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1)
제 111화
55화. 암흑마법회의 잔당들(3)
마치 소용돌이가 바닷물을 집어삼키듯.
역천이 끊임없이 아카데미 생도와 암흑마법회 마법사들의 마력을 빨아들인다. 구체의 인력에 이끌리는 수십 개의 마력 띠 때문에 어두컴컴한 동굴이 환한 빛으로 가득할 지경이었다.
키이잉, 키잉-! 키이이잉……! 역천이 일으킨 날카로운 소음이 동굴 벽을 타고 증폭된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동굴 속에서, 아직 쓰러지지 않은 마법사는 넷뿐이었다.
역천을 펼친 장본인인 진과 그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엔야.
그리고 막 입술 사이로 한 줄기 굵은 선혈을 쏟아내는 가짜 오턴과,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한 암흑마법회 마법사.
‘저놈이군, 이 동굴을 만든 마법사.’
그는 겨우 서 있는 게 전부인 오턴과 달리, 주문을 중얼거리며 보호막을 펼치고, 안간힘을 써서 제 마력을 진정시키는 모습이었다.
‘8성쯤 되겠어.’
역류계가 없었다면, 그중에서도 궁극기 역천이 아니었다면 진은 놈에게서 작은 역류 반응조차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순수 마력은 놈이 한 단계 더 높으니까.
“오스틴, 보호막을 쳐. 곧 오크들이 정신을 차릴 테니.”
역천을 유지하며 동시 영창을 하는 건 아직은 진에게도 무리였다.
“앗, 네!”
엔야는 실전이 처음인 만큼 상황 대응이 능숙하지 못했다. 진이 역천을 펼치고 벌써 십여 초가 지났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은 엔야가 어리바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대단하지. 첫 실전이 이런 상황인 데다, 내가 미리 언질을 준 것도 아닌데 정신은 똑바로 붙잡고 있으니.’
보통의 열여섯 마법사, 지망생이었다면 대부분 공황 상태에 빠졌을 터. 침착하게 보호막을 펼치는 엔야를 보니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공격 마법으로 저놈을 노려.”
“오턴 말고,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 말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진의 이마에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역천은 본래 9성 마력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마법. 현재 진은 7성인만큼 온전한 위력을 낼 수도, 계속 띄워놓을 수도 없었다.
“커, 커허어억…….”
역류를 이기지 못한 가짜 오턴도 결국 바닥에 쓰러져 피거품을 토했다. 그러나 8성 마법사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은 듯, 호흡을 고르는 모습.
시이익!
엔야의 손에서 날카로운 바람의 마력이 쏟아졌다. 4성 마법 바람칼날, 꽤나 매서운 파공음이 일었으나 놈의 보호막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람칼날이 보호막에 가로막혀 사그라지자, 놈이 오크들을 노려보았다.
“일어나서 활을…… 쏴라!”
다행히 놈도 역류 초기에 빠진 상태다. 8성 마법사의 가공할 공격 마법을 직접 쏟아낼 수는 없다는 뜻.
‘하지만 역천이 사그라지면, 곧장 중급 이상의 마법을 난사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역천이 해제된 이후 추가적인 마력 손실 없이 끝장을 내야 했다. 오턴의 말대로라면, 곧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적이 동굴을 찾을 테니 말이다.
“카악!”
오크들이 어기적거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스물 중 절반 이상이 활시위를 당기다 고꾸라졌으나, 네댓 대 정도의 화살이 두 사람을 향해 쏘아진다.
화살이 엔야의 보호막을 때리며 퍽, 퍽 둔탁한 소리를 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올타 님의 힘을 빌리면, 오크 몇은 제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8성 마법사의 보호막은 제 힘으론 뚫을 수가…….”
“올타의 힘은 아껴두고, 화살 몇 개만 더 막아줘.”
“네!”
8성 마법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천장에 뜬 역천의 기운이 점점 약해지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 놈은 진의 마력이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8성 마법사는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놈은 지금쯤 내 마력이 곧 동나고, 승기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겠지.’
이제 슬슬 역천을 거두지 않으면 오히려 진이 역류에 빠지게 생겼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제대로 한 방 먹었군. 네놈, 키다드의 숨겨둔 제자라도 되는 모양이지?”
8성 마법사가 진에게 소리쳐 물었다. 역천의 구체가 방금까지와는 비교할 바 없이 작아진 덕에 기운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곧 죽을 놈이 그걸 알 필요가 있나?”
“헛소리하지 마라. 방심해서 생각지도 못한 수에 당할 뻔했으나, 네놈이 7성에 불과하다는 건 이미 파악했으니. 나는 롤트 조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겠지?”
롤트 조.
그는 안드레이 지플 생전의 최대 숙적으로 알려진 ‘차가운 조’의 동생이었다. 그 이름을 들은 진이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차가운 조의 배다른 동생이 대지계 마법에 통달했다는 소문은 들어보았다. 그 이름이 롤트 조였다는 건 처음 알았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암흑마법회에 입단해라, 키다드 홀의 제자.”
“거절한다면?”
“네놈의 마력이 바닥나는 즉시 숨통을 끊어주마. 당연한 것 아닌가? 처음에 내가 방심한 사이 역천을 시전하고도 나를 처리하지 못한 순간부터, 네게는 승산이 없었다.”
진이 대답하지 않자 롤트가 오크들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키다드 홀, 네 스승이 생전에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군, 역천이 완전히 꺼지기까지. 그리고 네놈의 마력은 거의 소진됐을 터. 어떻게 할 테냐?”
“네 말대로라면 내게는 선택권이 없지 않나? 입단 아니면 죽음뿐인데.”
“그래서 자비라고 표현한 것이다.”
진이 한숨을 내쉬며 롤트를 쳐다보았다.
