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3)
제 111화
55화. 암흑마법회의 잔당들(5)
콰직!
골텝의 망치가 떨어질 때마다 동굴 바닥이 깨지며 돌 파편이 튀었다. 움푹 파인 바닥을 보며 엔야가 헛숨을 삼켰고, 진은 여유롭게 보법을 밟았다.
진에게만 여유로울 뿐, 엔야에겐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그녀는 7성 기사의 움직임을 이해할 만한 눈이 없으니 당연했다.
“형님!”
“물러나 있어, 오스틴.”
엔야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진은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관통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쾅, 콰직, 콰득! 거대한 추가 쉴 새 없이 바닥 면을 으깬다.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갈 때마다 부웅, 살벌한 바람 소리가 일었다.
망치는 현란하게 움직였다. 백랑족의 전사들은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망치, 철퇴, 창 등의 무기를 다루고, 골텝은 전투 경험만 삼백 회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좌에서 우, 우에서 좌, 다시 좌에서 우, 퇴로를 따라 기가 막히게 닿는 사선, 그리고 직선. 춤을 추듯 허공과 바닥을 넘나드는 망치의 궤적 속엔 지난날의 경험이 집대성되어 있다.
그리고 흐름이 있다. 상대를 분쇄하기에 최적화된 흐름이.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고서는 결코 그 흐름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진은, 경지에 올랐다. 어찌 전율에 몸서리치지 않을까.
‘상대의 공격을 뜻대로 피하는 게 이리 짜릿한 일이었나.’
30초쯤 틈 없이 이어진 망치질에 터져나간 것은 바닥뿐이다. 무작위로 튄 파편조차 진의 옷깃을 스치지 못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할 것이냐.
골텝은 그런 진부한 대사를 늘어놓는 하수가 아니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골텝의 안광 속에 한 줄기 감탄의 빛이 서린다.
“……놀랍구나!”
잠시 망치질을 멈춘 그가 진을 내려다보았다. 거대 망치를 수십 번 휘두르고도 골텝의 호흡은 처음과 같다.
“대체 네놈은 뭐지? 너처럼 어린 인간이, 이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변장으로 나이를 속인 것이냐?”
“좋을 대로 생각해.”
“단순히 사냥감으로 분류해선 안 되겠구나. 네놈은 하비에르의 제단에 바쳐질 가치가 충분하다.”
수인종 역사상 최고의 전사, 백랑족 하비에르. 그는 다른 수인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지만, 백랑족 사이에서는 신으로 여겨졌다.
백랑족이 상대를 하비에르의 제단에 바치겠다고 말하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적이 모든 명예를 걸고 싸워도 될 만큼 강하거나, 룬칸델일 경우.
골텝은 진을 전자라고 판단했다.
“나, 골텝 하팔렙은 지금부터 나와 하팔렙 일족의 모든 명예를 걸고 진 그레이를 상대하겠다. 너는 부정 타지 않은 채, 하비에르의 영혼의 양식으로 거듭나게 되리라.”
“킨젤로가 종교의 자유는 보장해주나 보군.”
“그럼, 생각보다 꽤 괜찮은 곳이거든. 함께할 수 없어 아쉽군.”
지이잉!
골텝의 망치가 부풀었다. 방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이 그의 진지한 얼굴을 비췄다.
‘이제부터가 진짜 실력이라는 건가. 하긴, 그 어설픈 망치질이 전부였다면 너무 쉬웠을 테지.’
브라다만테에도 한 겹 더 오러가 둘러졌다. 칼끝을 겨누는 진의 눈빛도 착 가라앉았다.
한 호흡 숨을 고르고, 먼저 파공음을 일으킨 것은 브라다만테였다. 광대 높이에 가로로 세워져 있던 검신이 화살이 튕겨지듯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빠르다.
진 스스로 느끼기에도, 골텝이 눈으로 좇기에도. 번쩍! 동굴 한가운데 일섬을 그린 검을 따라 진의 안광이 흔들렸다.
