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2)
제 111화
55화. 암흑마법회의 잔당들(4)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키, 육중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온몸에 뒤덮인 새하얀 털, 이름처럼 늑대를 닮은 눈동자. 그는 백랑족 중에서도 몸집이 큰 편이다.
백랑족의 어깨에 걸쳐진 흉측한 망치에 핏자국이 가득했다. 동굴 바깥에 있던 마법사들을 학살한 흔적이었다.
‘가짜 오턴이 왜 그분은 살아있는 장난감을 좋아한다고 표현했는지 알겠군.’
수인종의 대표적인 전투 종족, 백랑족은 특별한 상대나 상황이 아니면 인간을 먹잇감이나 장난감으로만 여겼다.
“오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아주 난리가 났군!”
주위를 둘러본 백랑족이 쯧쯧 혀를 찼다. 백랑족은 동굴 바닥에 쓰러진 암흑마법회 마법사들을 보며 꽤나 다채로운 표정을 보였다.
그는 이 상황이 당혹스럽긴 하나, 두렵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오십 명 가까운 부하들이 죽거나, 기절한 것을 보고도.
“이야, 저 머리통은 누구 것인가 했더니, 롤트 녀석이잖아? 컬컬, 기가 막히는구만. 어디보자…… 분위기를 보아하니 배신에 당한 것 같지는 않고.”
그가 등장하자마자 엔야는 잔뜩 굳은 얼굴로 지팡이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두려움에 벌벌 몸을 떠는 일 따위 없이, 싸우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이번 일로 느끼는 게 많겠어, 엔야 양.’
이 상황을 타개하고 무사히 티칸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백랑족이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거기 두 꼬마! 네놈들 짓이지? 분명해, 이 몸은 틀리는 법이 없어. 전부 마력 역류를 시켰군? 롤트 놈이 인간 마법사 중에 역류를 기가 막히게 쓰는 놈이 있다고 했었지.”
역류에 빠진 마법사나 무인이 피거품을 토하며 기절하는 건 흔한 상식이다.
진과 엔야를 가리킨 손가락이 쇠막대처럼 길고 두껍다. 진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그와 눈을 맞췄다.
“하! 나, 참. 새파랗게 어린 데다 마법사 주제에 꽤 쓸 만한 눈빛을 하고 있잖아! 이 몸을 좀 무서워해도 괜찮지 않을까?”
당연하게도, 백랑족은 진을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이 롤트의 목을 벤 후 브라다만테를 곧장 납검해서 로브 속에 다시 숨겼기 때문이다. 적에게 ‘나는 마검사다’라고 광고해서 좋은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덕분에 백랑족은 진과 엔야를 순수한 마법사라고 인식했다.
“그건 네놈의 이름이 두려워할만한 것인지 들어본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거든.”
진이 그렇게 말하자 백랑족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박수를 치며 아우우, 특유의 늑대 울음소리를 내기까지.
“멋지군! 방금까지 갖고 놀다 죽인 인간들과는 차원이 달라. 아주 마음에 든다, 너. 내 이름은 골텝 하팔렙이다. 명예로운 결투를 할 것도 아닌데 이름을 말하려니 어색한 걸, 흐흐.”
이름을 확인한 진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집이 유난히 커서 혹시 투자드 라이커나 뷰토 웬스가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이군.’
투자드 라이커와 뷰토 웬스는 백랑족의 유명한 전사들 중 몸집이 아주 크다고 알려진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에 빗대면 9성에 가까운 실력자이므로, 아직 진에겐 버거운 상대였다.
어쨌거나 골텝 하팔렙이라는 이름은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백랑족 중에서 특별히 뛰어난 전사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물론 투자드나 뷰토가 아니더라도 백랑족은 그 자체로 오직 전투와 학살을 위해 태어났다고 일컬어지는 종족인 만큼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골텝 하팔렙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군. 난 진 그레이다. 이쪽은 오스틴 그레이고. 그런데 너야말로 조금은 두려워할 필요가 있지 않나? 우린 둘이서 네놈의 동료 마법사들을 전멸시켰는데.”
