진이 아니라. 감히 자신 앞에서 함부로 눈에 살기를 묻히는 다른 자식들에 대한 경고.
형제들이 한순간에 표정과 몸가짐을 단정히 고쳤다.
“그런 것 같네요. 하지만 제겐 적을 죽이는 것에도 재능이 있을 겁니다, 아버지.”
“크하하…… 다들 긴장해야겠군. 앞으로 이 야무진 막내를 감당하려면 말이다.”
형제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서 자리에 모인 룬칸델이 모두 저택으로 들어서자, 진을 위한 만찬이 시작되었다.
식사하는 내내, 형제들 대부분은 맹랑한 막내를 지켜보며 묘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