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74)
제 111화
58화. 미트라 대사막의 신기루(3)
폐에 모래가 낀 듯 숨을 내쉴 때마다 텁텁한 맛이 났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모포 속에서 거짓말 같은 추위와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자고 일어나면 모래바람에 고치처럼 변한 모포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한 번은 학명조차 없는 전갈에 발목을 물리기도 했다. 미트라 대사막의 생명은 하나같이 맹독을 품고 있다. 만독주를 얻지 못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전갈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잡아먹었다. 벌과 비슷한 이름 모를 벌레도, 시커먼 비늘로 뒤덮인 머리 두 개 달린 뱀도 보일 때마다 먹어치웠다.
모래를 너무 많이 삼켰기 때문일까. 마법으로 대충 익힌 짐승들은 악취와 더불어 끔찍한 맛이었지만, 진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으적, 으적.
야윈 뺨 속에서 뱀이 부서졌다. 흘러나오는 독액조차 물 대신일 뿐이기에, 진은 또 한 번 요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첫 번째 신기루를 지나 사흘이 흘렀다.
해가 지고, 달이 지는 것이 없었다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대사막은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구나…… 이 사막엔.’
그게 가장 괴로웠다.
살면서 이토록 외로운 순간을 보낸 적은 없을 것이다. 티칸을 떠나고 흐른 시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하지만, 사막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밀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또 일주일이 흘렀다.
더 이상 뱀도, 전갈도 나오지 않는다. 진은 완전히 혼자가 되어 막연한 모래의 바다를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혼잣말이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수통이 다시 바닥을 보였으므로 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1796년 12월 11일의 미트라 대사막에 너무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아껴둔 식량이…… 사라졌어?’
그날의 진은 자고 일어나자마자 악,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밤새 껴안고 잔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식량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다른 물건은 다 그대로인데, 식량만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육포 한 점, 곡식 가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방 속에 머리를 넣어도 냄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식량 따윈 가방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듯이.
‘하.’
욕지기가 치밀었다. 텅 빈 수통을 집어 던지며 하늘을 향해 숫제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따지고 싶으나.
진의 목소리는 메아리조차 남지 않고 사막의 허공 속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래도 걸어야 했다.
가만히 있어 봐야 기다리는 건 개죽음밖에 없으니까. 또한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끝장날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다.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 한들.
물과 식량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으나, 사실 답은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하늘이 노랗게 변해 돌아오지 않았고.
이틀이 지나자 간헐적으로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이틀이나 대사막에 대적한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샘물도, 오아시스도, 잡아먹을 짐승도 보이지 않는다.
털썩…….
발을 헛디뎌 쓰러졌다. 발목과 종아리에 일순 힘이 빠진 것이다.
벌어진 입속으로 한 움큼 모래가 들어온다. 입속이 바싹 말라 혀에 모래가 들러붙지도 않았다.
단 한 번 넘어졌지만,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탈력감이 번지고 있었다. 그냥 한숨 자고 싶다는 충동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충동을 견디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진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망할, 한 번 넘어진 것뿐이다. 그냥 한 번 넘어진 것뿐이야……!’
퉷!
오만상을 찌푸리며 모래를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모래에 반사되는 태양빛 때문에 현기증이 밀려왔고, 비틀거리는 두 다리는 자기 것이 아닌 듯했다.
그때, 난데없이 수통을 쥔 사람의 손이 보였다.
누군가 진의 옆에 바짝 붙어 내민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사막에 그럴 만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신기루인가!’
신기루든, 진짜 사람이든.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수통을 내밀었다는 게 중요했다. 수통이 아니라 검을 휘둘렀다면, 인지할 새도 없이 당했을 터.
스릉!
폼멜로 수통을 쳐내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홱 몸을 회전시켜 그의 뒤를 잡고 목덜미에 바짝 칼날을 붙였다.
툭, 바닥에 수통이 떨어지기도 전에 상대의 목숨줄을 쥐게 되었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속도였다.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있던 건지 진 본인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수통의 주인은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진은, 그가 로브를 입은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수통을 놓친 반대편 손엔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 은소나무로 만든 것이 분명한 지팡이였고,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여인의 붉은 머리칼도 익숙했다.
‘붉은 머리에 은소나무 지팡이, 설마……!?’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기억 속, 그토록 화려한 붉은 머리에 은소나무 지팡이를 쓰는 건 단 한사람뿐이었다.
“발레리아……?”
“칼 좀 치워줘. 정말로 찌를 게 아니라면.”
진이 그녀의 목에 겨눠진 검을 천천히 내렸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선 그녀는, 진이 그토록 그리워한 얼굴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발레리아 히스터.
전생의 진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인물이 바로 그녀였다.
“어떻게…….”
아니, 어떻게가 아니다.
신기루일 것이다. 지금 진이 보고 있는 것은, 스물여섯 살의 발레리아. 전생에서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사막에서 보낸 고단한 날들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그녀를 보자마자 꾹꾹 눌러온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 같았다.