“동료는 무슨. 롤트를 빼면 그저 머릿수 채우기용 고깃덩어리들이지. 저딴 허접쓰레기들 좀 죽인 걸로 너무 우쭐대지는 마.”
백랑족은 대 마법 사전에 특화된 종족이기도 했다. 6성 이하의 마법으로는 그들의 강인한 육신에 피해를 입히기도 어려울 뿐더러, 털에는 마력을 튕겨내는 속성도 있기 때문.
그래서 골텝은 진과 엔야를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라고 분류하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또한 골텝은 두 사람이 겉보기엔 멀쩡해도 마력이 거의 동났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롤트와 가짜 오턴을 포함해 무려 오십이 넘는 마법사를 역류에 빠쳤으니, 골텝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롤트가 죽었으니, 그냥 돌아가면 내 입장이 난처해지겠는 걸, 으음……!”
골텝이 잠시 머리를 쥐어짜더니 또 한 번 박수를 쳤다.
“좋아! 달달한 제안을 하나 하도록 하지. 롤트와 고기들을 죽인 걸로 능력은 검증된 셈이니까……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 망치에 으깨져서 내 한 끼 식사가 되는 대신, 킨젤로에 입단을 하는 거다.”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킨젤로……? 여긴 암흑마법회의 동굴이 아닌가?”
“아아, 암흑마법회는 우리 킨젤로의 그, 뭐냐. 지부 같은 거야. 킨젤로는 전사만 받거든. 그래서 마법사들은 암흑마법회에 소속된다.”
생각지도 못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칠색조 대원들이 비슈켈과 부바르가 킨젤로 소속이라는 정황을 포착한 이후, 킨젤로는 줄곧 진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도 시절 첫 임무 때 상대한 콰지토 트루카라는 백랑족도 킨젤로 소속인 듯 보였지. 게다가 암흑마법회라.’
킨젤로와 백랑족.
그들은 무슨 관계일까? 어쩌면 백랑족 전체가 킨젤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킨젤로는 상상 이상으로 막강한 단체라는 직감이 들었다.
암흑마법회만 보아도 8성 이상의 마법사가 최소 아홉은 더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은 킨젤로 산하 암흑마법회의 간부가 되는 거지. 롤트의 자리를 메꾸면 딱 좋겠군, 나도 단장님을 볼 낯이 서고.”
“킨젤로의 단장이 누군데?”
“그건 간부가 된 다음. 어떠냐? 우리랑 같이 일하자고.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저기 쓰러진 놈들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특히 네놈은 특히 좋은 물건이라는 느낌이 와.”
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 죽어있는 롤트도 너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 나는 벌써 두 번이나 입단 제의를 받은 셈이지. 킨젤로는 꽤나 인재가 부족한 모양이야? 사람을 너무 헤프게 뽑는데. 간부 자리도 물처럼 뿌리고.”
“세상을 뒤집는 일에는 언제나 인재가 부족한 법이다. 그리고 두 번째라고 했지? 보통 세 번째 기회는 오지 않아. 벌써 죽기엔 아까운 목숨이잖냐, 내 상냥한 모습은 여기까지다.”
웃음기를 지운 골텝이 기운을 드러냈다.
그의 몸속에서 오러가 꿈틀대기 시작하자마자 한순간에 동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엔야가 이를 악물며 골텝을 노려보았고, 진은 지팡이를 사선으로 들었다.
“롤트가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했을 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아나?”
“말해봐라.”
“나보다 약한 놈의 밑으론 들어갈 수 없다. 네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지. 킨젤로에 입단시키고 싶다면, 우선 날 꺾어. 내가 패배한다면 진지하게 입단을 고민해보도록 하지.”
골텝의 눈동자에 살의가 번진다.
‘기운이 예사롭지 않긴 한데, 왜인지 위압감이 느껴지질 않는군…….’
골텝이 등에 걸린 망치를 뽑았다.
쿵!