그리고 힘껏 망치를 올려치는 골텝.
콰앙!
예기와 둔기가 아닌, 둔기와 둔기가 부딪친 듯 굉음이 일었다. 눈을 홉뜨며 다음 일격을 대비하는 골텝은, 또 한 번 경악스러운 마음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7성 오러를 사용하나, 다 여물지도 않은 소년의 몸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소년이 휘두른 검격에 일순 망치를 쥔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게차를 극복하고, 거리차를 압도한다. 검격이 이어질 때마다 골텝은 진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고 있었다.
평범한 7성 기사가 낼 수 있는 완력이 아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힘은 골텝이 아는 한, 단 하나뿐이었다.
“룬칸델……!”
그 축복받은 혈통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모든 의식을 제 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 자루 검으로 거대 망치를 튕기며 불꽃을 일으키는, 인간이라는 종의 작고 가벼운 몸으로, 백랑족 전사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전생에서부터 꿈꿔온, 룬칸델 그 자체의 모습.
회귀 후 꽤나 많은 싸움을 해왔으나, 오늘처럼 자신이 대견한 날은 없었다. 그래, 룬칸델의 싸움이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이토록 압도적이어야 한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상대를 주춤하게 만들고, 이내 공포에 사로잡혀 무릎 꿇도록 만들어야 한다.
‘종내에는 검을 쥔 것만으로도 적들이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룬칸델이 지향하는 검의 극의다. 브라다만테가 수놓는 검광 속에, 그런 문장이 숨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카아악!”
부웅-! 쐐액!
밀려나던 골텝이 한 바퀴 크게 망치를 휘저었다. 진이 한 걸음이라도 물러나도록, 필사적으로 휘두른 것이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골텝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길고 거대한 무기는 그만큼 파괴력을 수월하게 낼 수 있으나. 달라붙은 적을 떼어내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피할까?’
아니면 받아칠까.
받아친다면 몸에 무리가 오는 걸 감수해야 했다. 축복받은 룬칸델의 육신과 7성 오러라 할지라도, 골텝의 혼신을 담은 일격은 몸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받아친다.’
더 효율적인 선택을 버린 이유는 단 하나.
룬칸델이라는 이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자신은 그 미친 괴물들이 모인 그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라고, 룬칸델의 가장 빛나는 괴물이라고, 더 이상 추방 당한 낙오자가 아니라고.
그러나 그 비참한 시절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온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쿵쿵 가슴을 내려찍고 있는 것이다.
꺼어엉……!
격돌의 순간, 충격에 몸 전체가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신을 타고 전해진 충격은 몸속을 한 바퀴 휘젓고는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덕분에 두 걸음을 물러났다.
큽! 순식간에 입속에 비린 맛이 번진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피가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고, 다시 자세를 잡았을 땐.
골텝이 허우적대는 망치를 수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피를 쏟았고, 손가락 두어 개가 부러져서 덜렁대고 있었다.
룬칸델이 살을 주면 상대는 뼈를 내어주게 된다. 룬칸델이 작은 수렁에 빠지면, 상대는 천길낭떠러지를 굴러야했다.
다시 달려드는 진을 보며, 골텝은 패배를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떼어내고, 밀고, 치고, 악을 써도 소년은 거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 같다.
평생을 사용한 거대 망치가 원망스러운 건 처음이었다.
“젠장할!”
그럼에도 골텝은 다시 망치를 뻗는다. 그 역시 전사다. 긍지를 알고, 명예를 알며, 때로는 패배에 순응할 줄도 아는 전사.
하비에르의 이름이 나온 이상, 죽더라도 결투를 끝낼 수는 없다.
부러진 손가락 따윈 아무것도 아닌 듯, 여전히 망치는 매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브라다만테가 망치를 튕겨낸 순간, 급격히 끌어올린 오러 때문에 시작된 작은 역류의 소용돌이가 몸속을 헤집고 있었다.