“3년 전,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제자 씨한테 손을 내밀었던 날도 똑같았지. 그때도 제자 씨는 반사적으로 내 목에 칼을 겨눴어. 솜씨는 지금과 달리 형편없었지만.”
3년 전의 진은 검의 정원에 있었다.
그러나 발레리아의 3년 전엔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속 진은 막 룬칸델에서 추방당해 폐인처럼 세상을 굴러다니던 상태였다.
“……발레리아, 아니. 스승. 당신이 두 번째 신기루인가.”
“그렇게 된 것 같네.”
“뭐야, 대체. 당신은 당신이 신기루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야?”
“응, 알아. 곧 열다섯이 될 실제의 나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럼 내가 할 일은…….”
“나를 죽이고 지나가는 거지.”
잔인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진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사막의 신기루는 마법도 아니고, 권능도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신기루들은, 모두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들이었다.
내면과 기억 속에, 형형히 서 있던 사람들. 그렇기에 토나 형제를 벨 때도 진짜 혈육을 벤 기분이었고, 이번에도 진짜 스승을 만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제자 씨와 이렇게 재회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 조금 더 그럴싸할 때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이러지 마, 스승. 왜 하필 당신이냐고.”
발레리아가 땅에 떨어진 수통을 집어 진 쪽으로 던졌다.
“마셔, 그 상태로 나랑 싸우면 첫 영창에 죽어.”
“다른 수는 없는 건가?”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 부정하지 마. 다시 태어나고 엄청 강해졌다던데, 정신력은 내 기억 속 제자 씨가 더 나은 것 같은 걸. 무른 소리나 하고 말이야.”
진이 떨리는 손으로 발치에 떨어진 수통을 집었다.
지난 며칠간 생지옥이나 다름없던 사막을 걸으며,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이 한가득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시고 싶지가 않았다. 이 물을 마시면, 그 다음은.
‘당신을 죽여야 하잖아.’
토나 형제를 베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감히 그가 그녀를 베는 것은. 발레리아 히스터,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은 두 번째 삶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룬칸델로서 겪은 25년을 비관하며 떠돌이 개처럼 살다가 객사했을 것이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줬기에, 진은 그 손을 뿌리치고 목에 칼을 겨눴는데도, 그녀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와줬기에.
지금의 진이 존재할 수 있었다.
“못 본 새에 많이 건방져졌네, 제자 씨.”
진의 망설임을 알아본 발레리아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마력 해방을 펼치자,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퍼런 마력이 그녀의 은소나무 지팡이를 휘감았다.
“7성 마법. 고작 그 정도 성취를 이뤘다고, 벌써 나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마셔, 진 룬칸델. 난 제자 씨의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해. 넌 나와 싸울 준비가 되어있을 거야.”
딸각…….
수통을 열었다. 한 번 더 망설이면, 그녀는 가차 없이 마법을 쏠 것이다. 진이 기억하는 발레리아 히스터라는 마법사는 그 어떤 무인보다도 검 같은 인물이었다.
그만큼 모든 것이 확실했다. 맺고 끊음도, 싸우고 물러서는 일에도.
“당신에게 나는 무엇입니까.”
“유일한 제자.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해.”
“진짜 당신도 이랬을까요.”
“이보다는 더 널 사랑했겠지. 아마 한 번쯤은 안아줬을 거야. 어쩌면 네 이마에 입을 맞췄을지도 모르고.”
“내게 듣는 말이나 다름이 없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말고, 날 꺾고 지나가. 아직 한 번이 남았잖아? 제자 씨가 겪어야 할 신기루는.”
벌컥, 벌컥!
단숨에 수통을 비웠다. 그러나 평범한 물이 아닌 듯, 빠르게 원기가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검과 영기를 모두 써도 괜찮아.”
기억 속 스승이 그렇게까지 강했던가. 지금의 자신이 모든 걸 쏟아 부어야 될 정도로.
얼른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발레리아의 지팡이에 모인 마력이 기억보다 한참 강대하다는 것이다.
넘을 수 없는 벽.
한 때는 발레리아가 그렇게 느껴졌다. 솔더렛과 계약하고 난 다음에도, 발레리아의 마법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지 늘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은, 넘고 싶지 않은 벽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푹……!
진이 브라다만테를 모랫바닥에 꽂았다. 발레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후회할 텐데.”
“당신을 꺾는 일에 검까지 쓰면 더 후회할 겁니다. 당신은 내 마법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하긴, 제자 씨는 그렇게 안 생겨서 무모한 게 매력이었지.”
파지지직-!
발레리아의 마력이 한순간에 전격 속성을 띄었다. 한창 그녀에게 수련 받던 시절, 툭하면 진을 구워댄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무모함 때문에 늘 내게 혼이 나곤 했고 말이야.”
번쩍!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섯 줄기의 번개가 내리쳤다. 진이 피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였고, 이글거리는 발레리아의 지팡이에선 벌써 또 다른 마법이 형성되고 있었다.