루나의 도끼검 크란텔보다도 거대한 그 무기는, 가볍게 바닥에 닿았을 뿐인데도 묵직한 소리가 일었다.
“능력에 비해 머리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군…….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러나 분명히 말했지, 세 번째는 없을 거라고. 호의는 끝났다, 응징밖에 남지 않았지.”
후웅!
골텝이 발을 떼자, 엔야가 움찔하며 지팡이를 세웠다. 골텝의 움직임을 놓쳐 당황한 것이다. 4성 마법사가 아니라 4성 무인이라 할지라도 인지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저 시커먼 형체가 깜빡이며 단숨에 거리를 좁힌 느낌. 최소 6성 무인쯤은 되어야 어설프게라도 반응할 수 있을 터.
쾅!
진이 펼친 보호막에 망치가 떨어졌다. 일격에 균열이 일었고, 이격에 한쪽 면이 깨졌으며, 삼격엔 새로운 보호막을 펼쳐야 했다.
“우오오오!”
첫 번째 보호막이 깨진 짧은 틈에 엔야가 바람칼날을 펼쳤다. 그러나 4성 바람계 마법의 예기정도로는 골텝의 가죽에 작은 흠집조차 낼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엔야는 과연 천재라 불릴 만한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골텝의 몸통 대신 정확히 눈을 조준해 바람칼날을 쏜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의 눈에 마법을 조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골텝은 가소롭다는 듯.
엔야의 바람칼날을 막지도 않고 입을 벌려 삼켜버렸다. 진도 흠칫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역시, 여자 쪽은 별것 아니었군. 보호막만 치지 말고, 어서 그 잘난 주둥이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그래, 진 그레이.”
퉤!
침을 뱉으며 입맛을 다시는 골텝. 바람칼날에 혀조차 베이지 않은 것인지 침에 피가 섞여 있지 않았다.
“엇, 내가 여자인 걸 어떻게 알았지!?”
“그딴 허접한 변장으로 누굴 속이려고.”
“잘들 속던데요!”
“그러니까 인간이 안 된다는 거다. 아무튼 찌꺼기는 빠져. 진 그레이의 실력이 보고 싶으니.”
쾅! 쾅, 콰아앙! 육중한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망치. 보호막으로 막는 건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기껏 순수 마법사 행세를 한 게 소용없게 됐군. 엔야 양이 시도한 방법으로 눈알 한쪽 정도는 터뜨리고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진도 엔야와 똑같은 방법으로 눈을 노리려고 했다. 소용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더 이상 마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보호막 속에서 가만히 골텝의 망치질을 지켜보니, 굳이 방어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다.
‘놈의 기운이 그다지 위압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건,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었나.’
파창!
네 번째 보호막이 깨진 순간, 진이 지팡이를 집어던지며 브라다만테를 꺼냈다.
홱 몸을 숙이며 브라다만테를 내지르는 진. 심안을 개안한 덕에, 자신이 피해도 망치가 엔야의 코앞만 아슬아슬하게 스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우왁!”
엔야가 홱 고개를 젖히며 괴성을 질렀고, 골텝은 예상치 못한 검격에 허벅지를 베여야 했다. 핏, 허벅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튀자 골텝이 거리를 벌리며 욕지거릴 내뱉는다.
“망할! 마검사였다고?”
“잘들 속더군.”
우우웅!
오러에 물든 브라다만테의 칼날에서 예기가 번진다.
골텝은 잠시 멈칫했을 뿐, 문제없다는 듯 망치에 새로 오러를 덧씌웠다.
“어쩐지 롤트의 목 절단면이 너무 깔끔하다 싶었지. 마법이 아니라 검으로 벤 것이었군…….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다, 진 그레이. 아, 한 가지 있군. 죽이지는 않으마, 단장님께 보여드려야겠으니.”
휙, 휙. 진이 손아귀에서 가볍게 브라다만테를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방심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군. 백랑족하고 싸우는 건 오랜만인데, 싱겁게 끝나면 아쉬울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