후우, 후……!
무기 사이로 진과 골텝의 거친 숨이 떠다닌다. 이를 악물고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입에서 튄 핏방울은 오러의 열기에 증발하고 있었다.
캉! 카캉! 콰앙!
골텝의 처절한 표정이 무색하게 쇠붙이들은 청량한 파열음을 일으켰다. 골텝의 오러는 점점 꺼져갔고, 진은 그에 맞춰 조절했다. 이제 더 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승패는 이미 갈린 셈이다.
“살려주면 킨젤로에 대한 정보를 실토할 의향이 있나?”
또 언제 킨젤로의 간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부바르 가스톤이 있지만, 킨젤로의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으므로 그에게 접근하는 건 고민이 필요한 문제가 되었다.
“푸흐흐, 백랑족의 율법을 모르나보군. 킨젤로가 아니더라도, 밀고자는 죽음뿐이다. 그리고 명예로운 결투가 된 이상, 멈출 수는 없다. 진 룬칸델.”
“율법은 알아. 때론 율법보다 목숨이 중할 수도 있으니 물어본 것이다.”
“백랑족 중에 그런 비겁한 놈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밀고자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묻는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하지. 네 동족들에게.”
“룬칸델치고는 괜찮은 놈이로군.”
쩌엉!
골텝이 마지막 오러를 짜내기 시작했다. 잠깐이나마 그는 가진 것보다 많은 힘을 낼 수 있을 터.
흔히 무인들에게 진기라 불리는, 생명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오러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러로 활활 타오르는 망치를 보며 진이 처음으로 한 걸음을 물렀다.
“이런, 한창 재밌었는데. 설마 마지막은 효율적인 싸움을 하겠다는 거냐?”
맞서주지 않으면 생명력을 불태워 오러를 일으켜도 소용이 없다. 진이 피한다면 골텝으로선 다시 붙잡아 싸움판에 앉힐 여력이 없었다.
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은 무인으로서 네게 경의를 표한다. 어울리는 마지막을 선사해주마.”
그 순간 진이 떠올린 것은 뮤론 지플과의 일전이었다.
뮤론이 연 지옥문을 베며,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 단 한 번 걷힌 적이 있는…… 한 영역을 가리고 있던 장막.
‘벤다.’
누군가 알려준 적은 없으나.
진은 옛 룬칸델의 마검사들이 전력을 다할 때 그랬듯,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벤다, 저것을 벤다…….
히이이이-.
검신을 타고 어둠이 번졌다. 이글거리는 영기가 브라다만테를 감싸며 그림자로 이루어진 검은 칼날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오……!”
골텝은 그 힘을 마주보며 영광스러운 듯 감탄을 내뱉는다. 영기, 천 년 전 룬칸델의 초대 가주가 하비에르를 영면에 들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힘.
어떤 백랑족은 그 힘을 저주스럽고 불길한 것이라 여기지만.
골텝은 자신이 하비에르와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 명예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와라, 진 룬칸델!”
벤다.
진이 읊조리듯 주문을 외며 앞으로 나아간 순간.
거대한 횃불이 쓰러지듯, 골텝의 망치가 내리쳐졌다. 일순 동굴이 환해지는 오러의 빛에 잠시 두 사람의 얼굴이 번뜩였고,
스걱!
브라다만테의 검은 칼날이 빛을 집어삼키며 망치를 베었다.
일도양단, 동강난 망치가 쏟아지듯 좌우로 떨어지자 그 사이로 진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 눈빛을 마주한 골텝은 씨익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쩌어억……!
반 박자 늦게, 골텝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검을 거둔 진이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골텝의 시신을 바라보던 진은 잠시간 묵례하고, 뒤돌아 엔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좋은 승부였다, 골텝 하팔렙. 그 이름을 기억해두지.”
그렇게 한 마디 심심한 조의를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