“롤트 조. 너는 암흑마법회에서 몇 번째 줄이지?”
“네 처우 때문에 묻는 것이냐? 열 손가락 안이라고 해두지. 키다드 홀과 우리 관계는 빼더라도, 네놈의 능력과 잠재력이 탐나는 것은 사실이다. 입단하면 넌 즉시 내 부관 신분으로 간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마.”
열 손가락 안? 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진다.
“암흑마법회에 네놈 정도 실력자가 최소 아홉은 더 있다는 말이냐? 단순히 옛 악명에 기대 분탕이나 치는 쓰레기들인 줄 알았는데, 썩 구미가 당기는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으나 진은 놀라운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롤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암흑마법회는 그저 ‘잔당’으로 치부될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물론, 네놈의 입단은 그 불손한 태도를 고친 다음이어야 하겠지. 아직 젊은 것 같은데, 벌써 그만한 성취를 이뤘으니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는 않구나.”
“그런데, 내가 굳이 여길 찾아온 이유가 뭔지는 궁금하지 않나? 그것도 아카데미 마법사들의 종자 신분으로 숨어서 말이야.”
“그건 교화 과정에서 차차 알아 가면 돼. 뭐, 빤하긴 하구나. 역류계 마법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테지. 분명 키다드가 네게 역류의 서를 전수하며 세상 모든 마법사가 네 발 아래 놓일 것이라 큰소리를 쳤을 것이니.”
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암흑마법회에 입단하도록 하지.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
“날 꺾어봐. 나보다 약한 놈의 아래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나.”
“푸하하, 진짜 물건이로군. 아직도 허세를 부릴 여력이 남았더냐? 과연 키다드가 제자로 삼을…….”
“아까부터 착각하고 있는데, 난 키다드의 제자 따위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네놈은 아직 내 이름을 듣지 못했군. 역류의 서는 내가 놈을 죽이고 빼앗은 보상일 뿐이지.”
“……뭐?”
후우웅……!
사람 머리통 크기까지 줄어들었던 역천이 별안간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내 역천의 구체가 다시 미친 듯이 팽창하며 다시금 천장을 시커멓게 물들이는 모습이 이어졌다.
영기가 사그라진 역천의 기운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기는 같은 양의 오러나 마력에 비해 최소 2성은 앞선 위력을 품는다. 5성 영기가 역천에 더해졌으니, 다시금 7성 마력의 역천이 펼쳐진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놈…… 헙!”
푸핫!
롤트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피를 토했다. 진이 마력으로만 펼친 역천에 당해 역류 초기에 빠진 게 고작 1분 전이었다.
그때는 8성 마법사의 위엄을 발휘해 본격적인 역류가 진행되는 걸 막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진의 마력이 다 떨어졌다고 확신한 데다, 역류의 여파가 다소 남아있는 상태로 두 번째 역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건 롤트 쯤 되는 마법사에게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이, 이런……!”
롤트의 뇌리에 한 이름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죽은 키다드의 연구실 벽에 새겨져 있었다던, 생소한 이름 하나가.
‘진…… 그레이!? 설마? 게다가 저 검은 힘은!’
영기.
모든 마법사들이 염원해 마지않는, 어둡고 강한 힘. 흔들리는 롤트의 눈동자에 절망의 빛이 스몄다.
‘킨젤로가 찾고 있는 솔더렛의 계약자가 바로 저놈이었단 말인가! 역천을 펼친 것도 모자라, 영기라니……!’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킬 길이 없다. 오크들은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쳤고, 롤트는 이번에야말로 수습불가능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걸 깨달아야만 했다.
“스스로 방심했다가 당할 뻔했다고 말한 주제에, 또 한 번 방심했군?”
“크으아악! 아아악!”
스릉…….
진이 로브로 가려둔 브라다만테를 뽑자 새하얀 날에서 검광이 흘렀다.
“이, 노, 오오옴!”
푸슛, 콸콸콸-!
역류가 제대로 터졌다.
롤트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는 걸 확인한 진이 역천을 거뒀다. 그리곤 성큼성큼 그에게 걸음을 옮겼다.
“키다드 홀도 너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 마음 같아선 네놈을 살려서 두고두고 묻고 싶은 게 많아. 암흑마법회의 규모라든가, 본거지라든가, 목적이라든가.”
“카하악, 컥!”
“그런데 그건 지금 얌전히 기절해있는 가짜 오턴을 이용해도 되는 문제지. 무엇보다 아까 네놈이 살아있는 사냥감을 좋아한다고 표현한, 그분과도 곧 전투가 있을 것 같거든.”
스걱! 툭!
진이 가볍게 브라다만테를 휘둘러 롤트의 목을 떨궜다. 그러자 뒷걸음질을 치던 오크들이 아예 달려서 도망치는 모습이 이어졌다.
“저건 제가 맡을게요!”
엔야가 지팡이를 휘둘러 얼음송곳을 쏘아댔다. 오크 무리는 본래 4성 마법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만, 도망치는 뒷모습에 마법을 난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얼음송곳에 맞은 오크들이 기절한 암흑마법회 마법사들 사이로 픽픽 쓰러졌다.
“잘했어, 오스틴.”
“감사합니다, 형님!”
“그런데 지금부터 또 한 번 잘해줘야 돼. 뭔가 엄청난 녀석이 동굴로 들어선 것 같거든…….”
쿵, 쿵, 쿵! 그들이 지나온 길 쪽에서 멀고 묵직한 발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막 롤트와의 전투를 끝낸 참이건만.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무언가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이번만큼은 진도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은 존재였다.
‘백랑족……?’
그는 가짜 오턴이 동굴밖에 남겨둔 마법사들로 짧은 ‘유희’를 즐긴 후 동굴로 돌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